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8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81화(281/325)
281. 진짜 파트너
“페르난도랑 안 하면 누구랑 하는데?”
“페르난도가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며?”
“그건 그런데···.”
알레한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모르는 사람이랑 일하기는 망설여져서. 같이 일하면 앞으로 몇 년, 몇십 년을 함께 일해야 할 텐데, 아직은 그렇게 잘 맞는 상대를 찾지 못했거든.”
변명이다.
적어도 한길이 듣기에는 그랬다.
‘지금은 제안을 안 하는 게 좋겠네.’
알레한드로가 더 불독에 남기로 한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안하면, 거절만 당할 게 뻔하고.
성급하게 손을 내미느니,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한 후에 움직이는 편이 좋다.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한길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스카우트 제의를 삼켰다.
‘어떻게든 데려가고 싶은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레한드로는 탐나는 인재였다. 더 불독의 사업 전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직접 시도해보려 하고 있었으니까.
“뭐, 어쨌든! 이런 얘기는 진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아버지랑 페르난도는 진짜 쌍으로 괴짜였거든.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둘 다 완전 미친 사람들이었지.”
그 후로도 알레한드로는 신이 나서 줄리와 페르난도의 영웅담을 들려주었다.
“··· 한 번은 페르난도가 케이터링이 질린다고 말을 했다는 거야. 그랬더니, 아버지가 뭘 한 것 같아?”
“글쎄?”
“펠리페 6세 국왕 전하의 결혼식 케이터링 계약을 들고 왔지! ‘어디 이러고도 질린다는 말하나 보자’라면서!”
“페르난도는 어떻게 반응했는데?”
“이때만큼은 항복을 선언했다더라고. 뭔가, 둘은 조금 이상한 관계였어. 분명 절친이긴 했는데, 서로에게 있어서 용서가 없었거든.”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줄리 역시 페르난도 만만치 않은 천재였다.
페르난도는 시장성과 상업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오로지 창의성만을 앞세운 요리를 만들었다. 그러면 줄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상품으로 엮어서 팔았다.
시장성이 있는 요리가 나오면, 그것을 대량생산할 기업에 찾아가 협업을 제안했고. 시장성이 없는 요리가 나오면, 그 독창성을 강조하여 페르난도의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사용했다.
두려움을 모르는 셰프, 끝없는 모험심을 가진 셰프, 이 시대의 유일한 아티스트라면서. 페르난도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버렸다.
“대단하네.”
“그렇지?”
“알레한드로는 아버지를 뒤를 이어서 뛰어난 레스토랑 경영자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 딱히 그건 아니고···.”
적당히 맞장구를 치기 위해 꺼낸 말이었는데, 갑자기 알레한드로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사실, 나는 아버지랑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거든.”
“불편하면 얘기 안 해도 돼.”
“아냐, 아냐. 나도 이런 얘기를 솔직하게 나눌 친구가 필요했거든.”
재빨리 주제를 돌리려 했지만, 알레한드로는 이미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고 있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어. 레스토랑은 쉬는 날이 거의 없잖아? 요리사들도 쉬고, 홀 직원들도 쉬는데 페르난도랑 아버지는 정말 단 하루도 쉬지 않았거든.”
늦었다.
알레한드로는 이야기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친구들은 방학 때 바캉스도 가고, 하다못해 놀이동산이라도 가는데 나는 항상 여기로 왔거든. 초등학생 때는 레스토랑 홀이 내 놀이터였어.”
“그랬구나.”
“왜, 그, 심리학에서 형제 사이에 라이벌
의식을 뜻하는 용어가 있지 않았나? 그런 느낌이었어. 이 레스토랑이 나한테는 형이고, 아버지는 나보다 형을 예뻐했으니까.”
‘술을 너무 많이 마셨네.’
알레한드로는 아까부터 쉴 틈 없이 맥주를 마셨고, 얼굴은 이미 빨개질 대로 빨개진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지나칠 만큼 솔직한 얘기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후우, 어쩔 수 없지.’
한길은 단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어쨌든 알레한드로와 친밀도를 쌓아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
알레한드로는 한길이 심리상담사라도 되는 양,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놨다.
아버지에게 대한 반항심, 청소년기의 일탈,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갔던 이야기까지.
한길은 술주정을 받아준다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중간중간 ‘힘들었겠네’ 같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그런데,
“··· 얼굴도 안 보고 10년을 계속 떨어져 지냈는데, 갑자기 연락이 오더니 아버지가 퇴행성 신경질환을 앓고 있다는 거야.”
이야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초반에 무리해서라도 주제를 바꿀 것을.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자기 몸도 못 가누셨어. 그렇게 풍채 좋던 양반이 다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그런데 막상 그 모습을 보니까, 미워할 수가 없더란 말이지.”
“···.”
“남한테 병수발을 맡길 수가 없어서 내가 직접 돌봐 드렸는데··· 이게, 또 10년 동안 남남처럼 지내던 부자가 한 방에 있어봤자 할 말이 없는 거야. 그런데 이 양반이, 나를 앞에 두고 또 레스토랑 얘기를 하는 거지.”
불편하다.
너무 불편하다.
그런데···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 아니.”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레스토랑의 일상적인 운영만 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막상 들어보니까,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더라고. 전 세계에 유래를 찾아보지 못할 마케팅 전문가, 요리에 브랜딩을 접목한 천재였던 거야.”
“···.”
“하하하, 내 딴에는 아버지랑 다른 길을 가겠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아버지랑 똑같은 일을 하고 있더라는 거지. 내가 동경하던 사람이, 사실은 내가 어릴 때부터 미워하던 아버지였던 거고.”
알레한드로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웃기지 않냐? 난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사실은 유전인가 싶기도 하고.”
“···.”
“어쨌든. 아버지는 자기 인생사를 다 들려준 후에, 레스토랑의 지분은 팔아도 된다고 하시더라고. 나는 여기에 묶이지 말고 내 인생을 살라면서. 그리고 돌아가셨지.”
알레한드로는 말릴 새도 없이 다시금 맥주잔을 들더니, 내용물을 한꺼번에 쭉 들이켜 마셨다.
“아까 왜 다른 사람이랑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었지?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여기를 떠나려니 도망치는 것 같고··· 그래서 재오픈하고 딱 1년만, 여기에서 일하면서 결정을 내리겠다고 한 상태야.”
“그렇구나.”
“괜한 얘기를 해버렸네, 하하하. 여기에서는 이런 얘기를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거든.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다.”
알레한드로는 민망한지 너털웃음을 터트린 후, 애써 밝은 목소리로 한길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한길, 너는 왜 요리를 하게 된 거야?”
“그냥 요리가 좋아서.”
“그래? 너도 부모님이 요리하셨다면 내가 하는 말을 조금은 이해했을 텐데.”
조금 껄끄러운 주제가 나왔다.
하지만 방금 알레한드로의 이야기를 들은 마당에, 이걸 숨기는 것도 웃기다.
“어머니가 한때 작은 식당을 운영하시긴 했어.”
“그래?”
알레한드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어떤 레스토랑이었어?”
“레스토랑은 아니고, 테이블 5개 밖에 없는 작은 식당이었어.”
“그걸 물려받은 거야?”
“아니.”
“왜?”
“그 식당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거든.”
“왜?”
왜 이리 꼬치꼬치 묻는 걸까.
역시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한 게 잘못인 건가.
“왜 문을 닫은 건데?”
“···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
“아, 미안. 그런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괜찮아. 오래전 일이고.”
“그런데 왜 어머니 식당을 이어가지 않았던 거야?”
알레한드로는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그렇다고 질문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외국인들은 다 이런가?’
모르겠다.
어쩌면 술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진 것일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알레한드로 본인이 비밀을 털어놨으니, 이런 얘기를 거리낌도 없이 나누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딱히 숨기는 건 아니지만···.’
막상 자신의 입으로 말하려니 뭔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답을 안 해 주면, 알레한드로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내가 요리를 전혀 못 했거든. 그리고 군대에 있어서 식당을 운영할 처지도 못 되었고.”
“군대?”
“한국에서는 의무 복역이 있어서. 어쨌든, 그래서 가게 문은 닫을 수밖에 없었어.”
“아, 그렇구나. 그 식당은 어떻게 됐어?”
한길은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같은 자리에서 나도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어?”
“어머니 식당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생각으로 차린 건 아니고, 메뉴도 다르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
한길이 처음에 장사를 시작했던 골목식당. 그곳은 어머니가 작은 백반집을 운영했던 자리였다.
“그럼 너도 이해하겠네?”
알레한드로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내가 아버지 대신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또 막상 이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것도 싫거든. 그런데 또 그런 이유로 묶여 있으면, 내 갈 길을 못 가는 것 같고.”
“그건 그렇네.”
이해한다.
한길 역시 그랬으니까.
<한스키친>은 여전히 카키 버거를 판매하고 있다. 다른 지점의 업무가 너무 바빠 매니저에게 위임한 채로, 거의 방치하다시피 운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길은 그 가게를 정리할 생각을 단 한번도 한적이 없다. 오퍼는 몇번 왔지만, 전부 단칼에 거절했다.
“우리, 역시 많이 닮지 않았냐? 전설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부터 해서 환경까지도··· 신기하네.”
“그러네.”
“이 정도면 거의 운명 아냐? 크큭.”
알레한드로는 세상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를 바라보는 눈으로 한길을 보고 있었다.
‘나쁘진 않네.’
조금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결과적으로 줄리의 사업 전략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알레한드로의 섭외를 위한 밑밥도 깔아놨으니까.
#
숙소로 돌아오니, 불이 전부 꺼져 있었다.
실습생들은 내일을 위해 일찍 잠든 모양이었다. 컨디션 관리는 중요하니까.
‘너무 많이 마셨나?’
평소의 주량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한길은 방으로 향하는 대신, 숙소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레스토랑 식구들과의 단톡방을 열었다.
┖ 다들 잘 지내고 있나?
그냥 생각없이 올린 한 마디였다.
왜 올렸는지도 모르겠고.
┖ 셰프?
┖ 지금 셰프가 우리 안부 물은 거임?
┖ 그럴 리가 있나
┖ 사칭이다!
┖ 핸드폰 도난당한 거 아님?
┖ 훔친 핸드폰으로 단톡방에서 인사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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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상한가?’
대개 눈팅만 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딱히 말을 안 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반응은 과하다.
┖ 본인 맞는데?
┖ 다들 속지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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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찐 일수도 있지 않냐
┖ 찐이면 무안할 듯 ㅋㅋ
┖ 찐일리가
┖ 안부 인사 패치 다운받았다에 1표.
┖ 그걸 왜 이제야 받음?
┖ 솔까 살면서 필요한 스킬은 아니자나
┖ 지금도 필요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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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다 본인 확인 절차 한번 갑시다.
┖ 셰프가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하는 말은?
┖ 야 ㅋㅋㅋ 그건 좀 ㅋㅋㅋ
┖ 시동어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고 ㅋㅋ
괜히 말 걸었다.
역시 안 하던 짓은 하는 게 아니다.
‘괜히 술을 마셔가지고.’
그렇게 후회를 하던 순간,
띠리리리!
핸드폰이 울리면서 최셰프의 얼굴이 떴다. 최셰프의 얼굴이 지나칠 정도로 창백했다.
— 셰프!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 일 없는데요?”
— 그런데 왜··· 아, 그···
“그냥 친구랑 술 한잔하다가 생각이 나서 말 걸어본 거였습니다.”
— 치, 친구요?
왜 더 놀라는 걸까.
— 아, 죄송합니다. 당연히 셰프도 친구가 있겠죠.
오늘은 일진이 조금 사나운 모양.
이럴 때는 빨리 주제를 돌리는 게 좋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최셰프에게 전화를 드리고 싶었던 참이었습니다.”
— 역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 혹시 레스토랑에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을까 해서요.”
— 외국인? 그곳에서 괜찮은 직원이라도 발견하신 겁니까?”
“네, 요리사는 아니지만요.”
그 후로 한길은 알레한드로와의 만남을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더 불독의 사업구조부터 시작해서, 알레한드로의 섭외 진행 상황까지.
— 그런 인재가 있으면 당연히 모셔와야죠. 절차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 ···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한길이 아무 말 없이 최셰프를 빤히 바라보자, 최셰프의 얼굴에 긴장이 돌아왔다.
— 역시, 무슨 일이 있으신 거죠?
“그런건 아니고요. 그냥··· 페르난도와 줄리의 관계가 인상 깊더라고요.”
— 하긴, 그런 천재 두 명이 만나는 것도 대단하니까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두 사람 다 서로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줄리는 페르난도에게 레스토랑의 요리를 전적으로 맡겼고, 페르난도는 줄리에게 사업 경영을 전적으로 맡겼다. 둘 다 서로의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파트너였다.
‘파트너라···.’
한길에게도 이미 카키라는 사업 파트너가 있지만. 카키는 자금만 대주고 운영에는 전혀 관여를 안 하는, 투자자나 다름이 없다.
그런 파트너가 아니라···
함께 이 레스토랑을 끌고 갈 파트너가 갖고 싶었다.
자신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상대가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상대. 함께 이 레스토랑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파트너가 필요했다.
앞으로는 혼자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일을 벌일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한길의 마음속에 그 대상은 한 명밖에 없었다.
“최셰프는, 자기 가게를 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신 적이 없으신가요?”
— 왜 갑자기···.
“그냥, 술이 들어가서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 아, 가끔 그런 날이 있긴 하죠.
최셰프는 이해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옛날에는 제 레스토랑을 갖고 싶었죠. 하지만 아직 어린 딸이 있는 상황에서, 그런 리스크를 떠안을 용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마음은 월급쟁이가 편하거든요. 그리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동경하지만, 저는 모험보다는 안전성을 중요시하는 성향이어서···.
“지금도 안전성이 우선인가요?”
한길은 월급쟁이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다소 직설적인 질문에 최셰프가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여기 와서 저질렀던 일들을 보면, 원래의 저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이 많거든요.
“저희가 무슨 일을 저질렀던가요?”
— 이상한 나라 앨리스 만찬이나 소 한 마리 밥상이나 이탈리아 20개 주 요리 순회 같은 건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듣고 보니 그랬다.
스테이지 안에서 워낙 기상천외한 만찬을 많이 벌여서 감각이 흐려졌는데. 한길의 레스토랑에서 벌인 행사들도 평범한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충분히 특이하긴 했다.
— 반강제적으로 한 일이었지만, 이게 막상 해보니 적성에 맞더란 말이죠, 하하.
“다행이네요.”
— 셰프 덕분입니다. 셰프가 아니었으면, 절대 도전해보지 않았을 테니까요.
“···.”
— 하하, 술이 안 들어간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려니 쑥스럽군요. 셰프, 귀국하면 한 잔하시죠.
“최셰프, 혹시 모아둔 돈이 있습니까?”
— 네?
민망한 웃음을 짓던 최셰프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3호점 확장하면서 추가 투자자를 모집하자는 얘기가 나왔었잖아요. 이왕이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최셰프가 투자하면 어떨까 해서요. 자금이 부족하다면, 제가 빌려드리겠습니다.”
— 그 말씀은···.
최셰프는 한동안 입술을 깨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길은 지금 최셰프에게 지분을 소유한 파트너 자리를 제안한 것이었으니까.
“카키의 의견도 물어야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카키에게는 돌아가는 대로···.”
— 아니, 사실은 얼마 전에 카키 사장님도 저에게 비슷한 제안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자금이 부족하면 도와주시겠다고···.
“다행이군요. 자세한 얘기는 돌아가서 정리하도록 하죠.”
— 네.
“···.”
— ···.
어색한 분위기.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침묵만 유지하는데, 갑자기 최셰프의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 뭐야, 분위기 왜 이래요?
유셰프였다.
‘들은 건가?’
한길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자, 화면 속 최셰프가 티나니 않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 두 사람 싸웠어요?
“그게 아니라, 생각 중이었습니다.”
— 무슨 생각을 이렇게 심각하게 해요?
주제를 돌려야 한다.
아무 말이나···.
“페르난도의 미션을 위해서 추가 재료를 부탁해야 할 것 같아서요.”
순간, 화면 속 최셰프의 얼굴이 경직되었지만. 이내 해탈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 ··· 네, 물론 그러시겠죠. 말씀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