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0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08화(308/325)
308. 세상은 만만하지 않으니까.
유셰프가 출근하지 못하는 이유라면,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었다.
“혹시 유셰프의 어머님과 관련된 일입니까?”
유셰프의 어머니는 투병 중이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이탈리아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유셰프가, 촉망받는 미래를 뒤로하고 귀국할 정도였으니 가벼운 병환은 아닐 거다.
유셰프는 처음부터 휴무일만큼은 꼭 챙겼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보러 가야 한다며.
아무래도 상태가 악화된···
— ··· 모친상입니다.
“모친상?”
예상치 못한 단어에 한길은 눈살을 찌푸렸다.
— (···에 임종하셨··· 며칠 ··· 니다.)
“죄송합니다. 잘 안 들려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 (···며칠 ···니다.)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으니까.
비행기에 탈 때 그러하듯이, 귀가 먹먹해진 것이다.
‘여기가 그렇게 높은 지대였나?’
한길이 머무는 숙소는 산골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런 증상이 나타날 정도의 고도는 아니다.
침을 꿀꺽 삼켜보았지만, 청각은 여전히 혼탁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신은 맑아졌다.
마치 커피를 10잔 연달아 마신 것처럼, 두뇌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며 수많은 해야 할 일 목록을 생성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최셰프가 보기에, 강환성이 2호점을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네?)
“유셰프가 나오지 못한다면, 부재중에 2호점을 책임질 사람을 정해야죠. 보통 이런 경우에는 수셰프에게 맡기겠지만,
환성이는 아직 수셰프를 단지 1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군요.”
세상은, 개인에게 비극이 닥쳤다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늘도 시간은 언제나처럼 똑같은 속도로 흐를 테고, 손님들은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낸 후 예약해둔 레스토랑을 찾을 거다.
그때, 레스토랑 문이 닫혀있다면?
헤드 셰프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는 말에 이해심을 품고 넘어갈 손님은 없다.
그것도 예약 당일에 통보한다면.
레스토랑은 평소와 다름없이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레스토랑을 이끌 헤드 셰프가 필요하고.
“경우에게 맡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2호점에서 반년 넘게 수셰프를 했으니까요.”
아니, 경우는 3호점 소속이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팝업 레스토랑에 차질이 생긴다.
“아니, 제가 맡겠습니다. 당장 할 일은 새로운 공급처를 확보하는 일밖에 없는데 그건 시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죠. 유셰프는 언제 돌아온다고 했죠?”
— (그··· 그것까지 말할 정신은 없어 보였습니다.)
‘하긴.’
상을 당한 직후는 바쁘다.
결정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
분향소는 몇 평으로 할지, 도우미를 쓸지, 제단 장식은 무엇으로 할지. 마지막에 입혀드릴 수의를 삼베로 할지, 모시로 할지, 명주로 할지. 관은 오동나무로 할지, 솔송나무로 할지, 향나무로 할지···
일일이 선택해야 한다.
유셰프는 ‘가장 저렴한 것’을 고를 이유가 없으니, 장례식 준비만으로도 벅찰 거다.
복귀날짜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겠지.
‘보통 장례는 3일장이지만···.’
사흘로는 모자랄 거다.
지난 한 달, 유셰프는 3호점 오프닝과 팝업 레스토랑을 앞두고 그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어머니가 위중한데, 본심을 숨기고 그렇게 행동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예고 없이 상을 당한 거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마 높은 확률로, 유해를 어디에 모실지도 정해두지 않았을 거다.
추모공원으로 할지, 납골당으로 할지, 수목장으로 할지··· 모든 시설을 직접 방문해서 일일이 비교해보고 선택해야 한다.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다.
아무리 짐이 없다고 해도, 이 역시 예상보다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행정 절차도 밟아야 한다.
사망 신고도 해야 하고,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보험사에도 연락해야 하고, 재산 조회, 금융 거래 조회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최소 하루는 잡아먹는다.
레스토랑 일은, 원하는 날에 연차를 내고 쉴 수 있는 직종이 아니다. 차라리 쉬는 김에 길게 쉬고, 필요한 일을 전부 처리한 후에 복귀하는 편이 낫다.
최소 1주일은 필요하지 않을까.
1주일은 길다.
“그러고 보니 1호점 총괄도 유셰프가 맡고 있었죠. 그 일은 한동안 최셰프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네? 네···)
“그리고···.”
그 외에도 할 말은 많았지만, 전부 전화로 전달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서울로 출발할 테니, 분향소 정보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얘기는 도착해서 하죠.”
전화를 끊은 한길은, 머릿속에 솟구치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당장 아침에 방문해야 할 농장이 3 군데나 있다.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 일단 문자를 보내두고, 내일 아침에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는 게 좋을 거다.
어쩌면 유셰프의 부재로 인해 너튜브 촬영 일정을 조율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라가는 즉시 일정을 확인하고 제작진 쪽에도 연락을 줘야 한다.
그 외에도, 2호점은 살루미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매장 관리도 유셰프가 총괄했으니 그 업무도 누군가가···
“(유셰프 일이냐?)”
고개를 돌리자 노셰프와 눈이 마주쳤다.
통화 내용을 들었을 테니, 긴 설명은 필요 없을 터였다.
“형, 미안한데 당장 가야 할 것 같네.”
“(당연하지, 나도 같이 가자. 그런데 유셰프는 어떻대?)”
그러고 보니···
물어보지 않았다.
평소답지 않다고 했으니 웃고 있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아니, 질문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 당연히 멀쩡할 리 없는데, 상황 중계라도 원하는 건가? 질문의 의도가 뭔데?
한길이 아무 말 없이 인상만 쓰자, 노셰프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물이나 마시고 정신 차려라.)”
“물?”
“(술은 깨야 할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 백주를 꽤 많이 마셨더랬다.
‘어쩐지···.’
평소와 달리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다.
한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난 마오타이랑 잘 안 맞나보네.”
#
숙소는 꽤 깊은 산골에 자리하고 있었다.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는 지역인데, 한길과 노셰프 둘 다 음주를 한 상태였으니 직접 운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돈이 좋네.’
대리운전 회사에 전화해서 웃돈을 얹어주겠다고 하니, 이런 첩첩산중까지 대리 기사가 찾아왔다.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노셰프를 먼저 내려주고, 한길은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조금 자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동 중에 잠깐 짬을 내어 수면을 보충하려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맑아서 눈을 전혀 붙이지 못했다.
쉬기는커녕,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늘어나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리고 또 거슬리는 점은···
‘아직도 안 풀리네.’
귀의 먹먹함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하품을 몇 번이나 해봐도 소용없었다.
볼륨을 낮춘 것처럼, 전체적으로 음량이 작아서 답답했다. 그나마 들리는 소리는 웅웅 울려서 어딘가 현실감이 없었고.
“(아, 셰프!)”
“(오셨습니까!)”
유셰프의 빈소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앞에 수십 명의 요리사가 서 있었으니까.
항상 유쾌한 녀석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침통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故 이소진 님.
子: 유소희, 유소훈.
분향소 앞의 안내판을 보니, 유족 이름이 단둘뿐.
아버지 이름이 없다.
분향소 내부는 적당히 널찍했다.
특실은 아니고, 이 정도면 일반실이다.
제단에 올라간 꽃은 꽤 고급이었고.
‘잘했네.’
영전 장식 비용을 아끼는 건 어리석다.
가장 저렴한 장식은 초라하다 못해 비참하니까.
유셰프는 비교적 침착해 보였다.
눈도 부어있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게 이상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느낌이었지만. 최셰프가 걱정한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녀 옆에 앉아있는 남자는 동생인 모양이었다. 유셰프와 똑같이 생긴 얼굴에 성별만 달라 조금 놀랐다.
조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유셰프가 제법 똑 부러진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죄송한데 셰프, 앞으로 사흘간 못 나갈 것 같은데 제 자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씩씩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사흘로는 부족할 테니 일주일은 쉬시죠. 그동안 2호점은 제가 맡겠습니다. ”
“(그럴 필요 없어요. 사흘 후에 갈게요.)”
“사내 정책입니다.”
“(그런 정책이 있었나요?)”
“특별대우를 해주는 건 아닙니다. 일찍 나와서 집중 못 하느니,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온전한 상태로 출근하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
유셰프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뻥긋거렸지만, 이내 포기하고 시선을 돌렸다. 요리사들 쪽으로.
“(니들도 분향했으면 빨리 돌아가! 몇 신데 아직도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어?)”
팔짱을 낀 채로 요리사들에게 타박을 주는 모습은, 정말이지 평소와 똑같았다. 너무 찍어낸 듯이 똑같아서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졌다.
“(의리가 있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돌아갑니까!)”
“(그러면 뭐, 장사 안 해?)”
“(가족을 잃은 것 아닙니까! 힘든 시기에 저희라도 힘이 되어주어야죠.)”
“(내 일이지, 니들 일은 아니잖아.)”
“(그런 말 하면 섭하지 말입니다. 저희, 같은 패밀리인데···)”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시켜주십쇼.)”
“(니들이 가서 일하는 게 내가 필요한 일이라고.)”
유셰프는 고개를 휙 돌리며, 날카로운 눈매로 한길을 쏘아봤다. 빨리 저들에게 명령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요리사들은 지금 당장 레스토랑으로 돌아간다.”
“(네?)”
“(진심입니까?)”
“런치 서비스 하려면 밑 작업은 해두어야지.”
“(진짜 오늘도 장사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요리사들은 원망 가득한 눈초리로 한길을 노려보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분향소 앞 호상소가 텅 비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상제가 없네.’
유셰프의 분향소는 상주만 둘.
상제가 없다.
보통은 상제인 유족이 호상소를 맡는다. 문상객이 오면 상주를 불러오고, 조객록을 관리하고, 조의금을 받아서 정리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요리사들이 떠나면, 저 자리가 비게 된다.
그게 거슬린다고 생각하던 찰나,
“(너네, 뭐해?)”
빈자리를 채우는 이들이 나타났다.
데니와 슬아였다.
“(홀은 당장 출근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래 봐야 한 시간 차이잖아?)”
“(한 시간만 더 있다가 가려고요.)”
하지만 유셰프는 전혀 달가워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됐으니까 다들 갈 때 니네도 가.)”
“(한 시간 후에 갈게요.)”
“(니들이 있으면 더 신경 쓰여. 내가 이 와중에 레스토랑 일까지 신경 써야겠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남아있을 수는 없다. 데니와 슬아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고, 자리는 다시 공석이 되어버렸지만,
“(어?)”
이내 다시 채워졌다.
마치 리조트 선베드에 누운 자세로, 온몸을 기대며 앉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카사장님?)”
카키는 처음으로 보는 수수한 차림새였다. 평소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목걸이도 없고. 자주 착용하는 반지도, 모자도, 선글라스도 없었으니까.
“(거기서 뭐 하세요?)”
“(다리가 아파서.)”
“(카사장님도 할 일 있지 않아요?)”
“(아, 일? 해야죠.)”
그 말과 함께 카키는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고 품에서 작은 수첩과 펜도 꺼냈다. 저건, 카키가 가사를 쓸 때 사용하는 수첩이었다.
“(장소에 구애받는 일은 아니라서.)”
유셰프는 반박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키는 레스토랑의 직원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녀의 상사였다.
그녀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덕분에 호상소가 텅 빌 일은 없게 되었지만,
‘카키만으로는 불안한데.’
뭔가 내키지 않았다.
카키는 연예인이다.
문상객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연령대가 높은 어르신들은 카키를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러면 오히려 더 곤란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카키는 그저 목과 손에 문신이 그려진 눈매 사나운 젊은이일 뿐이다.
겁을 먹을지도 모른다.
‘한두 명만 남겨두고 갈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특별대우나 예외사항을 둘 수는 없다. 힘든 일이 생겼다고 편의를 봐줄 수도 없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까.
그 순간,
카키가 수첩에 무언가를 마구 끄적이기 시작했다.
어설픈 연기였지만, 의도는 전달이 되었다.
카키의 말대로, 그의 업무는 장소에 딱히 구애받지 않았다. 장소에···.
“다들 레스토랑으로 돌아간다. 1, 2호점은 평소대로 업무를 진행하고, 3호점은 메뉴 다듬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한길은 3호점 요리사 중, 경우와 현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최종 메뉴가 통과된 요리사들은, 메뉴 개발 보고서를 작성해서 내일 저녁까지 보내도록.”
메뉴 개발 보고서는 최근에 도입한 시스템이었다.
최종 메뉴에 올라간 요리에 사용된 재료, 조리법, 조리 환경, 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실패와 성공 등을 사진과 함께 문서화하는 작업이다.
3호점 업무 중 유일하게, 장소에 구애받는 일은 아니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경우와 현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알겠습니다, 셰프!”
“들어가십쇼!”
이곳은 저들에게 맡겨두고 떠나야 한다.
이쪽도 할 일이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