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8화(28/325)
< 28. 버거가 어때서 >
“…. 소고기에요.”
“네?”
“주재료는 소고기를 써야 하는데, 부위는 어느 부위든 상관없고요. 한우 협찬이라, 하하, 한우를 쓰셔야 하는데 고기는 저희가 다 준비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다른 부재료는 어떻게 하나요?”
“어떤 재료가 필요하신지 알려주시면 저희가 장만해 놓을게요. 내일 오후까지 깨톡으로 보내주시면 돼요!”
“혹시 제가 재료를 따로 준비해 갈 수 있나요?”
“흠, 그러면 정산하기도 힘들고, 형평성 문제도 있으니까요. 목록을 주시면 저희가 준비해 둘게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였다.
이번에는 특별한 재료에 의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다.
어차피 로마에서 가져온 재료 중에는 소고기도 없을뿐더러, 소고기의 맛을 부각해주는 재료도 없었다.
아직 로마에서는 고기 요리는 전혀 접해보지도 못 했고.
사이드에 사용할 샐러드용 채소를 가져올까 싶어 질문했지만, 저쪽에서 곤란해 하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이틀 후에 첫 촬영, 그 사이에 하루 텀이 있고, 4일간 숙박하면서 촬영하는 일정이에요. 일수로는 딱 5일인데, 몰아서 찍는 게 차라리 더 좋을 거에요. 사장님 입장에서도요.”
채은은 촬영 일정이 담긴 종이를 건네주며 기나긴 설명을 이어갔지만, 한길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메뉴 구상하기에 바빴으니까.
#
한스키친으로 돌아온 한길은, 주방 공사를 위해 들린 사람들에게 견적을 받고 서둘러 공사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주방에서 일할 직원을 뽑기 위해 구인 글을 올렸다.
방송 출연을 한다고 해서 식당일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촬영 기간이 짧아서 다행이네…..’
일수로 정확히 5일.
한길이 처음부터 주방 업그레이드를 위해 잡았던 기간은 일주일.
사람을 구하는데에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거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면, 촬영이 끝나자마자 돌아와서 즉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공사 기간 동안 가게 문을 닫고 놀아야 하는데, 그사이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튀김기 두 개를 두면 버거 판매량은 두 배로 늘릴 수 있을 테고…..’
한스키친의 계획을 꼼꼼히 마무리한 후에야 한길은 촬영으로 관심을 돌렸다.
채은이 건네준 종이에는 출연진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함께 출연하는 셰프의 이름은 노문배.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아직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스타 셰프 중 한 명.
두바이에 있는 호텔의 총주방장을 맡은 후 귀국한 해외파 셰프였다.
다양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헤드셰프로 활동하던 그는, 몇 년 전 쿡방의 인기를 제대로 등에 업은 셰프 중 하나였다.
정교하고 세련된 요리.
유머러스하면서도 살짝 싸가지 없는 캐릭터로 나름 사랑받는 방송인이었다.
한길은 너튜브에 노문배의 영상을 한번 검색해 보았다.
‘이 사람, 스테이크가 특기네.’
순식간에 수백 개의 검색 결과가 떴지만, 그중 대다수는 스테이크 요리였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주얼.
“네, 이건 분자요리에 나오는 기법을 제가 한번 변형해서 해본 건데요, 콩을 적당히 삶은 후에 졸여서 질소로…..”
영상을 재생해 보니, 노셰프는 실험적인 기법을 많이 사용하는 셰프였다.
뜻을 알기 어려운 조리 용어들을 쉴새없이 사용하며 설명하고 있었다.
완성된 요리는 한 폭의 그림처럼 정갈하면서도 예술 감각이 돋보였다.
‘저 사람과 대결이라……’
한길은 냉정하게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해 보았다.
한길은 저런 기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시도는 해볼 수 있어도, 하루 이틀 동안 연습한 사람과 몇 년 연구한 사람이 같은 맛을 낼 수 있을 리 없다.
같은 맛을 낼 필요도 없고.
“그래, 나는 내 식대로 하면 되지.”
#
“아, 사장님 오셨어요?”
촬영장에 도착하자 멀리서 채은이 한길을 알아보고 바로 달려왔다.
“일찍 오셨네요?”
“미리 주방을 보고 싶어서요. 여기가 촬영장소인가요?”
“네, 저희가 촬영용으로 따로 리모델링한 곳이에요. 주방으로 바로 안내해드릴까요?”
촬영장은 오래된 농가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식당이었다.
건물 두 동이 ‘ㄱ’자로 붙어있는 구조.
특이한 점이 있다면, 유난히 유리창이 많다는 것. 거의 모든 벽에 거대한 창문들이 있었다.
“감독님들이 들어가면 카메라에 걸리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이 창 너머에서 찍을 거예요. 밖을 내다보다 갑자기 카메라가 튀어나와도 너무 놀라진 마시고요. 뭐, 금방 익숙해지시겠지만.”
채은은 열심히 설명하며 식당 안으로 한길을 안내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널찍했다.
“테이블이 몇 개죠?”
“각 동에 4인석 테이블이 10개씩이에요.”
그러면 좌석 수는 40개.
한스키친의 두 배다.
비록 자신의 식당이 아닌, 촬영용 식당이지만 그 사실 만으로도 흥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0석.
이번에 40석.
그리고 2호점이 열린다면 80석이다.
“이쪽이 주방인데, 빠진 게 없는지 한번 확인해 주세요. 나중에 요리할 시간은 딱 한 시간 반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주방 역시 한스키친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데다가 신경 써서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주방 확인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채은이 익숙한 얼굴의 사람 옆에서 한길을 불렀다.
“아, 사장님, 와서 인사하세요. 이쪽이 노문배 셰프님.”
“아, 이분이 그 치킨버거 사장님?”
딱 보기에도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할 것 같은 중년 남성은 생각보다 동안이었다.
한쪽 입을 씰룩대는 표정이 티비에서 본 그대로고.
“아니, 대체 버거가 얼마나 대단하면 내 상대로 지목받는지 몰라. 그래도 맹도날드 직원은 아니어서 다행이네. 안 그래, 채은 작가?”
장난이라는 듯이 크게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표정을 보니 상대가 한길인 게 언짢은 듯 보였다.
“저희가 설마 맹도날드 직원을 데려오겠어요? 아직 알려지지만 않았지만, 이한길 사장님도 맛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셰프님도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방심하다 망신당하고 재촬영 요구해도 저희는 못 해요.”
채은은 똑같이 장난을 치는 듯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 그리고 노 셰프가 떠나자마자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사장님. 저 분이 말을 조금 험하게 해도….”
“네, 압니다.”
“뭘요? 아, 말을 조금 험하게 해도 무시하라고 하려 했는데. 그냥 살다 보면 별의별 사람 다 있으니까요, 안 그래요?”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머 셰프님, 우리 또 만나네?”
“와, 정연씨. 오랜만이네. 우리 인연인가?”
하나둘 연예인 출연진도 도착하며 노셰프에게 정겹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후로는 그저 정신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카메라가 돌아가고, 연예인들이 깔깔대며 서로 웃고 장난치기에 바빴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답변을 해줬고,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큰소리로 과장되게 웃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누가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한길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난장판이었다.
“자, 그럼 한 시간 반 드리겠습니다. 주방에 들어가시죠!”
#
“후우…..”
주방에 들어오고 나서야 흐릿한 정신이 다시 맑아졌다. 마음도 다시 평온해졌다.
‘그래, 나는 요리만 하면 되지.’
이제부터 만들 요리를 생각해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노셰프의 말이 절로 떠올랐으니까.
-대체 버거가 얼마나 대단하면…
-그래도 맹도날드 직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치킨버거는 아니지만, 한길이 만들 예정인 메뉴는 함박 스테이크였다.
처음에는 일반 스테이크를 만들까도 했지만, 이왕이면 상대와 다른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게다가…..’
이 대결의 목적은 상대방보다 나은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4일간 임시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판매할 메뉴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스테이크는 그렇게 좋은 요리는 아니었다.
특별한 날 먹는 요리니까.
점심으로 먹으러 오기에는 부담도 되고, 가격도 높았다.
그에 반해, 함박 스테이크는 쉽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요리였다.
그 외에도, 함박 스테이크는 여러 변형이 가능했다. 토핑을 달리 할 수도 있고, 버거 빵을 끼워서 햄버거로 파는 것도 가능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한길은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를 시작했다.
‘고기가 좋네…..’
제작진이 준비한 고기는 색이 선명하고 지방이 보기 좋게 하얗게 마블링 되어 있었다. 한번 손으로 눌러보니, 탄력도 좋았다.
준비된 부위는 세 가지.
갈빗살, 목살, 양짓살이다.
일부러 다짐육은 부탁하지 않았다.
시중에 나오는 다짐육은 향이 가장 약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자투리 고기를 사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진 고기는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직접 부위를 선별해서 다지면 오히려 다짐육이 가진 이점도 있다.
스테이크는 한 가지 부위만 맛볼 수 있지만, 다짐육은 다양한 부위의 맛을 조합해서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길은 고기를 다져서 어제 내내 실험한 최고의 비율로 섞은 후, 연육 작용과 촉촉함을 도와줄 마요네즈 한 스푼, 결합을 도와줄 계란을 넣었다. 고기의 잡내를 제거하고 느끼함을 잡아줄 타임도 조금 추가했다.
준비된 고기는 동그랗게 모양을 빚어준 후, 납작하게 펴고 가운데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러주었다.
버거는 겉보기에는 평평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가운데가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그대로 구우면, 자칫하다가는 가운데는 덜 익고 가장자리는 말라버릴 수 있다.
버거 패티 준비를 마친 후,
탕탕탕탕!
도마 위에 양파를 올리고 가늘게 채썰었다.
그리고 두툼한 냄비 바닥에 얇게, 채썬 양파를 고루 펼쳐서 약불에 구웠다.
양파 소테(saute)를 만들 계획이었다.
양파는 얼마나 가열하느냐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는 재료.
저온에서 오랜 시간 익히는 소테 조리법은 양파의 맛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단맛과 고소함, 그리고 감칠맛까지 갖추니까.
하지만 만드는 방법이 조금 번거롭다.
그대로 펼쳐준 상태로 양파의 수분이 빠지고 부피가 줄어들면, 그제야 한번 뒤섞은 후 다시 냄비 바닥에 얇게 펼쳐준다.
처음에는 5분 간격으로.
그다음에는 2-3분 간격으로.
불은 갈수록 약하게 줄이면서.
한길은 양파가 타지 않게 주의하면서 사이드로 올릴 양배추를 썰어두었다.
‘이제 슬슬 구우면 되려나?’
버거는 식을수록 맛이 없으니 바로 직전에 구울 생각이었다.
한길은 그릴에 불이 오른 것을 확인하고, 준비해둔 버거 위에 소금을 뿌려 간을 했다.
함박 스테이크의 버거는 마지막에 소금간을 하는 게 좋다.
소금은 단백질의 수분을 빼가기 때문이다.
스테이크의 경우, 미리 소금을 뿌리고 재워두면 수분이 빠지면서 고기의 향이 더욱 응축되지만, 촉촉함이 생명인 함박 스테이크에서는 퍽퍽해질 뿐이다.
치이이이익!
그릴 위에 다섯 개의 버거를 올리자, 연기가 피어오르며 이내 공기 중에 기름진 육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버거는 인내심이 필요한 요리.
서두른다고 누르거나 재촉하면 육즙이 떨어져 나가니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
정확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소고기는 밑바닥이 익으면 육즙이 위로 올라가 맺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위에 물이 조금 고여오면 뒤집는다.
치이이익!
세로로 그릴 자국이 진하게 나서 맛깔나 보였다. 강한 불에 구워서인지 바삭할 정도로 단단해 보이기도 했고. 그러면 안에 육즙을 제대로 가둬둘 터.
또다시 인내의 시간을 견디고 동그란 패티의 표면에 투명한 육즙이 넘치듯이 흐르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릴에서 내렸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함박스테이크에 빠질 수 없는, 소울메이트.
계란.
바삭하게 익힌 계란프라이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지금 만든 함박도 이미 겉이 바삭했다.
계란은 온전히 부드러움만을 담당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기름을 두른 팬에 계란을 올리고 약불에 익힌 후, 흰자가 하얀색으로 변하는 순간, 손에 물을 조금 담아서 팬에 뿌렸다.
타타타탁!
물과 기름이 만나 튀기는 소리가 들릴 때 뚜껑을 덮었다. 이대로 30초.
스팀을 이용해서 노른자를 익히는 기법이다.
완성된 계란은 장난감 모형처럼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을린 곳 하나 없는 새하얀 흰자.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샛노란 동그라미.
그릇 위에 양배추, 밥, 피클을 세팅하고 주인공인 버거를 올려주었다. 미리 만들어둔 걸쭉한 와인 소스는 한쪽에만 뿌려두었다.
흐르는 육즙을 가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위에 짙은 갈색의, 흐물흐물할 정도로 익은 양파를 올려주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계란.
‘미치겠네.’
한길조차도 참을 수 없는 군침 도는 비주얼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한길이 요리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노셰프가 한발 앞서 나와 있었다.
“진짜 예뻐요!”
“완전 호강한다, 이런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어떤 맛일까?”
노셰프의 요리는 예상대로 스테이크였다.
하얀접시 위에 붉은 소스가 붓칠하듯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 완벽하게 구워진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가 올려 있었다.
주변에 노란 소스, 연두색 소스가 페인트를 흩뿌리듯 뿌려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예술품처럼.
연예인 출연진은 신기하다는 듯, 그 요리를 보며 감탄하더니, 한길을 보고 입을 열었다.
“아, 사장님도 다 됐어요?”
“무슨 요리….?”
한길의 접시를 보자마자, 그 시끄럽던 연예인 군단이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촉촉한 육즙의 강이 흐르는 고기 패티. 접시를 내려놓으니,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탱글탱글 미묘하게 흔들거리는 반숙 계란.
꿀꺽.
익숙한 요리였다.
전혀 고급스러운 요리는 아니었다.
하나도 신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얇은 막 하나를 터트리면 당장 쏟아져 나올 노란 폭포. 포크로 살짝만 누르면 바로 갈라지며 열릴 함박.
앞으로 펼쳐질 맛이 영상처럼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져서 절로 포크를 꾸욱 쥐게 만들었다.
이윽고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러면 모두. 먹어보고 투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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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버거가 어때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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