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5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59화(59/325)
< 59. 다음 메뉴는? >
“무슨 위크?”
“왜, 레스토랑 축제 같은 거 있잖아. 우리 매년 가는 거.”
“아, 미식 다이닝 위크?”
미식 다이닝 위크는 국내 한 카드 회사에서 주최하는 미식 축제다.
VIP 고객을 대상으로, 선정된 프리미엄 레스토랑의 메뉴를 일주일간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파인 다이닝의 불모지라고도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파인 다이닝이 주목받는 한 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오면 좋긴 하겠네.’
혜림은 부부의 대화를 엿들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당 카드사에서는 회원들에게 참가 레스토랑의 정보를 책자로 보내주고, SNS나 신문 기사를 통해서 안내한다.
그로 인한 홍보 효과도 있겠지만, 보다 더 귀한 걸 얻을 수 있다.
명성.
유명 레스토랑과 같은 목록에 리스트업 되는 것만으로, 왠지 신뢰도가 올라간다. 방송을 통해서 얻은 인기와는 또 다르다.
최연수 부장 정도면 수시로 다양한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니, 지나가며 한 마디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살다 보면, 의외로 윗사람이 툭 하고 던지는 말 한마디로 일이 진행될 때도 있고.
“그나저나, 혜림 기자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었네. 옆에서 보니까, 질문하는 것도 예리하던데.”
디저트를 기다리는데, 이번에는 부장의 관심이 혜림을 향했다. 어딘가 아빠 미소 같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다.
혜림은 영업용 미소로 화답했다.
“아뇨, 아직 배울 게 많은데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요.”
“그래? 무슨 부서로 가고 싶은데?”
“원래는 사회부나 문화부 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소소한 대화가 오가고 난 후에, 부장이 말을 꺼냈다.
“포럼 쪽에는 관심 없나?”
윗사람이 지나가듯이 툭 하고 던지는 뜬금없는 질문.
혜림의 신문사에서는 올해부터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포럼을 주최한다. 노벨상 수상자 등을 포함한, 세계 명사들을 모아놓는 자리다.
그 담당이 최연수 부장이었나?
혜림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 내년부터 연례행사가 될 것 같은데, 일단 올해는 남는 인력을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이라. 혜림 기자가 관심 있으면 김용수 부장한테 한번 물어보고.”
“당연히…. 너무 좋죠.”
혜림은 연예계에 관심이 없었다. 하필이면 첫 부서 발령이 연예부라, 부서 순환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 유명 명사들을 직접 만나고 상대하고 취재할 기회라니……
당연히, 기자의 피가 끓는다.
“디저트 나왔습니다.”
그 사이, 푸딩이 나왔다.
거품처럼 녹아내리던 오믈렛과 달리, 푸딩은 탱탱하게 입에서 허물어 졌다.
아까까지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는데. 소화제라도 먹은 마냥. 아니, 막혔던 하수구가 뻥 뚫린 마냥 속이 시원하다.
섬세한 달콤함이 혀끝을 부드럽게 감쌌다.
한길 셰프에게 고마워졌다.
맛도 맛이지만, 오늘은 정말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대접해준 게 느껴졌으니까. 그 덕분에 부장 부부도 기뻐한 것 같고.
아마, 부장이 혜림에게 한 권유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거다.
‘셰프님도 잘 됐으면 좋겠네.’
#
“경우, 이 새끼! 너 때문에 내가 오늘 땀을 몇 바가지나 흘린 줄 알아?”
주방이 마감하자마자, 해물 담당인 강상우가 경우에게 다가와 허공에 대고 장난스레 발길질했다.
“넌, 입이 없냐? 왜 망치면 얘기를 안 해? 계속 수셰프한테 들어야겠냐.”
“죄송합니다.”
경우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오늘 자신이 주방에서 얼마나 민폐였는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로만 미안하냐?”
“네?”
“속이 타는데 당장 커피 한잔 사 와. 싸구려 말고 별다방 프리미엄으로. 무조건 7천 원 넘는 거.”
“아, 나도 커피요!”
공짜 커피라는 소리에 저 멀리서 전채 담당인 엄민아가 쪼르르 하고 달려왔다.
“넌 왜?”
“선배 때문에 내가 오늘 토마토 타르타르를 얼마나 만든 줄 알아요? 백 개는 찍어낸 것 같은데?”
“토마토 타르타르?”
“몰랐어요? 주문 밀릴 때마다 서비스 나갔잖아요.”
“아…..”
물론, 다른 스테이션의 주문을 들을 정신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휴식 시간에는 주방에 있는 모두에게 커피를 한 잔씩 돌리고 사과하기 바빴다.
“주방으로 돌아오래요!”
주방 보조가 불러서 가보니, 오늘의 셰프 특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 국물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홍합 고명.
홍합 짬뽕이다.
“오늘은 매운맛이 필요할 것 같아서. 면이 없어서 일단 칼국수 면을 쓰긴 했는데……”
한길 셰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잘 먹겠습니다!”
서둘러 젓가락을 집어 든 사람들은 말없이 국수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흡입이다. 젓가락에 걸려든 면을 무식하게 입안으로 밀어 넣기 바빴으니까.
한길의 홍합 짬뽕은 전에도 먹어본 적 있다. 중독성이 장난 아니다.
파와 생강, 청양고추를 볶아서 고추기름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풍미와 칼칼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홍합으로 우려낸 진한 국물, 목이 얼얼해질 정도의 매콤함, 그리고 불향. 이 조합은 사람의 이성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후루룩. 후루룩.
칼국수 면은 알단테 파스타처럼 내부의 심이 어느 정도 살아있었다. 면발이 얼마나 탱글탱글한지, 후루룩하고 빨아들이면 꿈틀대며 올라왔다.
너무 힘차게 빨아들였는지, 콧등에 면발이 몇 번 부딪혔다. 분명 옷에도 빨간 짬뽕 국물이 튀었을 테지만, 당장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경우는 홀린 것처럼 면을 끌어당겨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무리로 그릇을 양손에 들고 국물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칼칼한 국물이 목구멍을 따끔따끔하게 자극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고 코를 훌쩍이니, 왠지 사우나에서 땀 한번 빼고 나온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잘 먹었습니다!”
“어째 다들 말 한마디를 안하고 먹기만 하냐?”
“국수는 퍼지니까 그러죠.”
짬뽕으로 잠시 기력을 충전한 후, 주방 청소를 하고 퇴근 준비를 할 때,
“경우는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최수셰프가 불렀다.
경우는 갑자기 배 안에 돌덩이가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혼이 나려는 건가 싶어서 마음을 졸이면서 따라가는데…..
목적지가 셰프의 사무실이다.
경우는 아까 주방에서 본 한길의 표정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항상 평온한 얼굴을 짓는 사람이, 그렇게 냉기가 돌 정도의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다.
원래 잘 웃는 사람들이 화를 내면 오히려 무섭다고 하던데……
야식 시간에는 다른 직원들이 있어 다시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막상 홀로 셰프와 대면하려니 속이 떨려왔다.
“셰프님, 죄송합니다!”
사무실 문이 열리자마자, 고개부터 숙였다.
90도 사죄 인사. 변명할 말이 없다.
오늘은 제대로 지뢰 역할을 했으니까.
고개를 하도 숙여서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게 느껴질 때,
딱! 치이익!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셰프가 맥주 캔을 따고 있었다.
“수셰프도 하나 하세요. 경우도 하나.”
얼떨결에 시리도록 차가운 알루미늄 캔을 받아들이자,
“오늘은 이대로 집에 가면 긴장이 안 풀릴 것 같아서……”
한길 셰프가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긴장이 과했는지 목과 어깨가 딱딱하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가벼운 건배 끝에 맥주를 마시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들어간다. 메마른 모래에 한없이 물이 스며들 듯이, 맥주는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넘어와 위장 속에 스며들었다.
가슴 속 가득한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
“브런치랑은 다르지?”
고개를 돌려보니, 수셰프가 웃고 있었다.
“브런치는 메뉴 하나에 그래 봐야 5분, 10분이면 후딱후딱 처리하니까.”
“아, 네….”
“그래도 생각보단 잘했어. 너무 차별하는 게 느껴졌지만.”
“차별이요?”
“정말 모르냐?”
수셰프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스테이션 정리하면서 안 봤어?”
“네?”
“네가 버리는 음식의 80%가 함박이더라. 무슨 함박에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죄송합니다.”
“뭐 때문에 직접 치우라고 한 건데.”
그러고 보니, 확실히 경우는 함박을 가벼이 보고 있긴 했다. 적어도, 웰링턴이나 오리 스테이크만큼 조심스럽진 않았다.
“함박 너무 낭비하지 말고.”
다음 순간, 한길 셰프가 입을 열었다. 어딘가 얼굴이 굳어 있는 표정으로.
“그거, 내 비법 잣이 들어갔거든. 돈으로도 구할 수 없는 재료인데, 함부로 대하진 말라고.”
“네, 죄송합니다.”
그 후로는 한참 동안 최수셰프의 훈계가 이어졌다.
“요리를 하나하나 따로 접근하려 하니까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지. 그게 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래.”
“오리 기름 담는 병도, 그렇게 동선이 꼬이는데 놔두는 게 아니라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둬야지.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전체를 봐. 업무 배분을 하라고 했잖아. 함박 놓을 자리가 없으면 해물 쪽 그릴을 잠깐 빌리고.”
“아니, 나름 함박도 우리 간판 메뉴인데 왜 그리 함부로 대하는데?”
맥주가 있어서인가. 제법 매운 비판과 훈계도 달게 느껴졌다.
어느새 맥주를 두 캔이나 비우고 나니, 혀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솔직히 제가 잘못한 건 인정하는데…. 저도 요리산데 조리가 아니라 요리를 하고 싶다고요….”
경우는 요리가 좋았다.
그게 아니면, 쉬는 날도 없고 노동 강도도 높으면서 페이도 적은 이 직종에 계속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일하면, 셰프의 손발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도 다 배우는 과정인 건 알겠지만…… 자신의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갈증은 어쩔 수 없다.
“그러면 스태프 밀 한번 만들어볼래?”
경우의 한탄에 한길이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네?”
“만들어보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우리한테 먼저 한번 선보이라고. 정말 괜찮으면 메뉴에 올려줄 테니까.”
“정말요?”
“아니, 셰프. 얘가 스태프 밀 만들 시간이 어딨어요? 밑 작업 하기도 빠듯한데.”
“일찍 나올게요!”
최수셰프가 인상을 쓰며 말리자, 경우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다시피 외쳤다.
“그러니까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손질을 미리 시작하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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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일주일.
사고를 당했던 한성진은 일주일간 입원했지만, 주방은 큰 문제 없이 돌아갔다.
발등에 불 한번 떨어트리겠다는 최수셰프의 작전이 제대로 적중한 듯 보였다.
“선배, 다다음 주문까지는 오리 1차 시어링 좀 부탁드릴게요!”
“하나당 아메리카노 하나야.”
“와, 사기꾼 같으니.”
경우의 시야가 넓어졌다.
어딘가 의욕도 넘쳤는데, 그런 활력은 주방 전체에 전염되듯이 퍼졌다.
그 사이, 경우는 두 번, 스태프 밀을 만들었다. 경우에게 질 수 없다며 해물 담당인 강상우도 두 번 도전했고.
둘 다 평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길은 이런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점심시간마다 일어나는 메뉴 경쟁…..
누군가의 주방 풍경과 꽤 비슷했으니까.
노예처럼 자신의 말만 따르는 직원들보다, 이렇게 적극적인 요리사들이 서는 주방이 좋았다.
레스토랑 외적으로는, 혜림 기자의 이상한 전화가 있었다.
“셰프님, 혹시 이번 금요일에 예약자 중에 최연수라는 이름이 있지 않나요?”
“예약이요?”
“이거 사실 말하면 안 되는 거긴 한데…. 아마도 높은 확률로, 미식 다이닝 위크 관계자랑 같이하는 자리 같거든요. 확실한건 아닌데, 일단 알고 계시라고요.”
한길 역시 미식 다이닝 위크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다. 물어보면 알려주는 전문가가 있으니까.
“미식 다이닝 위크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만약에 참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직 식당이 바쁜 시기이긴 해서요.”
“아, 그거라면 문제는 없어요. 그 카드사는 무조건 사전예약제거든요. 예약 담당이 조금 바빠지겠지만, 주방에 가는 부담은 크게 차이 없을 겁니다. 전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고 봐요. 무엇보다……”
최수셰프는 눈을 반짝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이런 특별 행사는 스페셜 메뉴를 선보이기 좋거든요.”
“스페셜 메뉴요?”
“미식 위크는 100% 예약제인데다가, 메뉴가 정해져 있어요. 레스토랑에서 정말 해보고 싶지만 평소에는 못하는 스페셜 메뉴를 선보이기 좋죠.”
최수셰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레스토랑 오픈 전, 한길은 수셰프에게 자신이 개발한 수많은 메뉴를 보여줬었다.
전부 맛에 대한 평은 좋았지만, 그 중 반 이상이 메뉴에서 빠졌다.
원가가 너무 비싸다는 이유였다.
원가가 비싸면, 가격을 높이면 그만이지만…..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메뉴를 위해서 비싼 재고를 확보하는 게 부담 간다는 수셰프의 의견 때문이었다.
“셰프가 원하는 메뉴, 아무거나 선보이기 좋죠. 100% 판매가 보장 되는 거니까. 그때 했던 메뉴로 하실래요, 아니면 새로운 메뉴로 하실래요?”
“아직 확실한건 아니니까 진짜 참여 요청이 들어오면 그때 결정하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길은 머릿속으로는 메뉴를 구상하기 바빴다.
‘원래 했던 걸 할까, 아니면 새로운 메뉴를 할까……’
스스로 속으로 되뇌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눈앞에는 카운트다운 시계가 내려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24시간.
그리고 이번에는 아마 높은 확률로, 한길이 가장 조리해보고 싶은 재료를 얻을 수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설의 허브를.
그리고 그 요리를 시험해볼 무대도 생겼고.
< 59. 다음 메뉴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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