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5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53화(53/325)
< 53. 기회? 위기? 기회? —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레스토랑에는 티비가 없었지만, 출연진들이 작은 프로젝터와 스피커까지 챙겨오는 바람에, 정말 작은 상영회를 여는 분위기가 났다.
“다들 조용!”
성윤의 목소리를 신호로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광고가 끝나고 검은 화면이 떴다.
「직장인 74.9% ‘창업,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은퇴 세대 창업 1순위, 요식업」
「과연, 그 현실은 어떨까?」
곧이어 프로그램의 취지가 설명되었다.
출연진들의 소개 영상이 흘러나오고, 이들과 함께 실제로 식당을 운영할 두 명의 요리사가 소개되었다.
먼저 나온 이는 노문배 셰프.
노셰프의 경력은 어마어마했다.
두바이 호텔의 총주방장.
접시 위의 예술가라는 별명.
각종 매스컴의 극찬 기사와 방송에서의 활약.
그리고 한길이 소개되었다.
언제 촬영했는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 한스키친의 모습이 나왔다.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카키의 무작스러운 치킨버거 먹방도.
‘이 식당 통으로 빌리려면 얼마면 돼?’ 하는 발언과 한길의 단호한 거절까지.
「진짜, 맛은 예술이에요. 완전 홀딱 반해서 아예 같이 식당도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것도 거절당했어요.」
「거절이요? 카키 씨가요?」
「네, 진짜 거절당한 건 처음이에요. 그것도 완전 매몰차게. 그 사장님 데려오면 할게요. 맛은 진짜…..」
카키를 섭외하는 도중 한길을 발굴한 과정까지 고스란히 나왔다.
“우와, 사장님 화면발 잘 받네?”
“실물보다 나은데?”
“아니, 그런데 왜 저리 얼어있어? 크크크, 웃겨 미치겠네.”
출연진들은 박장대소하기 시작했고, 한길은 귀까지 빨개졌다.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의 세트장에서 혼자만 잔뜩 굳어있는 모습이 그대로 나왔으니까.
혹여나 시청자들이 놓칠까, 자막과 고드름 CG가 친절하게 한길의 긴장감을 강조했다.
누가 봐도 당황하고 있는 방송 초짜였다.
잠시 후.
소란스럽게 웃고 장난치던 출연진들이 한꺼번에 입을 다물었다.
한길을 놀리는데 싫증 나서가 아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물체에 시선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함박스테이크에 사용될 고기였다.
「함박 패티에는 갈빗살, 목살, 그리고 차돌박이를 사용합니다. 고소하면서 기름진 부위라 식감도 맛도 뛰어나거든요.」
선명한 붉은 색의 다짐육에 점점이 하얗게 박혀있는 차돌박이의 지방.
한길이 들고 있는 패티는, 마블링이 잘된 소고기를 볼 때와 같은 반응을 자아냈다.
절로 침이 고여왔다.
그 안에 잣이 들어갔다.
「제 비법 재료입니다. 마늘 진액에다가 잣을 재워둬서 감칠맛과 풍미를 살렸어요. 중간중간 오독하고 씹히기도 하는데 꽤 맛있습니다.」
화면에 레저 잣이 클로즈업으로 나오자, 한길의 숨이 잠시 멎었다.
지구상에서 멸종된 재료가 공공연하게 방송에 나가고 있는 이 장면이, 비현실적이면서 긴장되었다.
“난 저런 비법 재료 만드는 거 보면 신기하더라.”
“그러게, 저런 생각은 어떻게 했대? 나도 집에서 한번 해볼까?”
물론, 진실을 아는 이는 한길뿐이었다.
출연진들의 관심은 곧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패티에 세이버리와 마요네즈, 계란을 넣고 동그랗게 빚어냈다.
요즘은 좋은 카메라를 쓰는지, 완성된 패티는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보다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패티가 그릴 위에 올라갔다.
치이이이익!
조금씩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릴과 맞닿은 면부터 색이 조금씩 변했다.
육즙이 서서히 차오르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로, 고기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다.
치이이익!
패티를 뒤집자, 선명한 그릴 자국이 눈을 찔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에서 육즙이 차올라 패티의 표면에 송골송골 맺혔다.
ASMR를 통해 기름이 끓어오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 어떤 BGM도 필요치 않았다.
시선을 떼는 건 불가능했다.
패티 위에 와인 소스, 양파 소테와 반숙 계란이 올라갔다.
탱글탱글한 샛노란 노른자도.
완벽한 노른자는, 바로 찔러보고 싶게 생겼다.
그 마음을 아는지, 화면에 있는 누군가가 포크로 노른자와 패티를 한 번에 갈랐다.
주르륵.
촉촉한 고기 위로 노른자가 흘러내렸다.
중력에 이끌려 가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레드 카펫 위를 걷는 여배우가 천천히 미를 뽐내며 걷다가 손을 살짝 흔들어 주듯이.
모든 카메라가 자신을 담으려고 경쟁하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노른자는 시간을 들여서 흘러내렸다.
끈적하게, 우아하게, 요염하게.
“그… 왜, 외국에서 푸드 포르노(food porn)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거든?”
화면에 혼이 빼앗긴 성윤이 입을 열었다.
“아, 많이 말하잖아요.”
“나 그 말을 이제야 알겠네. 이거 푸드 포르노 아냐? 완전 19금 음식인데?”
“그거, 성희롱 아니에요?”
하지만 성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관능적인 음식이었다.
점잖은 도시인을 순식간에 야만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저 패티와 노른자는 반칙이었다.
바로 달려들어 그 진득함을 입에 품고 빨고 씹고 싶어졌으니까.
#
방송 스토리는 잘 짜여 있었다.
대본이라도 주어진 것처럼.
노셰프의 식당은 엄격했다.
‘나 때는 말이야’가 캐치프레이즈처럼 수시로 나오고, 군대식으로 돌아갔다. 출연진들은 노셰프의 엄격함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결과물에는 감탄했다.
한길의 식당은 성장 스토리였다.
카메라만 보면 얼던 한길은, 차츰 페이스를 되찾았다. 그리고 카키에게 했듯이, 모든 출연진에게 참교육을 했다.
은미의 이야기가 나왔다.
과거 방송에서 실수하는 장면들이 연이어 나오며, 은미의 허당 이미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곳에서도 은미는 계란을 만드는 도중 주방의 팬을 엎어버렸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은미에게 한길이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해보세요.」
두 번째 실패에도.
세 번째 실패에도.
「다시 한번 해보세요.」
어느새 은미의 눈빛은 진지해져 있었다.
이마에 땀을 흘려가면서, 방송을 잊고 반숙 계란 만들기에 열중했다.
「저…. 이렇게 완벽한 계란은 처음 만들어 봐요.」
스스로 뿌듯한지, 환하게 웃는 모습은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예뻤다.
그야말로 천사 같았다.
모두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은미, 너 화장품 광고 좀 들어오겠는데? 이거 완전 화면발 아니야? 지금 내 앞에 있는 인물이랑 동일 인물이라고 보이지 않는데?‘
“뭐에요!”
성윤이 장난을 쳤지만, 정말 예뻤다.
노력하는 모습이.
그 이후로 은미는 주방에서 바뀌었다.
사사건건 모든 작업을 확인하는 귀여운 잔소리꾼으로.
카키는 반전매력을 보여주었다.
화려하게 치장된 모습.
살짝 다리를 절며 걷는 껄렁껄렁한 외모와 달리, 주방에만 서면 칼같이 정확했다.
심지어 웰링턴을 구울 때 걸리는 초수를 세어 보았는데. 정확하게 15초마다 뒤집고 있었다. 거의 로봇 같았다.
그런 예상외의 성실함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이 변한 건, 성윤과 승호였다.
처음에는, 식당 밖에서 작당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나 아는 분이 식당일 하는데, 주방은 진짜 힘들어. 앉아 있을 수가 없다더라. 차라리 서빙이 낫지.」
「그래?」
작전을 세운 두 사람은 일부러 서툴게 계란을 조리했고, 역시 참교육을 당했다.
「설거지는 할 수 있죠?」
「버튼은 누를 수 있죠?」
「양파 껍질은 벗길 수 있죠?」
잡일 담당으로 배정되어 버린 것.
조금만 쉬려고 하면, 한길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 웃으며 업무를 던져줬다.
그리고 쉴새 없이 움직였다.
「저거, 사람이 아니라 기곈데?」
「알고 보면 SF 특집 아냐? 인류가 기계에 정복당해 노예 생활하는…..」
「그런데 진짜, 더는 못하겠다. 출연료 안 받아도 되니까 나는 그냥 도망갈래…. 나에게 자유를 달라!」
하지만 이들은 도망치지 못했다.
다음에 나오는 음식 때문에.
비프 웰링턴의 고운 자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화사한 노란색의 페이스트리.
제법 묵직한 덩어리를 썰자, 그 안에서 분홍빛 소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심의 연한 식감이 눈에 보였다.
물론, 식감이 보일 수는 없지만. 육즙이 차오른 촉촉한 살결을 보니, 씹을 때의 식감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졌다.
그 주위를 버섯 페이스트가 두르고 있었고, 또 그 위에 여러 층으로 구워낸 페이스트리가 사뿐히 앉아 있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리였다.
저 조합이 어떤 절묘한 하모니를 이룰지, 궁금해졌다.
화면 속 성윤과 승호는 웰링턴을 음미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행복감과 만족감이 넘치는 표정을 하며.
그 맛에 조련된 성윤과 승호는 다시 자진해서 노예처럼 일했다.
그리고 오픈 날 벌어진 성윤의 실수와 주방의 위기.
애피타이저의 주재료인 허무스를 냉장고에 넣지 않아 메뉴를 없애야 했다. 재료도 없다.
성윤은 달렸다.
아니, 질주했다.
「성윤 씨, 잠깐만! 인서트!」
간절하게 외치는 카메라 감독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쏜살같이 재료를 사 온 성윤은 한길에게 토마토를 넘겼다. 둘 사이에 눈빛이 오갔다.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나머지는 주방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메뉴를 만들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정말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성윤은 손님들을 상대로 농담도 하고 입담을 건네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시간을 벌기 위해.
한편, 한길은 토마토를 받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데치고, 다지고, 드레싱을 뿌리고.
순식간에 먹음직한 요리가 탄생했다.
은미와 카키의 눈이 동그래졌다.
「토마토 타르타르에요. 서양식 육회를 토마토로 만들었다고 보면 되는데.」
새빨간 토마토가 작은 탑처럼 쌓여있는 토마토 타르타르.
‘저 비주얼이 토마토라고?’
되묻는 순간, 방송이 끝났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장사를 마칠 수 있을까?」
자막과 함께 예고가 나왔다.
“……”
“……”
한동안 홀에는 침묵이 흘렀다.
매일 나오는 먹방이 아니었다.
항상 보는 예능도 아니었다.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이야기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얽히며,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출연진의 진정성이 돋보였다.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에 코미디도 더해졌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왔다.
“이거…..대박.”
먼저 입을 연 이는 성윤이었다.
“실시간 검색어 봐요!”
다음으로 입을 연 이는 은미였다.
1. 카키 구애
2. 노예 식단
3. 카키 식당
4. SF 키친
5. 이한길
포탈에 뜬 연관검색어는 모두 방송과 관련 있었다.
“이거, 카키 사장님 대박 나는 것 아냐?”
“아니, 우리 한길 셰프님 앞으로 노셰프님 뒤를 잇는 초대박 스타 셰프가 될 것 같은데?”
“이거, 시청률 얼마 나올까?”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들떠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방송은 분명 대박 날 테니까.
“아니, 그보다도. 사장님, 나 웰링턴 하나 더 만들어주면 안 돼요?”
“형, 아직 바지 단추 풀어져 있는데?”
“그래도 한 조각이라도 먹고 싶어…..”
성윤이 말을 하자, 모두가 끄덕였다.
분명 배 안에는 남는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그 영상을 보고서는, 도저히 안 먹을 수가 없었다.
#
“사장님, 잠깐.”
출연진을 모두 보내고 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한길을 갑자기 부르는 이가 있었다.
“아, 사장님이 아니라 이제는 셰프지. 한길 셰프.”
노셰프였다.
이미 가게를 떠난 줄로만 알았는데, 다시 되돌아온 거다.
“잠깐 얘기 괜찮아?”
노셰프는 주방 쪽을 살짝 바라봤다.
주방에는 수셰프와 다른 요리사들이 아직 남아있었고, 음악이 꺼진 식당에서 둘의 대화 소리는 그대로 울려 퍼졌다.
“잠깐 나랑 밖에서 얘기, 어때?”
한길이 노셰프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노셰프는 바로 입을 열었다.
“내일, 준비는 됐어?”
“네?”
“내일부터 전쟁이잖아.”
“아,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니까요. 재료도 추가로 준비하고, 밑 작업도 미리 하고, 직원들도 어느 정도 훈련해 놨습니다.”
“얼마나?”
노셰프는 상세한 디테일을 요구했고, 한길은 자신의 방송 대비 계획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호감이 가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노셰프는 그동안 한길을 위한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무언가 알려주려는 것 같았다.
“주방 인원은 보충했고?”
“보충이요?”
한길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노셰프가 ‘하아’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들 들떠 있는데 이런 말 하면 괜히 분위기 다운될까 봐 말은 안 했는데, 사장님, 방송 나간 적 없지?”
“네…..”
“앞으로 3개월. 주방이랑 웨이팅 스태프 모두 두 배로 늘려.”
“네?”
“사장님은 상식선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은 상식을 벗어날 거야. 평상시 바쁜 것 생각하면 안 되고, 3개월 동안은 돈 남긴다는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퀄리티와 서비스 유지만 생각해.”
노셰프는 한길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방송 한번 타면 식당은 강노동이야. 익숙한 사람들도 페이스를 잃어버려. 오래 일하던 직원들도 때려치우는 경우가 허다한데, 갓 꾸린 팀은 말할 것도 없지. 차라리 인원을 늘리고 2교대로 가는 것도 괜찮고. 당장 내일, 데려올 사람은 없어?”
당연히 없다.
내일은 명절이다.
지금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아침부터 출근해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여, 훈. 잘 지내냐?”
한길이 고민하는 사이, 노셰프는 이미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혹시 네 주변에 내일 당장 주방에 쓸만한 놈 없냐? 나 아는 후배가 조금 급해서. 페이는 부르는 대로 줄 테니까 이번 연휴 동안만.”
여러 군데 전화를 돌린 후, 노셰프는 말했다.
“일단 두 명은 구했으니까. 내일 아침에 올 거야.”
“감사합니다.”
조언도 모자라 사람까지 구해주다니.
“셰프가 흔들리면 밑에 애들이 더 불안해. 불안할 때는 차라리 화를 내. 겁이 난 모습은 보여주면 안 되고.”
“네.”
“주목받는 건, 양날의 검이야. 사람이 몰리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손님들은 그런 생각까지 안 하거든. 실력도 없는데 방송 탔다는 악소문만 퍼트려. 일부러 그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네.”
“기회는 위기지만, 위기도 기회지.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빨리 올라와. 가끔 외로우니까.”
“네?”
노셰프는 그 이후로 뻘쭘한지 뭔가 중얼중얼 거린 후,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한길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고마웠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미리 알기만 하면 어떻게든 대처가 가능하다.
< 53. 기회? 위기? 기회? — 여기부터 유료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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