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1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12화(312/325)
312. 들켰다.
“레몬즙으로 만든 얼음입니다.”
소희는 한동안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깨달음이 찾아온 건 몇 초 후였다.
레몬으로 만든 얼음이라면 신맛이 날 거다. 닿는 순간, 얼굴을 찡그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함정이었어?’
셰프가 파둔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셰프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건 소희도 인지하고 있었다. 며느리를 감시하는 악덕 시어머니처럼 주위를 배회하는데 모를 수가 있나.
그녀의 바로 옆에 서서 그녀가 맛본 음식을 일일이 뒤따라 맛보질 않나. 평생 안 하던 선물 공세를 하지를 않나. 그런데 그 선물이 하나같이 음식이질 않나.
누가 봐도 수상했다.
— 블라인드 테이스팅도 좋지만, 이쪽이 더 급해서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거절했을 때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셰프의 눈만큼은 먹잇감을 추적하는 맹수의 눈이었다.
그 집요한 시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줄 순 없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셰프는, 정해둔 목표를 이루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녀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래 소희는 이번 촬영에서 빠질 생각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남의 요리를 평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피하면 안 돼.’
등을 돌리면,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본격적인 추격을 시작할 터였다.
추격자를 떨쳐내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촬영에서도 나름 기지를 발휘해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 레시피 예행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림도 없었다.
그런 얕은수로 떨쳐낼 수 있는 추격자가 아니었다.
‘이번 테스트만 통과하면 돼.’
레시피 예행이라면, 충분히 속일 수 있었다.
레시피대로 만드는 것뿐이니까.
레시피에는 재료와 조리법이 다 적혀 있다.
어떤 재료가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는지 알면, 맛을 유추할 수 있다. 먹어보지 않아도, 지식과 연기로 커버할 수 있었다.
그래도 소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 작업하기 편하게 재료는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셰프의 주방에는 준비물이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유리 용기에 각종 재료가 담겨있었지만. 저 검은 액체가 발사믹 식초인지, 간장인지. 지금의 그녀로서는 구분할 수 없었다.
— 배려는 고맙지만, 신선한 재료를 쓰고 싶어서요.
그래서 소희는 직접 찬장에서 모든 재료를 꺼내서 사용했다.
— 신경 쓰이니까 셰프는 거기에 앉아 계세요. 가까이 오시면 안 돼요!
셰프가 몰래 이상한 재료를 넣을 일이 없도록, 지정석에 앉혀두기도 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
얼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얼음은 셰프가 사전에 만들어놓은 걸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얼음은 요리가 아니라 플레이팅의 일부였으니 의심할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레몬즙으로 얼음을 만들어?’
짠맛이나 단맛은 뒤늦게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사실은 조금 달았는데, 착각인가 싶어서 말 안 했어요’라며 발뺌할 여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신맛은 감출 수 없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할 테니 말이다.
그걸 전부 계산하고 짜둔 함정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머리가 비상하게 잘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 치밀함에, 교활함에.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셰프는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감정 하나 없는 저 인간조차 저런 표정을 짓는데··· 소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유셰프는 멀쩡하신가 보군요.”
심지어 확인사살까지 하고 있고.
끝이다.
정말로.
#
한길의 추측대로, 소희는 미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증상을 인식한 건 약 일주일 전.
어머니의 장례식을 앞두고, 몇 시간째 물도 못 마시는 그녀에게 동생이 편의점 샌드위치를 건네줄 때였다.
— 먹어. 누나까지 어떻게 되면 머리 아프니까.
동생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샌드위치를 먹는 데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편의점 샌드위치는 맛을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니까. 생존을 위해 먹는 식량이다.
그걸 각오하고 입에 넣었는데,
‘…?’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요네즈 소스의 느끼함도, 오래된 햄의 비릿함도, 신선도를 잃은 양상추의 밋밋함도.
아무것도 없었다.
완벽한 백지였다.
‘식감은 있는데···. ‘
빵은 장시간 소스에 절여져서 조직감을 잃고 물컹물컹했다. 그사이에 포개진 햄은 질깃했고. 양상추는 어금니 사이에 두고 열심히 갈아야 간신히 한 톨의 아삭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식감은 생생했지만···.
정작 중요한 ‘맛’이 없었다.
당황한 소희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눈에 보이는 음식물을 모두 계산하고 시식해보았다.
초콜릿의 아찔한 단 향도. 껌의 시원한 페퍼민트 향도. 감자의 짭조름함도.
그 어느 것도 인식할 수 없었다.
‘맛’이 사라졌다.
‘대체 왜?’
아연실색한 것도 잠시.
소희는 이내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신적 충격.
분명 충격이 과해서 맛을 느낄 수 없게 된 거다. 그만큼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에게 절망을 안겨주었으니까.
소희는 싱글맘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고 소희가 기억하는 한, 그녀는 항상 가난했다.
초등학생 시절.
교장 선생님이 소희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을 교장실로 부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선물이라며 모두에게 책을 한 아름씩 안겨 주었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가정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수군거림에 의하면, 부모님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아이들이라 했다.
그 의미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창피하다고 여겼던 기억이 있다.
— 엄마는 왜 일 안 해?
소희는 엄마한테 따지듯이 물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가 조용히 숨죽여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엄마를 울렸다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었다.
몇 년 후, 엄마는 취직했다.
새벽에는 청소 일을, 낮에는 식당 일을 하셨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소희는, 엄마를 대신하여 5살 터울인 남동생을 돌봐야 했다.
그제야 소희는 엄마가 왜 일을 못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희는 아직 철이 없었다.
같은 또래 친구들은 PC방도 가고 노래방도 가는데, 소희는 같이 갈 수 없었다. 동생을 돌봐야 했으니까. 그게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 내가 보모야? 왜 맨날 내가 소훈이 돌봐야 하는데?
— 왜 나는 다른 애들처럼 못해? 내 주변 애들은 다 놀러 가는데!
— 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낳은 거야? 나도 평범한 집에서 태어나고 싶었다고!
참으로 잔인한 말을 많이도 했더랬다.
엄마 가슴에 비수를 참 많이도 꽂았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엄마가 크게 아픈 적이 있었다.
며칠간 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냉장고에 반찬이 떨어졌고, 배달을 시켜 먹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엄마는 아프고, 동생은 굶주리고 있었다. 소희가 직접 장을 봐와서 요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소희는 자신의 재능에 눈을 떴다.
‘왜 이걸 몰랐지?’
소희는 원래부터 입맛이 까다롭고 편식도 심한 편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었는데···
직접 요리를 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은 요리는 간이 미묘하게 안 맞았던 것이다.
소희에게는 모든 맛이 선명하게 보였다.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각각의 재료들이 가진 고유의 향과 질감이. 마치 물감처럼 뚜렷하게 인지되었다.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하면. 마치 퍼즐을 하듯이, 모든 맛을 완벽하게 끼워 맞출 수 있었다.
그게 너무 재밌었다.
친구들과 놀 때 느끼는 쾌감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 너무 맛있네! 우리 소희, 어떻게 만드는 것마다 이렇게 맛있니? 엄마보다 낫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건 더없이 뿌듯했다.
요리를 배운 후에야 소희는 철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엄마한테 얼마나 잔인한 말들을 쏟아냈는지, 알게 되었다.
— 나, 셰프가 될 거야. 잘 되면 꼭 엄마 호강시켜줄게.
이 재능으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거다. 그리고 못되게 군 만큼, 엄마에게 효도할 거다.
자신은 있었다.
그녀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었으니까.
— 나, 유학 갈래.
이 재능을 키우려면, 해외로 나가야 했다.
큰 성공을 거두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이니까. 이 실력은 세계에서도 통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소희가 정한 목적지는 이탈리아였다.
그녀의 유일한 외식 경험은 생일날 가는 피자집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 최고급 음식은 피자와 파스타였다.
유학을 하러 간다면, 피자와 파스타의 고장으로 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소희의 집안 형편에 유학 자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소희는 직접 학비를 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소희는 숙식을 제공하는 공장에 취직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학으로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월급은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억척같이 모았고.
2년 후, 소희는 유학길에 올랐다.
— 아무것도 못 해줬는데··· 내 딸, 대단하네···.
엄마는 소희의 꿈을 응원해주었다.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탈리아에 간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이탈리아 요리가 피자와 파스타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미식의 세계는, 그녀가 상상해온 그 어떤 것보다 넓고 다채로웠다.
소희는 공부에 매진했다.
자신의 재능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확신을 얻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스펀지였다.
한번 맛본 음식은 저절로 흡수되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고.
하지만 소희는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근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했으며. 방학에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각 지역의 고유 맛을 익혔다.
졸업 후.
그녀는 학교에서 단 2명에게 주는 명문 미슐랭 레스토랑의 스타주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 레스토랑의 셰프는, 까다롭기로 소문나있었다. 대부분의 스타주는 한 달 만에 울면서 그만둔다고 했었나.
그런 레스토랑에서, 소희는 이례적으로 3개월 만에 라인쿡이 될 수 있었다.
몇 년 후, 차기 수셰프로 그녀의 이름이 거론될 무렵, 한국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 엄마가··· 병이래.
브루가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이었다.
심혈관 질병으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전기 신호를 보내는 기능이 망가진 거라고 들었다.
증상은 호흡곤란, 실신,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 죽음이 증상이라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알려진 치료법은 없었다.
심장이 멈추면, 강제적으로 심장 마사지를 해서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전병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의 심장에 수없이 많은 비수를 꽂아온 소희였다. 연관이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희는 귀국을 결심했다.
오랜만에 다시 본 엄마는, 많이 늙어 있었다. 비행깃값이 비싸다는 핑계로, 6년이나 집에 못 갔으니···.
엄마를 위해 노력한다고 할 때조차, 소희는 어설펐다. 호강시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 유망한 자리를 버리고 와도 되는 거야? 어차피 여기 와도 네가 할 게 없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는 소희만 걱정해주었다.
— 괜찮아. 세계도 씹어먹는데, 한국에서도 할 수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넘쳤다.
하지만···
소희는 한국에 적응하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이 봐도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이탈리아에서는 그녀의 실력이 모든 것을 커버해주었지만,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건방진 후배, 팀워크 해치는 암세포라는 말을 들으며 튕겨 나갔다.
성공은커녕, 적응조차 하지 못해 이 주방 저 주방을 돌아다녀야 했고.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렇다고 병원비를 안 낼 수는 없었다.
엄마의 심장이 멈추면, 골든 타임 내로 바로 소생시켜줄 시설에 있어야 했으니까.
그녀가 그렇게 믿었던 재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삶은 궁핍했다.
그때, 이한길 셰프를 만났다.
셰프는 소희를 만나자마자 왕관을 건네주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부족한 그녀에게, 헤드 셰프 자리를 준 것이다.
지난 1년여,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주방이 있었고. 원하는 메뉴를 마음껏 만들 수 있었다.
근무 시간은 살인적이었지만, 업무는 즐거웠고. 금전적 보상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어머니도 보다 좋은 시설로 옮길 수 있었고.
하루하루가 꿈만 꾸는 것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 날고뛰어도 전부 품어줄 만큼, 이 레스토랑은 한계가 없었다.
셰프는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레스토랑 녀석들은 셰프를 기계라고 불렀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 로봇이라고.
하지만···
소희에게 이한길은 조금 다른 존재였다.
소희의 세상은, 철저하게 소희를 중심에 두고 돌아갔으니 말이다.
‘로봇보다는··· NPC 아냐?’
이한길은 소희에게 새로운 무대를 열어주는 존재였다.
처음은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다음은 미슐랭 레스토랑.
그다음은 세계급 레스토랑.
그녀의 성장에 맞춰서, 한발 앞서 무대를 준비해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전설적 셰프의 후계자’라는 타이틀도 달고 왔을 때는 아찔할 정도로 기뻤다. 최종 시나리오가 보였으니까.
이한길 셰프가 전설이 되고. 모종의 이유로 그 자리에 서지 못하게 되면, 그녀가 전설 타이틀을 물려받을 터였다.
성공은 코 앞이었다.
소희의 인생도 달라질 터였다.
‘그렇게 되면··· 미국부터 가야지.’
미국에 가면, 엄마 병을 치료해줄 명의가 있을 거다. 돈만 있으면 뭐든 가능한 나라라고 들었다. 거기서 치료를 받고···
‘집도 사야지. 반지하 대신 한강뷰 고급 주상복합에 살고, 우리 엄마 쇼핑도 제대로 안 해봤으니까 같이 명품관도 한번 싹쓸이해 줘야 하고, 엄마는 핑크색 좋아하니까 첫차는 카키 사장님의 핑크색 외제차로 마련해주고···.’
망상에 가까운 꿈이었지만, 전혀 실현이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꿈이 하루아침에 산산이 조각났다.
이번에도 어머니의 심장은 갑자기 멈췄고.
운 나쁘게도, 그걸 제시간에 발견하지 못했다.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들었지만.
설마 진짜 일어날 줄은 몰랐다.
— 다 끝났어···
지난 몇 년.
소희는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보며 달려왔었다. 요리로 성공해서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고.
하지만, 늦어버렸다.
엄마는 고생만 하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엄마한테 죗값도 치르지 못했는데···.
‘이딴 재능 뭔 소용이야!’
그렇게 미친 듯이 울부짖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미각이 망가진 상태였다.
‘어차피 필요도 없잖아?’
애써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소희의 심장은 마구 날뛰었다.
맛을 못 보면, 요리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곳에도 돌아갈 수 없다.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졌다.
‘거짓말쟁이···.’
그제야 소희는 깨달았다.
엄마를 위해 요리하는 게 아니었다.
요리가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요리로,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을 뿐.
엄마가 떠나면···
그녀에게 남은 건 요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일시적이겠지. 분명··· 괜찮아질 거야.’
미각은 돌아올 거다.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
그때까지 숨기면 된다.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 괜찮아질 거니까.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게 평소처럼 행동하면서 기다리면 되는데···.
“역시 문제가 있나 보군요.”
들켜버렸다.
가장 들키면 안 되는 상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