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5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51화(51/325)
< 51. 이걸 어떻게 알지? >
“여기에 워크인(walk-in) 냉장고가 있고, 이쪽에 설거지와 재료 손질 공간을 두죠. 조리 공간은 가운데에 아일랜드 형식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한길은 손짓을 동원하며 주방의 설계를 설명하고 있었다.
공사를 책임지는 현장 담당자는 한길이 말한 내용을 토대로 간단한 도면을 그리고 있었고.
“어떤가요?”
“네?”
“최셰프님도 설 주방이니까,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해주셔도 됩니다.”
“아니,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다 좋습니다.”
한길이 돌아보며 최셰프에게 질문했지만, 덧붙일 말이 없었다.
완벽했으니까.
한길이 설계한 주방은, 셰프라면 누구나 환영할 주방이었다.
설거지와 재료 손질 공간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다. 조리 공간은 작업대가 넉넉했고, 그릴이나 오븐까지는 단 두 걸음이면 이동할 수 있었다.
총지휘자의 위치에서는 주방의 모든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전에도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이 있으세요?”
“아뇨, 사실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최셰프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한길을 보고, 최셰프는 오히려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최셰프는 프랑스의 명문 요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교수님 소개로 미슐랭 레스토랑의 주방을 경험해 봤다.
미슐랭 레스토랑은, 셰프가 직접 주방을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인테리어 업자와 세프의 시각은 다르니까.
공간의 효율이 아닌, 업무의 효율을 생각해서 주방을 최적화한다. 요리하는 사람들의 작업 동선과 흐름을 고려해서 설계한다.
한길이 그리는 주방은, 자신이 일했던 레스토랑과 상당히 유사했다.
경험이 없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한두 명의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사 군단이 서는 주방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정말 추가로 의견은 없으신가요?”
“네, 정말…. 완벽합니다.”
최셰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최셰프는 한길을 미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리에 재능은 있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 거라고.
그런데 재능을 과소평가한 모양이었다.
보는 시야가 달랐다.
“혹시 밤까지 시간 괜찮으신가요?”
아직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셰프에게 한길이 다시 질문했다.
“오늘 저녁에 오너에게 메뉴 몇 개를 선보이기로 했는데, 최셰프도 한번 봐줬으면 해서요. 앞으로 함께 만들 요리니까.”
“오너가 따로 있군요.”
“네, 이 장소를 제공해준 분이시죠.”
그제야 의문이 조금 풀렸다.
새로운 레스토랑은 제법 넓었다.
좌석 수는 적어도 60~80석은 나올 터.
한남동에 자리하고 있고, 심지어 공영주차장 맞은편이다.
이 정도 건물이라면, 잘은 몰라도 보증금만 3억은 필요할 거다. 월세는 몇천 만원 단위.
일반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상당한 자산가가 배후에 있는 거다.
그런 자산가가 왜 골목식당 사장과 동업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어 보기에는, 무언가 조심스러웠다.
“음, 시간이 두 시간 남짓밖에 안 남아서 조금 빠듯하네요. 최셰프의 손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든 지요.”
“저랑 처음으로 손을 맞춰보는 거네요. 너무 갑작스러워 죄송합니다.”
“아뇨,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최셰프의 목소리는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들떠 있었다.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일한다는 생각은 갈수록 옅어졌다.
그 자리에, 호기심과 기대감, 설렘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쿠킹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한길은 아일랜드 작업대 위에 들고 온 재료를 꺼냈다.
“일단 오늘은 홍합 스튜와 소렐 수프, 랍스타 구이와 오리구이를 만들 예정입니다. 자세한 레시피는 아직 적어둔 게 없는데, 그냥 말로 설명해 드릴게요.”
한길은 그 후로도 설명을 덧붙였지만, 최셰프는 듣고 있지 않았다.
한길이 꺼낸 재료를 홀리듯이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익숙한 허브였다.
넓적한 녹색 이파리.
언뜻 보면 시금치처럼 생겼지만, 향이 다르다.
“소렐…..”
소렐은 프랑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허브다.
생긴 것도, 조리법도 시금치와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열기가 가해지면 레몬 향이 올라온다.
지나치게 강한 레몬과 달리, 부드러운 레몬 향. 소렐을 살짝 데쳐서 버터, 크림을 넣고 졸이면 부드러우면서 새콤한 소스를 만들 수 있다.
레몬 같은 상쾌함 때문에 해산물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재료다.
최셰프가 프랑스에 있을 당시, 소렐 소스를 곁들인 연어 요리가 잠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소렐은 프랑스 밖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허브라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찾아보면 몇몇 허브 전문점에서 판매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재료다.
“랍스타는 코리안더와 올리브유를 섞은 소스를 사용할 겁니다. 홍합 스튜는 이 와인을 사용하려 하는데요……”
그 말과 함께 한길이 꺼낸 와인은, 조금 특이한 와인이었다.
스트로우 와인 (straw wine).
다른 말로, 건포도 와인이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 만드는 와인으로, 수확한 포도를 밀짚(straw) 위에 올려놓고 건조한 후, 와인을 만든다.
투명한 와인 잔에 조금 따라보니, 황금빛의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렸다.
살짝 입에 머금고 맛을 보니,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달달한 과일 향과 함께 꿀, 아몬드, 캐러멜 향까지 피어올랐다.
좋은 와인이긴 하지만, 주로 디저트 와인으로 마신다. 소스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데……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최셰프는 시키는 대로 홍합 스튜를 만들어 보았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마늘과 양파, 토마토를 넣어 볶아준 후, 손질된 홍합을 넣어준다.
한길이 건네준 허브 조합을 넣고.
마지막에 와인을 적당히 부어준 후, 와인이 반으로 졸여지면 완성이다.
“조금 맛을 봐도 되나요?”
“물론이죠. 하지만 오너가 맛볼 정도는 남겨주셔야 합니다.”
홍합 스튜의 맛은 익숙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와인을 넣어 끓인 스튜는, 기본적으로 재료의 맛이 살아있다. 와인의 알코올이 재료 안에 숨겨진 맛을 끄집어내기 때문에 마치 소금 간을 한 것처럼, 각 재료의 풍미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홍합과 양파, 토마토 향이 도드라진 홍합 스튜에는 또 다른 맛이 더해져 있었다.
은은한 단맛.
혀를 강하게 자극하는 설탕과 달리, 배경에 어슴푸레 스며든 달달함은 입맛을 더욱 돋워 주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어떻게 스트로우 와인을 쓸 생각을 하셨죠?”
“제가 생각해낸 건 아니고, 옛날에 유럽에서는 이렇게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설탕이 없던 시절에 말이죠. 그때는 도자기로 숙성된 와인이라 맛이 진해서 양을 조절하기 힘들었는데, 현대 와인은 훨씬 다듬어져서 좋더라고요. 해물에도, 육류에도 잘 어울립니다.”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범상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셰프는 오래전, 맛보았던 치킨버거를 다시 떠올렸다.
층층이 쌓인 절묘한 맛.
그때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재료까지 공들여서 만들어 냈었는데…..
그 버거를 만든 사람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을 연다.
대체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
순간,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전율이 흘렀다.
한길의 요리는 기대하던 대로였다.
코리안더 랍스타 구이는, 가벼우면서도 풍미가 넘쳤다. 버터처럼 강한 맛은 없지만, 올리브유와 코리안더 향이 부드럽게 랍스타에 녹아들었다.
소렐 수프는 향긋하고 상큼했다.
초밥을 먹는 도중에 생강 절임을 먹듯이, 개운하게 입안을 정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메뉴였다.
“다음은 마지막인 오리구이인데….. 이건 조금 많이 복잡합니다.”
오리구이의 레시피 설명을 들은 최셰프는 그저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조합은 대체 어디서 생각해 내신 건가요?”
“이상한가요?”
“아니, 처음 들어봐서요.”
이토록 창의적인 조합은 본 적이 없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미슐랭 셰프들이나 떠올릴법한 조리법이었다.
“사실은….”
한길은 조금 망설이는듯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고조리서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사용하던 맛을 현대화한 겁니다.”
“로마요?”
“네.”
이탈리아도 아니고 고대 로마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오리구이에 들어가는 품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선, 소스부터 남달랐다.
달짝지근한 과일 소스인데, 재료가 특이했다.
호박과 모과를 각자 퓌레(puree : 야채나 고기 등을 갈아서 체로 걸러내서 걸쭉하게 만든 요리 재료)로 만든다. 그 퓌레에 레몬즙, 오렌지즙, 호박씨, 밤, 월계수 잎을 넣고 끓여준다.
여기에 또 특이한 재료가 들어간다.
사바(saba)라고 불리는, 포도 머스트.
사바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끔 사용되는 재료인데, 발사믹 식초에서 식초 향이 빠진 재료라고 보면 된다.
이 모든 재료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 다음, 사과와 배를 썰어 넣으면 간신히 소스 하나가 완성된다.
그다음에는 오리고기.
오리고기는 껍질이 아직 붙어있는 가슴살을 사용한다.
치이이익!
가장 먼저, 중불에 고기를 올리고 오돌토돌 돋아난 껍질이 약간 단단해질 때까지 굽는다.
껍질의 식감을 살리면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고기에 감칠맛을 한번 두르는 작업이다.
일차적으로 구워낸 오리고기를 오븐에 넣어서 미디엄 레어로 익히면, 껍질은 바삭하면서 속은 야들야들한 오리 스테이크가 나온다.
그 위에 특제 로마식 소스를 바른다.
레몬과 꿀, 사프란, 펜넬, 오렌지, 로바지가 들어간 소스를 오리고기 껍질에 꼼꼼히 바르고 다시 팬에서 강한 불에 구워낸다.
치이이익!
완성된 오리고기는 그 비주얼만으로 군침을 삼키게 했다.
살짝 익힌 스테이크처럼 핑크빛을 머금고 있는 고기는, 짙은 적갈색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반들반들한 오리 껍질은, 얼핏 보면 북경 오리와 비슷했다. 보기만 해도 그 바삭함이 전달되었다.
기름진 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아직 오너가 오려면 시간이 있는데, 저희끼리 먼저 시식해 볼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서둘러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와 고기를 푹 찌르자, 육즙이 줄줄 흘러나왔다.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이, 나이프가 닿자마자 오리고기 스테이크는 저항 없이 갈라졌다. 손끝에 그 연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촉촉한 분홍 덩어리를 입안에 넣자,
바삭!
바짝 마른 가을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청명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풍미가 폭발했다.
단단한 오리 껍질이 깨지면서, 그 안에 가둬둔 맛을 터트렸다.
북경 오리가 달달하면서 짭조름하다면, 이 요리는 달달하면서 향긋했다.
호박과 밤의 묵직한 단 향에 쌉싸래한 월계수 향이 입혀져 있었다. 거기에 레몬과 오렌지의 새콤함까지 더해지고, 오리 껍질의 기름진 향과 바삭함까지 가세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 진한 살코기가 있었다. 풍미가 살아있는 오리고기에는 희미하게 베이컨 맛이 났다. 씹을수록 육즙이 진득하게 흘러나와 입을 기름칠하면서, 소스와 섞였다.
그야말로 맛의 향연이었다.
“와인이 없는 게 아쉽네요.”
그 말대로.
이 풍부한 맛에 잘 숙성된 오크향의 와인이 더해지면 완벽할 텐데!
이건 일반 식당에서 내올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법한, 하나의 예술품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뇨, 정말 맛있습니다. 하지만……”
맛은 완벽했다.
누구나 반할 만한 맛이다.
이 맛을 한번 보면, 분명 다시 찾을 거다.
하지만, 그 한번이 어렵다.
“너무 새로운 맛이어서요. 가격도 높을 테고.”
최셰프는 최대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 메뉴는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손이 너무 많이 가고, 들어가는 재룟값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비싼 요리를 그냥 호기심에 한 번 먹어보지 않는다.
먹어볼 계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타이틀이 중요한 거다.
유명 호텔 총주방장 출신,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해 본 요리사, 스타 셰프……
아무리 맛있어도, 경력 없는 골목식당 사장이 만든 요리를, 비싼 돈 내고 먹어볼 사람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이 메뉴는 한길이 판매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쿠킹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뭐야, 나 없이 시작한 거에요?”
편한 추리닝에 짙은 선글라스와 금목걸이를 두른 독특한 패션.
티비를 많이 보지 않는 최셰프도 아는 인물이었다.
무슨 힙합 뮤지션이라고 했었나.
“저희 오너이십니다. 카키 씨, 여기는 저희와 함께하기로 한 최영석 셰프님이십니다.”
“아, 반갑습니다.”
최셰프의 얼굴이 절로 환하게 빛났다.
연예인이라니!
이보다 좋은 동업자가 있을 수 없다.
연예인이 하는 식당이라면, 어쨌든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한번 방문하니까.
일단 문턱만 넘으면, 그 이후로는 이 맛에 홀려서 다시 찾아올 터.
“와, 대박! 다 맛있겠는데요?”
그 이후로 카키의 먹방이 이어졌다.
손으로 야만스럽게 랍스타를 뜯어먹고, 후루룩 짭짭 소리를 내며 오리 스테이크와 홍합 스튜를 먹고 국물까지 들고 마셨다.
조금 게걸스러운 구석도 있었지만, 굉장히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대로 동영상을 찍어서 올려도, 족히 수백 명의 손님이 몰려올 것 같았다.
최셰프가 안도하며 계획을 세울 때, 카키가 여전히 쩝쩝대며 한길에게 질문했다.
“사장님. 우리 오픈 날짜는 어떻게 할까요?”
“안 그래도 공사해 주는 분과 얘기해봤는데, 서두르면 일주일이면 공사는 완료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일주일 후에 할까요? 아니면 방송 후에 오픈?”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방송이 나가면 사람이 몰려 정신 없을 테니, 그 전에 다들 주방에 익숙해졌으면 해서요.”
“아니,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최셰프가 갑자기 놀라서 끼어들었다.
그 말에, 한길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깜빡하고 말씀을 안 드렸네요. 저희가 명절 때 방송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 51. 이걸 어떻게 알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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