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0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02화(302/325)
302. 실패하지 않는 것
‘강의?’
순간 무슨 말일까 했지만,
“오늘 환영회에서 또 한 번 풀어놔야 하나? 하긴, 강의 안 한 지 꽤 됐죠.”
준비운동이라도 하듯 목을 빙글빙글 돌리는 카키를 보니, 기억이 돌아왔다.
‘강의’는 카키의 주사 중 하나였다.
카키는 술을 마시면 한동안 헤실헤실 웃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마치 교수가 빙의한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강의를 시작한다.
대개는 요리사들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강의였는데, 단골 주제가 있었다.
— 근데 카사장님은 왜 그리 돈을 펑펑 쓰세요?
— 플렉스는 힙합의 기본이니까.
— 나도 그게 궁금하더라. 왜 힙합 하는 사람들은 플렉스를 하는 건데요?
— 돈은 성공의 상징이니까.
— 그래도··· 막 졸부라고 불리면 억울하지 않아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면, 카키는 무리를 동그랗게 앉혀두고서는 그 한가운데에 서서 강의를 시작했다.
— 졸부의 정의가 뭐지? 갑자기 부를 축적한 사람들, 즉, 벼락부자야.
그리고 벼락부자는 나쁜 게 아니야. 의미상으로 보면 금수저의 반대말이니까.
— 그래도··· 졸부는 뭔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잖아요.
—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숨기려고 하겠지만, 난 당당하게 내 실력으로 벌었으니까 숨길 필요가 없어.
— 그래도 돈을 함부로 쓰면 안 좋은 소리 듣잖아요? 그, 뭐라고 할까··· 품격 떨어진다거나 천박하다거나 하는 소리요.
— 돈은 돈이야. 돈을 쓰는 방식이 천박하고 고상하고는 인간이 만든 개념이고.
— 그래도···.
— 잘 들어. 돈은 권력의 상징이야. 어떻게 모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해. 남들이 말하는 소비 방식만 옳다고 믿고 눈치를 보면서 쓴다면, 설령 돈이 있어도 권력은 없는 거야. 남들의 사상에 지배당하는 거니까.
— 오오오! 뭔가 딥하다!
— 역시 카교수님!
— 적어도 나는 당당하게 돈을 벌었고, 그만큼 당당하게 써. 내가 돈 쓰는 방식은 ‘벼락부자 스타일’이지. 벼락부자가 벼락부자처럼 돈을 쓰는 게 왜 창피한 일인데? 나는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부터 바꾸려는 거야.
그렇게 시작한 강의는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처음 들었을 때는 내심 놀랐던 기억도 있다. 카키의 씀씀이에 의외로 철학이 있구나 하고.
“셰프는 제 강의를 요리에 적용한 거잖아요?”
이어지는 말에 한길은 회상을 마치고 눈앞의 카키를 바라봤다. 카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안 그대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셰프의 최근 행보를 보니까 뭔가 친숙해서.”
“···.”
“하긴, 골목식당에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까지, 셰프도 길바닥에서 성공한 거니까 벼락부자 셰프죠. 중탕기 공장 돌린다고 4천 뿌리고, 코스 요리 한 번 먹는데 천만 원짜리 시계 뿌리는 건 셰프 나름의 플렉스인 거고.”
딱히 카키의 영향을 받아서 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은데?’
오해하게 두는 편이 유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길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키가 왜 그런 식으로 돈을 쓰는지, 조금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원하는 방식으로 쓰지 못한다면, 돈을 버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곳에 돈을 뿌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한테는 희귀 재료가 한강뷰 고급 빌라보다 의미 있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번에 스타주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니까.
“바로 그거죠!”
카키가 손가락을 튕기며 환하게 웃었다.
마음의 앙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진짜, 파트너 운은 좋네.’
새삼 레스토랑의 공동 파트너가 카키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철저하게 사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길의 투자는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
2호점만 보더라도 제주도에서 진짜 천연기념물 흑돼지를 들여오거나, 매장에서 직접 살루미를 만들거나,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을 수입하는 것은 추가 비용만큼의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특이성이 있어서 손님들이 좋게 봐줄 수는 있지만, 들어가는 품과 노동력에 비례해서 매출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키는 장부가 흑자를 유지하는 이상, 그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관대한 건지 조금 의아했는데, 이제야 카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플렉스를 좋아하시면, 앞으로의 일도 꽤 좋아하시겠네요.”
한길은 앞으로 열릴 3호점에서도 현명하지 않을 소비를 할 계획이었다.
특이한 재료를 사용할 거다.
대중화되지 않은 재료는 공급처가 많지 않아서 비싸다.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막상 매출 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생소한 재료를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꺼리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
수익성만을 생각한다면 안 하는 게 낫겠지만, 그대로 강행할 생각이었다.
왜?
하고 싶으니까.
또한, 별도의 식품 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국내에 아직 유통되지 않는 재료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각종 행정 절차를 밟는데 도움을 주는 기관이 필요했으니까.
이것도 상당히 비싼 투자가 되겠지만, 투자만큼의 수익은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도 밀고 나갈 예정이었다.
왜?
하고 싶으니까.
그걸 하기 위해 돈을 벌었으니까.
이 모든 것을 플렉스 철학과 엮어서 설명하면, 카키가 거절할 리 없다.
한길은 앞으로의 계획을 카키 맞춤 형식으로 포장해서 설명했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기대되네요.”
카키는 여느 때처럼 씨익 웃고 있었다.
“오늘 요리사들한테 이걸 말해주는 거죠?”
“그럴 생각인··· 데 여긴 어디죠?”
한길이 새삼 주위를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다.
카키의 차량이 생소한 건물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카키는 아까부터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의 위치는 강남. 한남동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데 강남을 경유할 이유는 없다.
카키는 어딘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긴 어디에요, 환영회 장소죠.”
“레스토랑에서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왜···.”
한길은 뒷말을 삼켰다.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에 자리한 레스토랑.
그렇다면···
“환영회 장소, 3호점이에요.”
#
3호점의 진행 상황은 최셰프의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
3호점은 서울에 새로 오픈하는 페이튼 호텔의 1층에 자리할 예정이었다.
호텔은 현재 외관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는 중이었고, 레스토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페이튼 호텔.’
한길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주위를 살폈다.
페이튼 호텔의 모티브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라고 들었다. 건물은 계단식 구조로 되어 있었고, 층마다 넓은 테라스 정원이 있어 마치 식물원과도 같았다.
“여기, 펜트하우스 스위트 룸은 4면이 수영장이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정식 오픈하면 여기서 엠티 하려고요.”
“아, 네.”
한길은 카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레스토랑 안으로.
레스토랑은 3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빛이 많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창밖에 있는 조경이 그대로 보여, 프랑스 스테이지에서 본 온실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
실내는 아직 휑했다.
가구나 테이블, 주방 시설을 들여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길은 레스토랑의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여기구나.’
이곳이··· 다음 현실 스테이지의 무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빨리 이곳이 손님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우와! 여기야?”
“미친! 개 넓어!”
“오오~ 뭔가 입구부터 뤅숴리하지 않냐?”
우르르 들어온 요리사 무리 덕분에 한길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요리사들은 모두 짐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곽주일이 손을 높이 치켜들고 손뼉을 쳤다.
“자자! 시간이 없어! 다들 멍하니 구경만 하지 말고 조별로 세팅 시작해! 1조가 구경하는 동안 2조와 3조는 세팅! 구경 시간은 10분! 번갈아 가면서 보자고!”
“옛썰!”
“가즈아!”
요리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휑한 바닥에 돗자리가 펼쳐졌고, 그 위로 신문지가 올라갔다.
몇몇 사람들은 휴대용 그릴을 설치했고, 아이스박스를 들고 온 직원들이 준비물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한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 여기서 환영회를 한다고?”
“따로 장소가 없어서요. 이 인원을 수용할 식당도 별로 없고, 이태원의 웬만한 곳에서는 이미 블랙리스트라···.”
설명을 해준 이는 슬아였다.
“하긴, 인원이 많긴 많지.”
“요리사들만 40명이 넘고 홀 스텝도 있으니까요. 아, 오늘 홀 스텝은 반만 참석했어요.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그보다! 셰프! 메뉴가 뭔지 아세요?”
한길은 요리사들이 세팅하는 음식을 훑어보았다.
왜 이들이 이렇게 늦게 도착했나 싶었는데, 환영회 메뉴를 픽업하고 오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삼겹살, 탕수육, 짜장면, 떡볶이, 김밥···.
얼핏 보면 통일성이 없어 보이지만, 컨셉은 확실했다.
“외국에 나갔을 때 가장 생각나는 한식 특집이에요!”
슬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주류도 소주로 대동단결!”
그 후로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요리사들이, 신문지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삼겹살을 굽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여기저기서 고기를 굽는 바람에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야! 창문 열어, 창문!”
“파채 어딨어, 파채!”
“야, 파채보다 김치가 문젠데? 누가 삼겹살 굽는데 김치를 이것밖에 안 챙겨와!!!! 김치 담당! 당장 나가서 김치 더 구해와!”
“김치보다 탕수육 담당 누구야! 어떤 근본 없는 새끼가 탕수육을 부먹으로 갖고 왔어! 이런 놈에게는 지옥의 형벌을!!”
“그건 무슨 형벌인데?”
“매일 아침, 우유에 30분간 재워둔 시리얼을 먹을지어다! 눅눅함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먹을 것!”
다들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바로 옆자리에 앉은 유셰프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셰··· 해··· 요?”
“안 들려요..”
“셰···고요.”
유셰프는 다시금 수신호를 섞어가며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요리사들의 데시벨은 이기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발표 언제 할 거냐고요. 여기서 30분만 기다리면 쟤들 꽐라 돼서 기억도 못 할 수 있어요.”
“다들 흥분 좀 가라앉으면 하려고요.”
“이게 가라앉은 건데요?”
“이게?”
“그, 애들이 요 몇 달 사이 더 시끄러워져서요. 어쨌든, 지금이라는 거죠?”
한길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셰프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아까 공항에서 그러했듯이, 맹수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도, 전 직원이 일제히 입을 꾹 다물었다. 목소리로 주목을 모으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기운을 주위에 발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 귀환한 셰프로부터 한마디 들어봐야지. 오늘은 중요한 발표도 있다고 하시니까. 안 그래요, 셰프?”
유셰프는 한길에게 무대를 양보하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녀의 바로 옆에 있는 최셰프도, 카키도 기대를 가득 품은 얼굴이었다.
이들은 한길이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요리사들의 반응이 보고 싶어 안달 난 것이었고.
한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요리사들이 일제히 한길을 올려다봤다.
‘이게 내 군단인가···.’
더 불독의 오프닝 전날, 페르난도가 실습생들을 모아놓고 격려 연설을 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페르난도를 보며, 전쟁 속에서 군단을 지휘하는 장군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칼같이 규율을 지키는 더 불독의 실습생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한길이 그 누구보다 신뢰하는 자들이었다.
“일단, 쉬는 날에 마중 나와줘서 고맙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것도 고맙고···.”
역시 뭔가 간질간질하다.
한길은 괜히 머쓱해져서 서둘러 다음 말을 이어갔다.
“다들, 궁금한 점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서 끼어들면, 그만큼 듣고 싶은 얘기를 듣는 게 느려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다. 최셰프는 3호점의 헤드 셰프와 모든 지점의 총괄 셰프 역할을 겸할 예정이니, 1호점의 헤드 셰프 자리가 공석이 되었지. 헤드 셰프에 지원하고 싶은 요리사들은 최셰프에게 알리도록.”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한길의 다음 한 마디를 기다렸다.
“요리사들은 근무를 희망하는 지점을 정해서 유셰프나 최셰프에게 알려주길 바란다. 모두 알겠지만, 지점마다 컨셉이 다르지. 1호점은 지금처럼 컨템포러리 다이닝, 2호점은 이탈리안 요리 전문점이 될 거고, 3호점은···”
한길은 주위를 둘러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걸쳤다.
“‘고르메 랩(gourmet lab)’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될 거다. 말 그대로 ‘미식 실험실’이라는 의미지. ”
“···.”
“···.”
좌중은 여전히 고요했다.
한길은 숨을 크게 들이켜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3호점은 창의 요리를 컨셉으로 내세울 거다. 세상이 여지껏 본적 없는 요리를 만드는 곳으로, 고정 메뉴가 없다.”
“메뉴가··· 없다고요?”
“그럼 뭘 만들어요?”
이제야 조금씩 질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3호점의 메뉴는 계속 진화할 예정이다. 내부 경연대회를 통해 가장 뛰어난 메뉴만 선발하고, 새로운 대회를 열 때마다 메뉴를 바꿀 계획이지. 이름 그대로 실험실이라고 생각하면 돼.”
“와, 그거 빡세겠다···.”
“그러게, 메뉴에 적응할만하면 또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게다가 계속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하고···.”
여기저기서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우려대로, 3호점은 업무 강도가 높다.
메뉴 개발도 개발이지만···
“또한, 3호점 직원들은 일주일에 5번, 영어 회화를 배울 수 있게 학원에 등록해줄 예정이다. 학원비는 이쪽에서 지원해줄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왓!!!”
“파든, 셰프?”
“파든?”
“유 쎄이 잉글리쉬?”
이번 소식은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만 짓던 요리사들은,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셰프, 영어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제가 영어를 쏼라쏼라 하면 여기서 요리하고 있겠냐고요.”
“저는 외국어를 들으면 두드러기가 생기는 병이 있는데···”
“한국어도 잘 못 하는데 왜 영어를···”
“요리하는 데 영어가 왜 필요합니까요.”
이들의 불만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건,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어가 필요한 이유는, 손님들이 영어를 쓸 예정이기 때문이지.”
“파든?”
“3호점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으로 만들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손님들이 찾아올 테니, 홀 서버들은 물론 요리사들도 영어로 소통해야겠지. 문법이나 독해를 공부할 필요는 없고, 회화만 하면 돼.”
잠시의 침묵 후, 일렁임이 일었다.
“오오오!”
“드디어··· 세계 정복의 시간인가!”
“언제 지령이 떨어진 거냐고!”
“조용!”
몇몇 요리사들이 다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지만, 유셰프의 호통에 장난기는 다시 사그라들었다.
한길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3호점에서 근무하는 건 힘들 거다. 매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 될 테니까. 물론, 아무 보상 없이 이런 고된 일은 시키지 않을 거다.”
요리에 대한 애정이나 한길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요리사들에게 고강도 업무를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을 거다.
‘어떤 걸 먼저 말해줄까···.’
머릿속으로 몇 개의 선택지 사이를 오가다가 결정을 내렸다.
“3호점의 오프닝에는 페르난도가 참석할 거다.”
“···.”
“···.”
“···.”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
요리사들은 말없이 눈을 껌뻑이고만 있었다.
페르난도는 요리계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 셰프. 그런 페르난도의 기운을 받겠다고 한길의 주위를 어슬렁거렸던 이들이다.
직접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 같다.
“3호점의 오프닝에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었지. 그리고 그때 3호점의 요리를 맛본 후, 나를 후계자로 선언할 거다.”
이번에는 모두의 입이 일제히 떡 벌어졌다.
“페르난도의 레스토랑을 이으라는 의미는 아니고, 페르난도를 대신하여 미식계를 이끌고 갈 후계자로 선언할 예정이지.”
“···.”
“···.”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공간을 향해, 한길이 다시 한번 반복해 선언했다.
“즉, 3호점은 페르난도의 후계자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거다.”
10초··· 30초··· 1분이 지나도 반응은 없었다.
너무 거대한 정보라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가장 먼저 적응을 한 이는 슬아였다.
“잠깐만요, 셰프. 그러니까··· 전설적 셰프가, 셰프한테 ‘새로운 전설을 써라’하고 바톤을 넘긴다는 말씀이죠?”
“그런 셈이지.”
“그, 그거 엄청난 거잖아요!”
슬아는 방방 뛰면서 주변의 요리사들을 툭툭 쳤다.
“이거, 그거잖아! 메시가 ‘네가 내 뒤를 이을 축구의 신이다’라고 선언하거나 스티브 잡스가 ‘다음 아이폰은 네가 만들어라’ 하는 거 아니냐고! 다들 왜들 이리 조용한 건데?”
슬아는 양손으로 팔을 쓰다듬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친, 완전 소름! 셰프, 한국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게 뭔지 아세요?”
“뭔데?”
“국뽕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