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0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00화(300/325)
300. 내가 있어야 할 곳
페르난도와 파코를 숙소로 끌고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 다른 송별회가 있으니 가야 한다는 말에, 본인들이 알아서 따라왔으니까.
숙소에 들어선 페르난도를 목격한 순간, 실습생들은 얼빠진 얼굴을 했다.
“페, 페르난도가!!!”
“왜, 여, 여기에···?”
일반 실습생들은 페르난도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 더 불독에서는 허가 없이 페르난도에게 말을 거는 걸 금기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이 시간까지 다들 깨어있었군. 재밌는 일을 하고 있었는걸?”
페르난도는 주방을 힐끗거리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방에 한길에게 판매할 메뉴들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한번 맛봐도 되겠나?”
“무, 물론입니다!”
“제, 제, 제 것도!”
“저, 저도 그, 금방 만들 수 있는데!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실습생들은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일제히 움직였고,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 떼처럼 순식간에 페르난도를 에워쌌다.
“이건 무슨 요리인가?”
“케, 켈러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켈러라··· 미국은 보스턴만 가봐서 맛을 못 봤는데 설명 좀 부탁해도 되겠는가?”
“기, 기, 기, 기꺼이요!”
한길은 페르난도와 파코를 실습생 무리 안에 던져두고, 알레한드로를 정원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차분한 공간에서 3호점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앞으로 한길의 홍보와 마케팅, 브랜딩을 담당하려면 알레한드로가 알아야 할 내용이 많았다.
“뭐? 페이튼 힐 호텔에 입점한다고? 아니, 페이튼 힐이 아시아 진출을 해?”
“첫 해외 지점이라고 했던 것 같긴 해.”
“우와, 페이튼 힐에 들어가는 것도 대단한데? 거기는 아무 레스토랑이나 받아주지 않거든.”
“다행히 좋게 봐주더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비서한테 연락하라고 했으니까. 아, 그 비서 연락처도 나중에 전달해줄게.”
“설마··· 페이튼을 직접 만나봤어?”
“어, 한번 식사를 차려줬거든.”
“뭐?!”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있었네. 잠깐만.”
한길은 핸드폰으로 기사 하나를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요리 탑10>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언젠가 엔아이 타임스에 실렸던 내용이었다. 한길이 예전에 만들었던 미친 모자 장수 수프가 8위를 차지했다.
‘그러고 보니 원문을 보는 건 처음이네.’
기사가 나올 당시에는 아직 영어 패치가 없어 자동 번역기로 읽었더랬지.
「8위. 미친 모자 장수 수프.
한국의 TG 모던 아트 갤러리에서 선보인 이색적인 메뉴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금색 회중시계를 찻잔에 넣고 물을 따르면, 순식간에 녹아내려 수프로 변한다. 금박지 안에 미리 굳혀둔 콩소메를 담고 회중시계 모양으로 빚어낸 것. 기발한 아이디어와 미뢰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절묘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페이튼 힐의 빌 페이튼이 극찬하는 요리이기도 하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페이튼은 “먹는 순간 바로 판타지 랜드를 열어주는 초월적인 요리다. 맛도 맛이지만, 오랜만에 동심을 일깨워주고 내 마음을 훔쳐 간 요리다. 이 한 접시로 나는 이한길 셰프의 팬이 되었다”며···」
기사를 읽은 알레한드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익숙한 표정이다.
새로운 재료를 발견한 요리사가 지을법한 표정이었으니까.
“야! 너, 이런 걸 숨기고 있다고는 말 안 했잖아?”
“숨긴 건 아니고, 잠시 잊고 있었어. 워낙 작은 기사라.”
“엔아이 타임스잖아? 문화 예술계로는 가장 알아주는 신문 중 하나라고! 게다가 페이튼이라니!”
“페이튼이 그렇게 유명해?”
“유명한 것도 그렇지만, 이미지가 상당히 괜찮아. 카리스마로 치면 차기 리처드 브랜슨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고, 신탁 자금 물려받은 걸 15배로 불려서 사업자금에 보충한 거로 알려졌거든.”
“브랜슨?”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레한드로는 한길의 혼란을 알아차리고 쉽게 풀이해주었다.
“그러니까, 투자 귀재라는 이미지가 있어. 그냥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게 아니라 금수저 집안의 미운 오리 새끼거든. 물려받은 용돈을 투자로 불려서 자기 사업을 키웠는데, 그런 투자 귀재가 미리 점찍어둔 요리사가 페르난도의 후계자가 된 거잖아? 완벽해!”
전문 분야여서 그런가.
알레한드로는 벌써부터 한길을 제법 그럴싸하게 포장해주고 있었다.
“아! 그리고 페이튼 힐 지점 중 하나는 디올이랑 콜라보해서 팝업 레스토랑을 낸 거로 알고 있거든. 페이튼이 네 팬이라고 말할 정도면 차기 프로젝트에 한 번 접근해봐도 되겠는걸?”
“디올?”
“명품 브랜드 디올 몰라? 요즘 팝업 카페랑 레스토랑을 열면서 내부에 자기네 제품 전시도 하고 있거든. 디올만 그런 게 아니라 구찌도 보투라 셰프랑 콜라보해서 레스토랑 사업으로 진출하고 있고.”
“잘 아네?”
“더 불독도 이런 콜라보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나저나 네 후계자 발표, 그거 페이튼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야? 그냥 흘리기만 해도 협상에 꽤 유리할 것 같은데.”
짧은 시간에 알레한드로는 이미 한길과 최셰프는 상상도 못 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월급이 아깝지 않았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시기만 잘 맞추면 대박 터질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바로 내년 미슐랭에도 올라갈 수 있겠는걸? 정식 발표가 9월이니까··· 오픈 후 한 달 내로 크게 터트리면 심사위원을 보낼 거야. 아니, 보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게 터트려야지! 심지어···
지금 분위기면 바로 3 스타를 받을지도 몰라!”
“그래?”
“올해, 노마가 드디어 3 스타를 받았거든. 페르난도 은퇴 후에 가장 영향력 있는 레스토랑인데도 줄곧 2 스타만 받았잖아? 덴마크에 있는 다른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들은 3 스타인데, 노마는 대놓고 북유럽 요리를 자처하니까··· 그래도, 노마를 인정했다면 미슐랭도 이제 조금 변화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거지. 타이밍이 좋아!”
그 말과 함께 알레한드로는 품에서 작은 메모장을 꺼내서 간략한 일정표를 만들기 시작했다.
‘든든하네.’
한길은 전혀 모르는 세계 시장을 잘 알고 있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해외 정복을 위한 제갈량을 손에 넣은 것 같기도 했고.
“팝업? 그거 하려면 행정 직원 최소 2-3명은 뽑는 게 좋을 거야. 은근 서류 잡무도 많고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
“촬영은 아예 고정 팀이랑 계약을 맺는 게 좋아.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쪽은 프리랜서가 워낙 많아서 그때그때 찾으면 차질이 많이 생기거든···”
“그런 연구기관을 세우려면 미식계의 주요 콘프런스는 미리 참가해두는 게 좋지. 일단 꼭 가야 하는 게 슬로우푸드 페스티벌이랑···.”
한길이 질문만 하면 즉각 답을 내주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역시 전문가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일이 잔뜩 진행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길! 역시 여기 있었구나? 페르난도가 찾아.”
라엘라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조금만 있다가 갈게.”
“안 돼. 지금 당장 끌고 오래.”
“1시간만 못 본 척해주면 안 되나? 그래도 매일 출퇴근도 같이한 사이인데.”
“오늘 떠나는 사람이랑 앞으로 몇 달간 잘 보여야 하는 보스. 두 사람이 부탁하는데 너라면 누구 편을 들어주겠니?”
라엘라는 전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고, 결국 알레한드로가 아쉬움을 삼키며 웃었다.
“중요한 얘기는 다 나눴으니까 나머지는 메일이랑 통화로 하자. 지금은 아저씨랑 놀아줘. 그 영감, 은근 잘 삐지거든.”
#
“한길! 어딜 갔는가!”
페르난도는 다시 돌아온 한길을 놓아주지 않았고, 한길은 해가 뜨기 전까지는 페르난도의 옆에 있어 주었다.
“한길! 자네, 전화는 보통 몇 시에 받을 수 있나? 시차는 복잡하니 한국 시각 말고 스페인 시각으로 알려주게.”
“전화는 잘 받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남겨주면 확인하고 다시 걸죠.”
“그러면 문자를 보내야 하는 건가?”
“문자보다 메신저를 더 잘 쓰는데··· 페르난도도 깔아드릴까요?”
한길은 페르난도에게 한국의 깨톡을 깔아주고 자신의 이름을 추가해주었다.
“호오! 이런 걸 쓰는군! 그런데 자네는 왜 프로필에 사진이 없나?”
“사진을 잘 안 찍어서요.”
“아!!! 사진!”
페르난도가 갑자기 한쪽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그러고 보니 올해 단체 사진에는 자네가 없겠군. 이런!”
“단체 사진이요?”
“매년, 실습 기간이 끝나면 실습생들과 단체 사진을 찍는 게 전통이거든. 그 사진에 자네가 없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더 불독 영화에서도 단체 사진이 진열된 장면이 나왔었다.
페르난도는 진심으로 서운한 눈치였다. 그 모습을 보며, 매튜가 제안했다.
“그런 거면 지금 찍으러 가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실습생 전원이 참여해야 하지 않은가.”
“그거야 깨우면 되죠.”
“지금 시간에 말인가?”
“어차피 조금 있으면 해도 뜨잖아요? 전혀 신경 안 쓸 겁니다. 그건 장담하죠.”
그 말과 함께 매튜는 쪼르르 달려가서 잠들어있는 실습생들을 깨웠다.
매튜의 말대로, 서운해 하는 실습생들은 없었다.
대화 한번 못 나눠본 페르난도와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였으니까. 오히려 왜 조금 더 빨리 깨워주지 않았냐고 화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
페르난도와 파코, 그리고 실습생 전원은 새벽 댓바람부터 다시 레스토랑으로 향했고, 일출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페르난도는 한길과 단둘이 사진 찍을 것을 요청했고, 그 사진을 한길의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다소 정신없었지만,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더 불독 앞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건 썩 나쁘지 않았다.
“이제 갈 시간이군.”
“그러네요.”
페르난도의 쓸쓸한 미소를 보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몇 달 후에 다시 볼 터였다. 현실의 스승인 만큼 언제든지 연락도 할 수 있었고.
“페르난도.”
“왜?”
“건강 꼭 챙기세요.”
이제 떠날 시간이다.
#
바르셀로나까지 이동하는 2시간.
한길은 택시 안에서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페르난도와의 내기 때문에 안 그래도 수면 부족 상태였는데, 밤새 송별회를 벌이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무려 76개의 신규 톡이 도착해 있었다.
┖ 한길, 보이는가?
┖ 이거 이렇게 쓰는 거 맞나?
┖ (사진) 더 불독의 아침이지
┖ 어때, 벌써 그립지 않나?
···
┖ 자네 후임으로 올 비서는 누가 좋겠나?
┖ 그러고 보니 인수인계도 안 하고 튀었군.
┖ 자네랑 최대한 비슷한 느낌의 실습생이 좋은데 누구를 추천하나?
크리스토프를 추천하자마자 핸드폰 바테리가 수명을 다하고 꺼져버렸다.
비행기 안에서도 한길은 기절하다시피 잠만 잤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중간에 밥을 먹기 위해 두 번 눈을 떴지만, 메뉴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좌석벨트를 착용하시고, 비행기가 멈춘 후 선반을 여실 때는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 소속을 하는 내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평생을 살아온 한국 땅을 다시 밟는 게 이렇게 설렐 줄이야.
모든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나오는 순간,
“어어! 여기, 여기! 셰프 발견!”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중 나올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군가가 나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최셰프가 무조건 월요일 비행기로 와달라고 했고, 월요일은 레스토랑의 휴무일이었으니까.
예상 못 했던 부분은···
이들의 옷차림.
한길을 가장 먼저 발견한 3명의 요리사는 멀끔한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빛을 받으면 묘하게 반질거리는 재질의 정장은, 왠지 모르게 데니를 연상시켰다.
“너희들, 옷이 왜 그래?”
“잠시만요, 셰프! 야! 연락해! 4번 게이트라고!”
“옛썰!”
요리사 중 한 명이 무언가를 열심히 타이핑했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셰프!”
“여기다!”
“야! 이쪽!!”
양옆에서 우르르 달려오는 검은 정장의 무리. 얼핏 봐도 40명이 넘는 인원이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같이 데니스러운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셰프!!! 오셨습니까!!!”
“셰프, 보고 싶었습니다!”
“셰프, 살려주십시오!”
“셰프, 환영합니다!”
40명이 넘는 검은 정장 차림새의 인원이, 한꺼번에 허리를 숙이며 고함을 지르다시피 인사를 했다. 공항 안에 있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충분한 광경이었다.
‘셰프’라고 불러주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면 이상한 오해를 뻔했다.
“오셨습니까.”
“셰프! 오랜만이에요!”
최셰프와 유셰프 역시 같은 계열의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가장 늦게 어슬렁거리다시피 다가오는 인물 역시도.
“카키도 왔어요?”
이 많은 인원이 어떻게 단체복처럼 똑같은 정장을 입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카키가 상당히 뿌듯한 눈빛으로 검은 정장 무리를 보고 있었으니까.
“좀 특별하게 마중하고 싶어서요.”
그 옆에서 데니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형! 의상은 제가 골랐어요! 이왕이면 은색으로 하자고 했는데···.”
“야! 너 아직도 은갈치에 미련 있냐?”
“우매한 분들이네. 패션을 몰라요, 패션을.”
“저 새끼 아직도 저러네. 야, 은갈치 50마리가 떼 지어 돌아다니면 공포라고!”
“갈치처럼 보이는 건 님들이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핏이 이상한 거고.”
“야, 슬아도 부담스럽다고 했잖아? 이제 그만 포기해!”
“그건 누나가 님들을 배려한 거고.”
소란스럽다.
안 본 사이에 어째 더 소란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다들 시끄럽고! 여기서 민폐 끼치지 말고 빨리 가요!”
“민폐라니 무슨···.”
“지금부터 딴지 거는 사람들, 두 번 다시 소개팅 안 시켜줄 거니까 각오하고 입 열어!”
슬아의 한 마디에 신기할 정도로 요리사들이 한꺼번에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슬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셰프, 오랜만이에요!”
묘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귀국을 반겨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약간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한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드디어 돌아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300화 특집 인터뷰
(작가, 입장한다)
(정중하게 꾸벅!)
“자! 여러분!!! 오늘은 특별히! 독자님들을 위하여! 등장인물들을 한 자리에 초청하는 시간을 마련해보았습니다!”
(무대 위에 뿅하고 등장하는 출연진들)
“300화까지 열심히 달려주신 독자님들을 위해! 잠깐 작중에서 몇몇 사람들을 뽑아왔는데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마음껏!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 질문이어도 ok! 아! 참고로, 이 자리를 벗어나면 얘네들 기억은 삭제할 테니 걱정 마시고요 ㅎㅎㅎ.”
(뚱한 표정으로 작가를 바라보는 한길)
“무슨 할 말 있으신가요, 한길 님?”
‘이럴 시간에 글이나 쓸 것이지.’
“이건 독자님들을 위한 서비스라고요! 서비스!”
‘또 혼자 놀고 자빠졌네.’
“아니··· 나도 가끔은 놀자고요···.”
‘이러다 본성 들통나면 어쩌려고.’
“참고로 지금은 속마음도 다 들리는 시간입니다. 부디 생각에 조심해주세요.”
“하아···.”
(한길, 포기하고 고개를 젓는다.)
(저 싸가지 없는 새X)
(그래도 내 새끼임)
(작가, 다시 영업용 미소를 짓는다)
“자! 질문, 받습니다, 받습니다! 오오! 빨리도 첫 번째 질문이 올라왔군요! 스핀X님의 질문입니다! 주인공 한길님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한길이는 언제쯤 여자친구가 생길까요? 생기기는 할까요?’”
(한길, 작가를 노려본다)
“질문에 답해주시죠?”
“요리에 대한 질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본편이 아니라 서비스 에리어입니다! 질문 회피는 옵션이 아닙니다!”
“···.”
(작가, 능력을 사용한다)
[강제 답변 기능을 사용합니다]“여자친구, 사귈 생각이 있나요?”
(한길, 어쩔 수 없이 입을 열다)
“없지는 않습니다.”
“언제 생길까요?”
“할 일을 다 마치고 나면 생기겠죠.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할 일이라는게···.”
“탑셰프가 되고 나서요.”
“··· 뭐, 이것도 나름 답은 되겠네요.”
(작가, 고개 절레절레 젓는다)
(작가, 한탄을 시작한다)
“사실은 제가 말이죠. 나름 얘한테도 짝을 붙여주려고 주변에 꽤 괜찮은 분들도 등장시켰거든요? 그런데 연결이 안 되요, 연결이. 후우···.”
(한길,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한다.)
“미성년자 2 명 (루시아, 발렌티아), 유부녀 2명 (볼린 왕비, 퐁파두르)···.”
“루시아는 미성년자 아니었어! 그리고 슬아도 있고, 소희도 있고, 라엘라도 있잖아요?”
“동료는 동료입니다. 연애 대상이 아닙니다.”
“아니, 님아! 님은 레스토랑 밖으로 안 나가잖아요?”
“···.”
“뭐, 대충 이런 상황입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죠. 한자를 쓰시는 독자님의 질문입니다. (제가 한자에 많이 약해요 ㅎㅎ) 미션 인물들의 후일담을 보고 싶으시다는데요··· 음, 이건··· 잠깐 특파원을 연결해보죠! 글망쟁이 특파원!”
(화면 전환)
“네! 여기는 글망쟁이! 고대 로마에 와 있습니다! 아피키우스 자택 앞에 있는데요!”
“아피키우스씨 근황은 어떻습니까?”
“잠깐 시간 정지 기능을 해제하고 관찰한 결과, 손자 손녀와 노는데 여념이 없어 보이십니다. 애들이 참 귀엽군요. 방해하기 미안해서 차마 인터뷰는 진행 못하겠습니다.”
“네, 우리 글망쟁이님! 마음씨가 참으로 고우시군요! 이해합니다! 음··· 또 다른 등장인물 중 루시아는 뭐하고 있습니까?”
(화면 전환)
“젓가락질 연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네?”
“튀김 만들기에 사용하는 젓가락이 아직 익숙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상 외의 인물이 있네요.”
“그게 누군데요?”
“루시우스입니다.”
“그··· 주방에서 싸가지없게 굴던 그 루시우스요? 두 사람이 언제 그런 관계가 됐나요?”
“딱히 그런 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루시아로부터 젓가락질을 배우고 있군요. 그런데··· 왠지 끼어들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이긴 합니다.”
“흠흠,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탈리아로 넘어가주시길 바랍니다.”
(화면 전환)
“스카피 씨는 뭘 하고 계시나요?”
“짐을 싸고 계십니다.”
“그러고 보니 페르시아로 여행을 갈 예정이었죠. 이 분은 인터뷰 가능합니까?”
“꼭 해야 하나요?”
“부탁드립니다.”
(스카피에게로 다가간다)
(스카피, 특파원을 빤히 쳐다본다)
“넌 또 누구지? 의상이 특이하군.”
“한길···이 아니라, 마크의 친구입니다. 잠시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같은 곳에서 파견 나왔나?”
“뭐, 대충 그런 걸로 하죠. 지금 무슨 짐을 싸고 계십니까?”
“너도 요리사인가? 그놈이랑 같은 구역에서 왔나? 아니면 그곳에서도 나라가 여럿으로 나뉘어져 있나?”
[강제 답변 기능을 사용합니다]“스카피씨, 지금 뭘 하고 계시죠?”
“여행 갈 짐을 싸고 있지.”
“짐이 조금, 아니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 이걸 다 들고 가시려고요?”
“아, 괜찮아. 쓸만한 짐꾼이 있으니까.”
“그 짐꾼이라 하심은 설마···.”
“누구긴 누구야. 그래도 그놈이 명색이 악만데, 이 정도는 거뜬히 들고 다니지 않겠나?”
“그렇군요. 그런데 뭔 짐이 이리 많습니까? 그 상자는 또 뭐고요?”
“내가 아끼는 향신료들이지. 여기서 구하는 후추와 그곳에서 구하는 후추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봐야지 않겠나? 이쪽은 전부 참고도서. 나라고 모든 재료를 외우는 건 아니니까 미리 만들어둔 자료를 좀 들고 가는 게 좋겠지.”
“이거 다 실으려면 마차 3대는 필요하겠는데요?”
“아~ 걱정 마, 걱정 마. 그건 이쪽에서 알아서 할테니까. 그나저나, 이상하게 짐 싸는데만 1년이 넘게 걸린 기분이란 말이지. 설마, 그 자식이 또 이상한 저주를 쓴 건 아니겠지?”
(특파원 뜨끔)
“그럼, 여기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화면 전환)
“네, 감사합니다, 글망쟁이 특파원! 베르사유를 생략한 것 같지만.. 뭐, 떠난지 얼마 안 되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넘어가보죠.”
(한길, 고개를 젓는다)
“자! 다음 질문입니다! 군만두XX님의 질문! 다시 주인공 이한길님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탕수육은 부먹인가요, 찍먹인가요?”
“둘다입니다.”
“그건 또 무슨 댕댕이 소리일까요?”
“배달로 주문할 때는 부먹으로 주문해서 일부는 부먹으로, 일부는 찍먹으로 먹습니다. 또 일부는 소금 후추만 쳐서 먹고, 또 일부는 겨자를 찍어 먹고, 또 일부는 타르타르 소스를 찍어 먹습니다.”
“참··· 탕수육 하나 먹는데 요란이군요.”
“다양한 맛을 먹을 수 있는데 굳이 하나만 고집하는 이유를 더 모르겠군요.”
(작가, 한숨)
“뭐, 이렇답니다. 다음 질문! 아까의 연장선 같군요 언리X님의 질문입니다. 한길의 연애전선은 영원히 요리와 함께 하나요? 음··· 아까 한길이 답변을 토대로 보면, 사내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방 밖으로 나올 일이··· 아, 그러고 보니 최근 주방 밖으로 더 나가야겠다고 결심하셨죠? 어떻습니까, 조금 가망이 있습니까?”
(한길, 무뚝뚝)
“일부러 연애를 피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억지로 찾아볼 생각도 없습니다. 할일이 쌓여 있는데 굳이 연애 대상을 찾기 위해 돌아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작가 절레절레)
“뭐··· 이런 느낌입니다. 비혼주의자 자녀를 둔 전국의 부모님들 심정을 이해할 것 같기도 하네요. 뭐, 지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겠죠. 다음 질문, 이냄X 님, 기존에 나왔던 나라들을 다시 갈까··· 음··· 이건 작가에게 하는 질문이군요.”
(작가 긁적긁적)
“사실··· 가고 싶기는 합니다. 소설 속 스테이지는 모두 실존 역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거라 소재 고갈이 올 일은 없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금전적으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실력적으로··· 하하하. 지금 당장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외전으로 계속 이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합니다. 약간 취미처럼요. 공부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취미가 공부가 되는 거겠지만요··· 엥?”
(작가 긁적)
(작가 정신차리고 공손하게 90도 인사)
“근데 진짜, 빈말이 아니라, 이 글을 그렇게까지 계속 읽고 싶다는 독자님들이 계셔서 눈물날 정도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말 마음이 너무 따뜻해집니다. 요즘 자괴감 늪에 빠져있는데, 독자님들 덕분에 가라앉지 않고 숨은 쉬고 있습니다.”
(댓글창 새로고침)
“LlomX님의 질문입니다. 이것도 작가에게 하시는 거군요! 페르난도의 후계자 시나리오는 어떻게 나오게 된 시나리오인가··· 하하하하···.”
(한길이 작가를 빤히 쳐다본다)
(작가 긁적긁적)
“사실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냥, 우연입니다. 하하핫!”
“···.”
“원래 계획은 한길이가 한국에서 호텔 레스토랑 운영하다가, 두바이 건너가서 스테이지 내용 토대로 왕족 투자자 한명 잡고, 그 돈으로 뉴욕이나 유럽 어딘가로 진출해서 레스토랑 차리고, 역대 최다 미슐랭 별 따고 완결낼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아직 3호점 오픈도 못했는데 300화라서 (;;;) 모든 과정을 단축하고 현실 최강 셰프를 만나자는 생각에 페르난도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죠.”
(한길이 눈으로 경고를 보낸다. 나름 걱정하는 눈빛)
(하지만 이 작가 입이 매우 가볍다. 생각없음. 지금 시간 새벽 4시. 뇌를 잠시 꺼둘 시간임.)
“그런데 의외로, 계획을 벗어나서 가다보면 더 재밌는게 나오더라고요. 제가 나름 플롯을 굉장히 꼼꼼히 짜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제 글의 70%는 플롯에서 벗어나요. 집필하고 나서 초안을 읽으면··· ‘아씨, 이거 아닌데?’ 할 때가 있거든요. 그걸 붙잡고 씨름하다가··· 이렇게 비틀어보고, 저렇게 비틀고를 한 30번 정도 하다 보면 가끔 ‘오오오! 이거지!!!!’ 하는 걸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게 짜릿하면 달립니다. 제가 약간 그··· ‘짜르르! 소오오오름!!!’ 감성 애호가라서요 하하핫···.”
(작가 긁적긁적)
“사실은··· 독자님들 반응이 가장 좋았던 장면들 90% 이상이 플롯에서 벗어나서 나온 장면들이었어요. 그냥 너무 쓰고 싶어서 일단 질러 보고, 그 후에 어떻게든 수습을 하는 방식이죠. 수습하는 과정에서 여러 자료를 들추다가, 좋은 게 있으면 끼워맞추기 하는 식인데··· 의외로 수습이 잘 되어서 저도 조금 깜놀입니다ㅋㅋㅋ. 설마 페르난도가 진짜 후계자 지목을 받았을 줄이야! 저도 놀랐습니다 ㅋㅋ”
(한길이 조용히 작가 쳐다본다)
‘그러게 바닥 다 드러날줄 알았지.’
(작가 여전히 긁적긁적)
“제가 막 스토리 귀재여서 그런 걸 떠올린 건 아니고, 그냥 ‘노가다 + 시간’이 답인 거죠. 스토리를 짜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 자료를 뒤적거리고, 거기서 좋은 게 있으면 달립니다. 결국, 제가 그 노가다 + 뻘짓을 하는 동안 기다려 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셨기에 좋은 아이디어를 찾고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엄청난 거죠! 일반적으로 이렇게까지 연재주기가 늘어지면 댓글창이 욕으로 가득하고 작가 멘탈이 파사삭 흩어지며 사라지는 루트로 갈 텐데··· 제 독자님들은 기다려주시겠다고 하시니까요···ㅜㅜ. 저의 가장 큰 행운은 독자님들이십니다!”
(작가, 시계를 확인)
“음,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는 내일 업무를 마치면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정지)
(작가, 수면을 취하다··· 제발···불면증 진짜 괴로워요 흑흑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