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1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10화(310/325)
310. 놓쳤다
“(셰프!)”
“(오셨습니까!)”
주방에 들어서자, 요리사들이 한길을 반갑게 맞이했다.
“(화덕은 미리 따끈따끈하게 데워두었지 말입니다!)”
“(피자 반죽도 준비해두었습니다!)”
녀석들은 새로 설치한 화덕 오븐 주위에 모여있었다.
발인식이 있던 날,
레스토랑 문을 닫고 새로이 설치한 화덕 오븐이다.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추구하는 이상, 언젠가 한 번은 나폴리식 피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화덕 오븐이 필요했고.
‘원래는 다음 달에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조금 이르게 장만한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사전에 사용법을 익혀둘 수 있으니 이쪽이 이득이다.
“(셰프! 오늘은 제가 삽당번 하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삽질 하나는 기가 막히지 말입니다!)”
“(니가 지금 내 앞에서 삽질을 논하냐! 셰프, 저는 삽질로 국제 인증받았지 말입니다!)”
“(국제 인증?)”
“(올림픽 대비 제설 부대였다고. 국가대표급 삽질 실력이란 말이지!)”
요리사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아이들 같았다.
화덕 오븐에 피자를 넣고 뺄 때 기다란 피자 삽을 써야 하는데, 그게 재밌어 보였나 보다.
“오늘은 한형준이 삽을 맡는다.”
“(나이스, 셰프!! 국가대표의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까불지 말고, 나머지는 반죽 준비해.”
“(예스, 셰프!)”
최대한 침착한 얼굴을 했지만, 한길 역시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화덕 피자는, 전기 오븐이나 가스 오븐으로 만든 피자와 다르다.
온도가 다르니까.
전기 오븐의 최고 온도는 250°C. 가스 오븐의 최고 온도는 500°C인 것에 비해, 화덕 오븐은 이론상 내부 온도를 1,000°C까지 올릴 수 있다.
물론, 그렇게까지 고온에서 요리할 일은 없다. 피자를 굽기에 가장 좋은 온도는 대략 480°C라고 들었으니까.
어쨌든, 화덕을 이용하면 고온 조리가 더 수월해진다.
고온에서 조리한 피자에는 2가지 장점이 있다.
하나, 크러스트의 식감이 다르다.
피자 크러스트는 밀가루 반죽 안에 있는 공기와 수분이 열기에 의해 팽창하면서 부풀어 오른다.
고온에서는 입자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니 반죽이 더 빨리, 더 높이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화덕 피자의 크러스트에는 공기 구멍이 더 많다. 공기 구멍이 많으면, 훨씬 가벼우면서 쫀득한 식감이 완성된다.
장점 둘, 토핑의 맛이 좋다.
어떤 재료든, 열기에 닿으면 수분이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고온에서 구운 피자는
익는 시간을 단축해서 수분 증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훨씬 신선하고 풍미 가득한 토핑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화덕 오븐은 사용하는 장작에 따라 은은한 향을 입혀줄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참나무 장작을 많이 쓰지만, 해외에서는 올리브 나무나 시트러스 계열 나무의 장작도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것도 일일이 사용해보고 맛 비교를···
“(셰프, 온도도 확인할까요?)”
요리사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그래, 오늘은 470도로 해본다.”
“(예스, 셰프!)”
한길의 지시에 요리사 한 명이 적외선 온도계를 권총처럼 꺼내 들었다.
“바닥 온도도 체크하고.”
“(예스, 셰프!)”
화덕 오븐은, 내부 온도와 바닥 온도를 따로 체크해야 한다. 바닥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으면, 크러스트가 익기 전에 토핑이 타버리니까.
“(온도는 굿입니다!)”
“시작해. 타이머는 30초로 설정하고.”
“(예스, 셰프! 피자 입장합니다!)”
“(타이머 시작합니다!)”
삽을 든 요리사가 피자를 오븐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고온 조리이다 보니,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반죽의 두께에 따라 60초에서 90초.
“(30초 지났습니다!)”
“돌려.”
“(예스, 셰프!)”
한길의 지시에 요리사가 삽을 움직였다.
화덕 안에는 장작불이 있는데, 불에서 가까운 쪽이 더 빨리 익을 테니 중간에 피자의 방향을 돌려줘야 고루 익는다.
“(30초 지났습니다, 셰프!)”
“꺼내.”
“(예스, 셰프!)”
화덕에서 피자가 나오자, 갓 구운 빵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크러스트.
금빛 테두리 중간중간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이 남아있었다.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붉은 토마토소스. 그 위에 살포시 얹어진 파릇한 바질 잎.
피자는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시식한다.”
“(예스, 셰프!)”
요리사 한 명이 재빠르게 피자칼을 그었고, 한길의 앞에 피자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한길은 피자를 바로 입안에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 대신, 손가락으로 테두리 부분을 꾸욱 눌러보았다.
크러스트는 손가락의 압력에 푹 가라앉았지만, 손을 떼기가 무섭게 스프링처럼 부풀어 올라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좋네.’
역시 탄성이 남다르다.
이제는 맛을 볼 차례.
크러스트 맛이 궁금했기에, 우선은 토핑이 없는 테두리 부분만 시식해보았다.
‘···!’
그 맛은 놀라웠다.
단순한 밀가루 반죽일 뿐인데. 수많은 식감과 향이 겹겹이 겹쳐져서 입체적인 맛을 그려내고 있었으니까.
크러스트의 그을린 부분은 크리스피할 정도로 입안에서 잘게 바스러졌다. 그 바로 아래에는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빵이 있었고.
찐득하거나 쫄깃한 게 아니라 쫀득하다.
탄성은 있되, 씹으면 씹히는 대로 너그럽게 길을 양보를 해주고 있었다. 오븐 바닥에 닿은 면은 단단하면서도 구이 특유의 훈제 향이 났고.
토핑과 함께 먹어도 보니, 도우의 입체적인 맛 위로 토마토의 산미, 허브의 싱그러움이 조화롭게 더해졌다.
맛있다.
하지만···
조리 시간을 달리하면, 이보다 뛰어난 식감이 나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보다 못한 식감이 나올지도 모르고.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이번에는 같은 온도, 40초 간다.”
“(잠시만요, 셰프!)”
“(청소 좀 하고 가겠습니다!)”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요리사 한 명이 전용 브러시로 오븐 내부를 쓸기 시작했다.
화덕 오븐은 장작불을 사용하는 만큼, 재가 많이 생성된다. 그래서 중간중간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셰프, 온도도 좀 다시 맞추겠습니다! 야, 온도 낮출 때 통풍 조절판을 열어야 했나? 닫아야 했나?)”
“(몇 번을 말하냐? 열어야지.)”
화덕 오븐은 온도 조절도 쉽지 않다.
다이얼을 돌리거나 숫자만 입력하면 알아서 세밀하게 내부 온도를 조절해주는 최신 기기가 아니니까. 이건, 거의 캠프파이어 수준이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지.’
마구잡이로 날뛰는 불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저런 야생적인 불길로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불안정한 환경을 제어해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든다.
그게 화덕의 매력 아닐까.
아니, 어쩌면 모든 요리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그때,
“(어? 다들 뭐 하고 있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셰프였다.
#
유셰프를 마지막으로 본 건 발인식이다.
그때도 핼쑥하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이틀 사이에 그녀는 더욱 마른 것 같았다.
‘밥을 못 먹는다고 했었나?’
요리사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는 장례식 내내 속이 안 좋다며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사실은 힘든 거다. 그 와중에 휴가를 끝까지 채우지도 않고 출근한 거고.
“왜 벌써 나온 겁니까? 휴가는 아직 이틀 남았을 텐데요.”
한길의 질문에 유셰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집에서 계속 뒹굴뒹굴하니까 몸이 찌뿌둥해서요. 아, 처리할 일은 다 처리했으니까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보다, 이게 새로 온 화덕이에요?)”
그녀는 한길을 지나치고 화덕을 향해 달려갔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화덕을 살핀 후에는 환한 웃음까지 지었고.
“(이제야 우리도 제대로 된 화덕 오븐 쓰는구나!)”
“(유셰프님, 화덕 써보신 적 있으신가요?)”
“(당연하지! 이거 배우려고 일부러 방학 때 나폴리까지 갔는걸?)”
소매를 걷어붙인 유셰프는, 갑자기 한길을 돌아보았다.
“(아, 셰프! 저, 오늘부터 복귀해도 되죠?)”
“···.”
“(셰프도 바쁘실 텐데, 다른 볼일 보세요! 오늘 저녁부터는 제가 주방을 맡을 테니까.)”
유셰프가 일찍 나와주면 좋긴 하다.
한동안 3호점을 소홀히 한 감이 없잖으니까.
하지만 한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오늘내일은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왜요?)”
“어차피 이틀은 시간을 빼놨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는 일 하시죠.”
한길은 유셰프에게 자리를 내어준 후, 주방 뒤켠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벽면에 몸을 기댄 채로, 주방을 관찰했다.
유셰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요리사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진짜 나폴리 스타일로 만들어보자고!)”
“(오오오오! 본토 스딸!!!)”
“(어서 실력 보여주시죠!!!)”
“(일단 반죽부터 들고 와 봐! 얼마 동안 숙성시켰어?)”
유셰프는 평소와 똑같았다.
애써 활기차게 행동하는 거다.
요리사들도 그녀와 유쾌하게 대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의 의도를 깨닫고 맞춰주는 것이겠지.
짜고 치는 연극 같았다.
하지만···
한길은 입장이 다르다.
‘확인해야지.’
한길은 유셰프의 ‘기분’을 배려해줄 수 없다. 한길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의 ‘실력’이었으니까.
큰일을 겪고도 과연 그녀가 안정적으로 주방을 이끌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전에는 떠날 수 없다.
“(야야! 피자 돌릴 때는 화덕 안에서 돌리지 말고, 입구 쪽으로 옮겨와서 돌려! 내부에서 돌리면 바닥에 있는 재 다 쓸고 닦잖아!)”
“(아, 그런 거였습니까?)”
“(삽을 그렇게 쓰면 안 되지! 야, 나와봐!)”
유셰프는 요리사로부터 삽을 빼앗은 후, 능숙하게 움직였다.
‘집중력은 괜찮네.’
넋 놓는 일도 없었고, 자신이 원래 가진 지식을 기억하는 데에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화덕 오븐을 실제로 써본 사람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팁도 전수해 주고 있었고.
“(그런데 왜 나폴리식 피자만 만들고 있었어?)”
“(화덕 하면 나폴리 피자니까요.)”
“(이번 스테이지는 시칠리아잖아? 다음 달 메뉴가 아니라 당장 하는 메뉴에 적용해봐야지. 스핀치오네 반죽 있지? 들고 와. 화덕 온도는 320도 정도로 낮추고.)”
“(예스, 셰프!)”
유셰프는 곧바로 스핀치오네(sfincione) 조리를 명령했다.
2호점은 현재 시칠리아 지역 요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스핀치오네는 시칠리아식 피자였고.
‘판단력도 문제는 없어 보이네.’
그녀의 말대로.
어차피 화덕으로 실험을 진행할 거면,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메뉴를 연습하는 게 좋다.
얼마 후,
유셰프는 화덕에서 갓 나온 시칠리아 피자를 시식해보았다.
“(음, 식감이 미묘한데? 온도가 조금 높은 건가? 300도로 낮추고 다시 해보자.)”
“(예스, 셰프!)”
한길은 관찰을 관두고 유셰프에게로 다가갔다.
“저도 맛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드셔보세요.)”
요리사 한 명이 날쌘 몸놀림으로 시칠리아 피자 한 조각을 한길에게 건네주었다.
시칠리아 피자라고도 불리는 스핀치오네는, 피자보다는 빵에 가깝다.
모양도 동그랗지 않고 네모나다. 식감도 쫀득한 게 아니라 스펀지처럼 폭신하고.
포카치아 빵 위에 피자 토핑을 얹은 것과 비슷하다.
“(어떠세요?)”
한길이 시식하는 동안, 유셰프는 한길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한 듯한 눈빛이다.
한길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셰프 말이 맞네요. 식감이 아쉽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건 금방 고칠 테니까. 그 외에 다른 점은요?)”
“없습니다.”
“(그럼 저는 작업 계속합니다? 다들! 다음 판 간다!)”
유셰프가 안도하며 방긋 웃더니, 몸을 돌리고 우렁찬 목소리로 요리사들을 호령하기 시작했다.
한편, 한길은 스핀치오네 조각을 들고 주방 뒤켠으로 이동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스핀치오네를 다시금 시식한 한길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식감은 아쉬워.’
오븐 내 온도가 높아서 그런지 바닥이 조금 딱딱했다. 폭신한 빵이 아니라, 딱딱한 쿠키 같은 느낌이 미묘하게 있었다.
유셰프의 평은 옳았다.
식감은 고쳐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한길은 다시 한번 스핀치오네를 입안에 넣은 후, 눈을 감으며 그 맛을 분석했다.
“하아···.”
내용물을 꿀꺽 삼킨 후에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스핀치오네의 토핑으로 사용된 토마토소스. 그 소스의 간이 미묘하게 안 맞는다.
‘짜.’
유셰프는 그걸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