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7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74화(274/325)
274. 진짜 비결
영화는 더 불독의 성공 요인을 숨김없이 알려주었다.
선택과 집중.
한정된 자원을 분산시키는 대신, 한 곳에 집중시켜서 퀄리티를 올리는 전략이다.
더 불독에는 런치 서비스가 없다.
런치를 없애는 대신, 디너에 집중해서 퀄리티를 올렸다.
그뿐이 아니다.
―더 불독은 한 시즌만 오픈하잖아? 대중에 공개되는 시기를 ‘프로덕션 단계’라고 하지. 비오픈 기간은 ‘크리에이티브 단계.’ 뭐, 창의력을 키우는 시간이라고 보면 되지. 재료 찾으려 여행을 다니거나, 조리법 연구를 하거나. 연구소처럼 운영하거든.
언젠가 파코로부터 들은 얘기였다.
더 불독은 1년 중 6개월, 문을 닫는다. 그 기간 동안, 상임 직원들은 재료를 발굴하거나 메뉴 개발에 전념한다.
더 불독이 창의적인 요리를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었던 이유. 요리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의문이 더욱더 깊어졌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1년 중 절반은 문을 닫으며 연구하고, 문을 여는 동안에는 하루 1끼만 제공한다. 다른 레스토랑이라고 그걸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수익이 안 난다.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걸, 더 불독은 해냈다.
어떻게?
‘기업 고객이 있어서 가능한 건가?’
페르난도는 ‘사피엔스 방법론’으로 각종 기업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금으로…
‘아냐, 그건 은퇴한 이후의 일이잖아?’
페르난도가 해당 연구를 시작한 건, 더 불독이 문을 닫은 이후다.
그전에는?
더 불독은 어떻게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운영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상태로 세계 1위 레스토랑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그게 진짜 비결이다.
‘다른 곳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거겠지.’
이 레스토랑은 손님에 의존하지 않는다. 손님이 지급하는 비용이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기본적인 운영자금은 다른 곳에서 온다.
적어도, 한길이 추측하기로는 그랬다.
그래서 판매량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손님의 취향과 무관하게 혁신적인 요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거다.
어떤 수단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해내야죠.
페르난도의 파트너이자 더 불독의 공동 오너. 런치 서비스 중단 소식에 한탄하면서도, 어떻게든 해내겠다고 말한 인물.
줄리 솔리에르.
더 불독의 진짜 비결을 알아내려면…
줄리를 만나야 한다.
#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한길은, 파코의 사무실에 먼저 들렀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한 달.
페르난도와의 내기만 믿고, 얌전히 작업실 안에 틀어박혀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파코를 만나야 하고.
“한길?”
예상대로 파코는 일찍 출근해 있었다. 오늘은 더 불독의 오프닝 날. 어제도 쉬는 날을 반납하고 준비했는데, 오늘도 일찍 나오는 게 당연했다.
“자네가 무슨 일이지?”
파코의 말투에서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전시관을 둘러보는 도중에도, 페르난도에게 나물을 보여주는 동안에도. 파코는 이상할 정도로 한길을 멀리하고 있었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요.”
“뭐를?”
“별것 아니지만 저한테는 소중한 물건이어서 그러는데, 잠시 찾아봐도 될까요?”
“… 그러도록.”
자신의 짐을 옮기면서 한길은 파코의 사무실 곳곳에 개인 물건을 숨겨두었다. 나중에 파코를 만나러 올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왠지 모르겠지만, 페르난도의 작업실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었네요.”
여기저기 뒤적거리던 한길이, 서랍장 밑에서 작은 만년필 하나를 꺼냈다.
“그게 왜 거기서 나와?”
“그러게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선물 받은 거라서 잃어버리면 안 되거든요.”
“의외로 허당인가 보군.”
“그런 말을 가끔 듣긴 하죠. 제가 물건을 워낙 잘 흘리고 다녀서 몇 개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물건이 보이면 버리지 말고 따로 보관해 주세요.”
“그러지.”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태도.
‘곤란하네.’
상대가 이렇게 불편해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기 힘들어진다. 파코에게는 오늘 시식할 재료의 뒷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줄리에 대한 정보도 얻어야 하는데…
‘재료 얘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파코는 항상 식재료 얘기만 나오면 흥분했으니까. 적당히 분위기를 풀어준 후에 용건을 꺼내는 게 좋아 보였다.
작업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늘 시식할 재료 중 몇 개가 꺼내있었다. 그중 하나는 파충류 발바닥처럼 생긴 해괴한 재료. 한국에서는 거북손이라고 불리는 재료였다.
“이건 뭐죠? 처음 보는 건데…”
역시.
재료 얘기가 나오자 파코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페르세베스(percebes)라고 불리는 놈이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비싼 해산물일걸? 1킬로에 200유로까지 하거든.”
한국에서도 거북손은 귀한 재료지만, 그 정도 가격은 아니다.
“구하기 어렵나요?”
“그저 그런 품질의 페르세베스는 많지만, 이 정도 품질은 목숨 걸고 수확해야 하거든. 파도가 세게 몰아치는 곳에 서식하는 놈들이 두껍고 씹는 맛이 있는데,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위에 올라타서 이걸 따오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이것도 시장에는 잘 안 나오는 거겠네요.”
“크크, 잘 아는군! 페르세베이로스(percebeiros)라고, 이걸 따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지. 허리에 로프를 매고, 수트를 입고, 위험지역에 들어가서 따오는 사람들인데…”
설명을 들어보니, 한국의 해녀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페르세베이로스는 호세라는 친군데…”
파코는 평소처럼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고, 한길은 그의 말을 끊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귀담아들었다.
파코에게는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있었다. 떠나기 전에 파코의 노하우도 전부 알아가야 했다.
“… 그러다가 호세랑 친구 먹은 거지. 그때, 새로 수확한 게 있으면 무조건 나한테 먼저 연락하라고 했거든. 그리고 연락이 올 때마다 소량이라도 계속 구매를 했지. 한 번이라도 거절하면, 다음에는 연락할까 말까 망설이게 되거든.”
“대단하네요. 다음에 호세가 찾아오면, 저도 같이 만날 수 있을까요?”
“뭐, 페르난도가 괜찮다고 한다면.”
어느새 파코는 평소와 같이 편안한 자세로 대화하고 있었다.
질문하려면 지금이다.
“그런데, 줄리는 어디 있나요?”
“줄리?”
“어제 영화를 보니까 이곳의 공동 오너라고 하던데, 뵌 적이 없어서요.”
한길의 질문에 파코가 갑자기 가라앉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셨어. 지병이 있으셨거든.”
“죄송합니다. 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뭐, 알고 질문한 건 아닐 테니 신경 쓰지 마. 벌써 5-6년은 되었고.”
“그분은 어떤 분이셨죠?”
파코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리에게는 부모나 다름없는 분이셨지. 우스갯소리로 페르난도는 아빠, 줄리는 엄마라고 불렀거든. 페르난도의 와이프도, 줄리가 진짜 와이프고 자기는 애인이라고 농담할 정도였고.”
“사이가 좋으셨나 보군요.”
“뭐, 그렇지. 페르난도와 줄리는 더 불독을 이끄는 2인조였으니까. 이 레스토랑의 모든 결정은 두 사람이 같이 내렸고.”
“그분도 페르난도랑 비슷한 성격이었나 보네요.”
“아니, 전혀! 페르난도가 괴짜 과학자 아빠라면, 줄리는 살림을 책임지는 엄마 같은 느낌이었어. 페르난도를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성공적으로 말린 적은 없는데, 이상하게 줄리가 나서면 마음이 편해졌거든.”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한길에게도 비슷한 존재가 있었으니까.
한길이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 와 있는 것도. 더 불독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탐정 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돌봐주는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셰프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건가?’
‘가속화 지점’은 주방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최셰프의 포지션에 있는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러면 다음은 가장 중요한 질문.
“런치를 중단한 후로, 레스토랑 운영자금은 어떻게 구한 거죠?”
“크크! 이놈 봐라, 이거?”
파코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그걸 보고 이걸 캐치해내는 놈이 있네? 뭐, 네놈이라면 그럴 만 하지만.”
“질문만 나오고 답이 안 나오니 궁금한 게 당연하죠.”
“지금까지 그 영화를 본 실습생이 몇백 명인데, 그 질문을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인데?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냐? 그건 말해줄 수가 없는데.”
“네?”
“말 못 한다고.”
한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파코가 이런 답변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질문해도 된다면서요?”
“나도 약속을 깨고 싶지 않지만, 이건 명령이라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누군가’가 함구령을 내렸거든.”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이.
페르난도다.
‘하긴….’
더 불독의 성공 비결을 미끼로 내걸었는데, 한길이 다른 경로로 그 정보를 알아내면 페르난도가 곤란해진다. 그래서 파코에게 입단속을 시킨 거고.
‘알고 있었나?’
한길이 내기를 받아들인 후, 별도의 방법으로 필요한 정보를 캐물을 걸 예측한 것이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할 수는 없어서. 이해하지?”
“네, 어쩔 수 없죠.”
그렇다고 수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파코는 재료 공급망이나 줄리에 대한 정보는 알려주었다. 하지만 런치 서비스 이후, 어떤 수단으로 자금을 확보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답이 된다.
파코가 답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한길의 질문이 적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페르난도가 숨기고 싶어 하는 정보다. 그걸 알아냈다면, 다른 방법으로 답을 찾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이제 더 불독은 페르난도 단독 소유인 건가요?”
“어?”
“줄리가 공동오너라고 했었으니까요.”
“아, 줄리의 지분은 아들이 물려받았지. 너는 아직 못 만났나? 홀 매니저인 알레한드로가 줄리의 아들이거든.”
줄리의 아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해결책에 절로 입꼬리가 당겨졌다.
“그렇군요.”
#
당장 줄리의 아들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업무를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으니까.
작업실에 도착하니, 페르난도가 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딱 맞게 왔군. 오늘의 일정이니 미리 봐두게.”
페르난도가 건넨 종이는 오늘의 스케줄표. 아침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단 한 시간의 쉬는 시간도 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앞으로는 자네가 일정을 관리해야 할 거야. 그리고 오늘은 ‘예외’로 여겨줬으면 좋겠군. 비서가 필요한 날이니까.”
“물론입니다.”
페르난도는 한길에게 하루에 4시간, 메뉴 개발에 전념할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만큼 그럴 수 없었다.
더 불독이 10년 만에 문을 여는 날이니까.
페르난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취재에 응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오이도.”
페르난도와 함께 전시관으로 향하자, 수십 명의 기자와 카메라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페르난도!”
“이쪽이요, 페르난도!”
여기저기서 페르난도의 이름을 불렀고, 페르난도가 그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플래시가 터졌다.
셰프의 기자회견장보다는, 레드카펫 현장과도 같았다.
‘저게 촬영 팀이구나.’
거대한 카메라와 털이 복슬복슬한 장비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다큐멘터리 촬영팀도 와있다고 들었는데, 그쪽 관계자인 모양이었다.
“자, 모두들 자리에 앉으시길 바랍니다.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테니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요, 하하하. 그러다가 페르난도 도망가겠어요.”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상황을 정리했고. 잠시 후,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독일의 스탠더드에서 왔습니다. 새로 오픈한 더 불독은 과거의 불독과 어떤 면에서 차별화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엔아이 타임스에서 왔습니다. 페르난도가 떠난 사이, 미식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었다고 보시는지요?”
스페인 현지 언론은 물론, 바다 건너온 취재진도 많았다. 한 시간이 넘도록 질문은 그치지 않았다.
‘이게 진짜 탑셰프구나.’
영화를 봤을 때는 그저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라고 생각했는데… 페르난도는 그 이상의 거물이었다.
“저는 경쟁을 하기 위해 다시 나온 게 아닙니다. 앞으로 미식계를 이끌어갈 인재는 제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셰프들이죠. 저는 그들을 위한 이정표가 되기 위해 다시 더 불독의 문을 연 겁니다. 더 불독은 배움의 장소가 될 겁니다.”
페르난도는 진지한 말투로 질문에 답하고 있었지만, 한길은 속으로 코웃음을 삼켜야 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치사하게 실습생 한 명을 상대로 직원들 입단속을 시켰다고 생각하겠는가.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던 그때,
“알레한드로! 전화가 왔는데요…”
갑자기 들려온 이름.
고개를 돌려 보니, 웨이트리스로 보이는 여성이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에게 전화기를 건네주고 있었다.
사회자 역할을 맡았던 남자.
저 남자가 알레한드로.
줄리의 아들이다.
남자는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약 5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한길과 마찬가지로, 무대 뒤에 서 있었다.
‘다가가 볼까?’
페르난도가 취재에 응하는 동안 몰래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한길은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여 애써 못 본 척을 했다.
서두르면 망칠 수도 있다.
페르난도는 이미 파코에게도 입단속을 시켜놓았다. 한길이 알레한드로에게 접근하는 모습을 들킨다면, 그쪽에도 손을 쓸 게 뻔했다.
어쩌면 이미 손을 써뒀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페르난도의 눈을 피해서 그와 접촉하는 게 성공률은 더 높을 거다.
#
오프닝 날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페르난도는 기자들을 이끌고 전시관 투어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크리에이티브 파트와 함께하는 시식 타임. 기자들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참여하는 바람에 어딘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시식을 마친 후에는 매체별 인터뷰, 사진 촬영, 다큐멘터리 인터뷰…
“멀리 가지 말고 얌전히 구석에서 지켜보도록.”
“오이도.”
일정 내내, 페르난도는 한길에게 자유행동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한길은 딱히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페르난도를 보며 배울 수 있었으니까.
알레한드로는 첫 번째 순서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홀 준비를 하는 거겠지?’
오프닝을 앞두고 신경 쓸 게 많을 거다. 한길은 얌전히 페르난도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호시탐탐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기회가 찾아온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오프닝을 위한 최종점검을 할 때였다.
“당신이 페르난도의 비서죠?”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한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알레한드로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던 웨이트리스였다.
“오늘 오실 손님들의 예약 정보에요. 페르난도에게 전달 부탁드려요.”
여자는 종이 뭉치를 건네준 후, 잰걸음으로 떠났다.
종이 뭉치는 손님에 대한 정보였다.
알레르기가 있는지, 과거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때는 어떤 메뉴가 나갔는지…
‘여기도 슬아가 말했던 프로그램을 쓰나 보네.’
손님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이었나. 박람회에서 슬아가 그런 소프트웨어를 발견했고, 최근에는 한길의 레스토랑에서도 그걸 도입한 참이었다.
더 불독도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는 편집 당했지만, 이렇게 사전에 준비한 데이터를 통해 손님들에게 맞춤형 메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잠시만요, 페르난도. 음향 장비에 문제가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갈게요.”
페르난도는 다큐멘터리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앞으로 15분에서 20분간은 묶여 있을 터.
‘지금인가?’
움직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한길은 조용히 뒷걸음질을 치며 그늘 속으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