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5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58화(58/325)
< 58. 그거 있잖아, 그거 >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한길은 빠른 걸음으로 주방을 훑으며 재료를 찾았다.
한길은, 계란 요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계란과 곁들일 재료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재료를 손질할 시간이 없으니, 각 스테이션에 남아있는 재료 중에서 골라야 한다.
다진 토마토, 다진 양파, 올리브, 각종 드레싱……
쓸만한 재료는 많지만, 아무거나 고를 순 없다.
방금 토마토 타르타르가 나갔으니, 토마토는 사용할 수 없다.
레저 잣을 사용하면 계란과도 잘 어울리고 놀라운 풍미를 더할 수 있지만, 함박 스테이크와 중복된다.
겹치지 않게, 최대한 어울리는 조합으로 서둘러 재료를 모은 한길은, 작은 유리그릇을 들고 와 정갈하게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노른자입니다.”
“머랭입니다.”
그 사이, 주재료인 계란이 도착했다.
한길은 가장 중요한 머랭을 먼저 확인했다.
머랭은 보기에는 새하얀 생크림 같지만, 맛이 다르다. 생크림은 우유로 거품을 내지만, 머랭은 계란 흰자로 거품을 낸다.
그래서 더 폭신하고 가볍다.
머랭은 굳이 말하자면, 공기의 맛이다. 계란 흰자에 공기를 주입해서 만드는 요리니까.
거품기로 계란 흰자를 거칠게 자극하면, 강제로 단백질을 분리할 수 있다. 그 단백질이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안에 공기를 가둬둔다.
작은 비눗방울이라고 보면 된다.
단백질로 만든 무수히 많은 비눗방울을 엮어서 거품으로 만든 요리다.
이 거품은,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폭삭 가라앉으면서 녹아내리는 식감을 만든다.
“카트 준비되었습니다.”
최수셰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카트가 세팅되어 있었다.
고르메 키친에서는 카트를 주방에서만 사용한다. 재료를 옮기는 용도의 카트라 지극히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원래라면 손님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외관은 아니다.
그런데 그 카트가 변신했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테이블보를 덮어 놓으니, 결혼식장에서 하얀 양복을 차려입은 새신랑 같은 모습이었다.
“셰프, 옷에 얼룩이 있어요!”
민아의 말에 내려다보니, 한길의 옷자락 끝에 어느새 약간의 소스가 묻어 있었다.
“여기, 앞치마요.”
누군가가 하얀 앞치마를 건네주었다.
무릎까지 오는 짧은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는 사이, 주방 인원들은 카트 세팅을 하고 있었다.
연극 막이 오르기 직전의 백스테이지 풍경과도 같았다.
분장을 하고, 소품을 정리하는 극단원들처럼, 모두가 최고의 무대를 위해 단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한길이 주연 배우다.
“그럼 갔다 올게요.”
“네, 여기는 맡겨두고 다녀오세요.”
한길은 최수셰프와 시선을 교환한 후, 주방을 나섰다.
#
달달달.
직원이 카트를 끌고 앞서갔고, 한길이 그 뒤를 따랐다. 카트가 지나갈 때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식당 홀에는 아직 손님이 가득했다.
주방은 마감되었지만, 식당이 마감한 건 아니니까.
한길은 천천히, 티 나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대에 올라왔으면, 이제부터는 대본을 읊어야 한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배우가 대사를 망치면 무대를 망치게 되는 거니까.
‘지금부터 35분.’
다음 요리가 나올 때까지, 35분 동안 시간을 끌어야 한다.
카트 위, 손님에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는 작은 타이머를 두었다. 화면 속 숫자는, 카운트다운 시계처럼, 시간을 세고 있었다.
카트가 멈췄다.
“어, 셰프님. 이건 뭐예요?”
기자인 혜림이 가장 먼저 한길을 발견하고 질문을 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중년 부부도 고개를 들었다.
“모처럼 찾아와 주셨으니, 특별히 보여드리고 싶은 요리가 있어서요.”
“특별히…?”
“네, 메뉴에는 없는 요리거든요.”
한길은 최대한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지중해식 오믈렛을 만들어 드리려 합니다.”
“지중해식 오믈렛이요?”
“네, 고대 로마의 향을 입힌 요리입니다.”
한길은 오래전, 첫 연회를 앞두고 아피키우스가 해줬던 조언을 떠올렸다.
– 음식은 단순히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거든. 진짜 진귀한 요리는, 먹는 경험조차 하나의 맛이 되니까.
아피키우스의 연회에서는 요리를 먹기 전, 각 요리사가 설명을 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던 사해 연안에서 수확한 대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극찬한 와인…..
각 요리에, 각 재료에 이야기를 입혔다. 그 이야기로 맛을 상상하게 하고, 기대감을 끌어올려서 입맛을 돋운 후, 요리를 대접했다.
그들처럼 유려한 표현은 못 하지만, 재료의 이야기라면 한길도 할 수 있다.
“제 요리는 고대 로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로마 귀족들은, 식사하기 전에 항상 계란을 먹었다고 합니다. 계란으로 가볍게 위를 달랜 후에 본격적인 식사를 했죠. 그때, 그들이 계란과 함께 사용하는 허브가 있었습니다.”
한길은 삐죽삐죽한 녹색 이파리를 꺼냈다.
실제 요리에는 다진 허브를 사용하지만, 일부러 관람용으로 허브의 원형을 들고 왔다.
“로바지(lovage)라는 허브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바다 파슬리(sea parsley)라고 부르죠.”
“바다 파슬리요? 처음 들어보는데……”
“파슬리와 셀러리를 반반 섞은 듯한, 강한 향이 특징이죠.”
그 말과 함께, 한길은 혜림에게 허브를 건네주었다. 혜림은 허브를 킁킁대며 한번 맡더니, 바로 반응을 했다.
“정말 신기한 향이네요.”
“이제는 잊혀서 많이 사용하지 않지만, 계란과의 궁합이 정말 좋습니다.”
그 후로도, 혜림은 취재하러 온 기자답게 몇 개의 질문을 던졌고 한길은 성심성의껏 답을 해줬다.
이제 남은 시간은 28 분.
오믈렛에 필요한 계란물을 조합해야 한다.
한길은 하얀 머랭이 담긴 유리 볼을 들어 올리고, 그 안에 계란 노른자를 부었다.
머랭과 노른자는 따로 들고 왔다.
노른자의 유분이 머랭의 거품화를 방해하기 때문에, 조리 직전에 섞어 줘야 하니까.
찰박. 찰박. 찰박.
손 거품기로 계란물을 섞어주며, 다시 한번 공기를 입혀줬다. 그러자, 걸쭉한 노란 크림이 만들어졌다.
불을 켜고 팬을 달군 후, 버터로 살짝 기름칠하고 계란물을 부었다.
팬 안을 가득 채운 계란은, 스펀지 케이크처럼 살짝 부풀어 올랐다.
그 위에, 잘게 다진 로바지를 흩뿌려주었다.
“아, 참고로 지금 만드는 건 수플레 오믈렛입니다. 이것도 역사가 깊은 요리죠.”
“수플레 오믈렛? 그거, 몇 년 전에 유행하던 것 아닌가요?”
수플레 오믈렛은, 폭신폭신한 구름처럼 생긴, 독특한 모양의 오믈렛이다. 혜림의 말대로, 몇 년 전, 한국에도 유행처럼 잠시 번졌었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식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어선 안 된다.
여기에 이야기를 입혀야 한다.
“수플레 오믈렛이 처음 만들어진 건, 19세기 프랑스였습니다. 몽생미셸이라는 섬에 유명한 수도원이 있는데, 그 수도원 앞에 있는 여관주인이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요리였죠. 고달픈 순례자들이 식사하기 전에, 이 오믈렛으로 속을 달래고 나서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래되었어요?”
“지금도 그 여관이 남아 있어서 130년째 같은 오믈렛을 만들고 있죠.”
그 사이 오믈렛이 익었다.
비주얼만 보면, 오믈렛보다는 팬케이크에 가깝다.
“완성되었네요.”
한길은 팬을 살살 흔들고, 살짝 기울여서 접시에 계란을 옮겼다.
동그란 팬케이크같이 생긴 오믈렛이 접시에 닿는 순간, 뒤집개를 이용해서 종이를 접듯이 살짝 접어준다.
“우와!”
오믈렛은 작은 조개 같은 모양으로 접시에 안착했다.
입이 떡 벌어진 조개 같이 생겼지만, 그 입안에는 조갯살이 아닌 샛노란 계란 거품이 들어있다.
거품은 노란 구름처럼, 슈크림처럼, 몽실몽실하게 부풀어 있었다.
남은 시간은 15분.
먹는데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거다.
“드셔 보시죠.”
이제는 퇴장할 시간이다.
#
‘아 불편해.’
식당에 자리를 잡은 혜림은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함께 온 일행 때문이다.
“혜림 기자 덕분에 예약은 잡았네?”
혜림의 앞에서 사람 좋게 웃고 있는 중년 남성은, 최연수 부장.
같은 신문사의 경제부 부장이다.
최연수 부장은, 회사 내에서 유능한 인재로 알려져 있다. 오랜 세월, 경제부와 금융부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종 기업인을 많이 알고 있고, 성격도 좋은 편이라 발이 정말 넓다.
회사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장가를 잘 갔다고 들었다. 정확히 어떻게 잘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부장의 아내가 보통 집안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최연수 부장은 혜림이 고르메 키친을 취재한다는 소문을 듣고 와서는 뜬금없는 부탁을 했다.
‘우리 와이프가 정말 가보고 싶다는데, 도저히 예약을 잡을 수가 없어서….. 다음에 취재할 때, 같이 가도 되나?’
다른 부서 부장님과 함께하는 식사라니…..
밥이 넘어갈 리가 있나.
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다.
그게 사회생활이니까.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된 거다.
토요일 저녁에, 부장 부부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다.
“토마토 타르타르입니다. 살짝 구운 토마토를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에 절여서 만든 요리입니다.”
약속대로, 한길 셰프가 다가와 요리 설명을 했다.
눈앞의 요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마리네이드에 절인 토마토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곱게 탑처럼 쌓아 올려 있었다.
당장 저 탑을 무너트려서 통통한 토마토 과육을 잘 토스트 된 바게트에 올려서 와그작대며 씹고 싶어진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혼자 온 게 아니니까.
“먼저 드셔 보세요.”
혜림은 웃으며, 부장에게 그릇을 밀었고, 부장은 다시 아내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아내는 포크로 완벽한 토마토 탑을 무너트린 후, 작은 조각을 빵에 얹어서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어때?”
“음, 향이 좋네. 화면에서 보고 정말 궁금했었는데.”
아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부장은 혜림을 향해 웃었다.
“다행이네. 우리 집사람이 엄청난 미식가라서 입맛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거든. 정말 맛있는 덴가 보네.”
다행히, 토마토 타르타르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그제야 혜림도 맛을 보았다.
‘…..!’
향이 정말 좋았다.
토마토는 한번 살짝 구웠는지, 맛이 조금 진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그 과육에 시큼한 발사믹 식초와 향긋한 올리브유가 착 엉겨 붙어 있었다. 씹을수록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었다.
그릇을 다 비울 때 즈음, 한길 셰프가 예상치 못하게 카트를 끌고 나왔다.
메뉴에 없는 특별한 요리를 보여주겠다며.
사전에 얘기가 된 건 아니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주변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부러운 듯 쳐다보니, 뭔가 귀빈 대접을 받는 느낌도 들었고.
가장 중요한 부장 부부도, 내색은 안하지만 꽤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오믈렛이 만들어졌다.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고운 노란 색을 입은 계란물은, 계란이라기보다는 케이크 반죽 같았다.
그 반죽이 팬 위에 올라가자, 폭신하게 부풀었다. 그 포동포동한 모습을 보니, 바로 입에 넣고 싶어졌지만, 또 참아야 했다.
“완성되었습니다.”
완성된 오믈렛은 너무 연약해 보였다.
그릇을 살짝 밀칠 때마다, 거품이 좌우로 파르르 떨고 있었으니까.
오믈렛은 조개 같은 모양이었는데, 조개 껍데기에 해당하는 윗부분은 잘 익은 팬케이크에서 볼 수 있는 연한 갈색이었다.
갈색 뚜껑 아래에는 샛노란 거품이 있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식감이 눈으로도 느껴져서 당장 입안에 넣고 싶지만……
“먼저 드셔 보세요.”
이것도 양보해야 한다.
그놈의 사회생활이 뭐라고.
또다시, 부장의 아내가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오물오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았지만, 혜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혜림 기자도 먹어봐.”
눈앞에 오믈렛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숟가락을 든 손을 살짝 뻗어서 오믈렛 위에 얹었다.
살짝 압력을 주자, 안에 있는 거품이 조금 튀어나왔다. 슈크림 빵을 살짝 누르면 튀어나오는 슈크림처럼.
압력을 조금 더하자, 계란은 저항 없이 갈라졌다. 그리고 몽실몽실한 구름 같은 오믈렛이 스푼 위에 담겼다.
서둘러 스푼을 입안에 넣으니, 바로 무언가 녹아내렸다.
그야말로 구름을 먹는 맛이다.
손으로 잡히는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맛.
혀 끝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아련함이 있었다.
구름이 녹은 자리에는 묵직한 향이 남아 있었다.
머스크 향?
무언가 매혹적인, 꽉꽉 차 있는 향이었다.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향은, 수플레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여 입안에 가득 차올랐다.
‘대체 왜 이런 요리가 사라진 거지?’
한길 셰프 말로는, 고대 로마 이후에는 이 조합은 많이 먹지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왜 사라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맛이었다.
달지는 않지만, 어딘가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디저트 같았다.
귀빈에게 대접하는, 호사스러운 요리였다.
“함박 스테이크입니다.”
그때, 다음 요리가 도착했다.
“저희는 두 개만 시켰는데요?”
“모처럼 오셨는데 제대로 맛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각자 한 접시씩 나왔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리고 함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비법 잣과 차돌박이의 마블링 맛을 입힌 요리라고.
함박은 기름질 것 같으면서도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촉촉하게 입안에서 흐트러지는 패티. 마늘에서 나는 것 같은 짙은 향이 강하게 풍기면서 감칠맛도 넘쳤다.
그리고 마지막은……
“비프 웰링턴입니다.”
버터 향을 머금은 페이스트리와 안심의 육향이 섞인 호화롭기 그지없는 맛.
육즙이 가득한 고기는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음!”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빠져들게 되는 맛이었다.
“왜 이렇게 유명한지 알 것 같네. 요리가 하나하나 정성이 들어가고 완성도가 높아.”
테이블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혜림이 눈을 다시 떴다.
부장의 아내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 우리가 매일 가는 랑트레보다 맛있는 것 같지 않아요?”
다행히, 부장 부부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연이은 호평 끝에, 아내가 뭔가 떠올랐는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터트렸다.
“여보, 이 정도 맛이면 거기 나와도 될 것 같지 않아?”
“어디?”
“왜, 그거 있잖아. 매년 하는 그거. 무슨 위크라고 불렀더라?”
< 58. 그거 있잖아, 그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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