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29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292화(292/325)
292. 저에게 넘겨주시죠
“코코넛 스펀지 케이크입니다. 코코넛을 구름처럼 가벼운 질감으로 구현한 요리죠. 손으로 집어서 드시면 됩니다.”
한길이 설명과 함께 요리를 내려놓자, 잠옷을 입은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손으로 먹으라고요? 손으로?”
“구름처럼 가벼운 무게감이 맛의 일부이니 손으로 드시는 걸 추천해 드리고 있습니다.”
“아니, 이 레스토랑은 포크는 어디다 팔아치우고 계속 손으로 먹으라는 거지?”
예상대로 손님들은 진상이었다.
요리를 내올 때마다 딴지를 걸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청자는 거의 없겠네.’
이들이 끔찍하게 재미없다는 사실이었다.
실패한 몸개그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자극적으로 행동하려고 애쓰는데, 그 모습이 과장되고 억지스럽기만 했다.
재밌기보다는 무안했다.
구독자가 많지는 않을 거다.
이들의 영상도 영향력은 별로 없을 테고.
알레한드로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쪽으로는 걸음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달랐다.
“식사는 마음에 드시나요?”
평소에는 셰프 테이블에 손님이 있어도 네다섯번 정도만 얼굴 비추는데, 오늘은 10분에 한 번꼴로 등장하고 있었다.
페르난도가 다가오자 잠옷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예···.”
“뭐 필요하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어드리죠.”
“토끼 귀 튀김은 안 나옵니까? 그거 먹으려고 온 건데.”
“이번 주는 토끼가 없어서 못 만들었죠.”
“그럼 언제 나오는데요?”
“저번 주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조만간 나올 겁니다.”
“…?”
“우리는 새끼 토끼만 쓰니까.”
“···아.”
과장되고 억지스럽게 행동하는 이는 너튜버만이 아니었다.
페르난도는 이 기회에 자신의 유머 감각을 확인하고 싶은 모양. 그런데 욕심이 과했는지 계속 무리수를 던지고 있었다.
‘불편해.’
참으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잔뜩 벼르고 있는 페르난도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무서웠다. 금욕적인 수도승과 엄격한 군인을 반반 섞어놓은 듯한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페르난도의 입에서 농담이 나올 때마다, 너튜버는 ‘설마··· 농담인가?’ 하며 긴가민가 하는 반응만 보였다.
여기에 페르난도가 치명타를 날렸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
자신의 농담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잠옷 남자도 처음 몇 번은 리액션을 해주었지만, 이제는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페르난도 요리치고는 평범하네요? 조금 더 익사이팅한 걸 기대했는데.”
“익사이팅이라··· 토끼 뇌 탕을 한번 준비해볼까요?”
“···.”
잠옷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페르난도가 ‘토끼 뇌 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음과 동시에 웃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거기서 웃냐고.’
상임직원들조차
‘사이코패스 미소’라고 부르는 웃음이 있다. ‘사이코패스 미소’와 ‘토끼 뇌 탕’의 콤보는 강렬했다.
“페르난도, 하비에르가 찾고 있습니다.”
“그래? 지금 가도록 하지.”
“손님, 접시는 치워드려도 될까요?”
“그, 가, 감사합니다!”
한길이 페르난도를 쫓아내자, 잠옷 남자가 얼떨결에 감사 인사까지 올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마움이 목소리에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나름 페르난도의 위기라고 생각해서 진상 손님 처리반을 맡은 것이었는데, 쓸데없는 오지랖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알레한드로한테 그냥 맡길 것을.
한길은 앞으로 사흘 후면 이곳을 떠난다.
벌써 한밤중이니, 실질적으로 남은 기간은 이틀.
1분 1초가 소중한데···.
홀에서 서빙이라도 했다면 레스토랑의 분위기나 작업 흐름이라도 배웠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서비스 도중에 테이블 담당을 바꿀 수는 없었으니까.
“캐비어와 헤이즐넛 캐비어입니다. 한쪽은 진짜 캐비어, 한쪽은 헤이즐넛으로 만든 가짜 캐비어죠.”
접시를 내려놓으며 설명하자, 손님 두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캐비어가 뭐였더라?”
“왜, 그 비싼 거 있잖아. 드라마에서 부자들이 먹는 거.”
“비싼 게 한둘이냐. 스테이크보다 비싸?”
“당연히 비싸겠지.”
“헤이즐넛은 누텔라 맞지?”
한길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이게 가장 괴로웠다.
이 손님들은 미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지금 내온 요리는 헤이즐넛으로 캐비어와 동일한 식감을 구현해낸 요리.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맛이 비슷한 두 개의 재료를 번갈아 먹으며,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알아맞히는 요리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재미가 페르난도가 말한 6감, 생각이 주는 맛이었다.
그런데 캐비어와 헤이즐넛이 뭔지 모르면, 그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진짜 아깝네.’
속이 쓰린 나머지, 입안에서 위액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더 불독의 실습생들에게는 시식이 금지된다.
그나마 한길은 메뉴 개발부서에 들어가서 시식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신메뉴에 한해서였다.
오늘 더 불독에서 제공하는 84개의 메뉴 중 한길이 먹어본 요리는 30여 개. 나머지는 50개는 맛을 전혀 모른다.
그런데 막상 그 요리를 맛보는 손님들은···.
“생강에 재워둔 사탕수수입니다.”
“사탕수수가 설탕 만드는 그거였던가? 그나저나, 이것도 손으로 먹나요? 또 손으로? 진짜 포크는 다 팔아치웠나?”
손님의 말을 듣고 어디선가 페르난도가 쪼르르 달려왔다.
“이겁니다, 팔아치운 포크.”
“···.”
“제가 디자인한 포크거든요. 진짜 팔아치우고 있죠.”
“···.”
정말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방송은 엉망. 진상 손님들은 캐릭터 성을 잃었고, 페르난도는 틈만 나면 다가와 이상한 개그 욕심을 냈으며, 요리는 완전 뒷전이었다.
‘빨리 퇴근하고 싶다···.’
지친 것은 한길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도 될까요?”
손님들도 타임아웃을 요청했으니까.
“여기, 화장실이 어디 있죠?”
“복도를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돌면 있습니다.”
“흡연 구역도 있나요?”
“테라스로 나가서 계단 아래를 보면 재떨이가 있을 겁니다.”
이윽고 너튜버들은 카메라에 대고 휴식을 선언한 후, 비척비척 자리를 떠났다.
#
한길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2인조의 뒤를 따라갔다. 혹여나 다른 손님들에게 민폐가 되는 행동을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2인조는 얌전히 흡연 구역으로 향했고, 한길은 들키지 않게 테라스 위에서 그들을 감시했다.
2인조는 세상 근심을 다 떠안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냐?”
“그러게, 너무 노잼인데? 이 정도면 수습 불가능 수준 아닌가?”
“야, 그러면 안 돼!!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가 들었는데!!!”
대화를 내용을 듣자 하니, 2인조는 시카고에서 온 대학생들이었다.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는 몰카 영상을 만들어 너튜브에 올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했다.
취업도 어렵겠다, 차라리 본격적으로 너튜브 채널을 키워볼까 하던 그때. 친척이 더 불독에 대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모처럼 예약을 잡았는데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요즘 한참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페르난도 밈을 떠올린 2인조는, 이것이 기회라 여기며 전 재산을 긁어모아 스페인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실패하면 안 돼! 나 완전 빈털터리라고!”
“너만 그런 줄 아냐? 나도 그래.”
“차라리 그냥 몰카를 해볼까?”
“저 할아버지를 상대로?”
2인조는 한참 동안 이 영상을 되살릴 방안을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묘수는 없었다.
“하아, 그냥 돌아가서 알바나 해야지.”
“인생 참 쉽지 않네···.”
“괜찮아, 실패로 배운다고 하잖아. 그냥 유럽 여행 온 거로 치자.”
‘이제 슬슬 데려와야겠네.’
한길은 대화가 마무리될 때 즈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휴식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주방에도 혼란이 올 테니까.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는 사이, 주제가 바뀌고 있었다.
“지금 나가면 반값으로 쇼부칠 수 있을까?”
“반값?”
“여기 최소 30코스인가 40코스라고 했잖아. 반밖에 안 먹었으니까 반값만 내면 150유로는 아낄 수 있는데···.”
“되겠냐?”
“안 되겠지? 하하···”
한길은 저도 모르게 잠시 걸음을 멈추다가, 달리다시피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그리고 지면에 발이 닿음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 나머지 코스, 제가 가져도 됩니까?”
갑자기 등장한 한길을 보며, 2인조가 화들짝 놀랐다.
“네?”
“코스 요리의 후반부를 저에게 넘길 수 있나 해서요.”
손님들은 말없이 두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그러던 중, 잠옷을 입은 남자가 손을 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그··· 농담으로 한 말이었어요.”
“저는 진심입니다.”
“하지만···.”
남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안하면 덥석 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막상 남에게 넘기려니 아까운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더 불독은 오고 싶다고 해서 다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벌써 내후년까지 예약이 잡혀있다고 했었더랬지.
하지만 한길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들어간 비행깃값이랑 숙박비는 어느 정도죠?”
“··· 900유로요.”
“거기에 테이스팅 메뉴 비용까지 하면 인당 1,200유로군요. 두 분이면 2,400유로고요.”
한길은 말 대신 행동에 나섰다.
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넣고 지갑을 꺼냈는데··· 이상하게 지갑이 평소보다 핼쑥했다.
최근 메뉴 개발에 몰두하느라 바빠서 현금을 채워 넣지 못한 탓이다.
“11, 12, 13···. 지금 당장은 13장밖에 없군요. 더 인출하고 싶어도 이 근처에는 ATM 기계가 없어서··· 호텔을 알려주시면, 나머지는 퇴근 후에 갖다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진짜 그러실 필요 없어요.”
잠옷을 입은 남자는 진심으로 거절을 전하고 있었다. 당황한 건지 곤란한 건지 모르겠는데, 눈에 초점이 거의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을 놓치면, 더 불독의 요리를 언제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3호점이 안정화되는 동안 해외에 나갈 시간은 없을 테니까.
혹시 주머니에 추가 현금이 있을까 싶어 다시 손을 집어넣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 이게 있었지.’
한길은 차가운 금속을 꺼내고 그것을 잠옷 남자 앞으로 내밀었다.
“이 시계를 드리는 건 어떨까요? 듣자 하니 천만 원은 나가는 시계라던데.”
카키에게 선물로 받은 손목시계였다.
일하는 중에는 방해가 되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생각보다 고가의 제품이라 한국에 돌아가면 카키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했는데···.
‘어차피 돌려줄 거면 쓰던 것보다는 신제품이 좋지.’
이 시계는 한길이 알아서 처분하고, 카키에게는 새로 사주면 그만이다.
“어떻습니까? 이 시계를 드릴 테니 그 예약, 저에게 넘기시는 게?”
“그···.”
잠옷 남자는 여전히 당황한 모습.
그때, 등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 여러분은 지금, 세계 1위 레스토랑 왔다가 하늘에서 천만 원이 떨어지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고 계십니다!”
돌아보니, 카메라맨 역을 맡았던 다른 손님이 어느샌가 스마트폰을 들고 이 모든 과정을 녹화하고 있었다.
“네네, 조작 아니구요! 100% 리얼 상황입니다!”
그제야 잠옷 남자의 눈에도 초점도 돌아왔다.
“이 지폐, 확인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시계도?”
“네.”
2인조는 현금과 시계를 번갈아 카메라 앞에 들이대며, 시청자들과 진위 여부를 논의하기 바빴다.
“네? 불빛에 대면 워터마크가 다르다고요? 보안선? 음, 그러니까 가짜는 인쇄로만 되어있고 진짜는 박혀있다는··· 그걸 눈으로 보고 어떻게 알아! 좀 더 쉽게 설명하라고!”
“오오! 이게 명품이라고요? 모델명 아는 분?”
식당 안에서 선보인 괴상한 진상 손님 연기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시청자들과 확인 작업을 마친 후, 잠옷 입은 남자가 다가와 한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 거래,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면 남은 코스 요리는 저에게 넘기는 거죠?”
“네네. 그런데 레스토랑 쪽에서 그걸 허용하나요?”
“걱정 마세요. 할 겁니다.”
모든 협상이 끝난 후,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그런데 여기서 웨이터들은 월급이 어떻게 되나요? 이렇게 화끈하게 움직일 정도로 잘 벌면, 희망 직종을 웨이터로 해도 될 것 같은데···.”
“저는 웨이터가 아니라 스타주입니다.”
“스타주? 그게 뭐죠?”
“무급 인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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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방으로 돌아온 손님들은 페르난도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진짜 진짜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당장 가야 하는데··· 음식은 무지 맛있었어요! 그런데 끝까지 먹을 수 없어서··· 물론, 돈은 낼게요! 아, 그리고 어차피 돈 내는 거, 나머지 코스는 이분이 먹어도 될까요?”
“한길이요?”
“오늘 워낙 잘해주셔서요.”
손님들은 어수선하게 작별을 고했고, 계산한 후에 떠났다.
페르난도는 상당히 낙담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원망 가득한 눈이 한길을 노려보았다.
“한길, 또 뭘 한 거지?”
“열심히 웨이터 역할을 했는데요?”
“즐겁게 식사하던 손님들이, 자네와 밖에 다녀온 후에 내빼는데 진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즐겁게···?”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페르난도와 말씨름 할 때가 아니었다.
“손님들이 말한 대로, 남은 코스요리는 제가 맛봐도 될까요?”
“그걸 노린 거였나?”
“노리진 않았지만, 어찌 보니 그렇게 됐네요.”
“허락할 수 없네.”
페르난도는 팔짱을 끼고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자네는 아직 실습생 신분 아닌가. 근무 시간에 마음 편히 앉아서 식사하게 둘 수는 없지. 손님들과 어떤 딜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하려면 근무 시간 외로 잡았어야지. 자네한테 허락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중탕기 하나.”
페르난도가 입을 꾹 다물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고개를 휙 돌리며 알레한드로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알레한드로! 한길을 위해 자리 좀 다시 세팅해주게! 손님들이 사용했던 테이블 그대로 쓸 수는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