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4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40화(40/325)
< 40. 뒤풀이 >
“성윤 씨, 승호 씨는 이쪽으로 와주세요. 은미 씨와 카키 씨는 어제 하던 대로 해주시고요.”
다음 날 아침.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한길은 개그맨 콤비를 따로 불러냈다.
“이번에는 또 뭘 시키려고요……”
“사장님, 그냥 저희도 요리 가르쳐주면 안 돼요?”
호명을 당한 두 사람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지금껏 따로 불러내서 좋은 일이 없었으니까.
또 잡일을 시킬 거로 생각하는 듯했다.
이번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어제 손님들이 재료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맞아요, 특이한 향이 난다고.”
“그래서, 샐러드에 들어가는 허브가 뭔지 아시나요?”
“……”
“서빙하시는 두 분이 직접 알고 대답을 하셔야 합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 요리가 뭔지 모르면, 왠지 신뢰도가 떨어지니까요.”
그렇게 말한 후, 한길은 허브를 하나 꺼내왔다. 삐죽삐죽하면서 길쭉한 잎이 어딘가 로즈메리와 비슷하게 생긴 허브였다.
“일단, 샐러드드레싱의 독특한 향은 여기 있는 이 세이버리 허브 때문입니다. 세이버리는 여름 세이버리와 겨울 세이버리로 나뉘는데 이건 여름 세이버리에 속하죠. 그리스나 프랑스 요리에서는 지금도 흔히 사용되는 허브인데, 향이 매우 뛰어납니다. 한때 로마에서는 벌집 옆에 이 허브를 키웠다고 해요. 향이 너무 뛰어나서 벌들이 꼬이거든요.”
“이번에는 공부…… 인가요?”
두 사람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잡일을 맡길 때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공부는 아니고 알아두시라는 겁니다.”
“끄응….”
“두 분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식당의 얼굴이니까요. 저희가 주방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손님들이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건 두 분이잖아요?”
내키지 않는 듯, 손만 내려다보며 꼼지락대는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하아…..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사장님, 웰링턴 고기는 왜 먼저 굽는 건가요?”
하나하나, 각 요리에 대해 알려주다 보니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한길은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로마에서, 아피키우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음식은 단순히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거든. 진짜 진귀한 요리는 먹는 경험조차 하나의 맛이 되니까.
아피키우스의 연회에서는, 모든 요리사가 손님들 앞에 서서 일일이 요리의 소개를 했었다.
그 안에 들어간 재료가 얼마나 진귀한지, 자랑하려는 허영심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거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과할 정도로 시적인 표현을 섞어 쓰긴 했지만, 로마 요리사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한길도 그 요리를 한번 맛보고 싶어졌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을 듣다 보면 먹기 전부터 기대감이 생기기도 하고.
아피키우스의 말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너무 내용이 많은데?”
“제 말을 그대로 외워서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내용만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
“어, 그럼 내 식으로 바꿔서 말해도 돼요?”
“물론이죠.”
성윤이 입을 크게 찢으며 씨익 웃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 시간 후에 확인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시험도 아니고!”
투덜대는 두 사람은 식당 홀로 나가더니, 열심히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이 함박은 100% 소고기 함박입니다. 소고기 함박은 퍽퍽하고 별로라고 생각하시죠? 그건 이 함박을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여기에 뭐가 들어간 줄 아세요? 무려! 차돌박이가 들어갔단 말입니다. 네, 그 차돌박이 맞습니다. 고깃집에 가면 굽는, 그 하얀 지방질이 박혀있는 야들야들한 차돌박이. 불판에 올려 구우면 치이이~ 지글지글! 하면서 육즙이 주르륵 흘러내리잖아요? 고소하면서도 연하고. 씹을 때마다 육즙이 줄줄 새어 나오는데 기름지면서도 단맛까지 나잖아요? 그 맛이! 함박으로 빚어졌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함박, 먹어본 적 있어요? 없죠? 거기에 우리 주방장님이 비밀 재료를 추가했단 말이죠. 그런데 신기한 게, 이게 불맛이 그렇게 나요.”
“이 소스도 보통 소스가 아닙니다. 소뼈를 한번 그을려서 그걸로 사골을 우려내고, 거기에 건포도 와인을 넣었어요. 건포도는 포도를 햇살 아래에서 말려서 수분을 제거하니까 단맛이 응축되어 있거든요. 그걸로 와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봐요, 어떤 맛일지. 그 맛이 들어간 소스란 말이죠. 달달한데, 설탕이랑은 차원이 다른 단맛이에요.”
조금 과장이 심하고, 어떻게 보면 약장수 같은 느낌도 없잖았지만, 그런 성향까지 강요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건 정보 전달이니까.
“네, 이 정도면 됐습니다. 잘하시네요.”
“원래 입 터는 게 업이니까요, 크크.”
“그러면 이제 주방에 들어오세요.”
“네?”
“설거지하셔야죠.”
“……”
#
성윤과 승호의 특훈은 효과가 있었다.
아니, 효과가 지나치게 좋았다.
간단한 메뉴 소개, 혹은 손님의 질문에 답할 정도로만 준비를 시킬 셈이었는데.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주문이 너무 안 들어와서 슬그머니 홀을 살피니, 두 사람은 주문을 받는 대신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이 웰렁턴을 감싸는 빵이 그냥 빵이 아닙니다. 크루아상이에요. 이걸 저희가 일일이 손으로 접어서 무려 45층이나 만들었단 말이죠. 그 안에 고기를 굽는 겁니다. 아, 죄송. 그냥 고기가 아니라 안심을 굽는 거죠. 아, 죄송. 그냥 안심이 아니라 한우 안심이죠.”
그 설명을 듣는 테이블뿐 아니라, 옆에 테이블까지 웰링턴을 주문했다.
솔직히 비프 웰링턴은 가격이 센 편이라 많이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손짓 발짓까지 하며 열심히 그 맛을 설명하는 성윤의 말에 ‘어디 한번 먹어나 볼까?‘ 하며 주문을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결국 장사 이틀째는 준비해둔 물량이 완판되었다.
그리고 주방일이 늘었다.
판매를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양을 준비해야 하니까.
사흘째에는 말썽꾸러기 듀오가 작은 반란을 일으켰다.
브레이크타임이 되자마자 손끝 하나도 못 움직이겠다며 테이블에 엎어지고 꿈쩍도 안 한 것.
안심 스테이크를 하나씩 만들어주고 눈앞에 먹이를 흔들고 나서야 그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흘째에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한 명의 중년 손님이 계산하면서, 생각보다 높은 금액에 투덜댄 것이 원인이었다.
“이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싼데? 연예인들 써서 괜히 비싼 값 받는 거 아냐?”
그 말을 성윤이 들어버렸다.
평소라면 웃고 넘겼겠지만, 익숙지 않은 중노동 나흘째. 피로가 극에 달한 성윤은 그 말을 그냥 흘러 넘기지 못했다.
“손님, 그러면 행주로 직접 자리 닦으시고, 설거지해 주시고, 드신 음식의 밑 작업까지 다 하고 가시면 원가만 받을게요.”
“뭐요?”
“말했잖아요, 방금 드신 웰링턴의 빵을 저희가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니까요! 한 번 밀고 냉동고 안에 넣고, 또 한 번 밀고 냉동고 안에 넣어서 굳히고. 그거 하나 만드는 데에만 한 시간 걸렸어요, 빵만!”
많이 억울했는지, 성윤의 눈가가 조금 촉촉해졌다. 다 큰 30대 성인이, 그것도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가 울먹이기까지 하니, 막상 말을 꺼낸 손님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설거지만 하루에 세 시간을 하고, 밥도 두 끼만 먹어요. 저한테 밥 두 끼만 먹는 건 굶는 거예요. 그런데다가 단 10분을 못 앉아 있고 종일 서 있어요. 봐요, 벌써 살이 쭉쭉 빠졌잖아요.”
한길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홀로 달려 나갔을 때는, 손님이 성윤을 위로하는 중이었다.
“원래 젊을 때는 다 사서 고생하는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일이 이리 많은지….”
저녁 장사는 순탄하게 흘러갔고, 준비된 물량도 거의 다 소비되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정신없는 나흘간의 장사가 무사히 끝났다.
#
“제가 큐 사인 드리면 한 번만 더 잘라주세요!”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한길은 따끈따끈한 웰링턴을 썰었다.
“에이, 김이 너무 나왔어. 하나 더 있죠? 이번에는 조금 식힌 후에 할게요.”
장사는 끝났지만, 촬영은 계속되었다.
방송 중간에 찔러 넣을 요리 영상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까탈스러운 카메라 감독의 지시에 따라 웰링턴을 몇 개나 썰고 페이스트리를 만들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녹초가 된 한길에게 채은 작가가 다가왔다.
“사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원하시면 바로 서울로 돌아가는 감독님도 계신데 그 차 타고 가실래요? 아니면 여기서 하루 주무시고 내일 저희랑 같이 가실 수도 있고요.”
“다른…..”
출연진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중간에서 말을 멈췄다.
하루 단위로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들이라면 아마 서둘러 돌아갔을 테지.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 보니, 예상과 달리 시끌벅적했다.
펜션 앞마당에 있는 바비큐장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 진득하게 퍼지는 고기 냄새와 여기저기 보이는 맥주캔과 와인병.
“사장님! 왜 이리 늦게 와요?”
“왜 아직 안 가셨어요?”
“뒤풀이! 우리, 좀 풀어야 할 게 많잖아요?”
성윤이 다가와 한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자리로 끌고 갔다. 다른 출연진들도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것 좀 어떻게 해줘요.”
성윤이 끌고 간 자리에는 해산물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저쪽 식당에서 남은 재료라는데 그냥 구워 먹기는 아까워서. 사장님, 뭐라도 만들어줘요.”
“방금 전까지 요리를 한 사람을 또 요리를 시켜요?”
“이것도 다 자기 업보야, 업보. 이 사람은 더 굴려도 돼.”
티격태격하는 출연진들을 보고 한길은 소매를 걷었다. 안 그래도 한길 역시 미안하던 참이었다. 고맙기도 했고.
초보들이 버티기에는 힘든 나흘이었을 텐데.
“조개가 굉장히 신선하네요. 이건 이대로 구워 먹는 게 가장 맛있을 것 같아요.”
“그러지 말고 뭐든 하나 만들어 줘요.”
그때 한길의 눈에 들어온 건, 새우였다.
두어줌밖에 없긴 했지만, 간단하게 만들기 좋은 요리가 있었다.
감바스.
한길은 주방에 가서 새우를 깨끗이 씻어 손질하고 프라이팬을 하나 들고 다시 나왔다.
바비큐용 그릴에 팬을 얹자, 출연진들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여기서 하시게요?”
숯불에서 요리하면 불 조절이 잘 안되어 불편하긴 했지만, 한길은 이런 상황이 이미 익숙했다. 로마에서 매일 숯불로 요리를 했으니까.
우선은 팬에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준 후, 아직 데워지기 전인 기름에 마늘을 썰어 넣었다. 그리고 중불이 되도록, 팬을 조금 들어 올렸다.
얼마 지나자, 기름이 살살 달궈지면서 마늘향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차그르르르르!
마늘이 황금빛을 띠며 주변에 기포가 생기기 시작할 때. 그리고 얌전하던 마늘이 조금씩 춤추듯 튀어 오를 때, 마늘을 걷어서 별도의 접시에 넣어 두었다.
마늘은 타버리면 텁텁하면서 쓴맛이 나니까.
촤아아악!
마늘 향을 잔뜩 머금은 올리브유 안에 새우를 넣고 이번에는 강한 불에서 볶았다. 투명한 새우살이 하얗게 변할 때, 다시 마늘을 넣고 화이트 와인을 조금 넣어주었다.
센 불로 1분간 알코올 향만 날린 후에는 불에서 내리고 바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
“빵 어딨어, 빵?”
“다른 건 안 그리울 것 같은데 이건 그리울 것 같아….”
완성되자마자 새우는 사라졌다.
신선한 새우는 오도독 소리가 날 정도로 탄력 있게 씹혔다. 마늘 향과 새우의 고소함이 그대로 녹아있는 올리브유에 빵을 찍어 먹는 것도 별미였다.
“다른 것도 시켜보자!”
“굴려야 해, 굴려!”
다들 쌓인 게 많았는지, 연이어 한길에게 새로운 메뉴를 주문했다.
남은 삼겹살로 삼겹살 볶음밥을, 남은 감자로 감자 구이를 만들고. 족히 다섯 개의 메뉴를 더 만들고 나서야 그들의 울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술기운이 올라와서 쓰러진 이들이 많았던 덕분도 있었다.
“사장님, 사장님은 거기서 대체 뭐 하는 거야?”
조금 고요해지나 싶을 때 한길을 찾는 이는 노셰프였다. 벌게진 얼굴에 우렁찬 목소리는 누가 봐도 술주정에 가까웠다.
“솔직히, 사장님. 가망은 있어 보이는데 이태원 골목에 남아서 뭐 하려고? 패기가 있으면 말이야, 그냥 몸뚱아리 하나만 들고 프랑스로 가! 접시닦이부터 시작해서 올라가란 말야!”
“제 나이에 아무것도 없이 프랑스는 못 가죠.”
“아, 가도 요즘은 접시닦이부터 시작 안 하고 요리학교 가서 교수 추천으로 올라가나?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지….”
비틀거리는 노셰프를 맞춰주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사장님이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해도 돼. 그런데 셰프가 되고 싶다면? 셰프도 셰프 경력을 쌓아야 하거든. 이태원에서 백날 장사해봐야 셰프로는 인정을 안 해줘, 안 그래? 오너 셰프? 그건 지들끼리 하는 얘기고. 라인을 한 번도 경험 안 한 놈들이 무슨 셰프야. 패기를 갖고, 그냥 유럽으로 가라니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노셰프가 기절하자, 한길에게 다가오는 또 한명의 인물이 있었다.
카키였다.
생각해 보니, 촬영 내내 카키와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손이 많이 가는 개그맨 콤비, 가끔 긴장을 해서 신경 써야 하는 은미와 달리,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했으니까.
“사장님, 고생 많았네요.”
“아, 카키 씨도요. 요리에 소질 있으신 것 같아요.”
카키는 한길에게 맥주 한 캔을 내밀었다.
그리고 가벼운 대화를 하며 캔이 가벼워질 때 즈음, 카키가 말을 꺼냈다.
“사장님, 전에 내가 한 제안, 아직도 생각 중이에요?”
< 40. 뒤풀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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