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1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11화(311/325)
311. 잡았다.
토마토소스를 만든 건 유셰프가 아니다.
그녀는 헤드 셰프이니 지휘만 할 뿐.
문제의 소스를 만든 이는 요리사 중 한 명이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들뜬 나머지 간을 제대로 안 본 게 분명했다. 소금이 반 꼬집 더 들어갔고, 양파도 5분 정도 캐러멜라이징이 더 필요했으니까.
그렇다고 맛이 없다고 할 수준은 아니고. 일반인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차이다.
하지만,
‘유셰프가 이걸 놓쳤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유셰프가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게 신경 쓰였다.
유셰프는 미각이 유난히 예민했다.
똑같은 브랜드의 올리브유도, 2주 먼저 개봉한 것과 방금 개봉한 것의 차이를 감지할 정도로.
한길이 그녀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상대로 삼은 것도. 중탕기 공장을 운영할 당시, 자신을 대신하여 맛을 봐달라고 부탁한 것도.
다 그녀의 비정상적으로 민감한 미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걸 놓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어쩌면 주방에 들어오기 전, 다른 음식을 먹다가 왔을 수도 있다. 혀끝에 다른 맛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시식했다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도 납득이 간다.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다.
‘간이 안 맞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그녀도 반응할 터였다.
하지만.
한길은 질문하지 않았다.
과민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유셰프의 미각에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솔직하게 인정할 것 같지는 않다.
인정할 것이었다면, 한길이 묻기 전에 본인 입으로 털어놨겠지.
‘일단 지켜보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이럴 때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다.
충분히 관찰하고.
필요한 증거를 수집한다.
움직이는 건 그다음이다.
#
그 후로 며칠.
한길은 유셰프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유심히 지켜봤다.
유셰프가 통과시킨 요리들을 하나하나 맛보았지만, 간이 안 맞는 요리는 없었다.
‘뭐, 이건 익숙한 메뉴니까.’
직접 2호점을 담당하면서 느낀 건데, 요리사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녀석들, 웬만해서는 실수가 없다.
일전의 토마토소스는, 화덕 오븐을 쓰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생긴 흔치 않은 실수였던 것이다.
즉, 유셰프의 미각이 멀쩡해서가 아니라, 요리사들이 완벽한 요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실수가 없는 거다.
그 외에도 확인을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아직 효과를 본 것은 없었다.
한길은 유셰프를 따로 야식에 초청하기도 했다. 처음 가는 맛집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여보면, 그녀의 반응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 (죄송해요.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서 할 일이 너무 많네요. 그리고 솔직히··· 퇴근 후에는 좀 쉬고 싶거든요.)
거절당했다.
한번은 외부에서 사 온 샌드위치 안에 몰래 할레피뇨를 넣어서 건네주기도 했지만,
— (죄송해요. 배가 안 고파서···.)
이것도 거절당했다.
또 한번은 커피 안에 각설탕 2개를 넣어서 건네주었지만,
— (제가 요즘 커피를 마시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더라고요. 마음은 고마워요.)
이 역시 거절당했다.
유셰프는 한길의 앞에서 결코 모르는 메뉴를 먹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먹는 걸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수상해.’
그러니 의혹이 짙어질 수밖에.
“(셰프, 또 오신 거예요?)”
2호점 사무실에서 한길을 발견한 유셰프는, 부루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3호점은 안 가세요?)”
“나중에 5시에 갈 겁니다.”
“(왜 절 그리 감시하시는 건데요?)”
유셰프는 팔짱을 끼면서 오만상을 다 쓰고 있었다.
문제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지만. 지난 며칠, 너무 티나게 관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기분이 상한 거고.
“(못 믿는 티를 꼭 그렇게까지 내셔야겠어요?)”
“못 믿는 건 아닙니다.”
“(그럼 왜 그리 뺀질나게 드나들어요? 평소에는 2호점에 코빼기도 안 보이시더니.)”
“···안마의자 쓰려고요. 요즘 좀 피곤하거든요.”
궁색한 변명을 쥐어짰는데, 이게 의외로 먹혔다.
“(아아, 그거 좋긴 좋죠? 제가 태어나서 받아본 선물 중 제일이라니까요? 카사장님 센스가 장난 아니셔! 셰프는 어떤 모드가 좋아요?)”
“척추 스트레칭이 마음에 들더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요가 모드 해봤어요? 그거, 요가 동작을 응용해서 한 거래요. 그래서인지 유연성에 좋은 것 같던데···.)”
“그건 지압이 많지 않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에어 마사지보다는 지압과 손날 두드림을 좋아하는데···.”
즐겁게 한참 수다를 떠는 중. 유셰프가 갑자기 걱정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한길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셰프,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요즘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요즘 잠이 부족해서 그럽니다. 별일 아니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한길의 불면증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귀의 먹먹함도 그대로였고.
이제 슬슬 얼굴에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일이 많아져서 그런 거죠?)”
유셰프는 눈꼬리를 내리고 축 처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건··· 죄책감이다.
기회다.
“유셰프,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시죠?”
“(왜요?)”
“오랜만에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고 싶은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안대를 쓴 상태로, 랜덤한 재료의 맛을 알아맞히는 미각 훈련이었다.
최근에는 바빠서 못했지만, 2호점 오픈 초기에는 유셰프와 많이 했더랬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유셰프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음, 다다음주 어때요)?”
“이번 주는 도저히 안 됩니까?”
“(다음 달에 나폴리 메뉴를 진행해야 하잖아요? 제가 1주일이나 자리를 비워서 메뉴 개발이 조금 늦어졌어요. 블라인드 테이스팅도 좋지만, 이쪽이 더 급해서요.)”
유셰프의 변명은 타당했다.
훈련보다는 업무가 우선이니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그렇게 바쁘면, 내일은 괜찮으시겠습니까?”
한길의 질문에 유셰프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반응했다.
“(내일? 아, 촬영이요?)”
“네.”
“(물론 괜찮죠.)”
내일은 너튜브 영상의 두 번째 촬영이 진행된다.
3호점 녀석들이 개발한 요리를 맛보고, 최종 메뉴에 올릴 요리를 결정해야 한다. 유셰프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예정이고.
이번에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
이전에는 3호점이 아직 공사 중인 관계로 쿠킹 스튜디오를 이용했는데, 이번 촬영은 3호점에서 진행되었다.
“(셰프!)”
한길을 발견하고 담당 피디가 곧바로 달려왔다.
“(◻︎◻︎ ◻︎◻︎◻︎◻︎◻︎ 인터뷰, ◻︎◻︎ 오늘 ◻︎◻︎ ◻︎◻︎◻︎◻︎◻︎ ?)”
난감했다.
레스토랑 식구들의 목소리는 작게나마 들렸지만, 외부인들의 말은 거의 들리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집중해도 단어 한두 개만 겨우 잡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대충 질문의 요지는 파악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했지.’
유셰프의 일로 워낙 정신이 없던 탓에
잊고 있었는데, 한길의 개인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했더랬다.
“언제가 마지노선일까요?”
“(◻︎◻︎ 다음 주 ◻︎◻︎◻︎◻︎◻︎ ◻︎◻︎◻︎◻︎◻︎.)”
이 상태로 인터뷰가 가능할 리 없다.
“제가 요즘 많이 바빠서요. 최셰프에게 알려주시면, 일정을 논의 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한길은 최대한 제작진의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 ◻︎◻︎◻︎◻︎◻︎!)”
제작진 중 누군가가 뭐라고 외쳤고, 심사위원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늘도 심사하는 이는 한길, 최셰프, 유셰프, 카키, 그리고 노셰프다.
이번 메뉴의 미션은 ‘굴.’
굴은 흔하게 접하는 재료지만, 의외로 요리로 만들기에는 까다로웠다.
특유의 바다 향과 신선함이 매력인데, 요리하면 도리어 그 장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요리사가 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접시 위에는 각종 허브와 식용 꽃으로 장식된 굴이 껍데기 채로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굴과 관자, 유자 드레싱을 곁들였습니다. 굴의 신선함을 살리면서 동시에···)”
“설명은 나중에.”
한길은 한 손을 들어 올려 요리사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아무 편견 없이 맛보고 싶으니까 메뉴의 컨셉이나 사용된 재료는 공개하지 말도록.”
한길은 이 자리를 빌려서 유셰프의 미각을 확인할 속셈이었다. 요리사들이 제 입으로 재료를 다 말해주면, 의미가 없다.
첫 번째 요리는 제법 신기한 조합이었다.
‘파 기름을 썼네. 아니, 부추도 조금 들어갔나?’
파기름에 살짝 볶은 관자를 차갑게 식혀서 생굴과 곁들여냈다. 그 위에 유자와 간장으로 만든 드레싱을 사용했는데,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콤한 향이 감지되는 것으로 보아 청양고추나 할레피뇨가 들어갔을 거다.
‘나쁘진 않지만···.’
재료의 맛을 살리는 요리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따로 먹으면 더 맛있는 재료를, 억지로 엮은 느낌이었으니까.
“유셰프?”
한길은 가장 먼저 유셰프를 지목했다.
이 요리는 그녀가 처음 먹어보는 요리.
어떤 평을 내리는지 들으면, 그녀의 미각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음, 따로 따로는 괜찮은데 이걸 이렇게 조합해야 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네요.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길이 내린 평과 거의 동일했지만. ‘맛’을 제대로 인지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요리사가 설명한 키워드만 조합해도 저 정도 평은 내릴 수 있으니까.
다음 요리.
각종 조개류를 레몬 퓌레와 섞은 후, 그 위에 살짝 데친 굴을 올린 요리다. 굴 위에는 투명한 젤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확인을···
“(뭐야 이거, 바닷물로 만든 젤리냐?)”
이번에는 노셰프가 훼방을 놓았다. 유셰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셰프의 평에 편승했다.
“(음, 조개 믹스까지는 좋았는데 바닷물 젤리까지 올라가니 염도가 과해요. 욕심이 너무 과했어요.)”
그 후로도 계속 같은 일의 연속이었다.
유셰프는 여러 평을 내놓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맛을 않아도 내릴 수 있는 평이었다.
눈에 보이는 재료에 대한 평을 하거나, 요리 전체의 컨셉을 비평하거나, 그도 아니면 노셰프나 최셰프의 심사평을 참고해서 맛을 묘사했다.
“(◻︎◻︎◻︎◻︎ 촬영은 종료◻︎◻︎◻︎◻︎◻︎!)”
결국,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한길은 명확한 증거를 잡아내지 못했다.
역시 유셰프는 만만치 않았다.
이러면···
최후의 수단을 쓰는 수밖에.
‘웬만하면 이것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너무 노골적인 방법이라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더는 이 일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유셰프. 오늘 촬영 끝난 후에 다른 일정이 있습니까?”
“(왜요?)”
“레시피 예행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이번 미션에 맞는 굴 메뉴를 만들어봤는데, 내일 요리사들에게도 한번 시켜보려고 하거든요.”
레시피 예행은 간혹 한길이 유셰프에게 부탁하는 업무였다.
한길이 개발한 레시피를 문서화하면, 유셰프가 그 문서를 보고 만들어보는 –
일종의 리허설이었다.
그 과정에서 요리사들이 조리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분석하고, 서비스에 적합하도록 조리 과정을 다듬는다.
‘이건 거절 못 하겠지.’
블라인드 테이스팅과 달리,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거절한다면, 업무 태만이다.
“(하아··· 알았어요.)”
그걸 눈치챘는지, 유셰프는 승락했다.
#
예행연습의 장소는 한길의 집이었다.
1, 2, 3호점 주방은 다른 요리사들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후, 다들 의욕이 넘친다.
“이겁니다.”
한길은 유셰프에게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고, 그녀는 몇 분간 레시피를 정독했다.
“(재밌는 요리네요. 맛의 균형도 나쁘지 않지만, 무엇보다 온도와 촉감을 자극하는 요리라는 게 마음에 들어요. 빨리 만들어보고 싶은데요?)”
유셰프 정도 되는 실력자는 레시피만 보고도 그 맛을 그려낼 수 있다.
분명히 이 종이에 적힌 정보만으로도, 해당 메뉴의 맛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나름의 장치가 필요했다.
그녀의 허점을 노리기 위해.
“시작하시죠.”
“(넵.)”
유셰프는 바로 몸을 움직였고, 능숙한 손길로 요리를 시작했다.
애피타이저용 메뉴라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굴을 드레싱에 버무린 후, 얼음 위에 올리면 끝이니까.
예상대로, 작업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 됐는데··· 셰프, 얼음판에 얼음이 없는데요? 나가서 사 올까요?)”
“아니, 플레이팅용 얼음은 따로 준비해놨습니다. 그게 이 요리의 포인트이니까요.”
“(그건 그렇네요.)”
이 요리의 핵심은 플레이팅이다.
굴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먹는 방식이 특이했으니까.
이 요리는 주먹 크기의 얼음 구체. 위스키용 얼음으로 알려진 아이스 볼을 사용한다.
커다란 얼음 공 위에 굴을 얹어서 내면, 손님은 양손으로 얼음 공을 집어 들고 굴을 흡입해서 먹는다.
굴을 흡입할 때, 입술이 얼음에 닿으면서 그 서늘한 온도에 깜짝 놀랄 거다. 그 충격이,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을 때의 느껴지는 첫 충격을 연상시킬 거라 생각했다.
얼음의 촉감과 온도를 활용한 요리였다.
“(다 됐어요.)”
유셰프는 완성된 요리를 한길의 앞에 내밀었다.
“(비주얼은 확실히 좋네요.)”
스노우볼처럼 생긴 하얀 얼음 공 위에 드레싱에 버무린 굴, 그 위에 식용 꽃이 소담하게 올려 있었다.
심플하지만 꽤 보기 좋다.
“그러면 유셰프가 먼저 맛을 봐주시죠.”
“(셰프는 안 드세요?)”
“저는 이미 먹어봤으니까요. 그리고 유셰프가 처음 먹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한길의 말에 유셰프는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시식을 시작했고. 한길은 매의 눈으로 그녀를 관찰했다.
유셰프는 양손으로 얼음 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입술을 얼음에 밀착하며 굴을 빨아들였다.
후루루룹!
얼음의 온도에 놀랐는지 동공이 조금 커졌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역시···.’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유셰프의 미각은 망가져 있다.
얼음 공을 내려놓은 유셰프는, 아무렇지 않게 환한 웃음을 지었다.
“(좋은데요? 촉감을 자극하는 것도 좋고, 빨아먹는다는 것 자체가 뭔가 관능적인 것 같아요. 오이스터 타르타르의 맛 자체도 훌륭하고요. 산미의 밸런스도 좋고, 굴의 감칠맛이나 바다향이 제대로 살아있네요.)”
“그렇군요. 그거 다행입니다.”
“(셰프는 안 드세요?)”
“먹어야죠.”
한길은 쓴웃음을 지었다.
원하는 증거를 얻었지만,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한길은 얼음을 들고 입에 갖다대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굴을 빨아들이기 위해 입술로 얼음을 훑자,
“(셰프? 왜 그러세요?)”
눈살이 마구 구겨졌다.
일부러 인상을 쓰는 게 아니다.
이건 본능이다.
이 반응은, 마음먹는다고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왜 그래요? 너무 차가워요?)”
유셰프의 질문에 한길은 얼음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제가 실수를 했나 보군요.”
“(뭔 소리예요?)”
“이건, 물로 만든 얼음이 아닙니다.”
한길은 유셰프를 똑바로 보며,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레몬즙으로 만든 얼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