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4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46화(46/325)
< 46. 빨리 생각해 >
“그 빌어먹을 자식.”
아피키우스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실실거리며 필록제노스를 부추기던 사위, 세야누스를 생각하니 씹어 먹어도 시원찮았다.
세야누스는 원래부터 야망이 많은 남자였다. 사내는 야망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여 애지중지하는 딸과도 맺어주었건만.
갈수록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필록제노스라니, 이건 정말 예상도 못 했군.’
가끔 사위가 필록제노스의 집에 찾아간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필록제노스는 딱히 영향력 있는 귀족이 아니었으니까.
재력은 있지만, 로마에는 재력만 있는 귀족이 치일 정도로 많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아피키우스에게는 이보다 위험한 인물도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귀족들의 집을 전전하는 노인.
심지어 남의 집에 들어가서 내내 먹는 얘기만 하는 노인.
소문을 퍼트리는데 이보다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만약 오늘 저녁에 허접한 부산물 요리가 나갔다면? 로마에 어떤 소문이 퍼졌을까?
잘은 몰라도, 아피키우스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는 말은 분명 나왔을 터.
그리고 거기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을 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상상만으로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아피키우스의 권력은 식탁에서 왔다.
그 누구보다 세련되고 교양있는 요리를 만드는 미식가라는 평판.
그 평판 덕분에 로마의 모든 귀족이 자신의 초청장을 기다렸다. 유명한 귀족과 같은 날에 초대를 해달라며 선물을 보내오는 이들도 많았다. 아피키우스는 그런 사람들을 엮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미식가의 평판에 금이 가면, 아피키우스에게는 치명적이다.
‘내가 자리에 없어도 주방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해.’
오늘처럼 자신이 나설 수 없는 상황에도, 평소의 퀄리티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믿고 맡길 만한 인물이 없었다.
총주방장으로 자주 임명하는 타이투스는, 10년 넘게 아피키우스의 밑에서 일해 왔기에 아피키우스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경력도 있고 노련하고, 사람도 잘 다룬다.
나름의 장점도 많지만, 머리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지시를 내리면 그대로 따르겠지만, 알아서 연회를 기획하고 주방을 이끌 그릇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가능성이 보이는 건……
“주인님.”
그때,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허름한 차림새지만 눈동자만큼은 똘똘한 청년. 주방에 심어놓은 아피키우스의 심복, 마이누스다.
마이누스에게는 마르쿠스를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마이누스는 그 보고를 하기 위해 사람들 눈을 피해 찾아온 거고.
“….. 상황이 닥치자마자 직접 메인 요리 두 개를 맡겨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돌판을 구해오라고 하고, 만두를 만들 때까지도 거의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는 시간은 아마 10분도 안 되었을 겁니다.”
순발력도 있고, 요리 실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피키우스마저 감탄시키는 새로운 맛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주방을 지휘할 순 없다.
“아, 그리고 루시우스의 천 겹의 날개 도시락 요리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함께?”
“루시우스 쪽에서 먼저 다가와서 마르쿠스에게 묻더군요.”
“그 루시우스가?”
루시우스는 재능있는 제빵사였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자존심도 세고, 성격도 좋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루시우스가……
자진해서 도움을 요청하다니……
“그리고 또 있나?”
“흠, 그러고 보니, 마르쿠스는 다른 이들의 요리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기하는 시간에는 항상 주방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조리대를 기웃거리거든요.”
주방의 전체 흐름에 관심이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적어도, 나무보다는 숲을 보려 하고, 요리보다는 코스를 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그게…..”
마이누스가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듯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이건 중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이상한 버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상한 버릇?”
“남의 조리대에 있는 음식을 주워 먹습니다.”
“주워 먹는다고?”
“배가 고파서는 아닌 것 같고…. 그냥 허브 이파리 한두 개, 식초를 찍어 먹는다든지, 대추 한 알을 주워 먹던지 그렇습니다.”
“창고에서 안 가져오고 굳이 남의 조리대에서?”
“네.”
“…… 아마 처음 보는 향신료라 맛이 궁금한 거겠지. 어떻게 사용할지 말을 안하면 창고에서 선뜻 재료를 퍼주진 않으니까.“
아직은 미숙하다.
서민 식당 출신이니 경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미숙한 자가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으면, 주방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타고난 자는 있기 마련.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한번 시험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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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지각할 뻔했네.”
“한 시간만 걸린다면서요.”
“마차가 이리 안 잡힐지, 내가 알았나?”
루시우스와 신전에 들렀다 저택에 도착하니, 집합 시간을 겨우 5 분 남기고 있었다.
간신히 지각을 면하고 숨을 고르는 중, 예상치 못하는 인물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이 시간에 여길 오는 건 오랜만이군.”
아피키우스였다.
아피키우스가 오전에 주방에 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연회장에서 점심 요리를 맛보고, 수정사항이나 연회를 준비할 일이 있으면 오후에야 주방에 들어왔었다.
다른 요리사들도 당황하는 걸 보니, 자주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주방 입구를 막고 여기 있는 인원 외에는 출입을 금해. 혹여라도 내가 주방에 있다는 건 다른 노예들도 모르게 하고.”
“네.”
“그리고 세야누스와 아피키타, 필록제노스는 여기서 반대편에 있는 정원으로 안내해. 점심도 거기서 하는 거로 준비하고.”
아피키우스가 상세한 지시를 내리는 사이, 재료를 짊어진 노예들이 주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사가 나가자마자, 아피키우스는 시선을 한길에게로 돌렸다.
“마르쿠스, 오늘은 자네가 내 손이 되어줘야겠네. 타이투스, 자네도.”
“네.”
호명을 당하자마자 타이투스는 아피키우스의 옆으로 다가가서 각을 잡고 섰다. 드라마에서 가끔 보이는, 대기업 회장님 옆에 서는 직원들처럼.
타이투스가 눈으로 재촉하자, 한길 역시 아피키우스에게로 다가가 어색하게 포즈를 따라 잡았다.
“오늘은 돼지고기가 별로 좋진 않군. 색이 너무 연해….. 대신 해산물은 신선하군.”
아피키우스는 재료 테이블을 살피며 망설임 없이 생고기와 해산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유난히 살이 오른 오징어를 보면서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오늘 점심은 오징어순대랑 가오리, 성게 단지를 하지. 아, 조개도 괜찮으니 조개 스튜도 하나 추가하고. 요리사는 타이투스, 자네가 알아서 배정해.”
아피키우스는 재료를 보는 눈이 있었다.
한길이 보기에도 가장 신선하고 좋은 재료만 선별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마르쿠스, 자네, 해산물은 다룰 줄 아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길은 잠시 고민을 했다.
물론, ‘한길’은 다룰 수 있지만, ‘마르쿠스’가 해산물 요리에 능숙하면 이상해 보일수도 있으니까.
“잘 모르지만, 배워보겠습니다.”
한길의 대답에 아피키우스는 걸걸한 웃음을 지었다.
“내 주방에 서는 이가, 배워보겠다라….. 그래, 배워본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배워보고 싶나?”
아피키우스의 질문이 이어지자, 한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하나의 재료로 향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아피키우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랍스타라, 뭐, 나쁘지 않지. 요리는 타이투스가 하고 마르쿠스는 옆에서 거들도록. 오늘은 랍스타 구이와 크로켓 정도만 해볼까.”
가끔 자동번역 기능이 의아할 때도 있었다.
로마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요리명이 나오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한길뿐이었다.
타이투스는 아피키우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힘차게 움직이는 랍스타 중에 더듬이가 튼실한 놈으로 골라서 팔팔 끓는 물에 삶아내기 시작했다.
랍스타의 껍데기가 새빨갛게 달아오르자, 바로 건져내서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후추와 동글동글한 코리안더(coriander)를 올리브유와 함께 갈아서 소스를 만들고. 삶은 랍스터 속살에 붓으로 소스를 수시로 바르면서 그릴 위에 구워냈다.
‘거의 똑같네?’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쓰고, 코리안더를 사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대에서 먹는 랍스타 구이와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랍스타 크로켓도 마찬가지.
삶은 랍스타의 꼬릿살만 빼내서 잘게 다지고, 랍스타를 삶아낸 물과 후추, 계란을 섞어주었다. 동그랑땡처럼 동글동글하게 빚어낸 작은 경단을 기름을 두른 팬에 지지듯이 구웠다.
완성된 크로켓에는 바질 이파리를 포장지처럼 둘렀다. 손으로 집어먹기 편하도록.
이것도 익숙한 모양새였다.
랍스타 대신 게살을 사용한다면, 외국에서 먹는 크랩 케이크(crab cake)와 상당히 유사했다.
“직접 해볼 수 있겠나?”
관찰하는데 집중하던 한길은, 아피키우스의 목소리에 정신을 다시 차렸다. 아피키우스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눈은 시험하듯 날카로웠다.
“해볼 수 있습니다. 단….”
그의 한쪽 눈썹이 솟아올랐다.
“방법을 달리해도 되겠습니까?”
“하하, 이것 참. 내 방식이 마음에 안 드나 보군. 어디, 원하는 대로 해보게.”
혹여나 기분이 상할까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생각 외로 아피키우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타이투스, 자네는 다른 요리사들을 봐주도록.”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타이투스는 자리를 비웠고, 한길과 아피키우스 단둘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긴장은 되지 않았다.
한길은 일단 랍스타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냄비를 찾고, 그 안에 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냄비 바닥에 작은 접시를 엎어놓고, 그 위에 체를 들고 와서 얹어서 임시 찜기를 만들었다.
“호오….. 수증기의 열기를 이용할 속셈인가 보군.”
옆에서 중얼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 물 안에 넣고 삶으면 랍스타 자체 풍미가 물속으로 빠져나가겠지. 이대로라면 속살에 그 맛이 그대로 응축되겠구먼.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
로마에는 찌는 요리가 없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조리법을, 도구만 보고도 그 의도와 맛에 미치는 영향까지 파악하다니.
역시 역사에 남는 미식가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랍스타 두 마리를 쪄낸 후, 랍스타 구이는 타이투스가 만든 소스를 그대로 활용했다.
한길의 입맛에는 랍스타 버터구이도 맛있었지만, 일전에 루시우스가 버터를 야만인 음식으로 취급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맛에 맞게 올리브유 소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안전해 보였다.
대신 랍스타 크로켓은 굽는 대신, 튀기기로 했다. 크로켓은 뭐니 뭐니 해도 기름에 풍덩 빠트려 튀기는 게 제맛이니까. 일전에 튀김에 대한 아피키우스의 반응도 좋았고.
차그르르르!
반죽 옷을 입힌 랍스타를 커다란 기름 호수에 빠트리자, 아피키우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다가와서 튀겨지는 과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져낸 크로켓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먹어봐도 되나?”
“물론이죠.”
크로켓은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타이투스가 만든 크로켓은 작은 빈대떡 같았지만, 한길이 만든 크로켓은 샛노란 미니 도너츠 같은 외형이었다.
“식감이 좋군. 대신 기름 맛이 강하니 소스를 조금 더 상쾌하게 만들어서 곁들이는게 좋을 것 같고.”
우적대며 랍스타를 순식간에 해치운 아피키우스는, 곧바로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다른 요리들도 완성되었습니다.”
그 사이, 타이투스가 다가왔다.
돌아보니,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아피키우스가 지시한 요리들을 차려져 있었다.
오징어순대라고 불렸던 메뉴는, 왜 순대로 번역이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생김새만으로는 한국식 오징어순대와 비슷해 보였으니까.
고기소와 허브를 양념해서 오징어 속에 채워 넣은 후, 삶아낸 요리였다.
성게 단지는 미니 디저트 같았다.
한 손에 들어가는 적갈색 단지 안에 화이트와인으로 추정되는 액체가 있었고, 그 안에 성게를 삶아낸 요리였다.
가오리 요리는 중국요리에서 자주 보이는 생선찜과 유사했다.
간장 대신 와인과 허브를 졸인 소스를 삶은 가오리 위에 끼얹었는데, 탱탱한 생선살 위에 붉은 소스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제법 먹음직스러워보였다.
해물찜은 관자와 홍합, 굴을 와인에 넣고 쪄낸 요리였다. 토마토만 없을 뿐이지, 벨기에에서 먹는 홍합스튜와 비슷해 보였다.
“음, 나쁘진 않군.”
“이건 견과를 한번 구워서 사용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고.”
“여긴 큐민을 조금 줄여. 너무 강해.”
아피키우스는 차려진 요리를 한입씩 먹어보며 한 줄 평을 했다.
“아예 점심 테마는 바다의 신으로 가도록 하지. 이에 어울리는 샐러드를 준비하고.”
타이투스에게 보다 상세한 지시를 내린 후, 아피키우스는 다시 한길을 돌아보았다.
“자네도 한번 먹어볼 텐가?”
“네?”
“내가 먹다 남은 거긴 하지만, 듣자 하니 그런 것에 별로 신경을 쓰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 같았는데.”
오직 한길에게만 시식을 권했다.
요리사들이 부러워하는 듯한 눈빛을 하는걸 보니, 좋은 의미인 것 같긴 한데…..
“방금 보여준 랍스타 조리법처럼, 이 요리들도 조금씩 손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자네는 그런 게 특기인 것 같으니 말일세.”
“그런 거라면, 먹어보고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길의 말에 아피키우스가 다시 크게 웃었다.
“그래, 하지만 빨리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오늘 점심은 자네가 부주방장을 맡을 테니까.”
< 46. 빨리 생각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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