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54)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54화(54/325)
< 54. 아무거나 쓸테야! [골드 이벤트!] >
‘이런 날에도 일해야 하나…..’
연예부 기자인 강혜림은 당직 근무 중이었다.
명절에는 딱히 이슈가 없다 보니, 방송 리뷰 기사를 쓴다.
이미 보도자료를 토대로 기사 내용도 써놨고.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보면서 화면을 캡처하고, 적당한 제목을 달아서 올리면 된다.
‘이런 일을 하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니었는데.’
기자가 꿈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취재할 기회조차 없다.
대부분의 기자는 데스크에 앉아서 네이버 검색어를 토대로 기사를 쓴다.
중요한 건 내용보다 광고 수익.
즉, 클릭 수.
<카키, “날 거절한 건 처음이었어요.”> .
<하은미, 닭똥 눈물 흘린 사연은?>.
적당히 화면을 보면서 제목을 뽑고 기사를 실시간으로 올린다.
이제부터는 제목 싸움이다.
어차피 내용은 다 똑같으니까.
그런데……
운이 좋았다.
바로 어제, 친구 한 명이 카키가 새로 연 식당에 갔다 왔다며 요리 사진을 보냈었다.
그 요리가 화면 속에 재생되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카키와 한길의 음식 얘기뿐이었다.
다들 궁금해하는 건 하나.
‘어딜 가면 나도 먹을 수 있는데?’
하지만 쏟아지는 기사는 모두 제목 낚시만 하고, 막상 중요한 정보가 없었다.
이건, 기회였다.
<카키, 구애 성공! 화제의 식당 위치는…?>.
혜림은 서둘러 친구의 깨톡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고르메 키친의 위치와 사진을 올렸다.
올리자마자 댓글이 쏟아졌다.
┗ 대박! 결국 둘이 장사하는 것임? ㅊㅋㅊㅋ
┗ 카키, 은근 끈질기네 ㅋㅋ
┗ 와, 골목식당 사장님 인생 역전 했는데?
┗ 우리 엄마 지금 티비 보고 저런데 좀 데려 가달라고 난린데! 명절 오픈일까?
새로 고칠 때마다 몇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혜림은 서둘러 SNS를 검색했다.
‘고르메 키친’이라는 키워드를 쓰자, 다른 기자들은 보지 못한 포스트가 올라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올린 사진.
그 안에는 출연진들이 모여서 진수성찬을 벌이고 있었다.
#방송날 #우리사장님 #셰프승격 #상영회 #고르메키친 #지중해밥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바로 다음 기사를 올렸다.
<카키 식당, 뒤풀이 현장! “이제 셰프님이세요!”>.
또다시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클릭 수는 압도적일 거다.
“휴우…..”
몇 개의 유사 기사를 더 적은 혜림은 노트북을 덮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클릭이 부족하면 기사량으로 때워야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이제 혜림도 연휴를 즐길 수 있다.
“쩝.”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혜림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미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배가 고파왔다. 아까부터 계속 음식 사진만 보고 있었으니까.
“내일 몇 시부터 하려나?”
#
다음날.
한길은 아침 7시 반에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에는 이미 모든 요리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고.
비장한 표정.
잔뜩 긴장한 모습.
“연휴 동안 도와줄 분들입니다. 다들 알겠지만, 오늘부터 전쟁이니 컨디션 조절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길의 말이 끝나자마자,
띠리리리리!
무슨 신호탄이라도 되듯 전화가 울렸다.
매장 전화였다.
아직 오픈 시간 전이라 받지 않아도 되지만,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사이렌처럼, 괜히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결국 막내 요리사가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아직 오픈이 아니라 예약은 지금 안 받는데…. 네, 몇 시에 몇 분이시라고요?”
요리사는 앞에 있는 공책에 예약 시간을 끄적였다.
띠리리리!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벨이 울렸다.
그 후로도 전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
‘다행히 경력직이네.’
한길은 새로 온 요리사들을 보며 일단 안심했다. 들어보니, 최소 5-6년 된 요리사들이었다. 기본은 할 터.
둘 중 한 명은 육류, 한 명은 전채 담당으로 배정했다.
방송에 소개된 메뉴는 함박 스테이크와 비프 웰링턴, 그리고 토마토 타르타르.
어떤 메뉴가 가장 많이 나갈지, 누구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면 다음으로 할 건……’
한길은 어제 노셰프의 조언을 들은 후, 내내 머릿속으로 주방의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실수가 벌어지고 수습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예방하고 싶었다.
“이걸 쓰세요.”
한길은 육류 담당 요리사들에게 기다란 물체를 건네주었다.
고기 온도를 잴 때 사용하는 온도계.
온도계와 함께 코팅된 종이도 건네주었다.
레어: 50-55°C
미디엄 레어: 55-60°C
미디엄: 60-65°C
웰던: 65-70°C
“아마도…. 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100% 완벽하게 확신이 없으면, 패스에 들고 오지 마세요.”
육류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실수는 언더쿡 혹은 오버쿡이다. 덜 익거나 너무 익히거나.
역시나, 요리사들은 자존심 상한 얼굴이었다.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바쁘게 몰아치는 주방에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할 수 없는 겁니다. 앞으로는 오로지 수치만으로 판단하겠습니다. 패스에 건네기 전에 무조건 온도계로 확인하세요.”
그게 해결이 된다면 다음으로 할 건……
“휴지(rest)는 패스에서 합니다. 오븐에서 꺼내면 바로 들고 오세요.”
육류에서 가장 많이 하는 두 번째 실수.
휴지 시간을 건너뛰는 것.
휴지는 고기를 그대로 두어 내부의 육즙이 자리 잡게 만드는 작업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야 육즙이 고루 퍼지면서 육질에 엉겨 붙는다.
이 과정을 빼먹으면, 육즙은 표면에만 겉돌다가, 고기를 썰 때 접시 바닥으로 몽땅 흘러가 버린다.
당연히 육즙 안에 담긴 풍미도 사라지고.
정신없을 요리사들보다, 최수셰프에게 맡기는 게 더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면 밑 작업 시작하죠.”
요리사들이 흩어지며 움직이자, 어느새 뒤에서 슬아가 다가왔다. 슬아는 다음 주까지 한스키친에서 근무할 예정이지만, 조금 빨리 와달라고 부탁했다.
“사장님, 저는 뭘 하면 되죠?”
“주방과 홀을 연결해줘.”
“네?”
“내 정보원이라고 생각하고 홀 상황을 알려줘. 전채를 다 먹고 메인을 기다리는 테이블이 있는지, 6인석이 테이블이 도착했다든지, 홀이 만석이라든지 그런 것들.“
이것만큼은 슬아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웨이터들은 아직 한길을 불편해했다.
새로 들어온 데다가 셰프라는 위치가 있으니까.
슬아는 편하게, 한길에게 사소한 말도 해줄 수 있다. 눈치도 빠르고 상황 판단도 빠르다. 그리고 한길에게 혼날까 봐 무서워서 말을 아낄 사람도 아니다.
“필요한 정보와 필요 없는 정보는 내가 알아서 걸러낼 테니까, 네가 본 홀의 상황을 알려줘. 손님을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는 뒤에서 지켜보는 걸 우선시해주고.”
“예스, 셰프!”
슬아가 크게 미소 지으며 떠나자, 최수셰프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방금 슬아와 나눈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저, 사장님… 혹시 백 웨이터(back waiter)라는 걸 들어보셨나요?”
“죄송해요, 영어는 조금 서툴러서…. 그게 뭐죠?”
“아닙니다.”
최수셰프는 말을 삼키며 돌아섰고, 한길도 주방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수셰프가 속으로 하는 생각을, 한길이 알 리 없었다.
외국의 주방에서는 백 웨이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웨이터보다 아래 서열.
웨이터들이 손님을 접대하는 동안, 주방을 훑으며 물을 가져다주거나 그릇을 치운다.
하지만 외국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말단 웨이터들을 주방 직원으로 여기는 곳도 있다.
웨이터들이 바빠서 전달하지 못하는 홀 상황을 수시로 전달하니까.
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이 아니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실전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내용이다.
‘어디서 들었지? 아니, 그보다…. 이 상황에서 홀을 생각한다고?’
최수셰프조차 주방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한길은, 아니, 셰프는 달랐다.
레스토랑 전체를 보고 있었다.
#
“테이블 5. 애피타이저. 토마토 타르타르, 굴 플래터.”
“예스, 세프!”
“메인, 웰링턴 하나. 함박 두 개.”
“예스, 셰프!”
예고대로, 주방은 전쟁터였다.
한바탕 점심 전쟁을 치르고 ‘앗’하는 사이에 저녁으로 넘어갔다.
주문을 부르면, 각 스테이션에서 요리가 분해된 상태로 도착했다.
함박 스테이크의 경우, 함박 패티가 따로, 곁들일 감자가 따로, 소스가 따로 나온다.
요리사들은 요리 일부를 만들어 패스로 전달한다. 부품처럼.
그러면 한길이 최종적으로 조립을 한다.
컨베이어 벨트와도 같다.
웰링턴과 함박의 온도 확인은 최수셰프에게 맡겼다. 애피타이저의 최종 플레이팅도 수셰프에게 넘겼다.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으니까.
한길에게는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엄민아 얼굴이 많이 창백합니다. 가서 상태 확인하고 수셰프가 30분만 대신 서주세요.”
“예스, 셰프!”
한길의 말을 듣고 수셰프가 가보니, 정말 전채 담당은 눈에 혼이 없었다.
여기서 한번 밀리게 되면, 메인 요리까지 밀린다.
컨베이어 벨트란 그런 거니까.
한길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전체의 흐름을 보려 했다. 나무가 아닌 숲을.
긴장감이 극에 달해 오감이 예민해져 있었지만, 마음은 묘하게 침착했다.
“6인 테이블 하나 들어왔어요. 준비하세요.”
슬아의 보고가 들어왔다.
“웰링턴, 함박. 각자 몇 개 남았지?”
“웰링턴 둘. 함박은 다섯 개입니다.”
한길의 질문에 각 담당 요리사들이 외쳤다.
“들었지? 앞으로 주문받을 때 남은 수량 체크하고 다른 웨이터들에게도 전달해. 이후 추천 메뉴로 오리 스테이크를 밀어줘.”
“예스, 셰프!”
떠나는 슬아를 보며 한길은 설레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
전 국민이 한길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관심은 조만간 식을 거다.
한두 달이 지나면, 한길은 언젠가 방송에 나왔던 요리사가 될 거다.
그 전에, 자신을 알리고 싶었다.
오리 스테이크는 한길을 가장 대표하는 메뉴였다.
방송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지난 몇 달의 자신의 성장이 녹아있는 요리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양쪽 세상을 하나로 만든 요리. 고대 로마와 현대의 입맛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오로지 한길만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물론, 손님들에게 강제로 이 요리를 먹으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찾아온 손님들에게 권할 수는 있다.
다음 주문표가 들어왔다.
“테이블 9. 애피타이저, 타불리, 해물 스튜. 메인, 오리 스테이크.”
“예스, 셰프!”
#
“안타깝게도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웰링턴은 다 떨어졌어요. 대신 오리 스테이크를 추천해 드립니다. 저희 셰프님이 로마에서 영감을 받고 만든 요리인데, 정말 여기에서밖에 못 먹어요.”
“아, 기대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고르메 키친을 방문한 혜림은 실망을 삼켜야 했다.
아침 일찍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지만, 남은 시간은 지금뿐이었다.
주방 마감 직전.
‘다음에 올 걸 그랬나?’
순간 망설였지만,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지금 와서 식당을 나가기에는 조금 미안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먹어야지.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 짜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와, 이건 무슨 샐러드에요?”
“타불리(tabouli) 샐러드입니다. 파슬리 샐러드라고도 불러요.”
일반 샐러드와는 달랐다.
까슬까슬한 파슬리가 잘게 다져 있었고, 사각형 모양의 토마토와 오이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올리브유와 민트향이 솔솔 풍기면서 아삭한 식감을 즐기는, 상쾌한 메뉴였다.
무언가 쌀알 같은 것도 들어 있었는데, 톡톡 튀며 입안에 돌아다니는 느낌도 색달랐다.
해물 스튜는 깔끔했다.
무슨 허브 향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는데, 토마토와 홍합, 양파와 마늘 각각의 맛이 생생하고 선명하게 빛났다.
홍합을 먹고 바닥에 자박하게 남은 국물에 빵을 찍어 먹는 맛도 있고.
식전 빵을 두 번이나 리필해서 깨끗하게 접시 바닥까지 비워냈다. 보는 눈만 없었다면, 접시에 코를 박고 핥아먹고 싶을 지경이었다.
“오리 스테이크입니다.”
그리고 메인이 나왔다.
동글동글한 스테이크는, 모르고 보면 그저 고기였다. 아름다운 선홍빛의 소고기.
다른 점이 있다면, 반질반질 윤이 나는 껍질. 그리고 황홀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바삭함.
오리의 기름지면서도 진한 향을 품은 육즙이 촉촉하게 입안을 적셨다. 살결은 보들보들했다.
군밤에서 나는 묵직하면서도 복잡한 단맛이 느껴졌다. 월계수 향과 오렌지 향이 솔솔 피어올랐다.
이런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생소하지 않고 그저 맛있었다. 혀에 착착 감기면서, 어디선가 먹어본 것 같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오리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는 아스파라거스 또한 예술이었다.
겉은 부드럽고 가운데 심지만 살짝 살아 있었는데, 심지의 아삭한 소리와 함께 아스파라거스 특유의 풋풋함이 퍼졌다.
그 풋풋한 향과 소스와의 조화가 절묘했다.
벨벳처럼 부드럽고 풍요로운 버터 향의 소스는, 이상하게 느끼하지 않았다. 버터는 버터인데 버터가 아니다.
친숙한 짭조름한 맛이 더해졌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리고기와 아스파라거스를 번갈아 가며 먹으니, 먹어도 먹어도 계속 들어갔다.
“와, 어떻게 이런 요리가 다 있지?”
“오리는 구워 먹는 게 아니라 스테이크로 먹어야 하는 거네!”
양식을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마저 즐겁게, 눈까지 감으며 음미하고 있었다. 오로지 맛에만 열중하는 그 순간,
띠리리!
전화가 울렸다.
“네, 팀장님.”
“혜림 씨 지금 바빠?”
“가족과 식사 중입니다.”
“아, 그래. 기사 알바가 세 명이나 잠수 탔어. 저녁에 희영이랑 나눠서 기사 좀 올려줘.”
“네?”
“일단 숫자라도 채워야 하니까 아무거나 검색어 보고. 부탁할게.”
팀장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연휴에 갑자기 일을 던지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왜, 가봐야 해?”
“아니, 밥 먹고 가도 돼.”
힘없이 부모님께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무거나 쓰라고 하니까, 진짜 아무거나 써야지.
아니, 마음 같아서는 내일 당장 사표를 던지고 싶다.
그렇게 분노를 담아서 오리 덩어리를 푹! 찌르자, 안에 있던 육즙이 과하게 흘러나왔다.
허무하게 떠나보낸 육즙을 보고 정신을 차리며, 이번에는 조심스레, 오리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 진득한 맛이, 마음속 분노를 감싸 안으며 잔뜩 날 선 기분을 무디게 만들었다.
다시 행복에 빠져든 혜림은 웨이터를 불렀다.
“저기요, 이 요리가 무슨 요리라고 했죠?”
< 54. 아무거나 쓸테야! [골드 이벤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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