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0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06화(306/325)
306. 할 일이 또…
“셰프가 문제라고요?”
“왜? 훤칠하기만 하던데!”
“마스크만 보면 연예인 삘도 좀 나지 않나?”
“그러게, 우리 셰프가 어디가 어때서?”
“잠깐 진정하시고···.”
담당 피디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요리사들이 너도나도 불만을 외치며 피디를 향해 행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묻힌다는 거죠?”
한길의 말에 요리사들은 겨우 전진을 멈췄고, 제작진은 눈에 띄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조회수를 올리는 게 목적이라면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의 목적은 이한길 셰프를 스타로 만드는 거니까요.”
한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닙니다.”
“네?”
“이 영상의 목적은 팝업 레스토랑의 홍보와 3호점의 컨셉 소개입니다.”
“하지만 카키가···.”
피디의 시선이 카키에게로 향했다. ‘이건 말이 다르잖아’하고 눈으로 따지는 듯했지만, 카키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홍보를 하려면 스타성 있는 인물이 나서야죠. 요리 영상이니 당연히 셰프가 스타가 되어야 하는 거고. 그런데···”
카키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목소리도 평소답지 않게 어딘가 싸늘했다.
“이 영상은 셰프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네요.”
“저희도 최대한 노력은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철저하게 전문가의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 셰프는 캐릭터성이 너무 애매합니다.”
한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카키와 노셰프는 방송이 익숙한 만큼, 이미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캐릭터성이 있었다.
카키는 특유의 건방짐과 시크함이, 노셰프는 엄격하면서도 묘하게 정감있게 훈계하는 게 특징이었다.
영상은 그런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었고.
한길보다 출연 분량이 적은 최셰프와 유셰프마저도 제각각 색깔이 있었다.
최셰프는 마치 열반의 경지에 오른 현자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유셰프는 어딘가 톡톡 쏘는 듯한 매력이 있었으니까.
요리사들도 마찬가지.
평소에는 왁자지껄한 해적 무리 같지만, 요리할 때가 되면 진지하게 임하는 반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에 반해 한길은···
“너무 모범생 같아요. 요리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겠고, 주변 사람들이 잘 따른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냥, 끌리지가 않아요. 어딘가 보통 사람이랑은 다른 부분이 느껴져서···.”
부연 설명을 하는 이는, 피디 옆에 서 있던 작가였다. 그녀의 말에 요리사들이 바로 반응했다.
“한 마디로, 인간미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공감하기 힘든 캐릭터에요.”
“쯧쯧, 이 사람들, 뭘 모르시네! 요즘이 어떤 시댄데 아직도 인간미를 찾아!”
“옳소! 요즘 트렌드는 기계미라고!”
“기계미?”
“우리 셰프는 요리를 위해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이거든요. 오직 요리만을 위해 사는 기계!”
“요리로 세계정복을 노리는 요리 로봇!”
“이게 바로 캐릭터성 아닙니까!”
“유일무이한 캐릭터구먼!”
열심히 한길을 두둔하는 요리사들을 보며,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연이면 모를까, 그런 캐릭터로 주연은 될 수 없어요.”
“왜요?”
“시청자들은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어 하니까요. 기계를 응원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에이, 작가님 말이 너무 심하시다!”
“인간미를 버리면서까지 일에 열중하는데, 저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고도 응원하고 싶지 않다고요?”
“응원하고 싶지 않아요.”
단호한 말투로 요리사들의 아우성을 잠재운 작가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요리사분들이 이렇게까지 셰프를 따르는 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계기?”
“충성심이 대단하신데, 보통 이러면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스토리가 바로 사람 이야기고, 그게 먹히는 거죠. 뭐든 말해주세요, 참고가 될 테니까.”
기습적인 질문에 이번에는 오히려 요리사들이 당황했다.
“음··· 계기? 뭐였더라?”
“그냥 어쩌다 보니?”
“저는 그··· 우리가 조금 특이한 이벤트를 했었거든요. 소 한 마리를 잡아서 부위별로 요리를 했는데, 그때 이후로 여기를 떠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었죠.”
“난 앨리스 밥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영감을 받은 요리를 만들었거든요. 그때, 방 탈출 컨셉으로 연출했는데, 여기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했었죠.”
“내부 경연대회도 충격이었지. 우리, 촬영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 진짜 평상시에도 메뉴 개발 대회를 열거든요? 그게 요리사의 피를 끓게 만든다고 하나?”
“맞아, 맞아! 막 내가 내 한계까지 도전하는 느낌? ‘미쳤어? 이걸 어떻게 해!!!’ 했는데 진짜 해냈을 때의 그 뿌듯함! 짜릿함! 여기 아니면 어디서 이걸 느끼겠냐!”
“바로 그거지! 갓한길!”
“셰프 만세!”
“영생해라!”
여기저기서 경험담이 쏟아져 나왔지만, 작가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아, 결국 요리 때문에 셰프에게 반한 거군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요?”
이번에 질문을 꺼낸 이는 한길이었다.
“네. 교육 영상이 아닌 이상, 요리는 거들 뿐. 사람의 매력으로 끌고 가야 하니까요.”
“어떤 매력을 보여주면 좋습니까?”
“네?”
“어떤 캐릭터성이 잘 먹히는지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한길은 이번 촬영에 일부러 최대한 힘을 뺐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과한 탓에, 요리에 집중이 안 될까 우려한 것이었다.
한길은 요리에 집중하고 요리사들은 재미를 주는 방향으로 가자고 생각했지만··· 영상 속 모습은 한길이 보기에도 밋밋했다.
‘그러면 고치면 되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전문가 의견대로 기꺼이 따라줄 의향도 있었고. 하지만,
“시청자를 우습게 보지 마세요.”
돌아온 것은 단호한 목소리였다.
“거짓으로 캐릭터성을 만들어 봤자, 작위적이라는 말만 들을 게 뻔해요. 진정성은 중요합니다. 셰프가 이미 갖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살려야 하는 거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역효과만 날 거예요.”
“매력 포인트가 없다면서요?”
“없으면 만들면 되죠.”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작가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어갔다.
“결점을 장점으로 만들면 됩니다.”
“?”
“지금 셰프의 결점은, 인간미가 없다는 거죠. 그렇게 된 이유를 중간에 찔러 넣으면, 촬영본도 살리고, 셰프는 편하게 원래대로 행동하면 되고, 진정성도 챙기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죠.”
“인간미가 없게 된 이유?”
“사람인 이상, 살다 보면 사연이 한둘쯤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걸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인간미를 부각할 수 있어요.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걸 더 부각하는 겁니다.”
‘사연이라···.’
한길도 나름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왔으니, 이야기할 거리는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 내키지 않았다.
“어떠세요, 셰프?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겁니다. 딱 하루, 날 잡아서 인터뷰만 진행하면 돼요.”
잠시 턱을 괴던 한길은 겨우 말을 꺼냈다.
“일단 출장이 있으니,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시사회가 끝나기 무섭게 한길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늘은 1박 2일 일정으로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한 달,
한길은 재료 담당을 겸하고 있었다.
요리사 중 재료 담당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적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한길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기로 한 거다.
혼자면 막막할 뻔했지만, 한길에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네가 지각도 다 하고, 별일이네?”
한길이 차를 세우자, 노셰프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놀란 얼굴을 했다.
“오래 기다렸어?”
“그건 아니지만, 네가 5분 지각한 것도 처음이잖아?”
“그런데 형, 짐이 왜 그리 많아?”
“이 새끼! 가방 하나밖에 없는데 이걸로 타박이냐?”
“1박 2일인데 그렇게 큰 가방이 필요···”
“시끄럽고, 빨리 출발해!”
지난 한 달간, 노셰프는 한길의 재료 여행에 동행해주었다.
노셰프는 1세대 스타 셰프.
그동안 각종 방송에 출연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촬영 중 괜찮은 공급자를 만나면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지냈다고 했다.
일전에 국산 캐비어를 소개해준 게 생각나 재료 추천을 받으려고 연락했는데, 노셰프는 아낌없이 자신의 리스트를 공유해주었다.
심지어 일정이 되면 출장에도 동행해주었고.
덕분에 서로 말도 놓고 지낼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강원도 평창.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돼지목장으로, ‘난축맛돈’ 돼지를 키우는 곳이다.
난축맛돈은 제주 흑돼지와 외래종을 교배한 품종으로, 일반 백돼지보다 육색이 붉고 육향도 진하며, 지방 함량이 높아 마블링도 뛰어나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2호점에 사용하는 제주 천연기념물 흑돼지를 들여오고 싶었지만, 제주도 사장님이 추가 물량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흑돼지는 성장이 더뎌서 대량 공급이 불가능한 재료였으니까.
그래서 다른 공급처를 알아보던 중, 난축맛돈 돼지를 알게 되었다.
돼지 사육장을 둘러본 한길은, 목장주에게 질문했다.
“전화로도 문의했지만,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돼지만 사료를 따로 지정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어떤 사료를 원하시는지에 따라 다르죠.”
“무화과입니다.”
“엥? 돼지한테 무화과도 먹이나요? 녹차나 도토리는 들어봤어도, 무화과는 처음인데···.”
한길의 주문을 들은 목장주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화과를 먹인 돼지는, 아피키우스가 자주 사용하던 재료다. 그렇게 키운 돼지의 간은 푸아그라에 비견될 정도로 기름지고 향도 좋았다.
‘같은 맛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한번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왜?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열심히 찾아봐야 ‘무화과를 먹인 돼지’는 없을 거다. 하지만 목장주와 협의만 하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말하자면,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재료를 직접 디자인하는 셈이다.
“뭐, 한번 해보죠. 어차피 사료비도 주시는데··· 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다행히 목장주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음 목적지는 인근 농장.
농장을 한번 둘러본 한길은, 이곳에서도 유사한 제안을 했다.
“··· 에어룸 토마토요? 그게 뭐죠?”
“일반적인 품종이 아니라 100년 전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토마토 품종이 있어서요. 이렇게 생긴 건데···.”
“음···.”
이쪽은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박람회에서 구해온 씨앗을 포함,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돼지보다 이쪽이 더 어려웠다.
“새로운 품종을 재배하려면 시행착오를 많이 겪거든요. 기후가 다르다 보니 초창기에는 상품으로 출하 못 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 초기 투자 비용을 제가 부담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투자도 투자지만··· 만에 하나 재배에 성공한다고 해도··· 솔직히, 이런 토마토가 팔릴지···.”
“생산하는 물량은 전부 저에게 납품해주시면 됩니다.”
“한 곳에만 납품하기에는 좀···.”
한길의 제안을 거절한 7번째 농장이었다.
한길이 어두운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자, 노셰프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차라리 직접 농장을 운영하는 건 어때? 해외에서는 그런 곳도 많잖아?”
“그러면 농장 부지도 구해야 하고 전문 인력을 고용해야 하니까.”
“하긴, 손이 많이 가긴 하지.”
“왜 돼지는 되는데 농작물은 안 되는 걸까?”
“돼지야 뭐, 무화과 먹인 돼지가 안 팔린다고 하면 ‘무화과 먹인’을 빼고 그대로 팔면 되잖아? 사료만 바꾸면 되니까 손이 더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토마토는··· 막말로, 니가 망하면 저 사람들도 같이 망하는 거니 불안하겠지.”
“그것도 그렇네.”
“심지어 농작물은 보관 기간도 길지 않잖아? 판로가 없으면 진짜 망할 수도 있어.”
어쩌면···
진짜로 직영 농장을 운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할 일의 목록이 또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