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32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324화(324/325)
324. 후계자
국내 언론, 해외 언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셰프를 응원하는 국민.
새로운 미식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미식가.
#솜씻너 챌린지 참여자들까지.
모두가 주목하는 와중, 한길의 3호점.
고르메 랩의 오프닝 날이 다가왔다.
[이한길 셰프의 3번째 시도! 이번에는 어떤 트렌드를 선보일 것인가!] [이번에는 팝업이 아니라 정식 레스토랑이다!] [미식 토네이도 이한길, 다시 움직이다]오프닝 몇 주 전부터 여기저기서 기사가 터졌고. 3호점의 예약은 1분 만에 마감되었다.
예약에 실패한 이들은 쓰린 속을 달래며 카키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리기만을 기다렸다.
분명 카키는 현장을 라이브로 생중계할 테니까.
그리고 오프닝 1시간을 앞두고,
—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드디어! 대망의 날이네요. So this the day y’all ‘ve been waitin for
카키가 라이브를 시작했다.
방송을 보는 이들의 상당수가 외국인인 관계로, 한국어와 영어 2개 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ㄴㅎㅇ
ㄴ와따!!!!!
ㄴShoutout to Cocky
ㄴ시청자수 ㅎㄷㄷ
ㄴ 방금켰는데 5만 돌파?
ㄴHe just starting and peeps losing they minds!!!
ㄴ댓글 읽으려 영어 공부 시작함 ㅋㅋ
— 일단 홀의 레이아웃부터 보여드릴게요. 나중에 손님들 오시면 촬영하기 힘들어지니까. Imma show y’all the···
3호점의 디자인은 독특했다.
들어오자마자 입구에 오픈 키친이 있었으니까.
오픈 키친 앞에는 손님들이 앉는 카운터석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오픈 키친보다는 오마카세 식당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리사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직접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구조였으니까.
무대와 관객석 같기도 했다.
무대에 서는 이들은 요리사들이었고.
— 이 카운터석이 제일 좋은 자리죠. 그중에서도 이 자리, 보이죠? 누가 봐도 특등석인 자리는 셰프의 초청을 받은 셰프 테이블 자리고요···
홀 투어를 한번 시켜준 카키는, 시계를 확인했다. 화면 너머로도 눈이 부실 정도의 다이아 시계였다.
— 이제 20분 후면 오픈이네요. 그때 다시 올게요.
방송이 끊겼다.
그리고.
다시 켜졌을 때, 셰프 테이블 자리에는 한 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다.
ㄴhe looks familiar
ㄴ외국인?
ㄴOMFG! THATS F-ING FERNANDO
ㄴFOR REALZ?
ㄴ페르난도가 누구임?
ㄴㅁㅊ 레전드 본인 등판?
ㄴ한길봇은 뭘 해도 이제 놀랍지도 않음
셰프 테이블의 첫 주인공.
페르난도였다.
#
페르난도는 오픈 하루 전날인 어제,
조용히 입국했다.
페르난도는 한길과 오랜만의 재회를 한 후, 한길의 주방 식구들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오두방정을 떠는 요리사들과 잠시 놀아주기도 했고.
너튜브를 통해 이미 얼굴을 봐서 그런지, 왠지 그들이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한길의 주방은 활기가 넘쳤다.
모두가 한길을 우러러보고 따랐지만, 각자 주인의식을 갖고 움직였다.
자신의 주방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가 나왔지만, 어딘가 씁쓸하기도 했다.
‘이런 기분이었겠군.’
몇십 년 전.
페르난도가 막 발돋움하던 시절.
더 불독을 방문한 로부숑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아마 지금의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새로운 시대가 온 게 기쁘다.
새로운 후계자의 탄생은 언제가 기쁜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주인공이던 자신이, 이제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이 되는 건 역시 씁쓸했다.
그동안 어깨에 짊어지던 무게를, 이제는 정말로 내려놓을 때였다.
이미 오래전에 결심은 해왔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니 무덤덤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녀석밖에 없어.’
확신했다.
일전에는 한길의 가능성을 보고 믿었다면, 이번에는 한길의 행보를 보고 확신이 섰다.
다음 시대를 이끌 사람은 역시 한길밖에 없었다.
‘말은 더럽게 안 듣는 놈이지만.’
페르난도는 한길에게 후계자 타이틀을 빨리 주고 싶었다. 고된 시간을 단축해주고 싶었으니까.
이제 막 새로운 미식의 시대를 열던 시절, 페르난도는 갖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당시 미식가들은 페르난도의 색다른 시도를 조롱했고, 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했다.
그런 힘든 시기에, 로부숑의 후계자 타이틀은 큰 힘이 되어주었고.
하지만.
한길은 후계자 선언을 오프닝 날에 해달라며 날짜를 미뤘다.
처음에는 홍보 효과를 노린 줄 알았다.
가장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페르난도를 이날 부른 것이라고.
3호점의 매출 상승을 위해 그런 것이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그냥 받는 건 싫다, 이건가?’
연출을 위해서 미룬 건 맞다.
단, 페르난도가 생각하는 연출과 달랐을 뿐.
한길은···
왕관을 물려받아서 황제가 되는 게 아니라. 황제가 될 사람이 왕관을 물려받는 연출을 하고 싶었던 거다.
이미 전 세계가 한길을 미래의 후계자로 주목하는 상태에서, 페르난도의 인증을 받고 싶었던 거다.
무슨 결제 서류 올리는 마냥.
이미 다 된 서류에 도장만 찍으라는 자세였다.
그런 치밀함과 얄미움이···
싫지는 않았다.
후계자가 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암.
“페르난도?”
시선을 올리니, 카키가 페르난도를 향해 스마트폰을 내밀고 있었다. 촬영 중인 것이다.
평소라면 자신도 어떻게든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고 방정을 떨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카키, 시식에 방해가 안 되는 선에서 촬영을 부탁하네.”
“옙.”
자신의 후계자가 만들 새로운 레스토랑이 어떤 모습인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느껴보고 싶었다.
자신과 다른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싶었다. 대체 어떤 메시지가 있을지.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 보고 싶었다.
“페르난도? 주문하실 준비는 되셨나요? 아니면 시간을 더 드릴까요?”
슬아가 다가와 질문했다.
여러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일부러 거리를 두며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주문하겠네.”
“그러면 여기, 메뉴판을 드리겠습니다.”
고르메 랩의 메뉴판은 아이패드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요리의 사진을 넘기며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페르난도는 먹고 싶은 메뉴를 이미 정해둔 상태였다. 너튜브 방송을 보는 동안, 맛보고 싶은 메뉴를 이미 결정했으니까.
그런데,
“페어링이 되어 있군.”
“네, 모든 메뉴는 세트로 나갑니다. 내가 심사위원이 되었다는 심정으로, 두 가지 메뉴 중 더 마음에 드는 메뉴에 투표하실 수 있어요. 번거로우시면 하지 않으셔도 되지만요.”
조금 특이한 시스템이었다.
“심사위원이 되라는 건가?”
“결과에 큰 의미는 없어요. 한국에는 이상형 월드컵이라는 게 있거든요. 2가지 선택지 중 내가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토너먼트죠. 그냥 재미로 하시면 됩니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이게 재미 포인트가 되는 걸까?
모르겠다.
직접 경험해보는 수밖에.
얼마 후, 주문한 샐러드가 나왔다.
“첫 번째 샐러드, 가든 샐러드입니다.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샐러드를 세척한 것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여기에 있는 가위와 집게를 사용해서 뜯어 드시면 됩니다.”
한길의 가든 샐러드는 독특했다.
채소가 흙에 심어진 채로 나왔으니까.
커다란 돌 접시에 각종 상추와 허브, 토마토 모종이 올려져 있었다. 샐러드드레싱이 담긴 별도의 접시도 나왔고.
‘재밌는 컨셉이야.’
채소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어떤 채소든, 흙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맛이 퇴화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흙 채로 올린 거다.
극단적 팜투테이블이었다.
페르난도는 집게와 가위를 들고 채소를 잘라서 접시에 올렸다. 그리고 드레싱에 살짝 버무린 후, 포크로 쿡 찍어서 입에 넣었다.
채소의 향취가 미각을 아플 정도로 간질였다.
씹을 때마다 믿을 수 없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죽은 생선을 회 떠먹는 것과, 활어회를 먹는 차이 정도 되려나.
페르난도도 이렇게 느낄 정도인데···
마트에서 며칠 묵은 채소만 먹어 온 사람들에게, 이 맛이 충격적일 것이다.
“두 번째 샐러드, 나비 샐러드입니다.”
이번에는 이미 만들어진 샐러드가 나왔다.
양배추와 적색 치커리가 나비의 날개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요리였다.
이 샐러드는 식감보다 맛에 집중했다.
당근 퓌레, 시금치 크림, 레드와인 졸임, 아몬드를 넣은 마요네즈.
각종 소스가 곁들여져 채소의 맛을 한결 끌어올렸다.
앞선 샐러드가 야생적인 맛이라면, 이번 샐러드는 기술과 조화의 절정이었다. 굳이 따지면 프랑스 요리의 정수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셨나요?”
사실··· 우위를 가릴 수 없는 요리였다.
둘 다 똑같이 뛰어났다.
이건 순전히 취향의 영역이었다.
페르난도는 잠시 고민하다가 선택을 했다.
“전자가 마음에 들었네.”
“그러면 여기에 이렇게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슬아는 아이패드 화면 안, 2분할 된 사진 중
가든 샐러드를 선택했다.
“여기 이 아이콘을 누르시면, 다른 사람들의 선택도 확인할 수 있어요. 오늘은 첫날이라 유의미한 통계가 없겠지만요.”
페르난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을 비교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이 심사의 의미는 알 수가 없었다.
이게 요즘 감성인 걸까···.
다음 요리는 토마토 요리였다.
이번에도 두 개의 요리를 비교해야 했다.
첫 번째는 ‘토마토 타르타르’라는 이름의 요리로, 커다란 토마토가 통째로 접시 위에 올라가 있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그 토마토를 썰면, 내부에 다진 토마토가 채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올리브유와 타임에 재워둔 토마토 과육은 향긋하면서도 신선했다.
내부에 채워 넣은 다진 토마토는 살짝 반건조시켜서 수분기를 덜어냈고. 샬럿과 파르미지아노, 훈제 올리브유로 간을 헸다.
토마토의 맛을 찬양하는 요리였다.
반대로 두 번째 요리에는 스테이크가 나왔고,
토마토는 소스로만 사용되었다.
소스에 사용된 토마토는 퍼플 칼라바시(Purple calabash)라는 종으로, 1700년대부터 존재해왔다고 여겨지는 희귀한 토마토였다.
시장에는 판매가 전혀 되지 않아, 먹고 싶으면 직접 씨앗을 구매해서 심는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페르난도도 먹어본 적이 없고, 가장 궁금해하던 메뉴이기도 했다.
너튜브 영상에 의하면, 한길은 특정 농장과 계약하여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토마토를 씨앗부터 가꾸었다고 한다.
접시 한쪽에는 희귀 토마토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조리를 거치지 않는 원래의 맛을 시식해보라는 듯이.
‘떫군.’
희귀 토마토를 시식한 페르난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영상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시큼털털한 맛이 강한, 과일로는 여길 수 없는 맛이었다.
와인을 먹고 나면 입안에 텁텁함이 남는 것처럼, 쌉싸름한 끝 맛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소스로 쓴 거군.’
스테이크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건 특이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기의 기름진 향을 완벽하게 중화하면서, 항상 맛본 와인 소스와는 전혀 다른 과일의 풍미를 더 하는 소스였으니까.
다른 토마토였다면, 이 맛이 나지 않았을 거다.
이 토마토는 주인공은 될 수 없지만.
최고의 조연이었다.
“선택하시겠어요?”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었다.
어느 쪽을 고를까?
토마토 자체의 맛만 본다면, 두말없이 전자다. 하지만 후자는 희귀하고 시장에도 없는 종이었다.
과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사라져도 되는 걸까?
셰프인 페르난도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재료는 소중하다.
그다음 요리도, 그다음 요리도.
페르난도는 계속하여 2가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때로는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고, 때로는 쉬운 선택이기도 했다.
단순하게 자신의 취향을 되짚어보는 메뉴도 있는가 하면, 새로운 재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한 끼였다.
‘과연··· 그런 것이군.’
그제야 페르난도는 한길의 방향성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카키가 다가왔다.
“다 드셨나요?”
중요한 발표의 시간이었다.
#
“훌륭한 요리였네. 과연 내 제자다···라는 생각이 들었지.”
페르난도는 카키와 소소한 칭찬과 잡담을 나눈 후, 본론을 꺼냈다.
“자네, 내가 한때 요리계의 황제라고 불렸다는 걸 알고 있나?”
“로부숑의 후계자 아니었나요?”
“그렇지. 지금의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로부숑은 한때 요리계의 황제라고 불렸던 인물이네. 그리고 그 황제가 은퇴하면서, 나를 후계자라 지목했었지.”
카키는 이미 이 얘기를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페르난도는 이 얘기를 카키를 향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카키 채널을 시청하는 시청자들.
평범한 대중과 미식가들, 셰프들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나는 로부숑의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이 없네. 로부숑은 내 손님이었지. 그런데 수많은 제자를 제쳐두고, 로부숑은 나를 후계자로 지목했었네.”
“그 이유가 뭔가요?”
“그분의 말을 그대로 전하면 ‘내 제자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요리사지만, 자네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이라고 했었지.”
진짜···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시대가 변할 때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열었던 요리사들이 항상 있었네. 로부숑은 포스트 누벨 퀴진의 시대를 열었지.”
로부숑의 시대에는, 아직 전통 레시피에 얽매여 과한 재료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시대에, 로부숑은 미니멀리즘을 강조했다.
실력 있는 요리사의 손에서는 감자, 소금, 우유, 버터만으로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고.
<재료의 맛에 집중하라.>
그게 로부숑의 매시지였다.
지금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요리에 불가능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지. 클래식 요리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하라고.”
바텐더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써도 되고, 신기한 과학 기술을 접목해도 된다. 식감을 비틀어도 되고, 맛과 식감을 뒤집어도 된다.
<불가능은 없다. 무엇이든 해봐라.>
그것이 페르난도의 메시지였다.
어쩌면 그래서 후계자를 찾는 게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요리를 만들어도 <불가능은 없다. 무엇이든 해봐라>의 범주에 들어가니까.
야생 잡초를 채집해서 요리를 만들어도 페르난도의 연장선이었고. 전통 요리를 뒤짚어도 페르난도의 연장선이었고. 새로운 기술을 발굴해도 페르난도의 연장선이었다.
그런데
한길은··· 자신만의 메시지를 찾았다.
<미식은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해야 한다. 네가 직접 경험하고 선택하라>
<미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 있다>
아마 이 두 가지가 아닐까.
과거의 요리사들이 요리만 보고 있었다면, 한길은 더 나아가 미식을 보고 있었다.
각자의 가치와 취향에 따라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확실히 요즘 시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한 게 아니었다.
과거에는 미식을 공부해야 했다.
격식을 갖춰야 하고 규범을 따라야 했다.
전채와 샐러드와 메인을 먹는 순서를 공부하고, 수많은 포크 중 어느 것을 먼저 사용할지 배워야 하고, 와인과 관련된 지식을 달달 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르난도는 규칙을 따르지 않았지만, 선택권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 대중은 제대로 알지 못할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길은···
지식을 모두 사전에 전달하고, 선택하라고 하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를 살 때, 모든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자신이 원하는 기종을 선택하듯이.
미식도 모든 정보를 사전에 주고, 직접 경험한 후 선택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런 자세는 확실히,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다웠다.
“페르난도?”
“아, 미안하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페르난도를 표정을 추스르고 미소를 지었다.
“어디까지 말했던가? 아, 그렇군.”
페르난도는 다시 한번 목청을 다듬었다.
“나는 내가 은퇴할 때가 되면, 다음 후계자를 내 손으로 고르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나 다음으로 미식계를 이끌어갈 황제를 내 손으로 정하자고. 그리고··· 드디어 찾았네.”
이제부터 모든 셰프들이 우러러봐야하는 황제는···
“내 후계자는 이한길이네.”
막상 선언하고 나니, 기쁘면서도 허전해졌다.
고작 그 몇 초 사이에 뒷방 늙은이가 된 기분이었다.
“오오! 저희 셰프가! 다들 들었나요?”
카키는 스마트폰 속 사람들을 향해 열심히 떠드는 중이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일일이 대꾸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카키는 페르난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페르난도, 저 질문이 있는데요.”
카키는 어딘가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표정을···.
카키의 표정은, 얄미운 제자가 ‘조건이 있습니다’는 말을 꺼낼 때 보이는 표정과 똑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