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4화(4/325)
< 4. 비 오는 날엔? >
가게로 돌아온 루시아는 텅 빈 카운터를 보고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항상 게으름을 피우는 마르쿠스가 역시나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혼을 낼 생각으로 주방으로 향하는데, 때마침 마르쿠스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항상 자리는……”
소리를 지르던 루시아가 갑자기 말을 잃었다.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
어디선가 고소한 향이 났는데, 그 향을 맡자마자 절로 입안에 침이 고여와서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한번 드셔 보실래요?”
마르쿠스의 몸을 빌린 한길이 부드럽게 웃으며 루시아의 앞으로 접시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파전이 여러 장 겹쳐 있었다.
“실수로 항아리를 옮기다가 음식을 쏟아버려서 다른 걸 만들어 봤어요.”
한길이 준비된 핑계를 댔지만, 루시아는 듣고 있지 않았다. 입을 반쯤 벌린 채로 파전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홀린 듯이 손을 내밀었지만, 한길은 단호하게 그 손등을 쳐냈다.
“먹어보라며?”
루시아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쭉거렸다.
“따로 덜어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루시아는 못마땅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 냄새를 맡으면서 참고 있으라니!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한길이 파전을 다시 건네주는 데에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1년도 더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앗, 뜨거워!”
파전은 생각보다 뜨거웠지만, 루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달려들었다.
주우욱!
전을 길게 찢자, 속에 가둬진 열이 탈출하면서 더욱 많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농밀한 향을 머금은 연기가 코안에 들어오자, 더는 참을 수 없어졌다.
한 조각을 입에 넣자,
바삭!
잘 구워진 가장자리가 기분 좋게 바스러졌다.
‘뭐지?’
식감에 놀랄 틈은 없었다.
달달한 파 향이 입안을 휩쓸었다.
눈을 감으며 그 맛을 음미하고 있는데, 숨어 있던 버섯이 씹히면서 그윽한 향의 즙이 뿜어져 나왔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루시아는 다시 전을 길게 찢어서 입에 욱여넣었다. 한번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떤가요?”
루시아는 아무 답이 없었지만, 한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루시아가 당신의 요리에 행복감을 느낍니다.] [15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그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창이 떴기 때문이다.
‘식당 주인 이름이 루시아인가?’
걸신이라도 들린 듯, 허겁지겁 먹는 루시아의 모습을 보니 한길도 안심이 되었다.
‘로마인들 입맛에도 맞나 보네.’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루시아의 반응을 보니, 제한 시간 내에 30인분을 파는 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
파전을 팔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한길은 주방으로 돌아가 서둘러 반죽을 준비했다.
우선은 물에 밀가루를 풀고 잘 개어 준 후, 파를 썰어 반죽 안에 넣었다.
다음은 버섯.
‘지금쯤이면 맛이 제대로 뱄겠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 버섯은 갈색 액체에 재워둔 상태였다.
새끼손가락을 액체에 살짝 담가 맛을 보니, 짭조름하면서 혀가 아릴 정도의 강한 향이 났다.
[가룸(4등급)은 이미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품명: 가룸(Garum)
등급: 4
원산지: 볼로니아, 스페인
가격: 150 고르메 포인트.
정보: 고등어를 허브와 소금에 절여 60일간 숙성한 로마식 액젓입니다. 소금 대신 사용하는 조미료입니다.
+
날생선을 삭힌 조미료라 비린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비린내는 열이 가해지면서 날아갔다.
맛은 액젓보다는 우스터소스를 더한 것과 비슷했다. 버섯 자체의 풍미를 끌어올리며 전체적으로 간을 더해줬다.
‘원래는 해물파전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쉬운 대로 버섯을 썼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버섯은 수분이 많은 데다가 쫄깃한 식감이 오징어와 제법 유사했다. 가룸 소스에 절여놓으니, 해산물에 비할만한 감칠맛까지 돌았다.
반죽을 완성한 후 다시 식당 홀로 나오자,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건 왜 들고나왔어?”
“밖에서 조리하려고요.”
“밖에서?”
한길이 그릴을 들고나오자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주방은 환기가 잘 안 되더라고요. 손님들이 맡기에 나쁜 냄새도 아니고.”
“아!”
한길의 말에 루시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녀 역시 깨달은 거다.
파전의 향은 그 자체로도 사람을 끌어모으는 마력이 있다는 사실을.
‘그럼 시작해 볼까?’
한길은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국자 한가득 반죽을 담아 떨어트렸다.
치이이이!
기다렸다는 듯이 팬이 격하게 환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와 지글지글 끓는 기름 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주위에 울려 퍼졌다.
파전의 가장자리가 맛깔스러운 황금빛을 띨 때 즈음, 한길은 팬을 살짝 흔들어 준 후 힘차게 튕겼다.
휙!
동그란 전이 그대로 공중에 부양했다.
“안 돼!”
숨죽여 지켜보던 루시아가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파전은 공중에서 반 바퀴를 돌고 프라이팬 안에 무사히 안착했다.
“어?!”
약간의 퍼포먼스였다.
루시아뿐 아니라,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길은 곁눈질로 몇몇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성공이네.’
일단 가까이 오기만 하면 된다.
파전의 향이 닿는 사정거리 안으로.
첫 주문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건 얼마죠?”
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파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
‘오늘은 뭘 사 가지? 아피아가 뭘 좋아할까?’
아직 신혼 1개월 차인 가이우스는 아내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여느 평민이 그렇듯, 가이우스 부부가 사는 인슐라(insula: 로마식 공동주택)에는 주방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 점심은 간단하게 빵이나 치즈로 때우고, 저녁은 식당에서 따뜻한 음식을 포장해 갔다.
‘어제는 죽을 먹었으니까 오늘은 조금 든든한 걸 찾아볼까?’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리던 중, 가이우스의 눈에 특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프라이팬을 들고 묘기를 부리는 남자.
‘뭘 하는 거지?’
다가가서 보니, 남자는 팬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고소하면서도 기름진 향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적당한 거리에서 잠깐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가이우스는 어느새 자석에 끌리듯 식당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건 얼마죠?”
“4 애스(as)입니다.”
“하나만 주세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문까지 넣고 있었다.
4 애스면 동화 네 잎.
한 끼 지출로는 가격이 센 편이었지만,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가이우스는 목수였고, 일반 노동자보다 수입이 좋았다. 4 애스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었다.
그것보다, 지금은 당장 저 요리를 맛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말라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갖다 드릴게요.”
“괜찮다면 여기 서 있어도 될까요?”
“비를 맞을 텐데요?”
“다 그쳤는데요, 뭘.”
아직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옷은 젖으면 말리면 그만이다.
그보다는 이 소리를, 이 향을, 노릇하게 구워지는 팬케이크를 계속 감상하고 싶었다.
지글지글.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황금빛으로 구워지는 팬케이크는 가이우스의 시각은 물론, 후각과 청각까지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꿀꺽.
목젖이 울릴 정도로 침을 삼키며 기다리는데도, 요리사는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보다 못한 루시아가 팔꿈치로 한길을 찌르며 눈치를 주었다.
“손님 기다리잖아?”
“아직 속이 덜 익었어요. 덜 익은 파전만큼 실망스러운 건 없거든요.”
망해가는 식당의 요리사인 주제에, 쓸데없이 까다로웠다. 일부터 애를 태우는 건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파전이 올려진 그릇을 받아들자, 방금 전까지 느낀 원망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잠깐 맛만 볼까? 맛이 없으면 아피아가 실망할 테니까.’
가이우스는 핑계를 대며 빈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엉덩이가 좌석에 닿기도 전에 파전의 끝부분을 살짝 뜯어 입안에 넣었다.
“으음!”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까부터 맡아온 향이 그대로 농축된 맛.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구석구석 채웠다.
혀끝에서 시작된 만족감은 혈관을 타고 온몸에 스며들었다.
‘이건 귀족 요리 같잖아?’
가이우스는 살면서 딱 한 번, 이 정도로 황홀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무역선을 건조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귀족의 집에 초청을 받았을 때.
지금 먹는 팬케이크는 그때 먹은 요리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했다.
‘언제 다 먹었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아 있는 파전은 없었다.
가이우스는 빈 접시를 바라보며 전에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미련이 남았다.
“저, 방금 그거.”
“파전이요?”
“네, 파전 하나만 더 주세요.”
추가 주문을 했지만, 루시아는 고갯짓으로 가게 밖을 가리켰다.
“선착순이니까 줄을 서야 해요.”
“줄?”
어느새 식당 앞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무아지경이 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몰랐던 거다.
요리사가 굽는 속도를 생각하면, 기다리는데 한참은 걸릴 거다.
아직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음식이 나올 때 즈음이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터.
게다가 가격도 너무 비싸다.
여러모로 보나 그냥 집으로 가는 게 옳은 선택이다.
분명 그런데……
그럴 텐데……
가이우스의 발은 줄의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아피아도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그제야 다시 아내 생각이 났다.
가이우스를 기다리며 배를 곯고 있을 아내가.
파전을 사가면 순식간에 먹어 치우겠지.
가이우스는 손을 들어 다시 루시아를 불렀다.
“추가 주문을 두 개로 바꿀게요. 한 개는 먹고 가고, 하나는 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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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전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식당은 다시 텅텅 비어버렸다.
“피곤하지?”
루시아가 흐뭇한 표정으로 다가와 한길의 팔을 주물렀다.
한길의 손은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그릴은 강약조절이 안 되니 약한 불이 필요하면 직접 프라이팬을 적정거리만큼 떨어트리며 들고 있어야 했다.
두 시간이나 그러자니 손이 버티질 못했다.
“이런 레시피를 숨기고 있었다니, 미리 말을 해 주지! 내일도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루시아는 잔뜩 흥분하며 계획을 세웠지만, 한길은 답을 할 수 없었다.
내일은 이곳에 없을 테니까.
“혹시 뒷정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 뒷방에 가서 쉬고 있어.”
시간이 종료되는 순간에는 혼자 있는 게 좋은 것 같아 주방에 연결된 뒷방에 들어갔다.
마르쿠스가 생활하는 공간 같았는데, 허름한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방이었다.
침대에 눕자 얼마 후 창이 다시 떴다.
[제한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다시 한번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감각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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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한길은 축축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보이는 건 익숙한 셔터.
한스키친이다.
‘돌아온 건가?’
일어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려 스마트폰을 꺼냈다.
시간은 저녁 10시.
가게를 나왔던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튜토리얼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 총 52인분의 요리를 판매했습니다.
– 퀘스트 보상으로 1,50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초과 판매량으로 인해 건당 50 포인트, 총 1,10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고객 만족도로 인해 1,04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총 3,640 고르메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획득한 포인트는 상점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상점을 여시겠습니까? Y/N]동의를 하자, 온라인 쇼핑물 같은 창이 떴다.
상단에는 여러 항목의 탭이 있었는데, [식재료]라고 적힌 탭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식재료] 페이지에 등록된 아이템은 단 두 개.가룸과 올리브유.
그 아래에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수량 체크 박스가 있었다.
한길은 우선 가룸을 한 단지 주문했다.
처음 맛보는 조미료라 궁금증이 일었는데, 실험 삼아 지금 만드는 메뉴에 한 번 사용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대망의 올리브유.
‘몇 개를 주문하지?’
마음 같아서는 되는 대로 다 주문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직 튜토리얼 단계였다.
나중에 더 좋은 재료가 나타날 수도 있고.
달리 포인트를 써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포인트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두 병만으로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아 결국 여섯 병이나 구매하고 말았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남은 금액은 1,690 고르메 포인트입니다.] [주문하신 물건은 내일 오전 7시에 배송될 예정입니다.]‘내일?’
이왕 판타지 같은 일이 일어날 거면 지금 당장 주면 좋았으련만.
앞으로 9시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막막해졌지만, 실망도 잠시였다.
[히든 스테이지의 정식 등록 절차를 시작합니다.] [등록 가능한 식당은 1개입니다.]+
식당 이름: 한스키친
업종: 퓨전 가정식
위치: 이태원
+
[등록된 식당은 향후 고르메 상점의 정기 배송 서비스 및 주기적 분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Y/N]정기 배송.
그 말에 한길의 심장이 떨려왔다.
답은 당연히 예스.
[다음 퀘스트까지 남은 시간은 48시간입니다.]모든 창이 사라졌다.
남은 건 좌상단에 떠 있는 카운트다운 시계.
그리고 우상단에 있는 작은 집 모양의 아이콘.
집 모양 아이콘을 클릭한다고 생각하니 상점이 다시 열렸다.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다시 주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집까지 걸어가자.’
아직 버스가 다니는 시간이었지만, 직접 두 발로 걷고 싶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 4. 비 오는 날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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