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2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21화(321/325)
321. 두 번째 가속
한길의 조건은 그렇게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실력 있는 소믈리에를 알아보고 있거든. 데니한테 추천을 부탁했는데, 이리 빼고 저리 빼는 것 같아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걔는 하여간! 은근 귀차니즘이 있어서···.”
데니라고 귀찮아서 미루는 건 아닐 거다.
뭔가 이유가 있을 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알아내기에는 슬아가 적임자였다.
“데니가 슬아, 네 말은 잘 들으니까. 닦달해서 다음 주까지 소믈리에 좀 구해오게 해줘.”
“맡겨주세요! 그런 일 있으면 처음부터 저한테 말씀하시지! 걔는 하여간 애가 너무 촐랑거린단 말이죠? 막상 하면 잘하면서 이상하게 일부러 빼고···.”
슬아가 투덜거리는 모습이 왠지 풋풋하고 귀여웠다. 왜 요리사들이 두 사람을 놀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 진전은 조금 있어?”
“에이씨, 셰프까지 왜 그러세요? 진짜 다들 왜 그리 엮으려고 해요? 남녀 사이에 우정도 있을 수 있잖아요!”
“데니가 강아지마냥 네 뒤만 쫓아다니니까.”
한길의 말에 슬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고백 한 번 받아본 적 없는걸요?”
“쫓아다니는 게 나름의 고백 아닌가?”
“아니죠! 고백이 없으면 그냥 우정이죠! 그리고 직장에서는 일만 해야지, 연애하러 왔어요?”
슬아의 얼굴에 조금씩 홍조가 올라오고 있었다.
‘재밌네.’
이래서 하는 거구나 싶었다.
조금 더 놀려보고 싶었지만,
“아씨, 몰라! 저 데니 찾으러 갈게요. 이상한 오해 하지 마세요!”
눈치 빠른 슬아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아쉽긴 했지만, 이제 드디어 혼자 생각을 정리할···
“셰프!”
··· 수는 없었다.
이번에 그늘 속에서 유셰프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제 차례 기다리고 있었죠.”
최근 들어서는 혼자 있을 틈이 없었다.
하지만 잘된 일이었다.
유셰프에게도 할 말이 있었으니까.
“슬아랑은 무슨 얘기 하셨어요?”
“2호점과 3호점의 인력 배치요.”
“윽, 오늘 같은 날도 일이에요?”
“앞으로는 더 바빠질 테니 지금이라도 해둬야죠.”
한길은 유셰프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말이 나온 김에, 유셰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요?”
“2호점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2호점은 현재 임시 헤드 셰프가 맡고 있었다.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인증을 유지하려면 자격이 있는 셰프가 필요했고, 한길은 이탈리아 현지에서 요리를 배운 적이 없으니 자격요건에 맞지 않았다.
1-2주라면 모를까.
유셰프의 부재가 길어지다 보니, 아예 임시직으로 헤드 셰프를 뽑아둔 것이었다.
다행히, 유셰프의 이탈리아 시절 유학 동기 중에 쉬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사람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는 그··· 상태가···.”
유셰프는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한길은 속지 않았다.
“이제 갈 수 있잖아요?”
“···.”
“시치미 떼지 마세요. 아까 소주 마시면서 인상 팍팍 쓰고, 청양고추 잘못 먹었다고 물도 벌컥벌컥 마시던데.”
둘 다 맛을 감지해야지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즉, 유셰프의 미각은 돌아온 상태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 보셨군요.”
“그래서 2호점으로 돌아갈 겁니까?”
“이게··· 미각이라는 게 맛이 5개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단맛에도 강중약이 있는데, 돌아온 건 아직 강중까지고 약은 안 돌아오고 그렇거든요.”
“그렇게 3호점에 남고 싶으면 남아도 됩니다.”
“정말요?”
유셰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본심은 3호점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다.
‘하긴.’
일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최근 유셰프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였으니까.
평생 이탈리안 요리만을 고집한 그녀이지만, 사실은 본인이 시도를 안 했을 뿐. 유셰프에게는 3호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길의 입장에서도 유셰프가 필요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길과 최셰프가 함께 3호점을 맡을 생각이었다. 한길은 외부 활동을 겸하면서. 최셰프는 총괄을 겸하면서. 둘이 함께 꾸려나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파급력이 큰 것 같으니까.’
한길의 인지도는 예상을 능가했다.
이대로라면 최셰프에게 업무 부담이 갈 게 뻔했고.
애당초, 3호점을 평범한 레스토랑으로 가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게 말이 안 되었다.
3호점에는 그 지점의 업무에만 집중하는 헤드 셰프가 필요했다.
“사실은 저도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거든요. 익숙한 것도 재밌지만, 전혀 새로운 걸 하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니까.”
“유셰프가 원하신다면, 3호점을 맡아주셔도 됩니다.”
“정말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유셰프는 바로 혀를 내둘렀지만, 금방 적응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무슨 조건인가요?”
“2호점의 총괄과 방향성 제시도 유셰프가 맡아주셔야 합니다. 새로운 헤드 셰프가 적응하는 동안··· 앞으로 반년간요.”
“반년이나요?”
“싫으시면 바로 2호점으로 복귀하시는 방법도 있죠.”
“알았어요, 할게요.”
의외로 유셰프는 바로 조건을 받아들였다.
깎을 것을 예상하고 조금 길게 잡은 것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하여간, 셰프 보면 새엄마 기질이 있다니까요?”
“새엄마는 또 뭡니까?”
“신데렐라 몰라요? 무도회 가고 싶으면 굴뚝 청소하고, 빨래하고, 마구간 청소도 하고 가라··· 이런 느낌?”
당연하다.
무도회에 가서 놀고 싶으면, 자신의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놓고 인수인계를 하고 가든가··· 라는 말은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한길이 말을 아끼는 사이, 유셰프는 망설이면서 입을 열고 있었다.
“셰프··· 저, 사실은 고백할 게 있는데요.”
뭔 놈의 레스토랑이. 툭하면 사람들이 다가와 이런저런 상담을 하고 고백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요즘은 요리사들도 ‘사실은 셰프가 구한 고급 올리브유를 쏟아버렸다’ 따위 고백도 빈번하게 하고 있었고.
하지만···
이것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뭡니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말씀드릴게요.”
“화 안 내겠습니다.”
“약속이죠?”
“네.”
그제야 유셰프는 망설임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마오타이 사건 말인데요···.”
한길의 얼굴이 절로 굳어왔지만, 잠시뿐이었다. 표정은 금방 풀어졌다.
“그게 왜요?”
“사실 그날, 저희 둘이 같이 마오타이를 비운 게 아니었어요.”
“···?”
“1/3까지는 같이 마시고, 나머지는 전부 셰프가 마신 거예요.”
전혀 예상치 못한 고백에 한길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유셰프가 서둘러 변명했다.
“생각해 보니 아까운 거예요! 비싼 술이라는데, 혀도 망가진 인간 입에 들어가면 물이나 술이나, 그게 그거잖아요? 그래서 중간부터 저는 와인만 마시고 셰프가 마오타이를 다 마셨던 건데···.”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체력이 바닥이라고 해도, 한길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취하는 일은 많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할 정도로 자신을 놓는 건 흔치 않았다.
전부 유셰프 때문이었던 거다.
자신은 도수가 약한 술을 마시고, 그 독한 술을 한길에게 퍼부었으니까.
“그래도··· 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답답한 것도 털어놓고! 싸움도 하고! 화해도 하고! 맞죠?”
한길은 피식 웃었다.
그냥 말 안 하고 넘어갔으면 됐을 텐데, 이런 걸 굳이 와서 고백하는 게 유셰프다웠다.
“지나간 일은 됐습니다. 신경 안 씁니다.”
“진짜 화 안 내는 거죠?”
“네.”
“그러면 하나 더 있는데···.”
“뭐죠?”
이번에는 유셰프가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표정.
망설임도 아까보다 길었다.
“이건 진짜 미안한 얘긴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 사실은 셰프 얘기 듣고 ‘그래도 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셰프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엄마한테 성공한 모습도 보여줬고··· 적어도 지붕이 없는 생활은 안 했었으니까. 미안해요.”
“그게 왜 미안한 일입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딱히 한길에게 알릴 필요도 없는데. 이상하게 유셰프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냥··· 엄마가 저한테 항상 했던 말이 있었거든요. 절대 남의 불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딱히 유셰프가 제 불행을 바란 건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셰프의 불행을 보고 안도하는 건 뭔가 애매하지 않나요?”
이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유셰프는 유셰프 나름의 논리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안에서는 분명 용서 못 할 행동이겠지.
“유셰프.”
“네?”
“유셰프도 가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한길의 말에 유셰프가 머쓱하게 웃었다.
“헤헤··· 저는 이런 거 묻어두는 성격은 못되어서요. 떳떳하게 살고 싶더라고요. 자수해서 광명 찾자! 그러니까 그··· 용서해 주시는 거죠?”
“용서해 드릴 건 없지만, 용서해 드리죠.”
“그래도 셰프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반듯하게 자랐으니까! 셰프도, 카사장님도 보면 존경스럽다니까요? 저라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삐뚤어졌을 텐데··· 어쨌든, 멋지십니다! 그럼 저는 양심이 가벼워졌으니, 술 좀 넣어서 무게 균형을 맞춰야겠어요!”
유셰프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횡설수설하다가 떠났다.
그리고 마치 바톤 터치를 하듯···
“한길!”
이번에는 람지가 나타났다.
술이 제법 올랐는지, 얼굴이 벌건 상태로.
“아까 유셰프로부터 국밥이라는 음식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먹어보고 싶더군. 나와 함께 가주겠나?”
한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가 한국까지 찾아왔는데. 그냥 보내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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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세요!”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의외로 요리사들은 한길과 람지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유셰프는 이 근방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국밥집의 주소까지 알려주었고.
지도 앱에 의존하여 골목에 숨어있는 국밥집에 도착하고 문을 여는 순간,
‘이런.’
한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변장 도구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이다.
국밥집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사장님까지 뛰쳐나왔고.
“그··· 맛은 어떠신가요?”
“맛있습니다.”
“정말로요? 어떻게 맛있나요?”
국밥의 맛은 좋았지만, 사장님이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 먹으려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사장 부부는 한길과 람지에게 사진과 사인을 요청했다. 아마 며칠 후면 저 사진과 사인은 액자에 걸려 가게에 진열될 거다.
‘신기하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레스토랑이나 기자간담회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진짜 골목길을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이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생각을 잘못했군. 조금 더 프라이빗한 곳으로 가지 않겠나?”
람지와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다.
한길은 서둘러 검색을 했고, 인근에 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자카야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이한길 셰프님이랑 람지 셰프님이시죠? 저, 사진 좀 같이···.”
여기서도 똑같이 유명인 대우를 받았지만. 사장과 알바생 5명만 상대해준 후에 개인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제야 한길은 방해 없이 람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자네 주방 요리사들, 정말 훌륭하더군! 자네 주방은 열정이 느껴져서 정말 기분이 좋았네!”
“감사합니다.”
“조금 무리해서 오길 잘했어! 내 요리사들을 데려와서 이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도 좋았고! 오랜만에 젊은 시절이 생각나더군. 내가 처음 요리를 시작할 그때 말일세!”
“그런가요?”
“그렇지. 나 때는 말이야···.”
국적이 다른 유명인도, 결국 본질은 똑같았다.
한동안은 람지의 라떼론이 이어졌다.
“··· 그때는 누벨 퀴진이 정말 종교와도 같았거든. 10계명도 있었다니까? 프랑스 요리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대였지! 그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많이 들어본 얘기다.
람지의 라떼론은, 한길이 더 불독에서 들었던 페르난도와 파코의 라떼론과도 매우 닮아 있었으니까.
알고 보니, 람지는 페르난도와 고작 4살 차이였다.
‘언젠가는 그 시기도 한번 가볼까?’
한길은 ‘누벨 퀴진’이라는 단어를 텍스트로만 접해봤지만. 람지와 페르난도, 파코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누벨 퀴진의 시대는 격변의 시기였다. 적어도 요리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렇게 중요한 기점이라면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왜 페르난도가 자네를 지목했는지 알겠더군. 내가 오늘 느낀 게 딱 그 느낌이었거든! 새로운 시대의 오프닝과도 같은 느낌이지!”
한길은 기회를 포착했다.
과거 얘기도 좋지만, 한길이 진짜 알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그건 어떤 느낌이죠?”
“무엇이 말인가?”
“페르난도도 시대의 흐름을 얘기했지만, 저에게는 아직 잘 안 와닿더라고요. 안 그래도 고민이 많던 참이었습니다.”
“그런가?”
“네, 그래서 사실은 람지에게 상담하고 싶었습니다. 람지는 그 시대를 거치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셰프니까요.”
“하하하하! 뭐,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어쩌면 한길이 퀘스트에서 배워온 가장 유용한 스킬은, 니콜라의 사회성일지도 모르겠다.
“자네는 밀레니얼 세대의 대표주자 같은 느낌이 들거든.”
“밀레니얼 세대요?”
한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람지가 설명을 이어갔다.
“태어나자마자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다루는 세대지. 이 세대는 정말 다르거든. 자기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출하는 게 당연하고, 사상과 정체성이 중요한 세대니까!”
“그런가요?”
“그렇지! 밀레니얼 세대는 참지 않아. 우리 때는 조직에 들어가면 불만이 있어도 참고 견뎠거든. 힘들고 더러워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들이박거나 그만두지. ‘요즘 녀석들은 끈기가 없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내 생각은 다르네. 자네를 보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고.”
한길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얘기였다.
딱히 그런 걸 의식하지는 않았으니까.
“자네의 인센티브 제도를 들었네. 요리사들이 개발한 요리의 소유권을 나눠준다면서?”
한길의 요리사들은 자신이 개발한 요리의 수익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
딱히 거대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고. 더 불독에서 경험했던 실습생 생활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여 만든 정책이었다.
“그런 발상이 다르다는 거지. 밀레니얼 세대는 능력을 보상하는 직장을 좋게 생각하지. 게다가 동물 복지를 위해서 조금 더 비싼 돈을 낼 생각도 있고, 환경보호에 애쓰는 브랜드를 트렌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소비자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네.”
“그런 식으로는 생각 못 해봤네요.”
소비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한길의 전문분야가 아니었으니까.
페르난도도 딱히 소비자를 고려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대단하네.’
새삼 람지가 어떻게 그 위치에 올라갔는지, 알 것 같았다.
페르난도가 창의력을 파고들듯이. 람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자네 너튜브 채널에 인센티브 제도를 소개해 보게. 밀레니얼이 환호할 정책이니까.”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네 채널에 재료 여행이 나오던데···.”
“그것도 보셨습니까?”
아무래도 람지는 한길의 너튜브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모양이었다.
“재밌어서 계속 보게 되더군. 재료 공급자들 얘기도 흥미로웠네. 제주도 흑돼지 사장님처럼 고집으로 천연기념물을 보존하는, 철학이 있는 사람들은 요즘 코드에 딱 맞지.”
“그런가요?”
“그런 공급자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러면 그쪽에서 알아서 찾아오게 될 테니까.”
“네?”
“자네가 굳이 공급업자를 찾으러 다닐 필요 없이, 자네의 컨셉을 너튜브에 명확하게 알려주면 그들이 자네를 찾아올 거라는 말일세.”
역시··· 꿀팁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길은 열심히, 술잔이 비워지지 않게 손을 움직이면서 람지의 지혜를 캐물었다.
그리고 적당히 취기가 올라올 때 즈음, 주제가 바뀌었다.
“자네, 앞으로의 계획이 뭔가?”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네요.”
“디올에서 자네만이라도 팝업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던데?”
디올에서 그런 제안을 하긴 했었다.
3호점 오픈 전까지, 팝업을 계속 하는 게 어떻겠냐고.
“개런티가 상당하던데, 거절했다면서?”
“돈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그러면 무엇이 목적인가?”
“돈보다 중요한 걸 하려고요. 물론, 그렇다고 돈을 안 벌겠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많아서요.”
“그래서, 뭘 할 생각이지? 이번 팝업이 화력을 모으기 위한 단계라고 들었는데.”
람지의 눈이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팝업이 화력을 모으기 위한 단계’라는 얘기는 단 한 사람에게만 털어놓은 얘기였고.
한길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페르난도한테 전달해주세요. 어림도 없다고.”
“쳇, 간파했군.”
“너무 허술하셨습니다.”
“으하하하! 그랬나?”
람지는 한참을 웃다가 다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부탁받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궁금하긴 하네. 자네는 대체 뭘 할 생각인가?”
“조금만 기다리면 싫어도 아시게 되실 겁니다.”
팝업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원하는 결과는 얻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2번째 가속을 시작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