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2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20화(320/325)
320. 팝업
람지의 입국일.
공항은 꽤 북적였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카메라맨들도 상당수 보였고.
“어떻게 알고 온 걸까?”
한길의 의문에 카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디올 측에서 정보를 뿌린 거겠죠.”
“일반인들도 보이는데?”
공항 곳곳에는 ‘람지’라고 적힌 푯말을 든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람지의 팬인듯 했다.
아이돌 팬클럽처럼 그 수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셰프에게 팬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한길에게는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카키는 무덤덤한 모양.
“알아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는 않죠. 오프닝 전날에 입국할 테고, 람지의 마지막 체류지와 한국을 오가는 항공편이 그리 많은 건 아니니까.”
잠시 후,
셔터가 미친 듯이 터졌고, 람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람지는 청바지 차림에 커다랗게 ‘디올’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끌고 있는 캐리어도 디올의 시그니처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함께 동행한 요리사가 3명 있었는데, 그들 역시 전신에 디올을 두르고 있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는 디올 측이 내건 조건이었다.
공항 패션은 무조건 디올로 입을 것.
물론, 마중을 나온 한길과 카키도 디올 차림새였다.
“람지, 어서 오세요.”
“웰컴 투 코리아!”
“다시 와서 반갑군.”
한길과 카키는 람지를 정겹게 맞이해주었고. 이 모든 과정은 카키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송출되었다.
ㄴ와 디올 PPL에 목숨 걸었네 ㅋㅋㅋ
ㄴ자본주의에 굴복한 람지 ㅋㅋㅋ
ㄴ왠지 카키의 계략일 것 같다···
ㄴ니들한테도 명품 떡칠을 해주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느껴짐
ㄴ그런 계략은 대환영
ㄴ카사장님! 욕 안 먹게 조심!
ㄴ우와 사람 무지 많네 무슨 연예인 등장이냐
카메라를 향해 손 몇 번 흔들어 주고, 접근해오는 팬들의 인사를 받아주고, 사진 찍을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어서 공항을 벗어난 후.
다음 일정은 기자 간담회.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각종 언론 기자들을 모아놓고 Q&A 세션을 열었다.
취재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더 불독의 재오픈 날에 비견될 정도로.
“셰프 람지에게 질문입니다. 최근에 한국의 전통 조리법에 기반을 둔 중탕기를 호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양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는데,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중탕이라는 조리법 자체는 어느 문화권에도 존재하지만, 제가 최근 극찬하는 중탕기술은 한국의 전통 가마솥의 원리를 이용했다고 들었습니다.
무쇠로 만든 솥이야 서양에서도 있지만, 한국의 가마솥은 다르더군요. 뚜껑까지 무겁게 제조하여 내부 압력을 가하고, 밑바닥이 둥그렇게 디자인되어서 열도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죠. 또한, 열이 직접 닿는 부위는 두껍게, 그 외의 부분은 얇게 제작하여 열전도가 고릅니다. 이런 세심한 기술과 지혜가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맛을 빚어내는 거죠. 그 한 끗의 차이가 참 매력적이더군요.”
람지를 향해 쏟아지는 질문은 대개가 비슷한 맥락이었다.
한국 요리에 대한 평가, 한국 중탕기의 우수성, 그리고···
“셰프 람지에게의 질문입니다. 이한길 셰프는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그리고 아직 무명에 가까운 이한길 셰프와 어떻게 콜라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까?”
한길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이한길 셰프와는 몇 달 전에 만났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셰프의 스타주로 있었는데, 만나자마자 이 사람은 재목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뛰어난 셰프가 아니라, 쉽게 보지 못할 셰프죠. 1억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인재입니다. 자세한 건 이한길 셰프의 요리를 보시면 알 겁니다. 이미 너튜브를 통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요.”
“이한길 셰프의 어떤 부분이 특출나다고 보시나요?”
“시야입니다.”
“그건 무슨···.”
“자세한 건 시간이 지나면 절로 증명될 겁니다.”
“아까 이한길 셰프를 만난 곳이 존경하는 셰프의 레스토랑이라 하셨는데, 그분이 혹시···.”
“페르난도 아드리아입니다.”
한길이 페르난도의 밑에서 스타주를 했다는 얘기는 딱히 비밀이 아니었다.
후계자 얘기는 하지 않기로 람지도 동의한 상태였고.
“이한길 셰프에게 질문입니다. 더 불독에서는 얼마나 스타주로 지내셨고, 페르난도 셰프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페르난도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스승님이십니다. 스타주 기간은 2달 미만으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동안 제 시야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넓혀주신 분이었죠. 제 요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스승이 3분 계시는데, 그중 한 분이십니다.”
“남은 2분은 누구십니까?”
“그건··· 비밀로 하겠습니다.”
한길은 비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혹시 페르난도에게 전수한 한국 음식도 있습니까?”
“중탕기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신 겁니까?”
기자들은 흥분해서 질문했고, 한길과 람지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답했다.
#
기자 간담회가 끝난 후에는 바로 팝업 매장을 방문했다.
레스토랑 시설을 점검하고, 재료 재고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레스토랑 방문에는 요리사들도 동행했다.
3호점 요리사 3명은 이번에 람지의 주방에 서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영어에 능숙한 녀석들 위주로 골랐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엿보였다.
“나 울면 못 본 척해줘라.”
“얌마, 울긴 왜 울어! 내가 욕설 트레이닝도 해줬잖아!”
“하지만 실물 람지는 포스가 다른걸? 키는 또 왜 저리 크냐?”
“그래도 람지 주방에 한 번이라도 서 본 요리사가 되는 거잖아? 영광으로 알아!”
우려와 달리, 람지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물론, 사전에 레시피를 받아서 피가 나도록 연습하긴 했지만.
몇몇 요리사들은 은근 욕설을 기대했었는지 실망하는 기색이었지만,
“지금부터 모든 메뉴를 한 번씩 만들어본다!”
“예스, 셰프!”
한길의 명령에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한길은 요리사들에게 모든 메뉴를 3번씩 만들어보도록 훈련시켰다. 그것을 본 람지는 매우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미장 플라스를 확인하려는 것이군.”
“기본이니까요.”
요리에 중요한 것은 재료, 재료를 다루는 요리사들의 기술, 그리고 작업공간의 최적화다.
새로운 환경에서 요리하려면 그 환경을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방에서는 1-2초의 차이가 크다.
아슬아슬한 한계점까지 재료를 다루며 최고의 맛을 끌어내야 하니까.
그 1-2초를 놓치면, 맛깔나게 캐러멜라이징된 마늘에서 쓴맛이 올라오기도 한다.
작업 환경이 바뀌면, 평소의 습관대로 몸이 움직이는 바람에 그 1-2초를 놓칠 수도 있었다.
팝업 레스토랑의 구조는 3호점과 다르며, 오븐이나 가스버너도 전혀 다른 제품을 쓴다. 몸으로 그 차이를 미리 익혀두는 게 좋다.
그런 설명을 해주자, 람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자네, 정말··· 페르난도만 아니었으면 내가 납치해가고 싶은 정도인걸?”
“과찬이십니다.”
“몰래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 어떤가?”
“페르난도를 존경하신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소중한 걸 얻으려면 뭐든 투자해야지 않겠나? 잃는 게 있어야 얻는 게 있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정말인가?”
한길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속셈이 너무 빤히 보였으니까.
“페르난도한테 이상한 시험하지 말라고 말해주세요.”
“으하하하! 들켰나?”
람지는 땅이 꺼질세라 웃었다.
“진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는군. 나쁘게 보진 말게. 나도 하도 사정사정하길래 한번 부탁을 들어준 거니까.”
#
그 후로 5일.
팝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요리에만 집중했다.
3호점 요리사들은 오랜만에 서비스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매일 요리는 해왔지만, 개발에만 치중된 요리였으니까.
메뉴 개발과 서비스는 다르다.
메뉴 개발은 의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창의력을 쥐어짜는 과정이고. 서비스는 무의식과 본능에 의존하여 최대한 완벽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니까.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이번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세계적 거장을 감탄시킨 요리’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모든 요리는 일생 한 번의 기회다.
손님들은 지난 몇 달간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 접시에 올라간 요리에 실수가 있으면, 실력의 문제로 평가하고 실망한다.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게다가,
제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트러블은 항상 생기기 마련이었다.
팝업 첫날은 아무 문제 없었지만.
이틀째에는 냉장고에 보관된 해산물 일부가 상해 있었다. 누군가 실수로 냉장고 문을 끝까지 닫지 않은 탓이었다.
다행히 최셰프가 새벽 일찍 출근해 재료의 상태를 일찍 알아차렸고. 한길은 바로 수산시장으로 달려가서 필요한 재료를 구해올 수 있었다.
문제는 메뉴판에 재료의 산지가 표기되어 있다는 것. 급작스레 구매한 재료는 산지가 달랐기에, 아침부터 디올 직원들을 닦달해서 새로운 메뉴판을 찍어내야 했다.
나흘째에는 접시가 모자라는 사건이 있었다.
팝업에 오는 손님들은 기본적으로 한길의 코스 메뉴와 람지의 코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주문했다.
하지만 이날따라 둘 다 맛보겠다며 무리해서 1인 2메뉴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다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팝업에 사용되는 접시는 일반 접시가 아니라 디올의 국내 미출시 접시였다. 준비된 수량은 아슬아슬한 수준이었고.
디올 직원들이 급하게 본사로 가서 추가 재고를 가져오기로 했지만, 차가 막혀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상황.
요리는 마련되었지만, 접시가 없었다.
심지어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에는 유명 배우가 앉아 있었고.
한길은 어쩔 수 없이 같은 컬렉션의 다른 접시를 사용하기로 했다. 플레이팅을 조금 달리하고,
— 저희 셰프가 한혜윤 님의 팬이어서, 특별히 한혜윤 님에게 영감받은 요리를 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대충 둘러대면서 플레이팅이 다른 것을 ‘스페셜 요리’로 포장하며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최셰프로부터 한혜윤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라피를 전해 듣고, 그녀의 식사가 끝난 후에는 직접 나가서 팬이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이한길 셰프님, 응원할게요.”
“이한길 셰프님, 정말 팬이에요! 셰프님 요리, 정말 너무 먹어보고 싶었어요.”
한길은 일반 손님들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나눠주어야 했다. 그들은 요리보다는 ‘한길의 요리’를 먹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까.
스타 셰프는 단순히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팬들에게도 보답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페르난도 역시 찾아오는 손님들과 일일이 대화를 해주었더랬다.
문제는···
한길이 인사를 하는 동안, 주방의 흐름을 놓친다는 것. 그동안 최셰프와 유셰프가 주방을 잘 이끌어 주었지만. 1, 2호점에 비하면 한길의 부재가 길어져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다.
5일간의 전쟁이었다.
그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는 눈앞의 전투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부어야 했다.
손님들이 한길의 요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한길에 대한 평가가 어떤지, 람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때,
“드디어 끝났다!!!”
“오오오오!!! 자유다!!!!”
주방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술이다, 술!!!”
“파뤼다, 파뤼!!!”
“람지 셰프! 유, 드링크 알코홀?”
한길은 람지를 향해 웃어 보였다.
“람지, 저희와 함께 회식하시겠습니까?”
사실 람지와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럴 시간이 전혀 없었으니 오늘이 기회였다.
“물론이네! 어서 가지!”
“그 전에···.”
한길은 람지에게 다가가 그에게만 들리게 귓속말했다.
“SOS가 필요하면 ‘비둘기’라는 단어를 쓰세요.”
“···?”
“그냥 위기의 상황이 닥친다면 ‘비둘기’를 기억해주세요.”
#
회식은 3호점에서 열렸다.
“셰프 람지! 유 베스트 프로! 프로··· 야, 정신이 뭐였지? 아, 마인드! 유 베스트 프로 마인드!”
“닭살이 모였지? 미 치킨 브레스트!”
“얌마, 그건 닭가슴살이잖아!”
“그럼 치킨 미트?”
요리사 한 명이 람지 앞에 자신의 팔을 드러내더니. 손으로 투투투툭 친 후, 오들오들 떠는 시늉을 했다.
“오~ 구스 범프!”
“야, 구스 범프가 뭐냐?”
“닭살이겠지. 그냥 번역기 써!!!”
“번역기 쓸 거면 아침마다 영어학원 다니는 의미가 없지!”
람지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요리사들의 실전 영어 회화 상대가 되어야 했다.
처참한 실력에도 주눅 들지 않고 나서는 요리사들이 대견하긴 했지만,
“셰프, 유 베리베리 리치! 머니 매니! 왠?”
“왓?”
“유 영, 노머니! 유 올드, 매니 머니. 하우? 아이 원 투 노우. 아이 원트 매니 머니. 아이 원트 페이머스 셰프! 라이크 유!”
“아하~”
저런 대화에 맞춰주는 람지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본인이 싫으면 언제든 구출해줄 수 있도록 SOS 키워드를 알려준 거였는데. 람지는 단 한 번도 ‘비둘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은근 즐기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카사장님! 람지랑 라이브 찍죠! 시청자 오해 풀어야죠!!!”
“무슨 오해?”
“람지 셰프, 카사장님 싫어해요?”
“좋아하는데?”
“일전 회의에서···.”
“아, 오해 말게. 일 할 때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것뿐이니까. 나이가 드니 생각의 흐름이 끊기면 영영 끊길 때가 있거든. 방해받으면 중요한 아이디어를 놓칠 수가 있어서.”
“들었죠, 여러분? 람지가 카사장님 애정한대요!”
“하이, 코리아! 코리아 삼겹살 어메이징하네요.”
카키와 함께 라이브 방송에 참여하는 모습도 신나 보였다.
‘잠깐 나가도 되겠지?’
그제야 한길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
페이튼 호텔은 어느새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남은 건 객실 내 비품 구비라고 했었나.
바빌론의 정원을 콘셉으로 내세운 것답게 조경이 꽤 봐줄 만했다.
홀로 정원을 거닐던 한길은, 잠시 눈을 감고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해냈네.’
사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에는 아드레날린이 가득했다.
이걸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이···
“셰프!”
한길에게 허용될 리 없었다.
어둠 속에서 한길에게 다가온 이는 슬아였다.
“무슨 일이야?”
“그냥 조금 미행했어요.”
“당당하네.”
“그럼 숨겨요? 셰프도 이거 보고 싶으실 것 같아서요! 그동안에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방해될까봐
참고 있었거든요!”
슬아는 다가와서 한길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별스타도 너튜브도 진짜 장난 아니에요! 셰프 요리가 제일 핫하다니까요? 람지 요리는 클래식하고 ‘역시 맛있다’는 반응이지만, 셰프 요리는 새롭고 놀랍다는 반응이에요. 역시 1억 중에 1의 재능이라고!”
디올의 콜라보는 모던 & 클래식이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다. 한길은 모던, 람지는 클래식 요리를 담당했고.
실제로 한길은 모던 퀴진의 권위자인 페르난도의 밑에서 배웠고. 람지는 클래식 요리가 전문이었으니 컨셉도 잘 맞았다.
“다들 먹어보고 싶다고, 못 간 게 인생의 한이라고 난리에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포스트가 몇 개 있는데···.”
“슬아야.”
“네?”
“오늘은 일하지 말고 그냥 즐겨.”
“네?”
슬아는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한길을 보고 있었다.
“셰프, 어디 아파요?”
“오늘은 쉬어야 내일부터 빡세게 굴릴 수 있으니까.”
“아~~ 그럼 그렇지.”
키득거리던 슬아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셰프,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뭔데?”
“홀에서도 2호기가 나온 것 같아요.”
“2호기?”
“현주 있잖아요. 이번에 확실히 핏콩하고 왔어요. 현주를 보니까 딱 제가 처음 시작할 때 그 모습이거든요!”
슬아는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고 있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하는데 막 귀여워 죽겠는 거 있죠! 진짜 껴안아 주고 싶다니까요?”
“그거 잘 됐네.”
“진짜 셰프는 모를 거예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데, 드디어 홀에서도 동료가 생겼다니까요! 역시! 초반부터 유럽 여행으로 꼬드기길 잘했지!”
송현주는 슬아와 함께 스타주를 다녀온 알바생이었다. 한길이 보기에도 제법 빠릿빠릿해 보였고.
“그래서,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 건데?”
“앗, 눈치채셨어요?”
“넌 부탁할 게 있으면 짓는 표정이 있으니까.”
“헤헤.”
슬아가 머쓱하게 웃더니 답했다.
“원래 현주한테 2호점을 맡긴다고 했었잖아요. 그거 말고, 2호점은 연희한테 맡기고 현주도 3호점으로 데려가면 안 될까요?”
슬아는 거절당할 게 무서웠는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단순히 친하고 귀여워서가 아니라! 얘도 3호점을 경험하는 게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 대신에 2호점은 제가 3호점을 오가면서 철저히 관리할게요!”
“알아서 해.”
“네?”
“말했잖아? 홀은 전적으로 슬아 너한테 맡기겠다고. 그냥 보고만 제대로 해.”
슬아는 감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조금 고이는 것 같기도 했고.
슬아라면 잘할 거다.
아직은 본인의 직감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금씩 자신감을 키워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고민이 있으면 담아두지 않고 바로 상담했으니, 혼자 이상한 일을 벌일 일은 없다.
“진짜··· 제가··· 이 결정 내려도 되는 거예요?”
“물론이지.”
“셰프, 저 진짜 완전 감동···”
그런데 이렇게까지 고마워하는 걸 보니, 조금 아까웠다.
“대신, 조건이 있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