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8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82화(282/325)
282. 올 게 왔구나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지.’
최셰프에게 파트너 자리를 권했다는 사실을, 유셰프에게는 아직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공동 파트너인 카키에게 먼저 말하는 게 순서니까.
그래서 서둘러 대화 주제를 돌린 것이었는데, 화면 속 유셰프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 셰프, 이번에는 또 무슨 부탁을 하신 거예요?
“별것 아닙니다.”
— 별 게 아닌데 우리 최선배님 표정이 왜 저래요?
“우리 최선배님?”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다.
— 우리 최선배님, 저런 얼굴은 처음 보거든요? 역시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죠?
그녀의 말대로. 최셰프는 한길 역시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수에 찬 눈빛.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입술.
벅찬 감정을 억누르려는 것이겠지만, 충분히 유셰프가 오해할만했다.
— 셰프, 제가 웬만하면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최선배님은 직원이잖아요?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셰프는 선배님이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떠넘긴다니까요?
— 하하, 유셰프. 저는 진짜 괜찮습니다.
— 아니, 최선배님도 확실히 말하세요! 그럴 거면 아예 공동 오너로 만들라고!
— ···.
“···.”
최셰프가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한길 역시도.
유셰프.
의외로 예리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돌이켜보면, 한길은 꽤 오래전부터 최셰프를 지나치리만큼 의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업무량만으로 보면, 최셰프는 이미 파트너분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고.
그래, 그걸 감지한 거겠지.
— 그렇다고 월급을 파격적으로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 ···.
“···.”
다시 한번 한길과 최셰프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물론, 한길은 최셰프에게 이 모든 업무를 무상으로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1호점 업무뿐 아니라 2호점의 관리 감독, 3호점의 준비까지 맡기고 있는데 아무렴. 세 사람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겼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 두 사람, 진짜 오늘 왜 그래요?
유셰프는 사냥감을 발견한 매의 눈을 하고 있었다. 빨리 그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
요리다.
무엇이든, 요리 얘기를 해야 한다.
“두 분은 한식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뜬금없이요?
“페르난도의 미션이잖아요. 한국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라는 거. 생각보다 잘 안 돼서 두 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별일이네요? 셰프가 그런 걸 순순히 인정하다니.
“저도 인정할 때는 인정합니다.”
— 아닌데··· 뭔가 다른데···.
유셰프의 눈에 깃든 의심이 더욱더 짙어졌고, 한길은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사실, 오늘 명문 레스토랑 실습생들이 만든 요리를 맛보았거든요.”
수상하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던 유셰프였지만. 본격적인 요리 얘기가 시작되자, 미간에 자리 잡은 주름이 조금씩 펴졌다.
바다를 형상화한 요리 얘기가 나올 때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신개념 프랑스 소스 얘기에는 반짝이는 눈으로 수많은 질문을 던졌으며, 헬륨 풍선 부분에 도달했을 때는,
— 사진 안 찍었어요?
“안 찍었습니다.”
— 영상도?
“검색해 보면 나올 겁니다.”
— 아, 그것도 그렇네요.
그녀의 머릿속에 한길과 최셰프 사이에 오갔던 대화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 상태였다.
— 신기한 요리네요! 그런데 그냥 신기한 게 아니라··· 표현하기 어렵네요, 이거.
“예전에 페르난도가 저에게 했던 조언이 있죠. ‘요리는 새로워도, 과정이 새롭지 않을 수 있다’고.”
— 우와! 그거 꿀팁이네요! 그런데 갑자기 한식에 대한 질문은 왜 하신 거예요?
“페르난도의 또 다른 조언이었거든요. ‘자국의 요리일수록,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된 질문을 안 한다’고.”
— 아아, 그래서 ‘도를 믿으십니까’ 하신 거군요?
“네?”
— 아, 아니 그러니까 ‘한식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신 거군요. 죄송해요, 말이 헛나왔어요.
아까의 질문은 실수였다. 유셰프의 주의를 돌리는 데 급급하여 말이 잘못나왔을 뿐.
질문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한식의 의미’ 따위 운운해봤자, 어디선가 주워들은 거창한 이론만 나올 테니까.
그래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한길은 헛기침하며 서둘러 다음 말을 이어갔다.
“각자 좋아하는 한식이 뭔지 얘기해 보죠?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요.”
‘이게 페르난도의 과정이지.’
지난 몇 주간, 한길은 페르난도의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덕분에 페르난도가 사고하는 과정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고.
페르난도는 항상 심플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자네 나라에서는 어떤 음식을 자주 먹지?’ 같은 질문으로.
최대한 쉬운 질문으로, 최대한 쉽고 솔직한 답변을 유도했다. 그리고 그 모든 답변을 취합했다.
데이터를 모은 것이다.
그것도 가공을 거치지 않은 미가공 데이터를.
미가공 테이터가 충분히 모이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패턴을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공식을 새로이 만들었다.
기사로 치면, 다른 기사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직접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취재하며 기사를 작성하는 형식이었다. 논문으로 치면, 다른 논문을 참고하는 대신, 홀로 옛 자료를 뒤적이며 연구하는 것이었고.
메뉴 개발에서도, 사피엔스 방법론에서도. 페르난도는 항상 이런 과정을 거쳐서 사고했다.
이번에는 그걸 한번 따라 해볼 생각이었다.
— 셰프는 뭘 제일 좋아하시는데요?
“저는··· 볶음밥을 좋아합니다.”
— 의외로 평범하네요?
“대개는 후식처럼 먹는 볶음밥을 좋아하죠. 고기를 먹은 후에 불판에서 만드는 볶음밥 같은 거요.”
— 아아, 그거 맛있죠! 꾹꾹 눌러서 살짝 눌어붙은 거! 약간, 누룽지 같잖아요?
“누룽지도 좋아합니다. 특히 돌솥 밥에서 나오는 누룽지를 좋아하죠.”
— 그러면 알밥도 좋아하시겠다! 저도 뚝배기 알밥 좋아하거든요. 밥만 살살 긁어먹고 다 먹을 때 즈음, 밑에 눌어붙은 밥을 먹을 때···
볶음밥에서 시작된 얘기는, 누룽지와 알밥을 거쳐 가장 맛있는 쌀, 가마솥 밥, 국물 떡볶이에 볶아먹는 밥까지 이어졌다.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대화였지만, 한길은 굳이 흐름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조용히 미가공 데이터를 취합할 뿐.
“최셰프는요?”
— 저는··· 삼겹살일까요? 외국에서 먹는 돼지고기와 한국의 삼겹살은 확실히 다르다고 느껴지니까요.
— 그건 그렇죠? 같은 고기인데, 왜 맛이 그렇게 다른 걸까요?
— 컷에 따라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두께에 따른 차이도 있고요.
— 음, 하긴. 삼겹살도 냉동 삼겹살, 대패 삼겹살, 오겹살 다 다르니까요. 사실 삼겹살은 김치랑 구워 먹어야 진짜 맛있는데!
— 저도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 솥뚜껑에 올려서 구워 먹는 걸 좋아하죠. 열의 전도율이 달라서인지, 맛이 다르니까요.
— 아아! 그거, 저도 좋아해요. 그래도 냉동 삼겹살은 알루미늄 포일 깔고 구워 먹는 게 더 맛있죠~
유셰프는 이런 식의 대화에 특화된 인물이었다. 머릿속 생각을 아무런 필터 없이 내뱉는데 상당히 익숙해 보였으니까.
그에 반해, 최셰프는 아직도 자신의 답변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고.
— ··· 그러고 보니, 진짜 별 차이도 없는데 맛이 다르지 않나요?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설명은 못 하겠는데, 절대 똑같지 않거든요.
“그건 좀 재밌네요.”
— 그래요?
한길은 대화 중에 나왔던 음식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돌솥 밥과 가마솥 밥은, 전기밥솥으로 만든 밥과 확연히 다르다. 볶음밥 역시, 프라이팬에서 만든 볶음밥과 고기불판에서 만든 볶음밥은 다르고.
삼겹살도 마찬가지. 프라이팬을 쓰는지, 돌판을 쓰는지, 솥뚜껑을 쓰는지에 따라 제각각 맛이 다르다.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지만, 혀에 감지되는 맛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어쩌면··· 한국인은 이런 미묘한 차이에 민감할지도 모르겠다.
“유셰프는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죠?”
— 저는··· 음, 국밥?
“조금 의외네요.”
— 국밥의 매력을 모르시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따끈하게 한 사발 말아먹으면 얼마나 든든한데요! 거기에 소주 한잔하면 캬~ 그런데 또, 같은 국밥이 아침에 먹으면 전날 먹은 숙취를 한 방에 날려버리잖아요? 밤에는 안주, 아침에는 해장이 되는 요리라니! 매력 쩔지 않나요?
입맛을 쩝쩝 다시는 게,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서 국밥에 소주 한잔 기울일 기세였다.
그 후로도 한동안 유셰프의 국밥 찬양이 이어졌다.
— 먼저 순대랑 내장을 다 건져내고, 순대 한 점에 소주 한잔! 크~를 반복하는 거죠. 그리고 슬슬 기운이 올라온다 싶을 때!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위장을 달래주는 거고요.
“···.”
— 하지만 아침에는 그러면 안 돼요. 국물 먼저 먹으면서 빈속을 달래주고, 그 후에 순대를 먹어야 하죠. 아니다, 아침에는 순대국밥 자체를 먹으면 안 돼요.
콩나물 해장국이나 황태해장국이 좋죠. 여기서 콩나물 해장국도 밤낮에 따라 먹는 법이 다른데···
그녀는 꽤 진지한 얼굴로 안주로 먹는 국밥과 해장으로 먹는 국밥의 차이점에 대한 열변을 토해냈다. 그리고 한참 후,
— 아, 셰프! 그러고 보니 근처에 가마솥 순대국집 하나 생겼는데 괜찮더라고요. 대형 가마솥에서 육수를 낸다는데, 국물이 끝내주거든요.
“가마솥?”
— 네, 왜 그··· 사람 10명 들어갈 법한 대형 가마솥이요. 그래서 그런지, 국물이 진짜 진국이에요.
“가마솥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러고 보니, 조리도구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길의 시도는 <한국 식재료 + 현대 양식 조리법>의 공식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 나물을 동결건조하거나 수비드하는 등의 시도만 했었다. 그 결과, ‘기존의 공식을 사용한다’는 평을 받았고.
하지만··· 한국의 조리도구를 이용해 본다면?
‘가마솥은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꽤 오래전, 설렁탕집에서 알바를 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 육수는 가게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었다. 돌솥도 써본 적은 있지만, 밥을 짓는 용도 외에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 조리도구들이 가진 가능성은, 아예 탐구조차 하지 못했다.
돌솥보다는 가마솥이 더 활용도가 높을 것 같은데··· 가마솥으로 육수나 밥이 아닌, 고기를 구워본다면? 채소를 조리해본다면? 전통 요리가 아닌 다른 요리를 시도해본다면?
단 한 번도 발을 내딛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항상 눈이 닿는 곳에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각지대였다.
‘찾았네.’
한길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지는 그 순간,
— 후우··· 셰프. 설마 가마솥을 보내 달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최셰프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탁드립니다.”
— 보내드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것도 계산해보셨을지 여쭤보고 싶군요.
“계산이요?”
— 가마솥은 조리 시간이 상당히 깁니다. 무쇠솥은 충분히 달구는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하는데, 셰프에게 남은 기간은 앞으로 3주뿐이죠. 배송 시간, 근무 시간을 고려하면, 가마솥으로 신메뉴 실험을 하는 건 무리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가마솥을 바로 구한다고 해도, 이곳까지 배송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설령 당장 내일 받는다 해도, 제대로 실험할 시간이 부족했다. 한길은 페르난도의 비서 역할도 수행해야 하고, 레스토랑의 운영 시간에는 주방에 서야 했으니까. 메뉴 개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4시간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가마솥을 사용하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낸다면···.
— 다행히, 가마솥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 시간을 단축하는 조리도구가 있습니다.
“···.”
— 왜 그리 놀란 얼굴을 하십니까?
“그 사이 독심술이라도 배우셨나 싶어서요.”
— 하하, 독심술이 없어도 이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셰프가 포기할 리 없잖습니까.
— 맞아요. 셰프는 정석적인 방법이 안 되면 꼼수를 찾아서라도 하시잖아요. 그건 저도 알아요.
한길은 진심으로 놀랐건만. 최셰프와 유셰프는 오히려 한길이 놀라워하는 게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당연한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길 역시 페르난도의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한길이 페르난도를 보면서 그의 의중을 파악하듯이, 최셰프도 한길을 읽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낸 얘기는 물론, 꺼내지 않는 얘기까지.
‘이런 느낌이구나.’
한길이 페르난도, 스카피, 아피키우스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듯이, 한길의 요리사들도 한길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이번에는 이상하게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습생 생활을 직접 겪어서 그런가···.
— 필요하신 물건은 오늘 중으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
다음 날,
한길은 출근하자마자 파코의 사무실에 먼저 들렀다.
최셰프의 택배가 도착하려면 며칠은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다른 준비를 하는 게 좋을 터였다.
요컨대, 3호점에 신설할 재료 부서를 위한 매뉴얼을 만든다거나. 그러려면 파코의 지혜를 빌려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 한길! 왔나?”
파코는 한길의 목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치웠다.
“뭘 보고 계셨는데요?”
“아, 아니, 별거 아냐.”
“무슨 일 있습니까?”
“왜?”
“안색이 좋지 않아서요.”
“하하, 안 좋긴 안 좋지. 어제는 위스키 두 병을 생각 없이 다 마셔버렸거든. 모처럼의 휴일이라 조금 과음해서···”
파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딘가 우중충한 기운을 내뿜는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본인이 저렇게 숨기려고 하는데, 굳이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오늘 가져온 재료를 한번 볼 텐가?”
“네.”
재료에 대한 공부가 먼저였으니까.
파코와 작별한 후, 한길은 평소대로 페르난도의 작업실로 향했다.
더 불독에서 한길의 정식 직책은 페르난도의 비서. 따라서, 하루의 일과는 페르난도의 일정 관리부터 시작한다.
페르난도의 메일을 확인하고, 각종 인터뷰나 강연 요청을 정리하고, 페르난도의 답변을 취합하여 스케줄을 짜야 한다. 그런데,
[신규 메일: 76개]오늘따라 페르난도의 메일함이 평소보다 가득 차 있었다.
어제가 쉬는 날이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일이 쌓였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였다.
[데일리메일] 서면 인터뷰 요청합니다. [푸드앤와인] 서면 인터뷰 요청합니다.···
스크롤을 내리며 메일 제목을 훑던 한길은 조용히 읊조렸다.
“드디어 올 게 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