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4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41화(41/325)
< 41. 갈증 나는데? >
“제안이요? 분명 그때 거절했을 텐데요?”
“아, 그랬나?”
망설임 없이 말하는 한길을 보며, 카키는 일부러 딴청을 피웠다.
“그때는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거고요, 나도 진지하게 제안한 건 아니었으니까. 다시 제안할게요. 어때요?”
“……”
“나랑 며칠 지내봐서 내 스타일도 대충 파악하셨을 텐데, 난 기본적으로 각자 알아서 최선을 다하자는 스타일입니다.”
카키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한길의 표정을 읽으려 했다.
저 눈빛은 기회가 와서 기뻐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의문이 가득한 눈빛.
“저를 뭘 믿고 사업을 같이하자는 거죠?”
역시 신중했다.
조금 과할 정도로 신중하긴 했지만, 카키 입장에서는 그게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안면을 트자마자 사업성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대부분은 ‘나만 믿으라’며 웃음으로 믿음을 강요했다.
그래서 한길의 태도가 신선했다.
오히려 더 신뢰가 가기도 했고.
“딱히 사장님을 돕고 싶거나 사장님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이번에 건물을 하나 샀거든요. 세를 주는 것보다 사업 한번 해볼까 싶었고, 직접 할 시간이 없으니 믿고 맡길 파트너를 구하고 있었고, 그때 우연히 사장님을 알게 된 것뿐입니다. 그게 다예요.”
“왜 하필 저인가요?”
“사장님 요리가 내 입맛에 맞으니까?”
카키의 답을 듣고도 한길의 의문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 듯했다.
“사장님, 난 그냥 갖고 싶으면 차도 한 대 질러버려요. 이번에는 차 대신 가게 한번 질러보는 거고. 5억 정도까지는 차 한두 대 사는 셈 치고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러던 참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찾은 것뿐이고.”
물론, 카키도 손해를 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한길이 만든 요리의 맛을 알고, 또 가까이서 한길이 주방을 운영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
손해 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내 입장은 그래요. 버리는 셈 치고 5억 정도 투자해서 잘 되면 앞으로 이쪽 사업도 한번 발을 담가 보는 거고, 안 되면 발 빼는 거고.”
“5억……”
입안에 숫자를 웅얼거리는 한길을 보니, 전혀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
“내가 봤을 때 사장님은 조금 더 스케일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 같던데. 큰물에서 놀려면 대범해질 필요가 있는데, 나도 경험해서 알지만…… 계속 통장 잔고만 확인하다 보면 사람이 대범해질 수가 없거든요. 뭐, 어쨌든 생각해 봐요.”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한길이 결정할 일이다.
카키 역시 이왕이면 한길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굳이 싫다는 사람과 억지로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무슨 얘기 중이에요?”
양 볼이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채은이 등장하면서 대화가 끊겼다.
“그냥, 고생했다고요.”
“정말, 두 분 다 고생 많으셨어요! 진짜 최고였어요! 자, 한잔해요!”
채은은 실실거리며 카키와 한길에게 한 캔씩 맥주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대화 주제는 촬영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방송 제대로 나갈 수 있어요? 계속 일만 하고 너무 한 게 없어서….”
“크크, 걱정하지 마세요. 화면으로 보면 또 다르거든요, 크크.”
한길은 걱정이 되어 질문했지만, 채은은 말을 제대로 못 이어갈 정도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방송은 3주 후니까! 기대하세요!”
#
“오랜만이네.”
고작 나흘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오랜만에 한스키친에 서는 것 같았다.
한길은 우선 주방을 점검했다.
가스레인지의 화구 하나를 줄이고, 그 자리에는 튀김기 두 대를 설치했다. 한쪽에는 수란을 만들기 위한 수비드 기계까지 장만했고.
오픈키친의 카운터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는 오픈 쇼케이스 냉장고를 설치했다.
마치 제과점 케이크 진열장처럼 생긴 냉장고 안에는, 테이크아웃용 샐러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진열할 생각이었다.
주방에 있는 냉장고도 더 큰 것으로 바꿨지만……
“작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다고 생각했던 냉장고가 작아 보였다.
촬영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주방제품은 협찬을 받은 최신형 제품들이었다.
요리하는 이에게는 꿈의 주방이었다.
머릿속에 상상하기만 하면, 그 어떤 요리도 만들 수 있는 환경.
그에 비하면, 한스키친의 주방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방송 한번 나갔다고 바람이 들었나?’
한길은 크게 숨을 내쉰 후, 새로 도착한 재료들을 텅 빈 냉장고 안에 넣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건, 7시에 오는 고르메 상점의 재료들.
어제저녁에 주문한 재료들이다.
그 외에도 닭고기, 채소 등 납품받은 재료들이 속속히 도착하는 대로 냉장고를 채웠다.
치킨버거에 필요한 타르타르 소스를 만들고, 치킨용 반죽을 만들고. 샐러드드레싱도 새로 만들었다.
시간이 남아 크루통도 미리 만들어두고 싶었지만, 오늘은 빵이 배달되지 않았다.
가게를 내일부터 오픈하기로 했는데, 영업일이 아니면 빵은 배송되지 않았다.
‘할 게 없네……’
이상하게 한가했다.
그리고.
허전했다.
‘이 김에 웰링턴을 다시 만들어 볼까?’
한길은 스스로를 다시 채찍질하며 요리로 주의를 돌렸다.
한길이 만든 비프 웰링턴은 영국식이었다.
조금 더 자신이 가진 재료의 향을 추가하고 싶었다. 지중해풍 느낌이 나도록.
‘그걸 한번 해볼까?’
한참을 고민하던 한길은 다시 냉장고를 열고 재료를 꺼냈다.
밀가루, 계란, 우유, 소금을 섞어서 걸쭉한 반죽을 만들고, 그 안에 세이버리 허브를 조금 넣어 보았다.
크레페(crepe)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지중해 허브 맛이 나는 크레페를.
지금 만든 비프 웰링턴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수분 조절.
웰링턴에 사용되는 버섯 페이스트는 한번 볶아서 수분기를 날렸지만, 그럼에도 오븐에 들어가면 버섯에서 다시 수분이 생겼다.
소고기가 구워지며 나오는 육즙까지 더해지면, 페이스트리의 아랫부분이 조금씩 젖어 들었다.
페이스트리의 층이 제법 있어 눅눅해지진 않았지만, 크레페 한 장을 추가하면 버섯의 물기와 고기의 육즙이 페이스트리를 침투하는 걸 조금 더 확실히 막을 수 있다.
그러면서 지중해 향도 추가하고.
‘일단 한번 해서 맛을 비교해 봐야지.’
한길은 세이버리 향이 솔솔 나는 크레페를 몇 장을 이용해서 비프 웰링턴을 다시 만들어 보았다.
김밥을 말 듯, 크레페를 깔아두고 잘 익힌 고기와 버섯 페이스트를 올리고 돌돌 말아준 후, 냉장고에 넣었다.
‘시간도 실험해 봐야지.’
비프 웰링턴은 조리 전에 냉장 보관을 해야 하는 요리다.
표면에 있는 페이스트리는 조리되는데 최소 30분이 걸리지만, 그 안에 있는 고기는 30분이나 오븐 안에서 익히면 너무 익어버린다.
그래서 비프 웰링턴은 일부러 냉장된 상태에서 오븐에 넣는다. 페이스트리 안에 있는 고기가 뒤늦게 익도록.
촬영 중에는 서둘러 만드느라 온도를 실험해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냉장 시간을 조금씩 조절해서 가장 좋은 식감을 내는 온도를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웰링턴을 냉장고에 넣고 나니, 또다시 허전함이 찾아왔다. 또 뭘 하지 고민을 하는 찰나에 슬아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촬영은 잘했어요?”
“오늘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왔어?”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린 거예요, 궁금해서.”
슬아는 오자마자 킁킁대며 주방에서 나는 냄새부터 맡기 시작했다.
“뭐 만들어요? 팬케이크?”
“팬케이크는 아니고, 크레페. 조금 먹어볼래?”
“제가 먹는 걸 거절할 인간은 아니죠!”
아직 크레페 반죽은 한가득 남아 있었다.
한길은 약한 불에서 프라이팬이 달궈질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부터 강한 불을 사용하면, 팬의 온도가 너무 강해져 크레페를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적당히 열기가 느껴질 때 즈음, 버터를 조금 넣어 팬을 골고루 기름칠했다.
츠으으으!
반질반질한 팬 위에 반죽을 넣고, 팬을 살짝 기울여가며 동그란 밀가루 전을 만들어냈다.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기다림의 시간.
비눗방울처럼, 조금씩 반죽이 부풀어 오르다가 잠잠해질 때.
반죽의 윤기가 사라지면서 귤껍질 같은 작은 구멍이 송송 생길 때.
가장자리가 옅은 갈색을 띠는 그 순간, 뒤집는다.
츠으으으!
불이 약해 소리는 크게 나지 않는다.
한쪽 면이 제대로 구워졌으니, 반대편은 살짝 익혀만 주면 완성.
남은 반죽을 전부 사용하니, 스무 장도 넘는 크레페 탑이 쌓여버렸다.
과일이나 생크림, 초콜릿 크림 등.
곁들일 속 재료가 없긴 했지만.
‘그냥 클래식으로 갈까?’
서걱!
레몬을 반으로 썰어서 크레페 위에 신선한 레몬즙을 뿌렸다.
그 위에 하얀 설탕을 솔솔 얹어 주었다.
종잇장같이 얇은 크레페를 여러번 접어 부채모양을 만들자, 갈색으로 얇게 구워진 가장자리가 겹치면서 레이스 같은 모양을 이뤘다.
“윽… 뭐야, 생크림 없어요?”
“없어. 이것도 생각보다 맛있으니까 한번 먹어봐.”
“아무것도 안 들어가면 그냥 밀가루 전병 아니에요?”
슬아는 장난스레 불평을 터트렸지만, 속으로는 기대하고 있었다.
한길이 만든 것 중, 정말로 실망을 한 요리는 없었으니까.
‘…!’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얇디얇은 크레페는, 두툼한 팬케이크와는 달리, 가볍게 폭신했다.
그 맛은 조금 독특했다.
마치 마카롱을 먹는 듯한, 앙증맞은 디저트 같은 느낌.
레몬즙의 날카로움을 설탕이 녹여주고, 설탕의 단맛을 레몬즙이 순화시켜서 부드럽고 은은한 산미가 느껴졌다.
새콤달콤했지만, 새콤함 쪽으로 조금 저울이 기울어져 있었다.
배를 채우기 위한 요리는 아니었다.
산뜻하게, 잠깐 기분만 띄워주는 요리.
맛만 보면 레몬 케이크와도 유사했지만, 케이크보다 가볍고 입안에서 깔끔하게 떨어지는 식감이었다.
그 가벼움이 매력적이었다.
“사장님은 이런 건 또 어디서 보고 만들었대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즐겁게 디저트 타임을 갖는 슬아였지만, 한길은 슬아를 재촉했다.
“빨리 먹고 정리해. 조금 있으면 면접 볼 거니까.”
“면접이요?”
“주방 직원.”
오후 내내, 몇 명의 지원자 면접을 보고 그 중 성실해 보이는 직원 한 명을 뽑았다.
그 이후로는 바쁜 나날이었다.
직원에게 치킨버거와 수란 샌드위치의 레시피를 알려주고, 장사도 다시 시작했다.
장비 업그레이드와 직원을 충원한 덕분에 버거 판매량도 늘릴 수 있었다.
여전히 많은 손님이 한스키친을 찾아왔고, 주문을 처리하는 데에만 매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중이 안 되었다.
계속 머릿속에 안개가 낀 기분.
뒤풀이에서 카키와 노셰프가 했던 말들이 계속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 가망은 있어 보이는데, 이태원 골목에 남아서 뭐 하려고?
– 사장님은 조금 더 스케일을 키울 필요가 있을 것 같던데. 큰물에서 놀려면 대범해질 필요가 있는데,
방송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다.
바쁘면 생각나지 않겠지…..라고.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이 이상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방이 그리웠다.
식당이 아닌, 셰프의 주방이.
날이 갈수록 속이 답답하게 꽉 막혀왔다.
목이 타는 것 같은 갈증이 느껴졌다.
‘퀘스트는 언제지?’
아피키우스의 주방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 전쟁터 같은 주방이.
퀘스트까지 남은 기간은 아직 이틀.
갈증은 갈수록 몸에 쌓여가고 있었다.
결국, 한길은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전에 했던 제안, 아직 유효한가요?”
#
“빨리 오셨네요?”
“공연 없을 때는 한가해요.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럼, 가볼래요?”
카키는 한길의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 예의상 나누는 대화를 생략하고 바로 자신의 건물로 한길을 건물로 안내했다.
카키의 건물은,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에 있었다.
자리는 1층.
주차공간은 없었지만, 공영주차장까지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어때요?”
“넓네요. 이전에는 여기서 무슨 장사를 했나요?”
“글쎄, 피자집인가 그랬던 것 같던데.”
정확히 몇 평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넓었다.
주방은 다섯 명은 족히 움직일 수 있는 크기.
그것만으로도 설레었다.
다섯 명이 일한다면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이 정도 규모의 가게에서는 메뉴가 몇 개나 필요할까?
풀코스 요리를 시도해 볼 수 있나?
그러려면 메뉴는 앞으로 몇 개를 개발해야 하나?
절로 머릿속에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생겨나고 있었다.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모두 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두렵기보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혈관을 타고 퍼졌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한길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표정을 보고 카키가 다가와서 씨익 웃었다.
“사장님, 우리 방송, 3주 후잖아요?”
“아, 네.”
“그때 맞춰서 오픈하고 싶은데. 그 전이면 더 좋고. 어때요?”
< 41. 갈증 나는데? > 끝
ⓒ 글망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