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7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76화(276/325)
276. 다시 놀자고!
‘이렇게 주방에 서는 것도 오랜만이네.’
베르사유에서도, 실습생 생활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요리했지만···. 서비스 중인 레스토랑 주방에 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길은 잠시 눈을 감으며 주방의 공기를, 이 분위기를 음미하듯 감상했다.
“파르미지아노 마카롱 셋.”
“오이도!”
“오이도!”
페르난도의 명령에 우렁찬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에 긴장하던 실습생들도, 갈수록 적응하고 있었다.
분주하지만, 정돈된 분주함.
기분 좋은 긴장감.
마음 같아서는 한길도 당장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길은 페르난도의 비서였으니까. 그리고 페르난도는 서비스 중에 직접 요리하지 않으니까.
전쟁으로 비유하면 페르난도는 장군, 요리사들은 병사다.
장군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최전선에서 검을 휘두르지 않는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적절한 지시를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지시를 내리는 페르난도와 달리, 비서인 한길은 할 일이 없었다.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 주방을 바라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갈증이 한 번에 몰려왔다.
‘가고 싶네···.’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옆에서 지켜만 보는 방관자가 아니라···. 직접 나서서,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부대를 직접 지휘하고 싶었다.
“하아···.”
무심코 나온 한숨 소리에 페르난도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답답한가 보군.”
“아닙니다.”
“희한한 친구란 말이지. 보통은 이 자리에 못 와서 안달인데, 누가 보면 억지로 묶어둔 줄 알겠어.”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다 경험이고 배움의 기회니까요.”
한길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간신히 답했지만, 페르난도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다시 땅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참아야 한다. 여기서 보내는 한순간 한순간이 3호점을 위한 밑거름이 될 테니까.
‘그래, 이 김에 요리사들을 업그레이드시킬 방법을 알아보자.’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별수 있나. 한길은 생각을 조금 전환하기로 했다.
3호점에는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한길이 성장하는 것은 기본. 이번 기회에 최셰프는 물론, 병사들 한 명 한 명 모두 강화하고 싶었다.
이곳의 실습생들을 관찰하면, 요리사들을 위한 팁을 얻을지도 모른다. 한길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주방을 다시 관찰했다.
“오이스터 리프 넷.”
“오이도!”
“오이도!”
페르난도의 지시에 실습생 1이 주방 한가운데에 있는 아일랜드 조리대에 네 개의 접시를 내려놓았다. 실습생 2가 접시 위에 이파리를 하나씩 얹었고, 실습생 3이 주사기를 이용해 이파리 위에 무언가를 뿌렸다.
‘왜 저 한 요리에 세 명이나 붙은 거지?’
오이스터 리프는 간단한 요리다. 한길의 레스토랑이었다면 요리사 한 명이 전체를 다 담당했을 텐데···.
“오믈렛 서프라이즈 셋.”
“오이도!”
“오이도!”
페르난도의 지시에 실습생 4가 냄비 세 개를 세팅하고 두유를 끓이기 시작했다. 두유를 서서히 끓이면 표면에 응고되는 그 얇은 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실습생 2는 요구르트 거품을 만들었고, 실습생 3은 접시를 세팅했다.
유바가 완성된 후, 실습생 2가 접시 위에 거품을 뿌렸고. 실습생 4, 실습생 5, 실습생 6이 거품 위에 유바를 올리고 오믈렛 모양으로 빚어냈다.
조금 더 복잡한 요리를 보니, 이곳의 시스템이 이해가 갔다.
‘훨씬 더 잘게 쪼개놓았구나.’
모든 레스토랑은 어느 정도 분업화되어 있지만, 더 불독은 훨씬 더 세밀하게 분업화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한길의 주방에서는 해산물 담당이 한 접시에 올라가는 새우와 관자를 모두 담당할 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새우 담당과 관자 담당이 따로 있았다. 한 명의 소스 담당이 모든 소스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각 소스마다 담당이 따로 있었고.
그래서 속도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이건 조금 별로네.’
이 정도로 분업화하면, 요리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기계 속의 톱니바퀴가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완성된 요리는 뛰어날지 몰라도, 그 요리를 만든 실습생들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거다. 게다가,
‘여기서도 경쟁하고 있네.’
실습생들이 소리 없이 몸싸움하는 모습도 보였다. 조금이라도 더 비중 있는 요소를 담당하고 싶어 하는 실습생들이, 서로를 밀치고 있었으니까.
경쟁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쟁은 취향이 아니었다.
‘뭐, 다 배워갈 필요는 없지.’
한길은 더 불독을 그대로 옮겨가려는 게 아니다. 여기서 쓸만한 알짜배기 정보만 얻어가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할 때,
“페르난도.”
하비에르가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접시 위에는 익숙한 요리가 있었다.
빙하를 깨고 피어오른 새싹···.
언젠가 크리에이티브 파트에서 개발한 메뉴로, 페르난도가 ‘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요리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얼음은 레몬 소르베, 흙은 감초와 커피 스펀지, 그리고 내부에는 요구르트 젤라틴이 들어있었지만. 그사이에 추가된 요소가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장미 향을 입힌 설탕을 뿌려봤고, 솔잎 에센스 소르베와 잣도 더해 봤습니다.”
이 요리는 약간의 수정을 한 후에 메뉴에 바로 올리자고 했던 요리다. 그건 알지만···.
‘왜 하필 지금이지?’
가장 바쁜 서비스 중에 이걸 보여주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시식을 했고, 이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안토니오!”
“오이도!”
페르난도의 부름에 안토니오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오이도, 안토니오?”
“오이도.”
‘오이도’ ‘오이도’로 완성되는 대화.
얼핏 보기에는 이상했지만, 이제는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주방에서 ‘오이도’는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
안토니오는 실습생들에게 신메뉴의 조리법을 알려주는 상임 직원. 아마 방금의 ‘오이도’는, 이 메뉴를 실습생들에게 숙지시키라는 의미의 ‘오이도’일 거다.
“한길.”
“오이도.”
페르난도가 고개를 돌려 한길을 똑바로 바라봤다.
“여기 들어간 재료에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지금요?”
“오늘 중으로 내려면 지금 확인해야지. 하비에르! 오이도?”
“오이도.”
한길이 알레르기 유무를 확인하는 동안, 등 뒤로 하비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토프, 라엘라. 두 사람은 소르베를, 앤서니는 흙, 클레어는 가니쉬를 맡는다.”
“오이도!”
“오이도!”
오늘은 크리에이티브 파트 실습생들이 이 요리를 만들어서 홀에 내게 된다.
‘이렇게 당일에 추가하는구나···’
이곳에서는 서비스 도중에 신메뉴가 추가된다.
그러고 보니 처음 올 때 그런 말을 듣긴 했다. 더 불독은 시즌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메뉴가 다르다고.
처음에는 50여 개의 메뉴로 시작하지만. 이렇게 서비스 도중에 하나씩 추가해서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백 개가 넘는 메뉴가 생긴다.
‘이건 좋네.’
요리사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컨셉이었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동안에도 진화하는 레스토랑이라니···. 이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필요한 건···.
“오이도, 한길?”
“오이도! 7번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괜찮습니다.”
일단 생각은 나중에. 지금은 해야 할 것도, 봐둬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
‘실수가 잦아지네.’
서비스가 시작되고 약 네 시간.
주방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의욕 넘치던 실습생 1은 멍때리는 시간이 많아졌고, 실습생 5는 손에 묻은 물기를 채 닦지 않고 카나페 작업을 해서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미치겠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한길이 소리 내 지적할 수는 없었다. 일개 실습생이자 비서가 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눈에 보이는데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다니, 이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힘든가 보군.”
“아닙니다.”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페르난도는 한길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나랑 내기 하나 하지 않겠나?”
“내기라면 이미 하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페르난도와 한길은 이미 내기를 진행 중이었다. 한국 재료로 고차원적인 창의 요리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 더 불독을 성공 궤도에 올린 주요 가속 점을 알려주기로.
“그건 장기적인 내기고, 이건 당장 오늘 결과가 나오는 내기지.”
분명 처음 봤을 때는 진지하고 엄격한 분위기의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페르난도는 의외로 아이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손에 들고 있는 장난감에 싫증을 느껴 5분마다 다른 장난감을 찾아 나서는 그런 아이.
“일단 들어보고 결정을 내리는 건 어떤가?”
“···.”
“실습생들의 실수 10개를 잡아내면, 자네가 하는 질문 하나를 답해주도록 하지.”
“하겠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해줄 수 없지만.”
“괜찮습니다.”
“의외군. 자네가 그렇게 덥석 하겠다고 하다니.”
그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미칠 것 같았으니까.
#
“발견했습니다.”
“어디?”
실수를 저지른 실습생의 이름을 대고 싶었지만, 솔직히 기억이 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한길이 임의로 지은 이름인 ‘실습생 4’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저기, 고르곤졸라 모찌 담당이요. 모찌는 물기 제거를 위해 타올 위에 한쪽당 4번을 굴려야 하는데, 한 번이 모자랐습니다.”
“호오, 눈이 좋군!”
내기는 꽤 재밌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또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디?”
“룰로 위에 올라갈 푸아그라 가니쉬를 너무 빨리 냈습니다. 저대로라면 타이밍이 맞지 않아 녹을 겁니다.”
“나쁘진 않은데 하나 놓쳤는걸?”
“그런가요?”
“저 실습생은 이동할 때 ‘케모’를 외치지 않았거든.”
페르난도는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은 놀이공원에 풀어놓은 초등학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벌써 10개를 다 맞췄군.”
“그렇군요.”
“질문이 뭐지?”
한길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더 불독의 성공 요인을 제외하면, 페르난도에게 아무 질문이나 할 수 있는 기회다.
조금 더 전략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하나뿐. 아까부터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
“왜 모든 요리가 한입 크기죠?”
한길의 질문에 페르난도의 동공이 일순 확장되었다. 고작 1초뿐이지만.
“무슨 말이지? 요즘은 다 한입 요리로 만들지 않나.”
“적어도 제가 아는 레스토랑에서는 애피타이저나 스낵만 한입 크기로 만듭니다. 그런데 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요리가 한입, 많으면 두 입에 먹을 수 있는 요리죠. 딱히 메인이라고 불릴 메뉴도 없고요.”
그게 의문이었다.
저것이 주방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이었으니까.
페르난도의 요리는 복잡하다.
한 접시를 만드는데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데, 기껏 만든 요리를 손님이 먹어 치우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곳의 모든 요리는 한입에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 불독에는 손님당 최소 35개의 요리가 나갔다. 다른 곳에서는 스테이크를 한 덩이 준다면, 이곳에서는 한 입만 주기 때문이다.
“자네가 보기에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글쎄요. 처음에는 한 입 요리만 내서 맛의 신선함을 유지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논리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아니지만?”
이렇게 답을 회피하는 걸 보니, 분명 무언가가 있다. 아니면 왜 이리 숨기려 하겠는가.
“페르난도라면 그런 평범한 이유가 아니라, 분명 다른 의도를 갖고 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하하하하!”
페르난도가 특유의 괴상한 웃음을 터트리자, 주변 실습생들이 한꺼번에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을 의식한 페르난도는 고개를 푹 숙이며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였다.
한참 후, 얼굴이 빨개진 페르난도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역시 다르군. 그래, 그래야지.”
“그게 답인가요?”
“자네, 타파스를 아는가?”
“알긴 알죠.”
“이건 내 방식의 타파스지.”
타파스는 술과 곁들여 먹는 작은 요리.
‘타파’는 스페인어로 ‘뚜껑’이나 ‘덮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맥주나 와인 잔에 벌레가 들어가지 않게, 잔을 덮을 용도로 빵이나 소시지 등을 낸 게 시초다··· 라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작은 접시에 나오는 다양한 요리. 스낵과 안주 사이쯤 되는, 스페인만의 독특한 요리이자 식문화였다.
한길은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답하기를 망설이셨던 거군요.”
“뭐, 그렇지. 귀신 같군, 그래.”
페르난도가 답을 꺼린 이유.
이 답변이, 한길이 한 내기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겠지.
더 불독의 요리는, 얼핏 보면 타파스와 전혀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한입으로 즐기는 방식은, 스페인 특유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페르난도가 재해석한 타파스라고 해야 하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이게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는 않았지만. 뭔가 흐릿하게 잡힐 듯 말 듯 한 감각이 느껴졌다.
“한 게임 더 해도 되나요?”
“아니.”
“네?”
단호한 답변에 한길이 화들짝 놀라자, 페르난도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이 라스트 오더거든. 주문 하나 처리하는데 실수가 10개나 나오면, 오늘 당장 문 닫아야지.”
시계를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벌써 첫날이 막을 내린 거다.
페르난도는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 모두 활짝 펴질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아쉬워하진 말고. 내일 다시 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