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1화(31/325)
< 31. 처음이야 >
“몸통은 어디로 가고 머리와 꼬리만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피키우스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이번 퀘스트를 클리어하려면, 아피키우스가 주최하는 연회의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즉, 스무 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에 띄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눈에 띄어서 좋을 것 없다.
‘침착하게.’
한길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미 예상한 상황이니까.
다른 요리사들의 요리는 모두 접시가 넘쳐날 정도로 푸짐했다. 그에 비해, 주재료인 생선이 머리와 꼬리 토막만 올라가 있으니, 당연히 질문할 거라 생각했다.
재료가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당연히 할 수 없다. 자신의 무능함을 굳이 입에 담는 건 어리석으니.
이 모든 게 의도된 행동처럼 보여야 한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당신의 명성은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맛을 탐구하는 분이시라고요. 그래서 그 명성에 걸맞은 요리를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내 명성이 몸통은 없고 머리와 꼬리만 있다, 이 말인가?”
“물고기가 헤엄을 칠 때 가장 중요한 게 머리와 꼬리입니다. 머리는 앞으로 나아갈 목적지를 정하고, 그에 따라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 방향을 조절합니다. 몸통은 머리와 꼬리가 움직이는 대로 생각 없이 따를 뿐이죠.”
“……”
지느러미는 중요하지 않으냐 등등 딴지를 걸려면 얼마든지 걸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아피키우스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전혀 달랐다.
“이 숭어가, 내가 이번 경매에서 사 온 숭어는 아니겠지?”
한길이 아닌, 집사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집사는 소리 없는 날쌘 걸음으로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아닙니다. 그 숭어는 연회 때 사용하려 하려고 양식장에 두었습니다.”
“아직 살아있겠지? 무게는 다시 재 보았나?”
“물론이죠. 오늘 아침에 재봤을 때는 3.8 파운드였습니다.”
“조금 더 찌워.”
“숭어는 워낙 예민해서 쉽게 죽습니다. 이 이상은……”
“이번에 누구를 초청하는지 알지 않나? 그 빌어먹을 옥타비우스란 말이지. 그 자식이 저번에 대접한 숭어 무게가 어떻게 되었지?”
“….. 4 파운드입니다.”
“무조건 4 파운드는 넘겨.”
한길이 본 로마의 붉은 숭어는 비교적 작은 생선이었다. 접시를 간신히 가로지를 정도의.
4 파운드면 1.8 키로가 넘는다.
그 정도 크기까지 키우기는 힘들 것 같은데……
“먹이는 일일이 손으로 먹여. 괜찮은 굴이나 미역 같은 것도 구해 와서 먹는지 한번 보고.”
대화 내용을 미루어 보건데,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누가 더 크고 무거운 숭어를 구할 수 있는지 경쟁하는 듯했다. 그리고 경주마를 키우듯, 아피키우스는 집사에게 세세한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러면 탕이 식을 텐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한길은 초조해졌다.
그 마음을 읽었는지, 아피키우스의 시선이 다시 지리탕, 그리고 한길에게로 향했다.
“내 소문 중에 상금에 대한 소문은 못 들었나 보지?”
금시초문이다.
“숭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스를 만드는 사람에게 500 데나리온을 준다고 했건만. 설마 소스를 하나도 사용 안 하고 내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500 데나리온이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일반 인부의 하루 임금이 1 데나리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요리사들이 왜 앞 다퉈 숭어를 골라갔는지 알 것 같았다. 왜 하나같이 다들 걸쭉한 소스를 곁들였는지도.
하지만 몰라서 맑은탕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질리실 것 같았습니다.”
“뭐?”
“최근 들어 소스만 들어간 숭어를 드셨을 테니, 잠시 본연의 맛을 느끼며 쉬어가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
다행히 아피키우스는 그 이상 트집을 잡지 않았다.
조용히 고갯짓으로 지시를 하자, 노예가 정교하게 세공된 은수저를 들고 나타났다.
아피키우스는 수저 가득 국물을 담아서 들어 올렸지만, 또다시 인상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건 생각을 못 했네.’
한길도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다른 요리는 대충 누워서 집어먹기 편했지만, 탕은 누워 먹기 불편하다.
숟가락에 찰랑거리는 국물은 언제 떨어질지 몰라 위태로워 보였다. 흘리지 않고 먹으려면, 손을 수평으로 유지해야 하고 고개도 틀어야 한다.
‘너무 달라.’
입맛뿐 아니라 식문화 자체가 너무 달랐다. 한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후릅.
다행히 한 입 맛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릅. 후르릅.
연이어 마시는 소리.
조금씩 안도하는 한길의 귀에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
부스럭?
호기심에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여태껏 여유롭게 누워있던 아피키우스가 흥분된 얼굴로 똑바로 앉아 있었다.
#
‘맑은탕이라니……’
아피키우스는 눈앞에 있는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득해 보이는 연한 베이지색 국물은, 붉은 숭어의 선명한 껍질과 대비되어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비릴 것 같아.’
척 봐도 향신료는 사용되지 않았다.
지금 아피키우스가 지내는 별장은 항구도시인 민투르네에 자리하고 있다. 신선한 해산물을 먹기 위해서 볼일이 없으면 이곳에서 지낸다.
로마에서는 소금물에 재워둔 해산물만 접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항구 도시여도, 저택에 도착할 즈음이면 생선에서 어김없이 비린내가 났다.
그 비린내를 잡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숭어는 고유의 향이 뛰어난데, 향신료를 사용하면 비린내는 덮어버리지만 동시에 숭어 향도 덮어버린다.
숭어 내장을 절여서 숭어 가룸을 만들고, 그 안에 숭어를 재워보았지만 실패.
상금까지 내걸어 보았지만, 원하는 맛은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향신료와 가룸을 전혀 사용 안 하는 맑은 국물 요리라니…….
향신료 없이 숭어만을 사용하는 방법도 물론 시도해 보았지만, 그 맛은 끔찍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그래도 일단 먹어 봐야지.’
아피키우스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요리여도 한 번씩은 꼭 먹어 보았다.
새로운 시도를 해야 새로운 맛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지금 로마에 유행시킨 플라밍고 혓바닥 요리도, 호기심에 맛보았기 때문에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국물만 먹어 보자.’
국물에 비릿함이 배어 있으면 굳이 생선까지 먹을 필요도 없으니.
숟가락에 국물을 조금 담았지만, 계속 흘러내려 입가에 갖다 댈 즈음에는 원래 양의 반도 남지 않았다.
후릅.
조심스레, 새 모이만 한 양을 입에 넣었다.
뜨끈한 국물은 입을 스쳐 가며 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 맛은 뭐지?’
너무 미약한 향이라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호기심이 일었다.
서둘러 숟가락에 가득 국물을 담아서 조심스레,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입으로 쓱 밀어 넣었다.
후르릅!
이번에는 섣불리 삼키지 않고 입안에 머금고 오물거렸다.
따뜻한 국물은 기름졌지만 가벼웠다.
강렬한 향은 없었지만, 담백한 감칠맛이 혓바닥에 끈끈하게 감겨왔다.
숭어의 바다향과 기름진 닭고기 향이 묘하게 엉겨있었는데, 그 조화가 참으로 절묘했다.
‘이런 맛은 처음이네.’
로마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온갖 산해진미를 먹어온 아피키우스가 처음 접하는 맛은 많지 않았다. 숟가락 끝이 흥분으로 떨려왔다.
결국 아피키우스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그대로 입가에 댔다.
따뜻하면서 단단한 그릇의 촉감이 입술에 닿았다. 그릇을 살짝 기울이자,
후르륵.
목을 타고 뜨끈한 국물이 부드럽게 흘러들어왔다.
처음에는 은은하던 향이, 갈수록 존재감을 더해갔다. 담백함이 입안을 점령했다.
부드러웠다.
비단처럼.
그리고 어딘가 풍요로웠다.
따뜻한 온기가 뱃속으로 들어와서 지친 위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점심, 이 자리에서만 스무 명의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맛보았다. 아무리 대식가여도, 위장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하나같이 과할 정도로 화려한 요리들이었으니.
그런데 이 푸근한 국물은 은은하고도 섬세하고, 따뜻하면서 상냥했다. 요란하게 부르짖는 요리와 다른, 조용하고 차분한 성숙함.
위장이 편해지자, 더부룩함이 사라지며 다시 허기가 찾아왔다.
손으로 숭어 꼬리 토막을 들고 입에 넣고 물자, 바다향이 느껴졌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비릿한 바다가 아니라, 굴을 먹을 때처럼 신선한 바다향이.
‘숭어가 원래는 이런 맛이구나.’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숭어 고유의 맛.
감동이 밀려오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번에는 그릇 안에 있는 하얀 덩어리를 숟가락에 담아 먹어보았다.
삶은 무.
무는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부드럽게 으깨지며 그 속에 가둬둔 즙을 뿜어냈다. 닭고기의 감칠맛에 무의 그윽한 향이 섞이니 또 다른 맛이 났다.
후르륵!
다시 사발째 국물을 들이켜 마셨다.
아니, 마시는 게 아니라 빨아들였다.
입을 통해 흘러들어온 국물은 몸 안에 쌓여 있던 기름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이 맛을 뭐라고 하지?
“크으… 개운하네!”
만족스럽게 그릇을 비워내고 나니, 쟁반 위에는 아직 두 개의 요리가 더 남아있었다.
신입 요리사는 바로 두 번째 뚜껑을 열었다.
“모둠 튀김입니다.”
“튀김? 그게 무엇이지?”
“기름에 빠트려 옷을 입은 요리입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듯한 특이한 요리.
이것도 처음이다.
실루엣을 보니, 아스파라거스나 양파 등에 무언가 빵가루를 입힌 것 같은데.
양파로 보이는 덩어리를 입안에 넣고 씹자,
파사삭!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거릴 정도의 단단한 튀김옷이, 이빨에 닿으며 잘게 잘게 흩어졌다.
그 안에 있는 양파는, 지금껏 먹어본 적 없는 식감이었다.
마치 잘 익은 사과를 베어 먹을 때처럼, 아삭거림 직후에 즙이 쏟아져 나와 입안에 퍼졌다. 사과의 달달한 과즙이 아니라 양파의 풍부한 즙이라는 게 달랐지만.
“이건 뭐지?”
특이한 갈색 조각을 보며 묻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닭 껍질입니다.”
“껍질?”
“네. 껍질만 따로 벗겨내서 튀겨보았습니다.”
껍질만 분리하다니.
아피키우스조차 생각지 못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의구심보다 기대감이 일었다.
바삭!
닭 껍질 역시 단단하게 튀겨져 있었지만,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러졌다.
굉장히 연약했다.
감칠맛이 터졌지만, 너무 가벼웠다.
이것으로는 전혀 배를 채울 수 없을 텐데.
조금 더 두꺼웠으면….
이 맛을 조금 더 입에 품고 음미할 수 있다면……
애간장을 태우는 맛이었다.
그렇게 연달아 몇 개의 조각을 우적대며 먹으니, 갑자기 입안에 기름이 과하게 축적되는 느낌이 늘었다.
“와인 좀 주시겠어요?”
요리사는 그 타이밍에 맞춰 옆에 있는 노예에게 주문했다. 노예는 아피키우스가 끄덕이자, 급하게 와인을 들고 와 물에 희석해서 건네주었다.
벌컥벌컥.
기름진 입안을 와인이 상쾌하게 헹궈주었다.
이 조합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준비된 튀김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다음은 뭐지?’
아피키우스는 다음 뚜껑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두근거렸다.
드디어 공개되는 마지막 요리.
“돼지 껍데기 구이입니다.”
“또 껍데기인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이미 아피키우스는 웃고 있었다. 저 기다란 나무 꼬치에 꿰여 있는 요리는 또 어떤 맛일지.
꼬치를 들어 올리고 네모난 조각을 이빨로 살짝 물자,
‘…!’
바삭함과 물컹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꼬치에서 돼지 껍데기를 떼어내고 입안에 넣고 씹으니,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입안에서 당장 튕겨 나갈 것 같은 탄력.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쫀득하고, 적절하게 섞인 향신료 맛이 짭조름하면서 입에 착 달라붙었다.
‘돼지고기에서 어떻게 이런 식감이 나올 수 있지? 아니, 난 왜 여태 몰랐지?’
생각해 보니, 돼지고기를 껍질째 사용하는 건 통구이뿐이었다. 그리고 통구이는, 안에 있는 살을 익히기 위해 오랜 시간 구워낸다. 껍데기가 마르지 않도록 주의하며 수시로 소스를 발라주고.
그래서…….
아피키우스는 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금 입안에 있는 향이 자연스럽게 부르는 게 있었으니까.
“와인 한잔 더!”
돼지고기의 풍미, 탱글탱글한 식감, 기름진 향. 이 조합에 와인을 더하니, 굳이 삼키지 않아도 붉은 액체가 스르륵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눈알이 핑 돌 만큼 맛있었다.
어렴풋이 기분 좋은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술 도둑.
꼬치와 와인을 몇 번이나 번갈아 입에 댔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접시가 비어 있었다.
이렇게 깨끗이 먹어 치운 건 처음이다.
특히 신입 요리사의 요리를.
“다시 먹어보고 싶군.”
이 말을 하는 것 역시 처음이다.
배가 불러서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마무리로 다시 한번 깔끔하게, 위장을 치유하고 싶었다.
“국물 한 그릇만 더 가져다줄 수 있겠나?”
아피키우스는 요리사를 바라보며 부탁을 했다. 생각해보니, 부탁하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서둘러 주방에 다녀온 요리사가 뜨끈한 국물을 건네주자, 입으로 식히며 홀짝홀짝 마셨다.
그리고 적당히 식을 때 후루룩 넘기니, 따뜻한 국물이 그대로 위장에 흡수되며 속이 편안해졌다.
“으으으…..”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고양이가 기분 좋게 그르렁댈 때 나오는 그런 신음이.
“크흠!”
저도 모르게 민망해져서 다시 목청을 다듬고 집사를 보니, 집사가 사뭇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욕할 테니 준비하고. 그 후엔 숭어가 잘 자라는지 직접 봐야겠어. 연회용 돼지고기는 따로 구해왔나? 오늘 한번 따로 조리도 해보고 싶은데..”
“돼지고기는 몸통으로 세 개 준비했습니다.”
“그래, 그래. 잘했어.”
이윽고 아피키우스의 시선이 한길을 향했다.
“오늘은 자네가 나 좀 도와주게나.”
< 31. 처음이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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