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8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88화(288/325)
288. 이건 반칙
시식은 페르난도의 작업실에서 진행되었다.
매일 하는 시식과는 달리, 이번에 참여하는 이는 단둘, 한길과 페르난도뿐이다.
한길은 요리가 담긴 접시를 페르난도 앞에 내려놓았다.
“4가지 색과 맛의 마늘입니다.”
기다란 접시 위에 나란히 세팅된 4개의 숟가락.
각 숟가락에는 소스가 고여 있었고, 그 웅덩이 한가운데에 작은 마늘이 한알씩 살포시 놓여 있었다.
4개의 마늘은 각기 다른 색깔.
샛노란 색부터 갈색, 그리고 흑색까지, 단계적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왼쪽부터 찐 마늘, 구운 마늘, 중탕 마늘, 그리고 흑마늘입니다. 각 마늘의 특징을 살리는 소스를 곁들였고, 마늘은 한국의 단양 마늘을 사용했습니다.”
“단양 마늘?”
“한국의 단양군이라는 지역에서 재배한 마늘인데 일반 마늘보다 차가운 땅속 깊이 자라기 때문에 알도 단단하고 향도 더 진합니다.”
“마늘을 주재료로 사용하다니, 특이하군. 대개는 부재료로 사용하는데.”
페르난도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지금 짓고 있는 저 미소는 승리의 미소.
맛을 보기도 전에, 페르난도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뭐, 그러겠지.’
페르난도가 찾는 창의 요리는, 별개의 연구소를 돌려야 만들 수 있는 요리였으니까.
“그러면 시식을 시작하지.”
페르난도는 진지한 표정으로 요리를 맛보기 시작했고, 한길은 그런 페르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찐 마늘을 먼저 먹다가 잠시 멈춘 페르난도는, 구운 마늘을 맛본 후에는 눈을 부자연스럽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나 보네.’
그동안 하루에 2번, 페르난도의 시식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한길이었다. 페르난도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음식을 먹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훤히 보였다.
“조리가 완벽하게 되었군. 마늘의 거북한 향을 덜어내서 마늘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즐길 수 있겠어. 그런데···”
페르난도가 잠시 미간을 구겼다.
“이 소스가 뭔지 모르겠군.”
“마늘 원액을 기본 베이스로 썼습니다.”
“마늘 원액 맛이 아닌걸?”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추출한 원액이거든요.”
한길은 모든 소스에 가마솥 중탕기에서 나온 원액을 사용했다.
가마솥 중탕기는 수증기를 아예 배출하지 않는 조리법. 수증기에 묻어서 탈출하는 풍미조차 없으니, 신기할 정도로 순수한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페르난도의 유난히 예민한 미각이, 그 순도 높은 풍미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무슨 조리법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질문은 다 드시고 나서 해주시죠.”
“하긴, 그것도 그렇군.”
페르난도는 한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한길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장 다음 마늘을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갈색 마늘.
얼핏 보면 마늘 장아찌처럼 생겼지만, 페르난도의 예리한 눈은 저 마늘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이미 파악한 모양이었다.
다음 마늘은 중탕 마늘이었다.
“한길, 포크를 가져다주겠나?”
“오이도.”
한길이 포크를 대령하자, 페르난도가 포크의 단면을 이용하여 마늘을 절반으로 갈랐다.
“···!”
그리고 일순 호흡을 멈췄다.
땅콩버터처럼 뭉개지는 질감.
속까지 고르게 갈색으로 물든 모습은 평소에 봐온 마늘과는 많이 달랐으니까.
중탕 마늘을 입안에 넣은 후에는 두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중탕··· 마늘이라고 했었나?”
“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중탕을 하면 이런 맛이 나는 거지?”
“조금 특이한 중탕기를 발견해서 써봤습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중탕기인데, 기존의 중탕기에 압력과 대류 현상을 더해서 식감과 맛이 독특하죠.”
“엄청나군.”
탄성이 묻어있는 목소리.
페르난도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꿀꺽.
다 삼킨 후에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빈 스푼을 바라보았고.
“대단한 걸 발견했군.”
“그런가요?”
“전혀 훼손되지 않은 맛이야. 조리하면 열이 가해지는 순간, 어느 정도의 훼손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처럼··· 이처럼.”
페르난도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이야르도 아닌··· 이건··· 무슨··· 차원이 달···.”
그 후로도 무언가를 중얼거렸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약간··· 정신줄을 놓은 듯한 태도였다.
“혹시 이 조리법으로 다른 재료도 시도해··· 아, 아닐세. 일단 요리를 끝까지 맛봐야지.”
페르난도는 질문을 뒤로 미루고, 다음 마늘인 흑마늘을 입에 넣었다.
“···!”
그리고 이번에는 한동안 아예 입을 열지 못했다. 간신히 내뱉은 것은 겨우 한 문장.
“흑마늘이 아니군.”
“네, 14시간 동안 중탕한 마늘입니다.”
“···.”
또다시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충격이 과했던 걸까.
마지막 흑마늘을 소화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신대륙이군.”
“뭐가요?”
“자네의 요리 핵심에 있는 이 중탕기라는 것 말이네. 신대륙의 발견이야! 한국의 제품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대체 어떤 원리로···.”
“자세한 얘기는 결과를 알려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았고.
한길의 말에 페르난도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불합격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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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통보 후, 페르난도는 간략한 총평을 내렸다.
“부재료인 마늘로 이만한 요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칭찬해주지. 기술적으로도 완벽했고, 신대륙 발견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신기술도 사용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네.”
한길은 최대한 무덤덤한 얼굴로 페르난도의 설명을 들었다.
“보다 자세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납득을 시키라는 말이군.”
“그게 내기의 조건이었으니까요.”
한길이 이 내기에 응할 때 내건 조건.
페르난도가 불합격을 줄 경우, 한길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
즉, 이 시식에는 두 명의 심사위원이 있는 셈이었다. 한길과 페르난도.
한길에게 요리를 합격시킬 권한은 없었지만, 페르난도의 불합격에 대한 거부권은 행사할 수 있었다.
불합격 판정을 통과시키려면, 한길을 설득해야 한다.
그걸 이해한 페르난도가 고개를 끄덕인 후, 설명을 이어갔다.
“분명 자네는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지. 하지만 진정한 창의 요리는 놀라움에만 의존하지 않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내 기준으로 일반적인 창의 요리는 5감을 자극하지.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하지만 고창의적인 요리는··· 6감을 자극한다네. 그리고 6감은 여기를 자극하지.”
페르난도는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댄 후, 톡톡 두드렸다.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네. 사람을 웃게 하는 위트나 유머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특정 감성을 건드리는 요리일 수도 있지. 무엇이든 간에, 뇌가 기뻐하는 감각. 그때 느껴지는 쾌락. 그 6감, 그 쾌락이 고차원 창의 요리의 기본 조건이지.”
한길은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키며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웃음을 터트릴 것 같았으니까.
‘이제야 말하네.’
한길이 이번 내기에 임하면서 가장 까다롭게 여긴 점은, 페르난도의 심사 기준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간평가 때마다 페르난도는 팁을 주었지만, 대개가 애매모호한 팁이었다. 자신이 찾는 고차원적인 요리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 마감을 사흘 앞둔 시점.
한길이 실패했다고 여긴 지금.
페르난도는 방심하고 있었다.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심사 기준을 본인의 입으로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그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이 미션은 자국의 식재료로 신메뉴를 만들라는 것이었지. 단순하게 한국 재료에 혁신 기술을 더하는 게 아니라, 한국 요리에 대한 고찰과 재해석을 원했다네. 한국 요리에 대한 6감을 보고 있었던 거지. 자네의 요리는 그런 면에서 유기적이지 못했고.”
순조롭게 두 번째 심사 기준도 나왔고.
“또 있나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지. 고차원 요리의 진짜 가치는 ‘진화 가능성’에 있네. 원 히트 원 원더가 아니라, 그 후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요리. 확장 가능성이 있는 요리여야 하지.”
“또 더 있습니까?”
“아니, 이게 끝이네.”
“요약하면, 페르난도의 판단은 세 가지 기준에 근거하는데, 제가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군요.”
“그렇···.”
페르난도가 돌연 말을 멈추었다. 아무리 봐도 한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으니까.
“자네, 무슨 꿍꿍이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 상황에서 그렇게 웃는데, 이상하지 않겠나?”
무표정을 더는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한길이 반격할 차례였으니까.
“혹시 한국의 건국 신화를 아시나요?”
“건국 신화?”
“간단하게 말씀드리죠. 아주 먼 옛날,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과 호랑이가 신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신은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을 먹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죠. 호랑이는 중도에 포기했지만, 곰은 무사히 여자로 변신을 했고, 그녀가 낳은 아들이 단군이라 하여 한국 고조선의 국조가 되었습니다.”
“··· 그렇군.”
“한국인이라면 이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죠. 그만큼 마늘은 한국인에게 중요한 재료입니다. 그것이 이 요리에 마늘을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쯤이야.’
요리를 포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익숙했다. 퐁파두르의 살롱에서 항상 하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 사용한 중탕기도 단순히 신기술을 적용한 중탕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전통 가마솥의 원리를 현대화한 기기죠.”
한길은 일전에 파코에게 설명했듯이, 가마솥 중탕기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 한 마디로 이 요리는, 한국의 민족정신이 담긴 재료인 마늘을, 한국 전통의 가마솥 기법으로 현대화시킨 요리입니다. 원래 이름을 ‘마늘, 다시 태어나다’로 할까 하다가 너무 드라마틱한 것 같아 관뒀지만요.”
“···.”
“이 정도면 ‘생각하게 만드는 요리’로는 부족할까요? 제 나름에서 한국 요리에 대한 고찰을 한 것이었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보군요.”
“자네··· 노렸군.”
페르난도는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회복하고 말을 이어갔다.
“1번과 2번까지는 자네의 의견을 인정하도록 하지.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3번이 남았네.”
“진화하는 요리, 확장 가능성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이건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네요.”
한길이 웃으며 말하자, 페르난도가 그대로 경직되어 버렸다.
“··· 보여줘?”
“말로 하는 건 허전할 것 같아서 직접 진화를 시켜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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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라는 조건은 한길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전시관에 진열된 요리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구체화 기술을 발견한 페르난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연어알처럼 생긴 멜론 캐비어를 만들었고, 그 후에는 헤이즐넛 캐비어를 만들었으며, 가짜 렌틸콩을 만들어서 ‘렌틸콩’이라는 깡통에 담기도 했고, 거대한 젤리 같은 구체를 만들기도 했다.
하나의 기술로 수없이 많은 요리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선보이는 요리를 마늘로 한 것이었다. 가장 수수한 요리가 진화의 시작점으로 좋았으니까.
한길은 작업실과 연결된 제2의 주방에 들어간 후, 미리 만들어둔 두 번째 요리를 담아서 내왔다.
두 번째 요리는 검은 콜리플라워.
“중탕한 콜리플라워를 헤이즐넛 버터에 굽고 코코넛과 라임으로 만든 베샤멜 소스를 곁들였습니다. 식감에 조금 더 주의하고 드시면 좋습니다.”
크림처럼 부드러운 콜리플라워를, 버터에 구워서 캐러멜라이징을 더한 요리.
마늘 요리가 크리미함과 풍미만을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식감 대조에 중점을 두었다.
콜리플라워의 표면은 잘 구운 채소 특유의 불맛과 견고함이 도드라졌다.
여기까지는 익숙한 맛이지만··· 그을린 표면 안에 있는 크리미함은 예상을 깼다. 생소했다.
원래 채소를 구우면 내부가 아삭하거나 부드럽다. 크리미함은 생각지도 않았고, 이 새로운 식감의 대조가 쾌락을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튀겨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기술은 아직 완성시키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어떤가요?”
“···.”
페르난도는 검은 콜리플라워를 먹은 후 벙어리가 되었다.
“역시 부족한가 보군요. 잠깐만 기다려주시죠.”
“또… 있나?”
“진화가 필요하다고 하셨으니까요.”
다시 제2의 주방으로 들어간 한길은, 또 다른 요리를 담아서 들고나왔다.
“이건 페르난도의 오마주입니다. 더 불독의 ‘모조 아몬드’에 새로운 식감을 추가해봤거든요.”
‘모조 아몬드’는 더 불독에서 개발한 메뉴. 구체화 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가짜 아몬드와 진짜 아몬드를 섞어서 진짜 가짜를 알아맞히는 게임 같은 요리였다.
이 진짜 가짜 게임에 한길은 중탕 아몬드를 더했다.
페르난도 본인이 만든 요리를, 신기술을 적용해서 진화시킨 것이었다.
중탕 아몬드는 잘 삶은 콩과 버터를 섞은 듯한 질감. 가장 익숙한 요리에 더해진 새로움은, 분명 다르게 와닿을 터.
페르난도가 아몬드를 맛보는 사이, 한길은 다시 움직였다.
“어딜 또 가는가?”
“페르난도와 저는 ‘진화’에 대한 정의가 다른가 보군요. 제 입장에서 한두 개로는 진화가 아니거든요.”
다시 돌아온 한길의 손에는 또 다른 접시가 있었다.
“바닐라 껍질 요리입니다.”
생긴 것은 바닐라 껍질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중탕한 셀러리를 건조한 요리였다.
중탕기와 건조기를 번갈아 가며 여러번 찌고 건조했더니, 마치 홍삼을 먹는 듯한 쫀득하면서도 진득한 맛이 느껴졌다.
여기에 고르곤졸라 치즈, 호두 오일, 호두, 그리고 코코아와 풋사과 아이스크림으로 상쾌함을 더했다.
“또 있는가?”
“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이 아니니까요. 원하신다면 내일도 4-5개는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개발해둔 레시피는 많았다.
10개를 보여달라면 10개를, 20개를 보여달라면 20개를 보여줄 수도 있었고.
“몇 개를 보여드려야 진화하는 요리일까요? 숫자를 주시면, 그대로 만들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한길의 말에 페르난도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저 웃음은, 페르난도가 유난히 기뻐할 때 나오는 괴상한 웃음이다.
그래서 이상했다.
‘대체 이 상황의 어디가 기쁜 거지?’
한길이 의아해하던 그때, 페르난도가 나직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 반칙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