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9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91화(291/325)
291. 순도 100% 리얼리티 쇼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무엇이든 알려줄 테니까.”
첫 번째 스카우트 시도는 실패지만,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알레한드로가 한길에게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한길은 거리낌 없이 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알레한드로는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원래는 신입 웨이터를 투입할 때 3일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메뉴가 워낙 많아서 외우는 데에만 한참이 걸리거든.”
더 불독은 매일 메뉴가 추가되는 레스토랑.
시즌 초에는 50개로 시작하지만, 오늘은 메뉴가 총 84개에 달했다.
그중 손님상에 올라가는 요리는 3~40개지만, 무작위로 선택되니 웨이터들은 84개의 메뉴를 모두 암기해야 했다.
“메뉴도 메뉴지만 와인 추천이 진짜 지옥이지. 요리도 많은데 요리마다 맛도 독특해서··· 제대로 페어링하려면 실력이 뛰어난 소믈리에가 필요하거든.”
“그렇구나.”
한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그러고 보니 데니를 놓치고 있었네.’
홀과 주방에만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데니를 깜빡하고 넘어갈 뻔했다. 3호점의 메뉴가 진화하려면, 데니도 진화해야 했다.
“음, 나머지는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이게 여러모로 복잡해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거든. 중간중간 생각나는 게 있으면 알려줄게.”
“고마워.”
“기대해. 더 불독은 홀 서비스도 월드 클래스거든.”
그렇게 레스토랑 문이 열렸고,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한 달여 간 지내온 레스토랑이지만, 홀의 풍경은 처음 보는 양 낯설었다.
‘진짜 전 세계에서 오는구나.’
더 불독의 서비스는 알레한드로의 말대로 월드 클래스였다. 남극을 제외한 5개 대륙에서 손님들이 찾아왔으니까.
인종도, 국적도 다양한 손님들을 위해 웨이터들도 외국어가 가능한 이들을 고용했다. 그래서 더 불독의 서비스는 총 8개 국어로 제공되었다.
손님들은 도착하는 대로 페르난도와 인사를 나눴고, 테라스로 안내되었다.
알레한드로가 한길에게 다가와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중간에 장소를 한번 변경해. 테라스에서 시작하다가 홀로 가거나, 홀에서 시작해서 테라스로 가.”
“왜?”
“요리가 30개 이상 나오면 아무리 맛있어도 지치기 마련이거든. 인터미션 같은 거야. 오페라나 연극도 중간에 휴식 시간을 주잖아? 장소를 한번 환기하는 것만으로 몰입도가 높아지거든.”
더 불독의 테이스팅 메뉴에는 최소 30개의 요리가 나온다.
요리 하나를 먹는 데 5분이 소요된다고 치면, 식사 시간만 총 2시간 반이다. 그래서 별도의 휴식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타이밍도 중요해. 여기는 아예 사라지는 요리도 있으니까.”
더 불독의 요리는 평범하지 않다.
얼음이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거품도 있었으니까.
손님이 화장실을 갔다 오거나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 요리가 아예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주방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다.
‘이래서 테이블이 8개뿐이구나.’
그 이상은 주방도, 홀도 감당하지 못할 터였다.
첫 번째 라운드를 무사히 마친 후, 알레한드로가 싱글벙글 웃으며 한길에게 다가왔다.
“한길! 너, 엄청 능숙하던데?”
“그래?”
“누가 보면 원래 여기서 일하던 웨이터인 줄 알겠는걸?”
“주방에서 일했으니까 메뉴를 별도로 외울 필요가 없잖아.”
“그게 아니라··· 전체적인 타이밍이나 시야도 좋아서. 두 번째 타임에는 너도 테이블 하나 맡아볼래? 9시 40분 예약인데.”
“그래도 돼?”
“나도 옆에서 봐주겠지만, 한번 맡아봐.”
“그럼 사양 않고.”
어떤 경험이든 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한길이 흔쾌히 승낙하자, 알레한드로가 간단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예약은 보리스 부부. 남편이 고혈압약을 먹고 있고, 아내는 락토스 불내증이래. 혹시나 메뉴 실수 있으면 유의하고···.”
#
예약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 입구로 향하던 한길이, 창밖을 보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알레한드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한길을 바라봤다.
“왜 그래?”
“예약한 손님이 아닌 것 같아서.”
“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인영이 뭔가 이상했다.
예약자 이름은 보리스 부부였는데, 문 앞에 있는 손님은 젊은 20대 남성 두 명이었으니까.
심지어···
“저거, 잠옷 맞지?”
“그런 것 같네.”
2인조 중 한 명은 하늘하늘한 체크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더 불독은 드레스코드가 있어?”
“딱히. 알몸만 아니면 돼. 근처에 바닷가가 있어서 비치 패션으로 오는 손님도 있거든.”
“그러면 저건 통과야?”
“··· 알몸은 아니긴 한데, 하아···.”
알레한드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슬슬 올 때가 된 건가? 인터폴을 안 달고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어쩔 수 없지. 요즘 워낙 관심을 많이 받고 있으니까.”
페르난도 밈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더 불독은 여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미식가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페르난도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지금까지는 미식가들만 왔다면, 이번에 찾아온 손님은 달랐다. 미식이 아니라 관심이 고파서 온 손님이었으니까.
“어떻게 할까?”
한길은 결정을 알레한드로에게 맡겼다.
알레한드로는 이곳의 홀 디렉터이자 공동 파트너. 이 결정은 알레한드로가 내려야 한다.
“여기까지 찾아온 손님은 거절하지 않는 게 우리 기본 방침이라서. 진짜 예약자라면 들여 보내야지.”
“그런데 여기, 촬영에 대한 방침은 뭐야?”
“촬영?”
“저 사람들, 지금 촬영 중인 것 같거든.”
한길의 말에 알레한드로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유리창 너머의 손님들을 다시금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잠옷을 입지 않은 남자가 잠옷 입은 남자를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한길 너, 관찰력이 좋구나?”
“그럭저럭.”
“너튜브나 톡톡 영상을 찍는 사람들이려나? 중간중간 화면을 확인하는 게 꼭··· 라이브 방송 같기도 한데···.”
지금은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수익이 없어도 페르난도의 유명세에 편승해 밈을 만드는 이들도 많은데···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 조회 수를 올리고 수익을 내려는 사람이 나타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라이브 방송을 해도 돼?”
“아직 규정은 없어. 동영상은 자유롭게 찍어도 되는데··· 지금까지 찾아온 손님 중에 라이브를 하는 손님은 없었으니까.”
더 불독의 홀 운영 방침은 2011년에서 멈춰있었다. 당시에는 라이브 방송이 대중화되지 않아 그와 관련된 대처법을 마련해두지 못했고.
알레한드로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음, 일단··· 허락하자.”
“진짜?”
한길은 미간을 좁혔다.
딱 봐도 진상 손님인데···.
“창의력이 강점인 페르난도의 레스토랑에서 라이브를 금지하면 왠지 검열 같잖아. 안 그래도 요즘 페르난도 이미지가 걱정되는데···.”
알레한드로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본인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따를 수밖에.
“음, 한길. 이번 손님은 내가 맡아도 될까? 너는 10시 예약을 맡아보고.”
알레한드로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려는 모양이었다. 홀의 총책임자니 그렇게 하는 게 맞겠지만···
‘불안한데?’
미안하지만,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
알레한드로는 뛰어나다.
특히 레스토랑의 이미지나 브랜딩 아이디어를 내는 부분에서는.
하지만 홀에서의 실무 경험은 많지 않았다. 레스토랑 홀을 직접 관리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걸 자각하는지,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길은 그런 알레한드로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다면 이 손님은 내가 맡아보면 안 될까?”
“하지만···.”
“이쪽은 나름 전문분야거든.”
한길의 말에 알레한드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아! 너희 레스토랑에도 저런 손님들이 많이 오는 거야?”
“뭐, 비슷해.”
완전 거짓말은 아니었다.
잠옷을 입고 라이브 방송을 하려는 손님은 아니지만, 진상 손님에 대한 경험은 넌더리 날 정도로 많았으니까.
당장 이번에 다녀온 프랑스 스테이지만 해도, 사방에 적밖에 없는 퐁파두르의 요리사로 활약했었다.
베르사유뿐만 아니라, 스테이지 속은 항상 음모와 공작이 도사리고 있었다. 단순히 망신을 주는 게 아니라, 조금만 방심하면 음식에 독을 타려는 사람도 있었고.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알레한드로보다 한길이 대처를 더 잘할 터였다.
“나 혼자 하겠다는 게 아니라, 너도 내 옆에 있다가 도와줄 때 도와주고.”
“음, 그럼···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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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는 제 삼촌인데 일이 생겨서 못 오신다길래, 제가 대신 왔습니다.”
그게 손님의 해명이었다.
알레한드로가 예약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을 때도 같은 얘기가 돌아왔다.
“못 먹는 음식이나 알레르기가 있으신가요? 처방 약을 먹고 있으면 그것도 기재 부탁드립니다.”
알레한드로는 중요한 사항을 받아적은 후, 한길에게 눈짓을 주고 바로 사라졌다.
손님 중 한 명이 약을 복용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재료를 확인해서 주방에 전달해야 했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이는 알레한드로뿐이었다.
“아, 동영상 좀 찍고 싶은데 찍어도 됩니까?”
알레한드로가 사라지자마자 손님 중 한 명이 질문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촬영중이던 남자였다. 한길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폰을 내려두었지만 말이다.
한길은 여유롭게 웃으며 답했다.
“다른 손님만 찍지 않으면 가능하십니다.”
“고마워요.”
“촬영용이라 이런 멋진 의상을 입고 오신 거군요.”
한길이 의상을 칭찬하자, 잠옷 남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런 그림을 원한 건 아닌가 보네.’
저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잠옷을 입고 한때 세계 1위 명성을 가졌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
컨셉이 투명해도 너무 투명했다.
고루한 명문 레스토랑에 가서 깽판 치는 모습을 담고 싶은 거겠지. 레스토랑 직원들이 당황해하거나 불쾌해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 테고.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했다.
당황하지 말고, 무엇이든 유쾌하게 웃어넘기면 된다.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도 페르난도와 인사를 나눌 수 있나요?”
“물론이죠. 모든 손님이 페르난도를 만난 후에 자리에 앉으시니까요.”
잠옷 남자는 제법 기대하는 얼굴이었지만, 한길은 속으로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페르난도라면, 이들이 원하는 반응은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혹시 이건, 잠옷입니까?”
“안내받을 때 편안한 차림새여도 된다고 해서요.”
“기발하군요! 저도 항상 편한 복장을 고집하는데, 잠옷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그런가요? 페르난도, 카메라를 향해 한번 인사 해주시죠.”
“페르난도입니다.”
“그런데 페르난도! 여기, 라이브 금지구역은 아니죠?”
한길에게는 동영상만 찍는다고 했던 손님들이, 페르난도 앞에서 갑자기 라이브 사실을 털어놓고 있었다.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라이브? 그건 뭡니까.”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거예요. 여기 시청자들이 랑 채팅도 할 수 있고.”
“호오! 이게 지금 보는 분들이십니까?”
페르난도는 카메라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라이브 방송에 대해서는 몰랐던 모양.
그리고 페르난도는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환영하는 사람이었다.
“몇 명이나 보는 겁니까?”
“여기 숫자가 나와 있어요.”
“여러분, 제가 지금 몇 손가락 들고 있을까요?”
페르난도는 진짜 화면 속이 실시간 방송인지 확인하느라 바빴고, 잠옷 남자는 그런 페르난도를 보며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길은 겨우 웃음을 참다가, 적당히 페르난도의 질문이 끝날 때 즈음 입을 열었다.
“페르난도, 손님들을 특별석으로 안내해도 될까요?”
“특별석?”
“그러는 편이 편하게 촬영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요.”
잠옷을 입고 불쾌감을 유도하려는 손님을, 일반 손님들 사이에 둘 수는 없다. 식사 도중에 어떤 돌발 행동을 할 지 모르니까.
일단은 격리를 해야 했다.
페르난도는 한길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한길, 손님을 셰프 테이블로 안내하도록.”
“셰프 테이블?”
“셰프 테이블이라고, VIP 손님들에게만 제공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주방 안에 있어서 셰프와 대화를 나누기도 좋고, 가까이서 요리사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죠. 방송용으로 촬영하시면 더 좋을 겁니다.”
“아, 네···.”
진상 손님들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별 대우를 해주겠다는데 불평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일단 첫 번째 위기는 넘긴 건가?’
한길이 손님들의 잔에 물을 채우고 잠시 돌아선 순간, 알레한드로가 몰래 다가왔다.
“한길, 괜찮을까?”
“뭐가?”
“저런 사람들을 저 자리에 놔둬도 되나 싶어서.”
“괜찮아. 이곳 주방은 트집을 잡으려야 잡을 수 없으니까.”
지난 한 달간, 실습생들도 이 주방에 적응했다.
더 불독의 주방은 어느 군대보다 엄격한 규율을 자랑했다. 실습생 한명 한명이 초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으며, 기분 좋은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하게 했다.
“게다가 촬영도 익숙하고.”
첫날부터 이 주방에는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다양한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으니, 모두 카메라에는 익숙했다. 너튜버가 왔다고 긴장하거나 실수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페르난도 때문에···. 이런 건 익숙지 않아 보이니까.”
“그렇긴 한데, 아마 본인은 좋아할걸?”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한테는 리얼리티 쇼 섭외가 안 들어온다고 구시렁대던 페르난도였다. 순도 100% 리얼리티 쇼를 싫어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것으로 치면, 페르난도가 한길보다 몇 수는 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