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0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09화(309/325)
309. 필요한 일
‘오랜만이네.’
2호점에 들어선 한길은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최근에는 3호점에 주로 머물렀기에, 2호점에 올 일이 많지 않았다. 2호점 주방에 선 건 스타주로 가기 전이었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주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와중에도 일하는 게 말이 되냐?)”
“(이상한 건 아니지. 일반 회사에서도 동료가 상 당했다고 쉬진 않잖아?)”
“(그래도··· 우리 레스토랑은 다를 줄 알았지.)”
요리사들의 목소리였다.
아직 귀는 먹먹했지만, 요리사들의 목소리는 비교적 선명하게 들렸다. 녀석들, 워낙 목청이 크니까.
‘내가 온 걸 모르나?’
한길은 요리사들을 먼저 출근시키고 잠시 집에 들렀다 온 참이었다. 2호점에 따로 작업복을 두고 있지 않아 옷을 갈아입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요리사들은 듣는 귀가 있을 거란 생각도 못 한 채,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까 1호기가 2호기한테 하는 말 듣고 뜨악한 사람?)”
“(아아, 그거?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해했겠지. 잘못 들으면 ‘빨리 돌아오면 민폐다’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그래도 결론은 1주일 푹 쉬다오라는 거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그냥 말투가 너무 딱딱해서 놀랐다고. 으으, 감정 패치 업그레이드 마렵네.)”
“(난 오히려 유셰프님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걱정되던데?)”
“(난 그편이 좋더라. 침울해하시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걱정했었걸랑.)”
“(나도! 역시 우리 2호기는 강하지!)”
한길은 요리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대한 조용히 사무실로 향했다.
‘너무 냉정해 보였나?’
어쩌면 유셰프에게 너무 차갑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 동시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랬다가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탄 동료입니다.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맛을 찾기 위해, 미식의 지평선을 넓히기 위해,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중이죠.
언젠가 페르난도가 실습생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한길은 이 비유가 좋았다.
레스토랑 식구들은, 새로운 미식을 탐험하기 위해 한배를 타고 있는 동료다.
여기 있는 모두는, 친목을 위해 모인 게 아니다.
함께 모험을 떠나기 위해 모인 거다.
그래서 더더욱 움직여야 했다.
유셰프가 겪은 일은 안타깝지만, 항해사가 쓰러졌다고 해서 선원 모두가 손을 놓으면 배는 침몰할 거다.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여기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그 누구도.
똑똑—
“(셰프, 이제 오셨습니까?)”
노크 소리 후에 입장한 인물은 최셰프였다.
최셰프는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피곤해 보였다.
그렇다고 쉬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셰프가 맡았던 업무를 저희끼리 분담해야 할 것 같아 불렀습니다.”
“(네, 물론이죠.)”
“메뉴 개발 부서와 관련된 업무는 전부 제가 맡겠습니다. 2호점의 납품처 관리는···.”
일일이 나열해 보니, 유셰프가 맡은 업무량도 적지는 않았다. 덕분에 업무 분담 회의는 30분이나 소요되었다.
“그다음은 직원 복지 정책을 리뷰하고 싶습니다. 저희 레스토랑 복지 정책에 경조사 관련 사항이 있었나요?”
“(결혼식 휴가에 대한 사항만 있습니다.)”
“그러면 업데이트가 필요하겠네요. 아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직계 가족 사망 시 휴가 기간은 1주일입니다.”
“(네.)”
“그리고 저희 레스토랑 그룹 이름으로 근조화환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빈소에 화환 하나 없는 게 영 거슬렸다.
빈소가 넓고 영전장식이 화려한 만큼, 빈 공간이 더 허전해 보였으니까.
“1호점, 2호점, 3호점, 그리고 연구소. 각자 다른 이름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그룹이어도, 모든 지점은 별개의 개체이니까요. 그리고 화환은 가장 좋은 것으로 부탁드립니다.”
최셰프는 조금 의외라는 눈빛으로 한길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불편했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서입니다. 화환이 초라하면, 저희 레스토랑도 초라하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고객입니다. 평소에도 이런 작은 부분에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쌓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입니다.)”
지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추가적으로, 직계 가족이 사망한 경우에는 장례식 지원비를 지급하도록 하죠.”
“(얼마를 생각하시···.)”
“600만 원입니다.”
“(네?)”
최셰프는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반응을 보니, 과한 금액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죽으면 다 똑같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옛말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건 비싸다.
수도권 흙이라면 더더욱.
설령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장례식 비용도 만만치 않다. 빈소를 차리는 것도, 염습하는 것도 전부 돈이 필요하다.
조의금으로 어느 정도 매울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거다.
유셰프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그녀의 연봉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니까.
하지만···
‘막내들은 아냐.’
레스토랑 막내들은 아직 사회 초년생이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을 거다.
만에 하나, 장례식 비용도 내기 버거워 고인의 예금에서 돈을 인출하기라도 한다면?
운이 없으면···
상속 포기가 인정되지 않아 고인의 빚까지 떠안게 된다.
최소한의 장례비만 지원해줘도, 그런 일은 피할 수 있다. 이 정책은 당장 시행해야 막내들을 위한 선례를 남길 수 있고.
“(···좋은 의도인 건 알지만, 600만 원은 표준을 훨씬 웃도는 금액입니다. 서둘러 결정하시는 것보다, 며칠 더 고민해보심이 어떨지요.)”
최셰프가 짓고 있는 저 표정은 익숙하다.
한길이 충동적인 결정을 내릴 때마다 보이는 표정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모양이다.
“감정적으로 내린 결정도,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도 아닙니다. 어차피 직계 가족의 사망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 실제로 나가는 비용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을 만들어 두면, 직원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준다는 걸 보여줄 수 있죠. 최악의 상황에서도 레스토랑이 돌봐줄 테니, 안심하고 일하라는 신호가 될 겁니다.”
“···.”
“저는 업계 최고의 실력자들을 모으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사소한 정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유능한 직원들을 묶어두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주세요.”
“(···반대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오늘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새벽부터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으니 단순하게 목이 마른 걸지도.
“크흠!”
한길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음 주에 1호점 전선 교체 공사를 진행하기로 했었죠.”
“(네.)”
“2호점 역시 다음 주에 화덕을 설치하기로 했고요.”
“(네, 그렇습니다만.)”
“앞으로 더욱 바빠질 테니, 조금이라도 한가할 때 공사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이틀 후로 날짜를 앞당겨서 진행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틀 후요? 하지만 그날은 휴무일이 아닌데요?)”
“알고 있습니다.”
“(공사를 하려면 레스토랑 문을 닫아야 할 텐데···.)”
“예약 손님들께 미리 연락을 넣어 양해를 구하고 공사를 진행해주세요.”
“(··· 아!)”
최셰프의 얼굴에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틀 후는 유셰프 모친의 발인식이다.
호상소를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발인식에 참가할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원한다면 요리사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공사를 앞당길 생각이었다.
한길은 최셰프의 시선을 의식하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매출에 타격이 가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희 주방 녀석들 성격을 생각하면, 이편이 낫습니다.”
사소한 정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다.
효율을 따지고, 손익을 계산한 거다.
“유셰프와 요리사들은 친분이 깊습니다. 그날, 억지로 일을 시켜봤자 요리사들은 실수만 할 게 뻔합니다. 손님들에게는 이곳에서 먹는 한 끼가, 유일한 한 끼가 될 수 있습니다. 혹여나 실수를 저질러서 수준 미달의 요리가 나오면, 저희는 수준 미달의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이 될 겁니다. 그런 실수 하나하나가 누적되어 레스토랑의 평판을 떨어트리죠. 그럴 바에는 하루 매출을 포기하고 평판을 유지하는 편이 손해를 줄일 겁니다.”
“(네, 반대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로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레스토랑을 지키는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셰프의 표정이 그 사이에 변했다.
아까는 걱정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어딘가 슬프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오해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셰프,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요. 아까부터 계속 머리를 문지르고 계시고.)”
듣고 보니 한길의 손가락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수면 부족과 숙취가 겹쳐서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숙취··· 아, 노선배님과 함께 계셨으니까요.)”
그래, 술을 마셨다.
그것도 꽤 독한 술을.
“처음 마시는 술이 있었는데, 영 맞지 않나 봅니다.”
“(그렇군요. 무리하지 마시고 조금 쉬고 계십시오.)”
최셰프는 들고 온 파일을 야무지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에 대고 탁탁 치는 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져 절로 인상을 쓰게 되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셰프?)”
“최셰프, 마오타이라는 걸 마셔본 적이 있으십니까?”
“(마오타이? 아, 일전에 파트너 승진 기념이라며 노선배님이 한 병을 주시긴 했습니다. 아직 먹어보진 못했지만요.)”
“··· 버리세요.”
“(네?)”
#
그로부터 5일.
정신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한길은 아침마다 3호점에 ‘오늘의 할 일’을 전달하고, 2호점으로 출근했다. 2호점의 데일리
업무를 처리하면 런치 서비스. 런치 서비스가 끝나면 알레한드로와 3호점 회의. 그 후에는 중간중간 짬을 내서 메뉴 연구를 하고. 디너 서비스를 진행하고, 밤에는 서류작업과 내일의 할 일을 정리했다.
유셰프의 부재로 2호점 녀석들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들 생각보다 씩씩하게 잘해주어서 다행이었다.
하루는 레스토랑 문을 닫고 발인식에 다녀오기도 했다. 유셰프는 피곤해 보였지만, 나름 씩씩했다. 그 정도면, 1주일 휴가 끝에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큰 문제는 없었다.
단 하나,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아직도 안 풀리네.’
귀의 먹먹함이 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길의 청각은 여전히 혼탁했다.
세상의 볼륨이 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단순히 답답하기만 한 거면 모르겠는데···
이 증상은 업무에도 지장을 주었다.
목청이 큰 레스토랑 식구들의 목소리는 그나마 들렸지만, 외부인들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전화로 소통하는 업무는 전부 최셰프에게 넘겨야 했다.
병원에도 가봤지만,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는 말만 들었다.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아봐도 차도가 없었고.
그뿐이 아니었다.
몸이 지나치게 긴장했는지, 침대에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잠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는 하루에 2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다.
‘또 잠이 안 오네.’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던 한길은, 수면 안대를 벗고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5시.
누운 지 한 시간이나 지났건만, 잠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깝네.’
이렇게 허비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대로 누워 있어 봐야 잠이 안 올 건 뻔했고. 어차피 수면을 못 취할 거라면, 업무를 조금이라도 진행하는 편이 낫다.
결국, 한길은 새벽부터 2호점으로 출근했다.
오늘은 3호점에 촬영이 있는 날. 별도의 업무를 전달하지 않아도 된다.
모처럼 여유 시간이 생겼으니,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게 좋을 터.
한길은 책상 위에 쌓아둔 서류 더미를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2호점은 다음 달부터 나폴리 지역 음식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예상 메뉴를 짜고, 현지에서만 구해올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미리 확보해 놔야 했다.
너튜브 관련 일정도 손을 봐야 했다.
아직 레스토랑 녀석들에게 공유 못 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것도 조금 더 다듬어야 했고.
지끈—
찌르는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 안에 작은 유리 조각이 박혀있은 느낌이다. 계속 앉아 있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기도···
그때, 한길의 시선이 사무실 한 쪽에 자리한 안마 의자로 향했다.
‘잠깐만 누울까?’
저 안마 의자는 이틀 전, 카키가 보내온 선물이었다. 한길에게 준 것은 아니고, 유셰프에게 주는 조의 선물이다.
— 셰프가 한번 써보고 문제 있는지 확인해주세요. 문제 있으면 AS를 받든, 교환하든 해야 하니까.
남의 물건이라 함부로 쓰기 꺼려졌지만, 카키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부탁을 받은 이상, 기기가 제대로 돌아가는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
요즘 나오는 안마 의자는 설정이 참 많았다.
코스만 해도 무려 40개.
한길은 그것을 일일이 시험하면서 문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수험생 모드’를 시도할 차례.
우우우웅—
안마 의자는 근육이 뭉쳐 있는 부분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움직여주었다.
수험생 모드는 허리와 목, 어깨를 두루 풀어주는 모양. 하체를 잡아당겨 스트레칭을 시켜주는 척추 스트레칭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코스였다.
우우우웅—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기계음이 기분이 좋았다. 그 안정적인 소리에 절로 눈이 감기는···
“(셰프?)”
눈을 떠보니, 요리사 한 명이 한길의 앞에 있었다.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밑 작업 준비가 완료되면 알려달라고 하셔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10시.
최근, 안마 의자에서 쪽잠을 자는 것 외에는 전혀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무려 3시간이나 잤다.
덕분에 머리가 한결 맑아져 있었다.
“가자.”
한길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늘도 할 일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