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8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86화(286/325)
286. 양파 같은 레스토랑
‘시간이 부족해.’
어느덧 시간이 제법 흘러 한길에게 남은 기간은 열흘뿐이었다.
메뉴 하나를 개발하는데 열흘이면 충분한 시간 같지만, 가마솥 중탕기의 경우에는 그렇지도 않았다.
중탕기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었으니까.
한길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시간 설정은 7시간. 물론, 2시간만 중탕할 수도 있지만··· 2시간 중탕한 재료와 7시간 중탕한 재료는 맛의 차이가 너무 확연했다.
가마솥 중탕기의 장점은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우려내는 맛.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이 조리도구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다.
그게 문제였다.
예를 들면, 마늘을 쓸지 양파를 쓸지 결정하려면? 마늘을 7시간 조리하고, 양파를 7시간 조리한 후에 두 가지 맛을 비교해야 했다.
재료의 맛을 확인하는 기본 작업에만 14시간이 소요되는 셈이었다.
‘새로운 조리법은 이게 힘들구나.’
기존의 조리법을 사용하면, 머릿속에 이미 맛이 입력되어 있다.
소고기를 시어링하면 어떤 맛인지, 닭고기를 수비드로 조리하면 어떤 맛인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한번 맛을 구상한 후에, 바로 메뉴를 만들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마솥 중탕기는 데이터가 아예 없다.
중탕기에 넣은 버섯은, 토마토는, 돼지고기는 어떤 맛일지. 직접 7시간을 들여 확인하지 않으면 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걸 일일이 확인하면서 작업하기에 열흘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최셰프에게 중탕기를 몇 개 더 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 어떻게 해야 열흘 내에 이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띠리리리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라엘라.
— 한길! 조금 있으면 메뉴 시식인데 왜 안 내려와?
“아, 미안. 시간을 깜빡했어.”
— 너 요즘, 너무 정신 놓고 다니는 거 아냐? 빨리 내려와!
“후우···.”
전화를 끊은 한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기 싫네.’
메뉴 개발에만 시간을 쏟아부어도 모자란 판에, 한길은 페르난도의 비서 업무와 레스토랑의 서비스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앞으로 메뉴 개발만 하겠다고 할까?’
다른 업무를 빼달라고 요청하면··· 어쩌면 페르난도가 허가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처럼 더 불독에 왔는데, 열흘간 작업실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도 아까웠다.
이 레스토랑은 매일 진화하는 레스토랑. 열흘이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어떤 귀중한 경험을 놓칠지 모르는 일이니까. 업무를 하면서 메뉴 개발을 병행하는 게 가장 좋은데···.
‘크리에이티브 파트는 대체 어떻게 이걸 하루 만에 해내는 거지?’
그렇게 속으로 불만 아닌 불만을 터트리던 도중, 문득 의문이 생겼다.
‘진짜 어떻게 하는 거지?’
더 불독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는, 당일 시식한 재료로 신메뉴를 만들었다. 오후 1시에 시식하는 재료로, 오후 6시까지 신메뉴를 만들고 있는 거다. 그것도 매일.
물론, 한길처럼 새로운 조리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파코가 갖고 오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어떻게 매일 5시간 안에 신메뉴를 만드는 거지?
어떤 메뉴든, 만드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런데 더 불독의 신메뉴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빨리 완성되었다.
‘뭔가 또 비결이 있는 건가?’
분명, 한길이 알지 못하는 더 불독만의 시스템이 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까도 까도 새로운 비밀이 나오는 양파 같은 레스토랑이었으니까.
한길은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아래층으로 향했다. 새로운 비결을 캐내기 위해.
#
더 불독에서는 하루에 2번의 시식 시간이 있다.
하나는 재료만을 맛보는 재료 시식. 또 하나는 재료를 메뉴화한 메뉴 시식. 그리고 지금은 메뉴 시식의 시간이었다.
라엘라가 연락을 준 덕분에 한길은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입을 연 하비에르는 안색이 창백했다.
하비에르는 페르난도 본인보다도 더 페르난도의 이름에 집착하고 있는 인물. 그래서인지, 페르난도의 밈이 퍼진 이후로 내내 저 상태다.
하비에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한길이 보기에도 조금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고.’
어떻게 이 팀이 짧은 시간 안에 신메뉴를 개발하는지, 어떻게 시행착오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지. 그 비결을 알아내야 한다.
하비에르가 첫 번째 요리를 소개했다.
“굴과 골수 타르타르입니다.”
첫 번째 메뉴는 골수로 만든 투명한 젤리.
그 위에 거품이 올려져 있었고, 오이스터 리프도 곁들여 나왔다.
골수 젤리는 탱글탱글한 식감이지만, 어딘가 기름진 맛이 났다. 그 자체로는 무(無)맛이지만, 오이스터 리프와 거품이 굴 특유의 바다향을 첨가했다.
분명 굴 맛인데, 평소에 먹는 굴과는 확연히 다른, 기묘한 느낌이 드는 요리였다.
평소의 한길이라면 요리의 맛과 컨셉을 봤겠지만. 이번에는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위주로 요리를 분석했다.
‘이건 얼마 안 걸렸겠네.’
오이스터 리프는 씻어서 올리면 그만. 굴 거품도, 골수도 준비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반복해도, 5시간이면 충분히 만들고 남을 시간이었다.
‘이번 요리는 별로 참고가 안 되네.’
한길은 두 번째 요리로 관심을 돌렸다.
“간장 성냥입니다.”
이번에는 성냥처럼 생긴 요리.
성냥의 나무 막대기 부분을 간장으로 만들고, 상단의 발화제 부분에는 금박지를 사용했다.
간장 막대기에서는 은은하게 훈제 향이 났고, 금박지는 희미한 금속맛을 더했다. 그런데 이 금속 맛이, 특이하게도 성냥에 불을 붙였을 때 나는 향을 재현하고 있었다.
성냥에 불을 붙이는 경험을, 촉각이나 후각이 아닌 미각으로 전달하는 신기한 요리였다.
“좋군! 아주 좋아!”
페르난도는 매우 만족한듯했다.
한동안 조금 침울해 보였는데, 오랜만의 활짝 웃는 얼굴이다.
“이건 바로 올리고 싶은데, 오늘 중으로 가능한가?”
“간장 성냥을 훈제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최소 4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러면 오늘 중으로는 무리겠군. 내일부터 메뉴에 올리도록.”
“오이도.”
한길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 요리는 참고가 될 테니까.
간장 막대기를 만드는 데만 4시간이 걸리는데, 하비에르는 이 요리를 정확히 5시간 만에 개발했다. 처음부터 레시피가 정해져 있다는 듯이 움직였다는 말이 된다.
이는, 한길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더 불독에는 신메뉴의 개발, 그리고 시행착오 과정을 단축하는 비결이 분명 있는 거다.
“장미 만두와 멜론 수프입니다.”
다음 요리는 장미로 만든 만두였다.
만두피 대신에 장미잎을 사용하고, 만두 속으로는 햄으로 만든 젤리를 사용했다. 별도의 그릇에는 멜론 수프가 세팅되어 있었고.
“이건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만두 하나를 먼저 먹은 후, 멜론 수프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맛봐야 합니다.”
하비에르의 설명대로 시식을 마친 페르난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바로 이거지! 크하하하! 그래, 이게 마술 같은 요리지!”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이건 오늘 올릴 수 있나?”
“약 10시부터는 가능할 겁니다.”
‘대체 어떤 요리이길래 저런 반응이지?’
기대를 품고 맛을 본 한길은 잠시 후, 충격으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장미 만두는 장미 특유의 꽃내음이 도드라졌다. 장미와 햄이 의외로 잘 어우러져서 놀라긴 했지만, 충격적인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멜론 수프를 맛보고 다시 만두를 먹는 순간,
‘··· 어떻게?’
장미와 멜론의 향이 사라지고 오로지 햄의 맛만 느껴졌다. 분명 똑같은 만두인데, 그 짧은 사이에 맛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
정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마술 트릭을 볼 때 눈을 비비며 의심하게 되는, 그런 심정이었다.
아마도··· 멜론의 맛이 장미의 맛을 상쇄시켜서 지워버린 것.
‘이걸 어떻게 알아냈지?’
한길은 충격을 억누르고, 이내 이 요리에 들어간 시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 1시.
재료 시식에서 파코는 장미 이파리를 내놓았다. 일반 장미보다 이파리가 크고 견고해서인지, 페르난도는 ‘장미잎으로 만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했고.
그리고 오후 6시.
하비에르는 장미잎으로 만두를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멜론을 이용해 장미의 맛을 상쇄하는 마법 같은 요리를 만들었다.
‘이것도 물어보자.’
한길은 마음속으로 메모를 하며 한 명의 인물을 바라봤다. 시선 끝에 있는 인물은 아랍계의 여자, 라엘라였다.
한길이 페르난도의 비서가 되었듯, 그 사이 라엘라는 하비에르의 비서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녀는 크리에이티브 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 라엘라에게 간장 성냥과 장미 만두의 개발 과정을 물어보면, 분명 원하는 답을 구할 수 있을 거다.
#
한길은 매일, 라엘라와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질문하기에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장미 만두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 글쎄··· 3시간쯤 됐으려나? 찌는 데는 15분이면 충분한데, 만두피처럼 접착이 안 되어서 여러 시도를 했었거든.”
“장미랑 멜론 조합은 언제 발견한 거고?”
“그건···.”
라엘라는 한길을 빤히 보다가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게 평범한 잡담이 아닌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알려주면 뭐 줄 건데?”
라엘라는 결코 공짜로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한길 역시 알고 있었고, 나름의 대처법도 마련해 둔 참이었다.
“얼마가 필요해?”
익숙한 손길로 지갑을 열자, 그 안을 빼곡히 채운 100유로 지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길은 그동안 명문 레스토랑 출신 실습생들의 요리도 시식하고 있었다. 원래는 쉬는 날에만 진행하던 시식이었는데, 퇴근 후에도 해도 되냐고 묻는 실습생들이 있어서 그러자고 했다.
명문 레스토랑 시그니처 메뉴를 한번 맛을 볼 때마다 100유로를 지불했는데, 매번 시내에 나가 돈을 뽑아오는 게 번거로워 현금을 넉넉하게 뽑아둔 참이었다. 조금 과할 정도로 넉넉히.
라엘라는 지갑을 펼치는 한길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넌 왜 모든 걸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녀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라엘라는 첫 번째 시식 이후로도 무려 7번이나 퇴근 후에 요리를 만들어줬으니까.
“그러면 뭘 원하는데?”
“나도 정보로 줘.”
“정보?”
“네가 페르난도랑 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 사피엔스 프로젝트 말이야.”
“아.”
라엘라는 지금 ‘정보 거래’를 요청하고 있었다.
‘정보 거래’는 최근 실습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거래였다. 실습생들은 각기 다른 파트에 배정되기에, 궁금한 요리의 레시피를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스타터 파트의 실습생은 디저트 레시피를 알지 못했다. 그 레시피가 너무 궁금하면, 디저트 파트의 실습생을 찾아가 레시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
딱히 잘못된 일은 아니었다. 더 불독의 모든 레시피는 실습생들에게 공개된 정보였으니까. 다만 파트가 달라서 배울 기회와 시간이 없었을 뿐.
그리고 라엘라는 지금, 레시피가 대신 각자의 파트 정보를 거래하자고 제시한 것이었다.
“사피엔스 프로젝트는 전시회에도 설명이 나와 있고 기사화도 되었잖아? 뭘 알려달라는 거야?”
“추가 질문이 있는데 그건 기사에 안 나와 있잖아? 넌 답을 알고 있을 거 아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길은 일부러 미간에 인상을 쓰고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음··· 이건 조금 많이 복잡한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피엔스 방법론은 설명하기 여러모로 복잡한 이론이었으니까.
알기 쉽게 설명해주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 한길의 입장에서 지금 가장 귀중한 것은 시간이었다.
라엘라가 가진 정보가 쓸만하면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건 좋은 거래가 아니다.
한길이 뜸을 들이자, 라엘라가 서둘러 덧붙였다.
“장미 만두의 비결, 안 궁금해?”
“궁금하긴 하지만 호기심으로 움직일만한가 해서.”
“진짜 괜찮은 정본데?”
“글쎄. 미안하지만, 네 말만 듣고 응하기는 뭐해서.”
한길은 조금 더 시간을 끌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됐어. 그냥 나중에 크리스토프한테 물어보지, 뭐.”
허풍이었다. 한길의 룸메이트인 크리스토프는 어지간해서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으니까. 거래도 잘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파트에는 무려 4명의 실습생이 있다. 반면, 사피엔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실습생은 한길 한 명 뿐이었고.
그 사실을 라엘라에게 주지시켜줄 의도로 꺼낸 말이었다. 계산이 재빠른 라엘라는 한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리고 거래 조건을 수정했다.
“그냥 알려주는 게 아니라 보여줄게.”
“뭐를?”
“장미 만두를 바로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있거든.”
이번에는 호기심이 동했다.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있어?”
“숙소로 돌아가면.”
“그럼 콜.”
한길이 바로 거래를 받아들이자, 라엘라가 매서운 시선으로 한길을 노려봤다.
“너··· 갈수록 재수 없어 지는 거 알아?”
“왜?”
“분명 처음에는 신사답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한 달도 안 돼서 사기꾼이 된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불평은 했지만, 라엘라는 약속을 지켰다.
숙소에 도착한 후, 라엘라는 자신의 노트북을 들고 아무도 없는 정원으로 한길을 끌고 나갔다.
인터넷 창을 켜고 웹사이트에 로그인한 후, 화면을 한길을 향해 돌렸다.
“이거야, 크리에이티브 파트의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