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7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78화(278/325)
278. 선약이 있어서요
“페르난도의 비서분이시군요. 여긴 왜 들어온 거죠?”
알레한드로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고,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불쾌한가 보네.’
이해는 갔다.
알레한드로의 눈에 지금의 한길은 수상해 보일 테니 말이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한길의 레스토랑에 잠시 머물다 가는 단기 실습생이, 출근 시간도 아닌데 업장을 어슬렁거린다면? 한길 역시 꺼림칙할 거다.
이럴 때는 발뺌하지 말고 사과하는 게 좋다. 아니, 더 나아가···.
불현듯 퐁파두르가 애용하던 표정이 생각났다. 어깨를 움츠리며 눈꼬리를 내리는 처연한 표정이. 그 모습을 보면, 화를 내려야 낼 수가 없다.
“출근 시간이 미뤄진 걸 깜빡하고 일찍 와버렸어요. 테라스에서 기다리려 했는데··· 우연히 전시관 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실수였습니다. 원래 이런 실수는 잘 안 하는데··· 바로 나가겠습니다.”
한길은 처연한 얼굴로 사과하면서 ‘실수’라는 말을 반복했다.
고의적인 단어 선택이었다.
한길은 어제, 알레한드로의 ‘실수’를 사전에 방지해준 은인이었으니까.
효과는 있는 모양이었다.
알레한드로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그렇게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 놀랐을 뿐이니까요. 이름이 한길이었죠?”
방금 전 자신의 싸늘한 태도가 무안했는지, 알레한드로는 서둘러 대화 주제를 돌렸다.
“계속 구경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대중에게도 오픈된 공간이니까요. 페르난도의 과거 요리를 보고 계셨군요.”
이대로 떠나보내면 안 된다.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면서 친밀도를 올려야 한다.
한길은 진열된 요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초창기 요리는 생각보다 평범해서 페르난도의 요리라는 게 믿기지 않더라고요.”
“평범이라···. 잘 모르고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요리도,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죠.”
“그래요?”
“1980년대에는 ‘고급 요리’의 틀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무조건 프랑스 요리여야 했고, 재료는 푸아그라 같은 고급 프랑스 재료만을 써야 했죠.”
평범해 보이는 요리도, 사실은 평범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국적인 재료를 환영하지만, 40년 전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페르난도는 그런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스페인의 토종 재료를 이용한 고급 요리를 선보인 거다.
“페르난도는 그때부터 도전적인 성격이었나 보군요.”
“아직 젊었으니까요. 스물여섯의 나이에 헤드 셰프가 됐었거든요.”
“꼭 직접 경험한 것처럼 잘 아시네요.”
“··· 나름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뭐지?’
알레한드로는 딱 봐도 한길과 비슷한 나이. 페르난도가 활약하던 시대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걸음마도 못 하는 갓난아기였을 거다.
어떻게 그리 잘 아냐고 질문하면, 당연히 아버지에게 들었다는 얘기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한길은 공백이 생기지 않게 서둘러 대화를 이어나갔다.
“26세에 헤드 셰프라니, 생각보다 젊었네요.”
“그 당시에는 젊음이 좋은 게 아니었죠. 지금이야 젊고 아이디어 넘치는 천재들을 환영하지만, 그때는 경험을 가장 중요시했거든요. 족보도 없는 어린 셰프가, 이상한 음식을 만든다는 평이 많았죠.”
“족보가 없다고요?”
“요리를 진지하게 하려면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습생 생활을 해야 했는데, 페르난도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용케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네요?”
“수완이 좋았으니까요.”
드디어 원하는 주제가 나왔다. 이제 자연스럽게 더 불독의 사업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고 생각한 찰나,
“그런 것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페르난도가 천재였으니까요.”
알레한드로가 다시금 주제를 돌렸다.
‘뭔가 있네.’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는 알레한드로를 보니, 언젠가 니콜라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프랑스에서 보낸 마지막 날. 니콜라는 자신의 모든 비법을 전수해주겠다며, 한길을 붙잡고 강제로 해가 뜰 때까지 강의했었다.
이성에게 인기를 얻는 법, 멋쟁이로 평가받는 법 등의 필요 없는 강의가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나름 쓸만한 내용도 있었다.
— 상대가 시선을 회피하면서 주제를 돌리면, 열등감 때문일 경우가 많거든. 그럴 때는 절대 캐묻지 마. 캐물을수록 도망가니까.
— 그러면 어떻게 해요?
— 그 열등감이 뭔지 알아내고, 내 쪽에서 같은 내용으로 고민 상담을 하는 거지. 상대의 입에서 ‘나도!’라는 말이 나오게 연기하면 돼. 의외로 효과가 좋다고!
알레한드로의 열등감은 대략 추측할 수 있었다.
줄리 솔리에르는 더 불독을 세계 최고 레스토랑으로 만든 인물이었다. 알레한드로는 그런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고.
부담스러울 거다.
분석을 마친 한길은, 씁쓸한 표정으로 진열장을 바라봤다.
“이 전시를 보다 보면, 페르난도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과연 나도 이걸 해낼 수 있을지···.”
알레한드로는 뒤늦게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아, 당신이라면 그러겠네요! 페르난도의 후계자 자리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후계자?”
“전설의 뒤를 잇는 건 쉬운 게 아니죠.”
대체 페르난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한길이 후계자라고 떠벌리고 다닌 걸까.
사실을 바로잡으려는 순간, 알레한드로가 작은 목소리로 고백하듯이 말했다.
“이 심정은··· 저희만 이해할 수 있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왜, 콩쿠르 같은 데서도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는 천재가 있잖아요? 그런 천재 바로 뒤에 연주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거든요, 안 그래요?”
“···.”
“나도 나름 열심히 연습했고, 실력에 자신도 있지만··· 직전에 연주한 사람과 비교당할 수 밖에 없으니 의식하게 되죠.”
이렇게 된 이상, 서둘러 필요한 정보만 캐내고 최셰프에게 전달만 하면···.
띠리리리!
오늘은 날이 아닌 걸까. 이번에는 핸드폰에 미리 설정해둔 알람이 울렸다. 이미 출근 시간을 30분 앞두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오늘 얘기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네요.”
알레한드로는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를 마무리하려 하고 있었고.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야 하나.’
한길이 아쉬움을 삼키던 그때, 알레한드로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다면, 이번 주 쉬는 날··· 같이 한 잔, 어떻습니까? 거창한 건 아니고,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신세 한탄이나 해볼까 해서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과다.
며칠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다.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
그로부터 5일.
한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우선, 매일 출근하기 전에 파코의 사무실에 들러야 했다.
“오늘은 또 무슨 물건을 두고 가셨나?”
“아끼는 셔츠의 단추가 떨어져서요.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떨어트린 건지, 아니면 떨어트릴 예정인 건지.”
한길은 순간 뜨끔했다. 이곳에 올 핑계를 대기 위해, 틈틈이 물건을 추가로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코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 은근히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뭐, 찾든지 숨기든지 빨리빨리 하고, 이쪽으로 와서 얘기나 하자고! 네놈이 없으니까 영 재미가 없거든.”
“오늘은 뭘 준비했는데요?”
“이 인근에 나오는 과일 이것저것. 과일은 웬만하면 이동 거리 하루 내에 있는 농장에서 받아오는 게 좋아. 거리가 멀어지면 과일이 익기 전에 따는 경우가 많거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상태로 익는 것과, 따놓은 후에 익는 건 맛이 전혀 다르지.”
파코는 신이 나서 한길에게 재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한길은 그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파코는 마르지 않는 우물과도 같았다.
재료를 구할 때 참고해야 하는 팁, 공급자를 확보할 때 알아야 하는 사항 등등. 귀중한 정보를 아낌없이 나눠주었으니까.
한길은 이 내용을 취합해서 매뉴얼을 만들 계획이었다. 새로 열리는 3호점에는 재료 구매 담당을 둘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순조롭네.’
재료 담당을 위한 매뉴얼은 이미 20장이 넘었다. 내일이면 알레한드로에게서 더 불독의 사업 구조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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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빨리 불렀군. 제대로 준비된 건 맞나?”
“오이도.”
오늘은 페르난도에게 메뉴를 선보이는 날.
즉, 한식으로 만든 창의 요리를 평가받는 날이다.
한길은 첫 번째 접시를 내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나물 칩 샌드위치입니다. 참나물과 감태로 칩을 만들고, 그 안에는 보리, 양파 장아찌, 그리고 염지 계란을 넣었습니다.”
첫 번째 요리는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샌드위치였다.
빵 대신 칩을 이용했는데, 향긋한 참나물과 쌉싸래한 감태에 고소한 참기름을 입혀서 구운 칩이었다.
칩 안에는 탱글탱글한 보리를 넣어 식감을 살렸고, 양파를 추가해 청량감을 더했으며, 소금에 절인 계란 노른자를 넣어 묵직함을 주었다.
“좋군. 다음은?”
페르난도는 별말 없이 다음 요리를 재촉했다.
“현대 김밥입니다. 소고기 볶음밥이 들어간 김밥을 트러플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죠. 김밥은 한국의 서민 음식인데, 파인다이닝에 맞게 고급화해 봤습니다.”
손가락 굵기의 김밥 안에는 소고기 볶음밥이 들어 있었고, 김이 눅눅해지지 않게 튀각처럼 바삭한 식감을 살렸다. 어딘가 정갈한 느낌이 드는 김밥을, 풍미 가득한 트러플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였다.
“맛있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불합격이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페르난도는 말투는 냉정했다.
“요리는 새로워도, 과정이 새롭지 않아.”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전통 요리를 비틀거나, 서양 요리에 한식 재료를 대입하는 과정은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공식이지. 수학 공식으로 치면, 이미 존재하는 방정식에 숫자만 달리해서 찔러넣은 셈이고. 뛰어난 요리임에는 분명하지만, 내가 찾는 요리는 아니네.”
“그렇군요.”
페르난도의 비판을 들은 한길은 어깨를 움츠리며 시선을 떨궜다. 애처로울 정도로 실망하는 한길을 본 페르난도는, 당황하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다 이런 식이지. 부족한 게 뭔지를 알아야 고칠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자국의 요리일수록, 겉핥기만 하는 경우가 많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된 질문을 안 하거든.”
“···.”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그리 실망하지 말고.”
“네, 다음번에는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든 한길은, 후련하다는 듯이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페르난도가 나즈막이 중얼거렸다.
“··· 당했군.”
“뭐가요?”
“자네, 이 요리가 불합격인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그래도 놀고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페르난도가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노려보았지만, 한길은 딴청을 피우며 그릇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의 요리가 미완성이라는 건 한길도 알고 있었다. 조금 더 구체적인 힌트가 필요해서 페르난도를 부른 것이었고.
페르난도가 3년 안에 해낸 일을 한 달 안에 해내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덕분에 쓸만한 실마리도 얻었고.
“하아···.”
페르난도는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고개를 털고 일어섰다.
“뭐, 지나간 일을 따지고들 생각은 없고. 잔머리 굴렸으면, 이제 일이나 하러 가지.”
“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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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는 하루에 한 시간, 사피엔스 방법론을 연구하는 팀과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한길을 참석시켰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페르난도는 한길이 이 프로젝트를 계승했으면 했었으니까.
사피엔스 팀은 다양한 시대의 요리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오늘은 익숙한 시대가 나왔다.
18세기 프랑스.
한길이 얼마 전에 다녀온 곳이다.
프로젝터 한가운데에는, 지금 당장 연구하고 있는 질문이 커다란 글씨로 적혀 있었다.
Q. 왜 이 시대에 유난히 많은 소스가 발명되었는가?
그 아래에는 여러 추측이 적혀 있었다.
— 프랑스 전역의 귀족들이 베르사유에 집결하면서, 크고 작은 연회가 많아졌다. 귀족들이 경쟁적으로 디너 파티를 열었고, 소스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었다.
— 탐험의 시대이니만큼, 전 세계에서 새로운 재료가 많이 들어왔다.
—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모든 지식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먹어온 소스도, 분류하는 과정에서 더 세세하게 구분된 것일 수도 있다.
···.
페르난도는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열띤 토론 중이었지만, 한길은 듣고 있지 않았다. 방금 전, 페르난도가 주었던 힌트를 곱씹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자국의 요리일수록, 겉핥기만 하는 경우가 많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된 질문을 안 하거든.
맞는 말이었다.
한식이 무엇인지, 물어 본 적은 없다.
한국 사람이니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만약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식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설명할까? 한식의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스테이지에서 다른 시대의 요리를 분석하듯이 ,한식을 분석한다면? 지금 페르난도가 프랑스 요리에 대한 질문을 하듯이, 한식에 대한 질문을···.
“한길?”
“네?”
정신을 차리니, 페르난도를 비롯한 팀원 전부가 한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의 의견을 물었네만.”
“아, 의견이요···.”
근무 시간에 딴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니까.
프랑스의 소스가 18세기에 유난히 발달한 이유라면···.
“주방 높이 때문이 아닐까요?”
“주방 높이?”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시대부터는 허리 높이의 화로를 사용했다고요. 그래서 쉽게 타는 버터로 소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스카피의 시대만 해도, 불은 바닥 높이에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무쇠솥처럼 생긴 조리도구 안에 재료를 넣고, 장시간 찌듯이 삶아내는 요리가 많았다.
하지만 베르사유 시대부터는 허리 높이의 화로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눈높이에서 요리를 확인하기 쉬워진 만큼, 시시각각 예민하게 변하는 재료를 이용해서 다양한 소스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하지만, 왜 그 시대부터 화로가 허리 높이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괜찮네, 그건 다른 전문가가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카를로!”
“오이도!”
“한길! 자네 덕분에 중요한 힌트를 얻었군.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 같은데, 놓치고 있었거든.”
페르난도는 불길할 정도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길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얼굴을 굳혔다.
“별것 아닙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얘기니까요.”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너무 경솔했다.
안 그래도 페르난도는 한길에게 이 프로젝트를 떠넘기려 하고 있는데. 졸지에 쓸모를 증명한 셈이었으니까.
“좋은 정보를 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겠지. 내일 내가 저녁을 대접하겠네. 어떤가?”
“정말 별것 아닙니다.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이 인근에 내가 정말 추천하는 레스토랑이 있거든. 한 번쯤은 꼭 먹어봐야 하는 곳인데,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잖아?”
“무료로 일하는 비서에게, 쉬는 날까지 반납하고 보스랑 저녁을 먹으라는 말씀이신가요?”
한길이 정색하며 거절하자, 페르난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페르난도와의 저녁 식사는 매일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자선 행사에 가면, 나랑 밥 한번 먹기 위해 몇천 유로를 내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지.”
페르난도와의 식사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저 능구렁이 같은 영감은, 한길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을 거다.
“죄송하지만, 내일은 선약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