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2화(32/325)
< 32. 다 써! >
“마르쿠스 님.”
점심 요리 대결이 끝나자, 젊은 여인 한 명이 한길에게 다가왔다.
“요리사분들의 시중을 맡고 있는 마르티나입니다. 앞으로 지내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한길이 머물 방은 주방에서 제법 멀었다.
저택이나 별장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
규모도 그렇고 사람 수도 그렇고……
“이곳에 몇 명이나 지내고 있나요?”
“150명 정도 있습니다.”
“전부 다…..”
노예냐고 물으려다 멈췄다.
실례되는 발언 같아서.
하지만 마르티나는 미소를 지으며 거리낌 없이 말했다.
“아, 마르쿠스 님은 귀족 저택은 처음이라 들었어요. 익숙지 않으실 수도 있겠네요.”
“네.”
“저와 같은 노예가 약 100명. 저희는 집사 (atriensis)인 케이토 님의 지휘를 받고 있지만, 마르쿠스 님은 요리사(coqui)이니까 주인님 지시만 받으시면 됩니다. 요리사와 제빵사 (pistores)는 다른 사람 지시를 받지 않거든요. 주방에 가장 오래된 요리사는 타이투스 님이시지만, 이곳에서는 딱히 위아래가 없어요. 그날그날 주인님이 정하는 사람이 총지휘를 맡아서.”
마르티나는 온화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노예라고 하면 가혹한 환경에서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없었다.
“아피키우스는 어떤 사람인가요?”
“흠, 매우 관대하세요. 기분이 좋으면 선물도 툭툭 던지셔서, 5년만 일하면 자유인이 된다는 말이 나오는걸요. 여기서 돈을 모아서 장사로 성공하신 분들도 계셔서, 일부러 1-2년 더 노예 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아피키우스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는데, 적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윗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고 하니까.
노예들이 자진해서 몇 년 더 일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악독한 사람은 아닐 터.
“도착했습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면 불러주세요.”
한길의 방은 요리사에게 배정된 방치고는 꽤 화려했다.
가구는 침대밖에 없었지만, 아름다운 조각상이 진열되어 있고 벽에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혼자 쓰는 방이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저 사람이랑……’
익숙한 얼굴.
아까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던, 루시우스라는 이름의 제빵사.
한길을 밀쳤던 후보 중 한 명이다.
루시우스는 인사를 하지 않았고, 한길 역시 스스로 다가갈 마음이 들지 않아 그대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한가하네?’
마음 같아서는 주방에 남아 재료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아피키우스의 지시가 없는 한 주방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가장 가보고 싶었던 향신료 방은 아예 문이 잠겨있었고.
아피키우스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하는 상태.
매일 정신없이 일하던 루시아의 식당과는 달랐다.
‘그런데 왜 퀘스트 완료 창이 안 뜨지?’
아피키우스의 인정은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아피키우스가 주최하는 연회의 요리를 만들어라‘였으니까. 연회 요리를 맡으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요리를 만드는 게 좋을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마르티나가 다시 나타났다.
“마르쿠스 님, 주인님이 주방으로 오시랍니다.”
“네, 지금 갑니다.”
한길이 서둘러 일어나자, 마르티나는 고개를 더 길게 빼며 방 안쪽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저, 루시우스 님도 함께 오시라는데요?”
루시우스와 함께 주방을 향해 걷는 내내 침묵만이 이어졌다. 주방에 도착하고 얼마 가지 않아 아피키우스가 들어왔다.
“도착했군.”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어 1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소파 위에 태평스레 누워있던 사람과 동일인물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오늘은 자네가 내 손이 되어주게.”
“손이요?”
“그래, 자네 둘이. 내가 목욕하다가 떠올린 요리가 있거든.”
그 말과 함께 아피키우스는 돼지고기가 놓인 재료 테이블로 달려가다시피 했다.
이미 부위별로 토막 난 돼지고기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핀 그는, 그 중 몇 개의 덩어리를 골라냈다.
“색이 좋군. 신선해.”
그 말대로, 좋은 고기였다.
오래되고 질이 떨어지는 돼지고기일수록 색이 창백한데, 여기 있는 토막들은 하나같이 선명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손에 느껴지는 육질도 단단했고.
“냄비에 불을 올려주게. 무화과는 세 줌 정도 넣고, 월계수 잎은 3장이 좋겠군. 일단 그렇게 한번 삶아주고 나서 시작하자고.”
‘도와달라,’ ‘손이 되어 달라’는 말은 그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아피키우스는 자신의 두 손으로 요리를 하지 않는 듯 보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100여 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수많은 하인이 일하는 집에서, 귀족이 굳이 자신의 손으로 요리를 할 리 없으니.
한길은 아피키우스의 설명대로 재료를 준비하고 돼지고기를 삶기 시작했다.
냄비에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숯을 빼고 불을 낮추면,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
“자네, 아까 그 국물 말일세.”
“네.”
“뭐가 들어갔는지 알려줄 수 있나?”
아피키우스의 눈은 반짝일 정도로 빛나고 있었고, 허가를 구하는 말투였다.
돈을 내고 고용하는 고용주면 당연히 알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텐데.
“닭발을 썼습니다.”
“닭발? 그걸 써서 육수를 내면 그 맛이 나나?”
“닭발에는…… 지방이 더 많거든요. 다른 부위는 껍질 밑에 근육이 있지만, 닭발은 뼈와 지방만 있으니까요. 더 끈끈한 육수를 낼 수 있습니다.”
젤라틴 성분이라는 말이 어떻게 번역될지 몰라 조금 표현을 바꿔서 설명하니, 아피키우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런데 용케 처음 온 주방에서 그런 재료를 찾았구먼. 보통 신입들은 재료 위치도 몰라 당황하고 주저앉아버리거든. 첫날부터 실력을 발휘하는 요리사는 처음이었네.”
“누구든 새로운 환경에 오면 주저앉기 마련이죠. 하지만 얼마나 빨리, 두발로 일어서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한길의 말에 루시우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한길은 확신했다.
자신을 밀친 이는 루시어스가 분명하다고.
“어쨌든, 최고의 숭어요리였어. 내가 말한 상금 있잖은가. 원래는 숭어 소스를 개발하라는 게 아니라, 숭어의 맛을 가장 잘 살리는 소스를 만들라는 것이거든. 소스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자네가 승자인 것 같은데.”
“상금은 괜찮습니다. 대신…..”
“대신?”
“나중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돈을 벌어봐야 쓸 일도 없는데.’
이곳은 한길이 사는 세계가 아니었다.
잠시 퀘스트 수행할 때마다 방문하는 곳에서 돈을 모아봐야, 현실에서는 아무 쓸모 없었다.
그보다 한길에게 중요한 건 퀘스트.
그리고 재료.
은화를 받는 것보다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아 보였다.
새하얗게 얼굴이 변한 루시우스는, 한길이 나중에 고자질이라도 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꺼내면 되겠군. 꺼내서 껍데기를 벗겨내 줄 수 있나. 그리고 꿀을 잔뜩 뿌려주고.”
삶은 돼지고기의 껍데기를 벗기고, 시키는 대로 네모나게 토막을 내서 그 위에 꿀을 버무리자, 아피키우스의 시선이 제빵사에게 향했다.
“루시우스, 자네가 이 위에 덮을 페이스트리를 만들어주게.”
루시우스는 서둘러 밀가루와 올리브유로 반죽을 만들어 돼지고기 덩어리에 덕지덕지 붙이고 손으로 곱게 펴서 표면을 정리했다.
“흠, 남은 돼지 껍데기는 페이스트리 위에 박아서 장식하도록 하지. 돼지기름이 베이면 맛이 좋으니까.”
아피키우스가 기획한 요리를 보며 한길은 속으로 제법 놀랐다.
모양이 조금 다르고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사용하긴 하지만, 현대에서도 유사한 요리를 본 적이 있다.
비프 웰링턴 (beef wellington).
‘하지만……’
아마 이대로는 아피키우스가 원하는 요리는 나오지 않을 텐데……
“뭔가 해보고 싶은 게 있나?”
한길의 표정을 읽은 아피키우스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어봤다.
“해봐도 되나요?”
“어차피 남아도는 게 재료인데.”
아까 삶은 돼지고기 토막은 아직 반이나 남아 있었으니, 새로운 시도를 해봐도 될 터.
아피키우스는 원하는 대로 움직이라며 아예 한발 물러서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탕탕탕탕!
한길은 우선 버섯과 샬럿을 잘게 썰고,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타임 이파리도 뜯어 함께 넣어주었다.
버섯이 익으면서 촉촉하게 물기가 나올 때 즈음, 숯을 더 넣어 불을 강하게 키웠다.
타지 않게 잘 저어가며 볶자, 물이 증발하여 걸쭉한 페이스트가 만들어졌다.
덕셀 (duxelle) 페이스트.
버섯으로 만든 페이스트로, 비프 웰링턴에서 고기의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데 사용된다.
치이이익!
새로운 팬에는 삶은 돼지고기를 올려주어 표면만 살짝 그을러 주었다.
익히는 용도는 아니다. 어차피 오븐에 들어갈 요리는 너무 익히면 수분이 날아가 퍽퍽해질 뿐이니.
마이야르 반응만 일으키고 싶었다.
잘 구워질 고기를 먹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그 감칠맛과 만족감을.
마지막은 페이스트리.
밀가루와 올리브유만을 사용한 루시우스와 달리, 한길은 물을 조금 사용했다. 글루텐을 만들기 위해서.
페이스트리는 살짝 바스러지는 식감이 매력이라 글루텐이 지나치면 좋지 않다. 하지만 적당히, 고기 주위에 붙을 정도의 망사 구조는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제빵이 특기는 아니라 완벽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루시우스보다는 나을 터.
완성된 반죽은 길게 밀어내고, 네모난 모양으로 잘랐다.
그 위에 얇게 버섯 페이스트를 바르고.
돼지고기를 올리고.
고기 위에 다시 버섯 페이스트를 발라주었다.
이불을 씌우듯, 반죽을 돌돌 말아 돼지고기 전체를 감싸면 마지막은….
“혹시 어떤 색상을 원하시나요?”
“색상?”
“노란색이나 갈색, 조금 더 윤기를 낼 수도 있고요.”
“그걸 조절할 수 있나?”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현대 제빵에서는 계란 물(egg wash)로 색상과 윤기를 조절한다. 계란 물의 단백질 농도에 따라 색감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흰자만 사용하면 색만 어두워지고 윤기는 나지 않는다. 노른자만 사용하면 노랗고 반질반질하다. 아예 어두운 갈색을 원하면 단백질이 더 들어간 우유를 섞어주기도 한다.
“노란 게 좋겠군.”
아피키우스의 주문에 따라 계란 노른자만 풀어서 붓으로 반죽에 계란물을 꼼꼼히 발라주면 완성.
사실 더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도 있었지만…..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당장은 무리였다.
한길이 만든 돼지고기와 아피키우스가 만든 요리를 오븐에 넣고 저온에서 한참을 구웠다.
완성된 고깃덩이는 겉보기에는 일반 빵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 한번 맛을 보지!”
스윽. 스윽.
루시우스가 만든 고기를 자르자, 우려했던 대로 겉의 빵 반죽이 퍼슬 퍼슬 하게 떨어져 나가며 처참하게 흩어졌다.
아피키우스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연회 요리는 손님들 앞에서 대접할 요리.
미관도 중요하다.
손님 앞에서 부스러지는 요리를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이건 맛볼 필요도 없겠군. 다음 걸 자르게.”
아피키우스는 실패한 요리에는 두 번 다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스윽. 스윽.
한길이 반죽을 만든 덩어리를 썰자, 다행히 깔끔하게 형태가 그대로 유지된 채로 썰렸다.
단면을 펼치자, 제법 먹음직스러운 모양의 요리가 자태를 드러냈다.
샛노랗게 빛나는 페이스츄리.
그 아래에 촉촉하게 육즙을 머금은 돼지고기.
그 모습을 보고 아피키우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어린아이와도 같은 웃음.
수백 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이런 대저택을 소유하는 귀족이, 고작 완벽한 페이스트리 껍질에 이정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니.
“먹어보도록 하지. 자네도 맛을 보게.”
각자 한 덩이씩 고기를 들어 올리자, 손가락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고기에서 투명한 육즙이 흘러내려 안 그래도 촉촉한 표면을 더욱 빛냈다.
고기 위아래에 있는 버섯 페이스트가 흘러나올까 불안했지만, 페이스트리가 단단해서 조금만 주의하면 지저분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좋아, 좋아!”
순식간에 한 덩어리를 먹어 치운 아피키우스는 쩝쩝대며 손가락까지 빨고 있었다.
한길 역시 뒤늦게 맛을 보았다.
파사삭!
입에 닿자마자 흩어지는 페이스트리.
돼지고기의 기름기를 머금은 빵은 그냥 이불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맛이었다.
중간중간에 박혀있는 돼지고기 껍데기는 바삭했다. 맛도, 식감도, 현대에서 먹는 베이컨과 매우 흡사했다.
주르륵.
조금 더 진득하니 씹자, 페이스트리 내면에 있는 돼지고기의 육즙이 터져 나와 입안을 덮쳤다.
빵 이불을 덮은 덕에, 고기는 더욱 촉촉하고 연했다. 수분과 육즙을 더욱 단단히 가둬뒀으니.
육즙이 마구 흘러나와 혓바닥을 기름칠했고, 그 위에 미끄러지듯 고깃덩어리가 움직였다.
한 번씩 씹을 때마다 저항 없이 자잘하게 풀어지는 육질.
고급 소고기처럼, 살살 녹아내릴 정도의 부드러움이었다.
그 위아래를 덮고 있는 감칠맛.
고기 자체의 풍미와 더불어 버섯의 농후한 맛이 더해져 아찔할 정도로 매혹적인 향이 났다.
“좋았어! 이대로 가자고! 연회 때는 둘이 제대로 협력하라고.”
아피키우스는 그대로 승천할 것 같은 표정으로 신나게 몇 개의 조각을 더 집어 먹었다.
‘그런데 왜……’
퀘스트 창이 조용했다.
아직 한길이 요리사라고 말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루시우스와 함께하라고 해서 그런가.
“저, 사실은…..”
퀘스트를 클리어 못 하면 곤란하다.
“이것보다 더 나은 조리법이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만 있으면 될 텐데요.”
“그래? 그럼 해보게.”
“페이스트리에도 조금 더 손을 대고 싶습니다.”
“흠, 그래? 그건 제빵사의 영역인데……”
아피키우스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이 메뉴의 총지휘는 마르쿠스, 자네가 맡게. 루시우스는 이번 한 번만 마르쿠스의 지시대로 하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앞에 창이 떴다.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한길에게, 아피키우스가 덧붙였다.
“재료는 얼마든 있으니 원하는 대로 다 쓰고.”
< 32. 다 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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