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5화(5/325)
< 5. 거리로 나가다 >
다음날.
한길은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6시 40분.
“언제 잠들었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눈에 보이는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헐레벌떡 가게를 향해 뛰어갔다.
가게 입구에는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보낸 이: BG Company
받는 이: 이한길
BG.
아마도 베스트 고르메의 약자인 듯했다.
심장이 다시 쿵쾅대기 시작했다.
서둘러 가게 문을 열고 상자를 바로 테이블 위로 옮겼다.
급한 마음에 가위를 찾아올 생각도 못 하고 손톱을 세워 테이프를 뜯어냈다.
상자 안에는 작은 단지와 길쭉한 병이 있었다.
단지는 하나.
병은 여섯 개.
한길은 주방으로 달려가 허둥대며 숟가락을 찾아왔다.
숟가락 위에 병의 내용물을 따르자, 익숙한 녹색 액체가 흘러내렸다.
알싸하면서 향긋한 맛.
조기 수확 올리브유의 매혹적인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하하…. 진짜 왔네?”
헛웃음을 내던 한길이 다시 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각은 7시 10분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서두르자.”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앞으로 50분만 있으면 8시.
출근 시간이다.
한길은 그 골든타임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
한길은 주방에 들어가 커다란 스테인 볼을 꺼내고 그 안에 올리브유를 아낌없이 왈칵 부었다.
그리고 나머지 재료들을 추가했다.
발사믹 식초, 말린 타임과 오레가노, 마늘 한 스푼.
평범한 발사믹 드레싱이다.
일단은 샐러드를 만들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올리브유를 가장 돋보이게 할 메뉴는 샐러드였으니까.
굳이 복잡한 조리법으로 이 맛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재료가 좋으면, 심플한 요리에서 가장 빛나는 법이다.
그리고 샐러드는 아침에 가볍게 먹기에도 좋았고, 나눠주기에도 좋았다.
‘일단 한번 먹어보면!’
한길은 확신했다.
이 올리브유를 맛본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다시 한번 가게를 찾아올 거라고.
몸소 그 중독성을 체험했기에 알 수 있었다.
‘한번 맛을 볼까?’
작은 볼에 샐러드용 채소를 넣고 드레싱을 버무린 후, 조금만 먹어 보았다.
역시.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올리브유가 좋아서 그런지, 허브와 마늘 향을 부드럽게 녹여주면서 채소 본연의 맛까지 최대치로 끌어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한길 앞에 또다시 창이 떴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발사믹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완성도: 35%
매력: 5
재료: 4
식감: 4
비주얼: 2
+
[완성도 80% 미만의 요리는 메뉴에 등록할 수 없습니다.] [업그레이드 후 다시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이제는 무슨 창이 떠도 놀랍지는 않았다.
그보다……
‘완성도가 35% 라니…..’
무료로 나눠줄 샐러드다 보니, 기본 채소밖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완성도를 높일 시간이 없었다.
한길은 작은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꺼내 그 안에 샐러드용 채소를 담았다. 드레싱은 별도의 동그란 용기에 담은 후, 일일이 테이프로 그 위에 명함을 붙였다.
가게의 이름, 지도와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
일단 준비해 둔 샐러드는 30개.
큰 상자 안에 조심스레 샐러드를 챙겨 넣고, 접이식 테이블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
‘어디에 자리를 잡는 게 좋을까.’
장소 선정에도 살짝 고민이 되었다.
이태원은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지만, 출근 시간에는 한산하다.
상점들이나 카페, 식당이 모여있는 동네이다 보니, 모두 11시 정도 되어서야 문을 연다.
‘우선은 구청 쪽이 좋겠지?’
그나마 가장 많은 직장인이 모여 있는 곳은 구청. 구청 아래로도 몇몇 사무실 건물들이 있었다.
한길은 구청 맞은편에 있는 자투리 공간에 테이블을 펼치고 준비해둔 샐러드를 진열했다. 그리고 흰 종이에 손글씨로 적었다.
「무료로 샐러드 나눠드립니다. – 한스키친」
잠시 후, 서너 명의 직장인들이 한길의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지나갔다.
멈추지도 않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개 여유가 없다.
급한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해서 똑바로 걸어갈 뿐.
모두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보느라 한길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샐러드 무료로 나눠드립니다.”
이번에는 큰소리로 살짝 외쳐 보았다.
한 명의 여성이 한길 쪽을 쳐다보았지만, 바로 고개를 돌리고 지나갔다.
남자들은 샐러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몇몇 여자들은 멋쩍은 웃음만 짓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반응이 없다.
‘이대로면 준비해둔 것도 다 처리 못 하는 거 아냐?’
너무 들뜬 바람에 샐러드 채소를 너무 많이 준비했다. 채소는 – 특히 한번 씻어놓은 채소는 – 오래 보관이 안 된다.
슬슬 걱정이 들던 그때,
“어, 사장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들어보니, 어제 가게를 찾아왔던 연보라였다.
“한스키친 사장님 아니세요?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보라는 제법 정겹게 인사를 걸더니,
“샐러드?”
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이번에 새로 메뉴에 넣어 보려고요.”
“아, 공짜로 나눠주시는 거예요?”
“네, 반응을 보고 싶어서요.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보라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은 8시 20분.
이른 시간이지만, 오늘은 보라가 출근을 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거리에서 느긋하게 샐러드를 맛볼 여유는 없었다.
“드레싱을 조금 달리 해봤거든요. 괜찮으시면 몇 개 가져도 되고요.”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훈훈한 사장이 조심스레 웃으며 묻고 있는데, 거절할 수가 있나.
“정말 그래도 되나요?”
“저야 그러면 감사하죠.”
“흠… 그러면 네 개 주세요!”
보라는 네 개의 포장 용기를 야무지게 탑처럼 쌓아 올리고 안았다.
“이거, 무료로 나눠주시는 건가요?”
그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여성이 다가왔다. 한번 물꼬를 트면 사람들이 다가오기 쉬워진다.
“네,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바쁘시면 들고 가셔도 됩니다.”
#
보라가 사무실에 도착해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8시 30분이었다.
책상 위에는 네 개의 샐러드가 쌓여 있었다.
‘괜히 네 개나 가져왔나?’
사실 보라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샐러드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샐러드라는 건,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니까.
건강을 위해서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서 먹는 거지.
큰길에서 외면당하는 한길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에 많이 챙겨오긴 했지만, 이걸 나눠주려니 또 고민이 생겼다.
‘에휴, 이놈의 오지랖.’
이제 갓 출근한 보라가 사무실에서 친근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민지혜뿐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에는 아직 조금 쑥스러웠다.
첫 직장이라 긴장도 많이 되었고.
‘일단 하나는 내가 먹자.’
보라는 샐러드 통을 열고 포크로 내용물을 살짝 뒤적였다.
‘진짜 정직하게 채소밖에 없네.’
상추와 적양배추, 양파, 방울토마토.
무료로 나눠주는 거니 불평을 할 수도 없지만, 건강한 맛만 날 것 같아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싱 통을 열자마자, 보라는 저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뭐지?”
투명한 용기를 들어 올려 보석 감정을 하듯 그 내용물을 살펴보았지만, 평범한 발사믹 드레싱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동했다.
일단 드레싱을 채소 위에 끼얹고 일회용 포크로 살살 섞어주자, 채소가 윤기 있게 코팅되며 새콤달콤한 향이 올라왔다.
포크로 채소를 콕 찍어 입에 넣자,
“하아….?”
상큼함이 폭발했다.
과즙에서 날 법한 달곰함, 입에 착 감기는 식초의 새콤함, 올리브 특유의 무게감, 채소의 쌉싸름함과 아삭함까지.
이 모든 맛이 한데 어우러져서 혀를 간지럽혔다. 마지막은 희미하게 매콤한 향이 올라와 구미를 당겼다.
“샐러드가 이런 거였어?”
한 번 먹으니 계속 손이 갔다.
아직 노곤한 몸이 깨어나는 듯했다.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기분.
한 입, 또 한 입을 먹는데,
“보라 씨, 뭘 그리 맛있게 먹어?”
어느새 출근했는지, 민지혜가 보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어제도 느낀 거지만, 보라 씨 정말 먹성이 좋네.”
“에이,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냐. 내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던데.”
보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굳이 말하자면 보라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주무관님도 하나 드셔보세요. 장난 아니니까.”
“아니, 뭔 샐러드를 네 개나 가져왔어?”
“이 앞에서 한스키친 사장님이 나눠주시더라고요. 못 보셨어요?”
“아, 난 차 타고 다니니까.”
“어쨌든 한번 드셔보세요! 샐러드의 신세계니까!”
마지못해 하나를 받아든 지혜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 했으나,
“지금 드셔 보시라니까요!”
“크크, 알았어, 알았어.”
보라가 길을 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샐러드 용기를 열고 맛을 보았다.
“어머!”
“어때요?”
눈을 휘둥그레 뜬 지혜를 보고 보라는 이제야 억울함을 풀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거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채소밖에 안 들어간 샐러드가 이렇게 맛있지?”
“그쵸?”
“아니, 진짜로. 사실 레스토랑에서 먹는 게 아니면 샐러드 맛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잖아?”
“윽… 맞아요. 특히 채소는 진짜 심심한데 드레싱은 너무 짜고. 그래서 저도 안 먹거든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건 간이 완벽한데? 과일도 갈아 넣었나?”
“그러기엔 드레싱이 너무 투명하지 않아요?”
한번 시작된 대화는 끊일 줄을 몰랐다.
샐러드에 대한 추리를 이어가는 지혜와 보라를 보고, 다른 여직원이 다가왔다.
“아니, 무슨 샐러드 하나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이에요?”
보라가 어제 인사만 나눴던 여직원.
옆 부서의 노미란 주무관이었다.
나이는 40대 정도.
그나마 30대인 지혜와는 다르게 연령대가 높아 왠지 긴장되었지만,
“한번 드셔보실래요?”
왠지 자신이 생겨 포크를 건네주고 있었다.
“어머? 이건 어디서 난 거예요?”
“맛있죠?”
“정말 색다르다. 별것 안 들어간 것 같은데!”
“그렇죠?”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똑같이 맛있다고 해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
어느새 보라는 옆 부서 직원과 친근하게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뭐가 그리 맛있는데 셋만 몰래 먹고 있어?”
“아, 나도 한 입만 먹어 볼래!”
옆 부서 사람들이 두 명이나 더 다가오는 바람에 보라의 자리에 작은 시식회가 열렸다.
다섯 명이나 되다 보니, 샐러드가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벌써 다 먹었네?”
“별로 양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몇 입 먹지도 않았는데.
감질나도 이렇게 감질날 수가 없었다.
“제가 치울게요.”
보라는 아쉬움을 숨기며 빈 통을 정리했다.
얼굴에 그늘이 졌다.
오늘 점심은 한스키친으로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도 그 말을 꺼냈는데 지혜가 돌려서 거절한 기억이 떠올랐다.
‘잠깐 점심에 볼일 있다고 하고 가서 먹고 올까? 아니, 출근 이틀째인데 그러면 너무 비호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가니, 보라의 자리는 여전히 북적이고 있었다.
“보라 씨, 우리 오늘 점심은 한스키친으로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 거죠?”
“네! 당연하죠!”
보라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내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지금 시간은 9시.
점심시간까지는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
가게로 다시 돌아온 한길은 일단 점심 장사를 위한 재료 손질을 마친 후, 다시 한번 샐러드를 만들어 보았다.
아침에 봤던 35%의 완성도가 신경 쓰였던 까닭이다.
‘확실히…… 많이 부족하네.’
올리브유의 신선함이 가시자, 이런저런 단점이 보였다.
뭔가 씹히는 식감도 부족했고, 아이스버그 상추를 사용했는데 수분기가 너무 많아 심심한 맛이었다.
고소한 향도, 든든한 단백질도 필요했다.
치즈가 들어가도 나쁠 것 없고.
그건 알지만……
‘너무 비싸….’
닭가슴살 하나를 추가하면 원가가 너무 올라간다. 요즘은 채소도 비싸고. 치즈는 금값이다.
한길의 식당 메뉴는 모두 6,500원으로 통일했다. 그렇게라도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그나마 오는 점심 손님들까지 발길을 끊을 거다.
밥값이 6,500원인 식당에서 샐러드값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 걸까.
작은 메모장을 펼쳐놓고 저렴한 재료가 뭐가 있을지 적고 있는데,
“저…. 혹시 오픈하셨나요?”
문을 살짝 열고 그 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여성이 보였다.
시간은 아직 11시 40분.
“네, 물론이죠. 몇 분이시죠?”
“여섯 명인데요.”
“6인석이 따로 없어서 4인석, 2인석에 나눠 앉으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네.”
가게 안으로 우르르 들어온 여자들은 몇 없는 메뉴에 한번 눈길을 주더니 바로 질문을 했다.
“샐러드가 없네요?”
“아직 준비 중인 메뉴라 따로 판매하진 않습니다.”
대놓고 실망을 하는 표정을 보는 순간, 한길은 서둘러 덧붙였다.
“하지만 모든 메뉴에 사이드로 나갈 예정입니다. 조금 넉넉하게 드릴게요.”
주문을 받고 서둘러 주방에 가서 조리하는 동안, 하나둘 손님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장님, 여기 주문이요!”
모든 좌석이 꽉 찼다.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는데.
테이블이 여덟 개뿐이니 엄청난 인원은 아니지만, 이 시간에 한꺼번에 사람이 들이닥치는 일은 처음이었다.
“사장님, 웨이팅은 얼마나 걸리나요?”
심지어 가게 밖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줄까지 서고 있었다.
웨이팅이라니.
개업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 5. 거리로 나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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