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0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03화(303/325)
303. 새로운 계획
슬아의 국뽕이라는 단어는 세러머니의 신호탄이었다.
“오오오! 요리계의 박지성!”
“미식계의 추신수!”
“미슐랭의 BTS!”
“오징어 게임 물럿거라! 고르메 키친이 간다!!!”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목청껏 외치던 요리사들은, 이내 애국가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한길은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최셰프 역시 마찬가지였고.
단 한 명, 유셰프만은 불만을 간신히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애국가가 4절까지 이어지자,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셰프, 또 다른 발표도 해야죠.”
“아직도 중대 발표가 남아있다고요?”
“우와, 오늘 볼거리 풍작이네!”
“이런 날 로또 사야 하는 거 아냐?”
“조용!”
유셰프가 손가락을 튕기자 좌중이 물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고, 유셰프는 눈으로 한길을 재촉했다.
조금 더 음미하듯이 천천히, 하나씩 풀어놓고 싶었는데··· 유셰프는 원래 성격이 급하다.
“3호점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될 거다. 내부 경연대회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시스템이거든.”
“시스템?”
“최종 메뉴에 올라간 요리는, 개발한 요리사의 이름으로 판매될 거다. 그리고 판매액의 일부는 개발자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할 예정이고.”
“오오오오! 대박!”
“진짜 저희 이름으로요???”
“보너스가 나오는 겁니까!!”
이번 선언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일반 요리사들이 개발하는 요리도 헤드 셰프의 이름으로 나간다.
개별 요리사에게 요리의 소유권을 준다는 건, 이쪽 업계에서 제법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그게 동기부여가 될 테니까.’
내가 노력한 만큼 내 이름을 알리고 나에게 보상이 돌아온다는 걸 알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될 터.
그러면 굳이 채찍질하지 않아도 된다.
요리사들이 알아서 잘 굴러가면, 한길과 최셰프는 그 외의 일을 처리하면 된다. 두 사람이 해야 할 업무는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있습니까!”
“아~ 어지러워요! 하나씩 풀라고요!”
이게 마지막 소식이다.
“3호점의 내부 경연대회를 촬영할 예정이다.”
“촬영이요?”
“뭐, 그,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요?”
일전에도 몇 번, 내부 경연대회를 진행했었고. 그때마다 요리사들은 자기들만 보기 아깝다며 촬영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촬영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 대회 과정을 그대로 촬영하고, 그 영상을 너튜브에 공개할 예정이다.”
#
페르난도가 시대를 운운해서 더 의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길은 최근 새로운 고민에 빠져있었다.
— 이 시대를 이끌어갈 요리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 고민에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은 자신의 경험이었다.
더 불독에서의 실습생 경험은 소중했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아쉬움보다는 약간의 불편함이라고 해야 하나···
한길은 그 불편함에 집중했다.
크게 느낀 불편함은 3가지였다.
첫 번째, 실습생들의 대우.
더 불독의 실습생들은 재료나 요리를 시식할 수 없었다. 한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일도 없었고.
한 사람이 유바를 만들면 다른 사람은 소스를 만들고, 또 다른 사람은 가니쉬를 만들고. 플레이팅 할 때가 되면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각자 맡은 부분을 접시 위에 올렸다.
실습생들은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였고, 그 때문에 자괴감을 표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래도 페르난도의 레스토랑이니까··· 경력에 도움이 되니까···’ 하면서 그 고통을 감내했다.
이 방식 자체가 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련하고 실력을 쌓는 기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본인의 개성만 있으면, 보다 빨리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는 시대였다.
그래서 요리사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시도해볼 참이었다.
두 번째 불편함은 페르난도의 마술 트릭 같은 요리.
페르난도의 요리는 분명 놀랍고 신기했지만··· 뭔가 답답했다. 천재의 활약을 잠자코 지켜봐야 하는, 일방적인 요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궁금한 건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서, 정답을 모르는 트릭을 지켜보는 건 괴로웠다.
요리는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페르난도의 요리는 너무 어려워.’
서빙하는 동안 설명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식탁 앞에 앉은 손님들에게 생소한 재료를 일일이 설명하고, 어려운 조리법을 하나하나 알려주다 보면, 요리가 식을 거다. 재미도 없을 테고.
하지만···
사전에 방송을 통해 그 모든 설명을 재밌게 풀이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마지막. 세 번째 불편함은, 페르난도가 말한 손님의 분류다.
페르난도는 1스타 손님과 2스타 손님이 다르다고 했다. 일반 손님과 미식가 손님을 구분 지어야 한다고.
실제로, 페르난도 본인도 소수의 미식가를 효과적으로 타기팅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정답을 제시해준 셈이지만···
페르난도가 건네준 답안지를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방법도 분명 있으니까.’
미식가는 미식가로 태어난 게 아니다.
일반인도 계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미식가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즉, 한길은 소수의 미식가를 노리는 것보다··· 일반인들을 미식가로 만들고 싶었다.
‘불가능하지는 않아.’
자신은 있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보았으니까.
한길이 퐁파두르를 위해 차려준 살롱 요리는, 당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요리였다.
하지만 그 요리는 귀족에서 부르주아로, 부르주아에서 서민에게로 퍼져나가며 파리에 살롱 요리 열풍을 일으켰다.
18세기 파리에서 가능한 일이, 현대에서 불가능할 리 없다.
종이 팸플릿 대신, 이 시대에는 인터넷과 너튜브가 있다. 한길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놀라운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필요한 요소는 하나.
퐁파두르처럼 일반인들이 주목하는 인물,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때마침 베스트 고르메에는 적합한 인물이 있었다.
‘카키도 연예인이니까.’
카키의 개인 SNS 팔로워들만 모은다고 해도 상당한 인원이다. 그 사람들을 통해 눈덩이를 굴리듯이 구독자를 늘려갈 수 있다.
게다가,
‘녀석들도 재밌는 있고.’
한길의 요리사들은 다소 바보 같은 구석이 있지만, 지켜보면 심심하지는 않았다. 이것도 분명 도움이 될 거다.
— 지금은 요리가 엔터테인먼트인 시대지.
언젠가 페르난도가 했던 말이다.
새로운 미식을 엔터테인먼트로 풀고, 너튜브를 이용해 확장해 나간다.
너튜브에는 국경이 없다.
세계적 레스토랑을 노린다면, 오히려 한국의 방송에 출연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클 터.
물론, 이런 시도가 처음인 건 아니겠지만···
한길이 하는 방식은 처음일 거다.
실패할 리는 없다.
“나도 이제 셀럽이냐!”
“지금부터 다이어트해야 하나? 그, 카메라 마사지 같은 것도 받고!”
“아씨, 오프닝 언제냐!”
“빨리 국뽕 한 사발 시원하게 먹고 싶다!”
다행히 다들 의욕도 넘쳐 보였다.
이 정도면 앞으로의 강행군에도 군소리 없이 따라줄 터였다.
“셰프, 저랑 데니는 따로 할 거 없나요?”
기뻐 날뛰는 요리사들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슬아가 질문했다.
“물론 있지. 슬아랑 데니는 되는대로 빨리 더 불독에 다녀와.”
“더 불독에요?”
“스타주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했거든. 1주일은 더 불독에서, 그 후에는 다른 유명 레스토랑에 자리를 마련해준다니까 한 번 다녀와.”
슬아와 데니는 단기 유학을 보낼 예정이었다.
파인 다이닝의 본고장을 직접 보고 느꼈으면 했으니까.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8개 국어 서비스, 30개가 넘는 코스에 필요한 와인 페어링 등등. 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을 피부로 느꼈으면 했다.
“직접 가서 느껴보고 3호점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방향성을 정해서 알려줘.”
새로운 소식에 주위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우오오! 두 사람, 유럽 데이트냐?”
“‘저희를 찾지 마세요’ 하고 잠수타면 가만 안 둔다!”
“아씨, 그런 거 아니라니까! 셰프, 바보들 말은 무시하세요.”
슬아는 옆에서 알짱거리는 요리사들을 파리 쫓아내듯 쫓아내고서는 다시 한길을 똑바로 바라봤다.
“일정은 언제예요? 여기에, 제가 없어도 괜찮을까요?”
“한동안은 나랑 최셰프가 중요한 업무를 분담하면 되니까. 그리고 홀에서 근무하는 직원 3명을 골라서 같이 데려가면 좋을 텐데···.”
“음, 그것도 생각해 볼게요.”
#
밤이 깊어지자, 요리사들의 관심이 조금씩 분산되기 시작했다.
“스웨거는 태도야. 나만이 가진 시그니처 분위기지. 남의 스웨거를 따라 하는 건 진정한 스웨거가 아니고···.”
카키의 강의에 몰려든 사람도 있는가 하면,
“선배님! 제발 3호점 진출 팁 좀 알려주십쇼!”
“저, 딱 1주일만 특훈해주시면 안 됩니까! 과외비는 별도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최셰프와 유셰프에게 팁을 구하는 요리사들도 있었다.
이때가 기회다.
“슬아야, 잠깐 나랑 편의점 좀 갔다 올까?”
“네?”
“마실 게 떨어진 것 같아서. 바람도 쐴 겸.”
한길은 조용히 슬아를 밖으로 불러냈다.
아까부터 슬아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져 있는 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무슨 걱정 있어?”
“아니, 걱정까지는 아니고요···.”
한길의 질문에 슬아는 한동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냥, 아까 유럽 유학에 데려갈 사람을 고르라고 하셔서요.”
“그게 왜?”
슬아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홀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계속 여기 남아있으려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
홀 서빙 직원들은 이직률이 높았다.
월급을 높여주고 여러 직원 복지를 챙겨줘도, 장기 근속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적응할만하면 그만두었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직원을 뽑고 훈련하느라 슬아가 고생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있는 사람들도 이 직장은 임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걸 아는데 유럽까지 데려가면 레스토랑에 손해가 가는 게 아닐까 해서요···.”
“그게 다야?”
“음···.”
한길이 조용히 쳐다만 보자, 슬아가 양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쥐어 당겼다.
“후우, 이건 진짜 셰프한테만 말하는 건데요···. 그냥, 가끔 좀 외로워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평생, 이 업계에 몸을 담겠다는 각오가 있잖아요? 그런데 홀은··· 저밖에 없어요. 아니, 데니도 있긴 하지만 데니는 소믈리에니까 전문분야가 다르고··· 그게··· 가끔 그냥 좀 그래요.”
“아, 그러고 보니 그 말을 안 해줬네. 조만간 홀 전문가 겸 마케팅 담당도 한 명 올 거야.”
“그래요?”
“더 불독의 홀 매니저가 와주기로 했거든.”
“음, 하지만 그분은 제 윗사람이잖아요? 조금 더 같이 으쌰으쌰 하고 싶은데···.”
눈꼬리를 내리며 쓸쓸한 표정을 짓던 슬아는, 한길이 아무 말 없자 이내 고개를 붕붕 저으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헤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술이 들어가서 무게 잡고 싶어졌나 봐요. 으으, 3명이라··· 누굴 고르지?”
한길은 그런 슬아를 보며 미소지었다.
“아무나 데려가도 상관없어.”
“그렇다고 알바생을 데리고 갈 수는 없잖아요?”
“알바생도 상관없어. 슬아, 너도 원래는 알바로 시작했잖아?”
한길의 말에 슬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뼉을 쳤다.
“맞다, 그랬지!”
“나도 시작은 주방보조 알바였어. 듣자 하니 페르난도도 설거지 알바로 시작했다고 하고. 처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아.”
“···.”
“그냥 네가 보기에 이 분야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면 충분해. 거기서 시작될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그러다가 그만두면···.”
“별 상관은 없어. 알바생 3명, 한 달 동안 유럽에 보냈다고 해서 레스토랑에 타격을 주는 건 아니니까. 그 중 한 명이라도 제2의 슬아가 나오면 투자할 만하지. 그 정도 의미로 제안한 거야.”
“아···.”
부담을 줄여주어서인지, 슬아는 묘하게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와, 그런데 셰프! 저, 방금 완전 건방지지 않았어요?”
“조금?”
“약간 ‘니들이 홀 관리를 알아!’ 느낌이었잖아요. 이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러지? 조금··· 꼰대 같지 않았어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꼰대화는 나이가 아니라 직책에 따라 진행되는 거였나? 아아아, 그건 싫은데···.”
그 후로는 조금 다른 내용의 고민 상담이 이어졌다.
#
‘아, 머리야.’
지끈거리는 통증에 한길의 눈이 떠졌다.
그러자 오랜만에 보는 침실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현실로는 6주, 체감상으로는 8개월 만에 돌아온 자신의 방이었다.
‘어떻게 왔지?’
아무래도 어제 환영회에서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이 정도로 마신 건 정말 오랜만이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한길은, 주위에 펼쳐진 광경에 흠칫했다. 침실 바닥에 몇 명의 요리사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길을 침대에 실어나른 직후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한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요리사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아래층으로 향했다.
‘가관이네.’
아래층의 풍경은 더더욱 기가 막혔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정도로 요리사들이 바닥을 도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실에 있는 유일한 가구인 소파 위에는 유셰프도 있었다. 가장자리에 누워 있어 곧 떨어질 것 같았는데,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처럼 필사적으로 소파를 껴안고 있었다.
다시 소파 안으로 밀어 넣어주고 싶었지만, 요리사들이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서 움직이면 이 좀비들이 다 함께 일어날 터.
지금 시간은 아침 7시.
아직 다른 사람들을 깨우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알아서 하겠지.’
한길은 서둘러 씻고 준비를 한 후, 난장판인 집을 벗어나 사무실로 향했다.
평온한 사무실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자신의 핸드폰이 방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충전을 시킨 후 열어보자, 미확인 메시지가 99개나 와 있었다.
전부 페르난도가 보낸 것이었다.
— 비행기는 탔나?
— 비즈니스 클래스인가? 퍼스트 클래스인가?
— 요즘은 기내에서도 와이파이가 된다는 소문이 있던데···
···
— 도착했나?
— 핸드폰을 도난이라도 당한 건가?
— 범인이라면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답변 요망.
— 한시간 내로 연락 없으면 인터폴에 신고 넣겠다.
···.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페르난도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못 넣었다.
생존 신고를 하고, 인터폴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아내고, 덤으로 잔소리까지 들은 후, 한길은 자세를 바로 하고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할 일이 태산이네.’
남은 시간은 3달여.
앞으로는 쉴 시간 없이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