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6화(6/325)
< 6. 음식에도 트렌드가 있다 >
“주문하시겠어요?”
“볶음밥 두 개랑 돈가스 하나요. 그런데 사장님, 메뉴에 샐러드가 없네요?”
“준비 중인 메뉴라 아직 판매는 안 하지만, 서비스로 조금 드릴게요.”
여기저기서 주문과 함께 샐러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얼굴을 보니, 아침에 한길이 직접 시식용 샐러드를 나눠준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직접 먹지 않았는데 메뉴에도 없는 샐러드를 알고 있다면……’
아무래도 벌써 소문이 퍼지고 있는 듯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생각보다 거리 홍보의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기뻐할 여유는 없었다.
“사장님, 이쪽도 주문이요.”
“여기, 물은 없어요?”
항상 여유로웠던 가게인 만큼 한길이 혼자 주방과 홀을 도맡아왔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일손이 부족했다.
주문을 받고, 조리, 서빙, 계산, 테이블 치우는 일까지.
혼자 1인 5역을 해야 한다.
힘든 건 별문제가 안 되지만, 시간이 걸린다.
주문을 아직 못 한 손님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장님 혼자 다 하시나 보네?”
등 뒤에서 반쯤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머릿속으로 저 손님들이 사무실에 가서 나눌 대화가 들려왔다.
‘아침에 샐러드 나눠준 거기, 가봤는데…. 맛은 괜찮은데 너무 기다리더라. 주문받을 때까지 한참 걸려서…’
홍보는커녕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사람이 하루만 오면 무슨 소용인가.
계속 오고 싶은 식당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길은 잰걸음으로 주방에 돌아가 서둘러 샐러드를 준비했다.
커다란 스테인 볼에 한가득 채소를 넣고 준비해둔 드레싱을 뿌린 후, 나무 주걱을 이용해서 여러 번 섞어 주었다.
이파리 하나 빠지지 않고 코팅이 되도록.
샐러드의 맛은 드레싱이 얼마나 잘 입혀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렇게 골고루 버무려 주는 게 중요한데, 이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포장용 샐러드는 채소의 숨이 죽을까 봐 드레싱을 따로 주기 때문이다.
한길은 대접 한 가득 넘칠 만큼 샐러드를 듬뿍 담아서 홀로 나갔다.
“서비스입니다.”
“와!”
기다리던 손님들은 샐러드의 푸짐함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샐러드의 두 배는 됨직한 양을 주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양이 엄청 많네?”
“혹시 부족하면 더 드릴 테니 말씀하세요.”
“사장님, 인심 너무 좋은 것 아니에요?”
모든 테이블에 샐러드를 나눠주고 나니, 조금 전까지 보였던 짜증은 말끔히 잊은 표정이었다.
지금은 한 접시당 얼마를 남길지,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아니었다.
좋은 인상을 남기고, 다시 찾아올만한 식당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일단은 시간을 벌었다.
한길은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가 조리를 시작했다.
#
“여기가 원래 이렇게 기다리는 데였나?”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보니까 한 테이블은 이제 나갈 때가 된 것 같긴 하던데.”
보라와 지혜 일행은 밖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내려왔지만, 가게에 도착해보니 이미 빈자리가 없었고 앞에 네 명의 손님이 대기하는 상태였다.
“이러다 점심시간 다 가겠네.”
“그러게, 커피 마실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줄을 섰지만, 조금만 기다림이 길어지면 바로 다른 식당으로 갈 낌새였다.
덕분에 보라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오늘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세 명의 여직원과는 아직 서먹서먹했다.
적어도, 무작정 기다리자고 우길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보라는 자연스럽게 지혜를 보며 질문을 했다.
“주무관님, 여기 다른 메뉴는 어때요? 어제 볶음밥은 완전 감동이었거든요. 불맛이 담긴 볶음밥은 티비에서만 보고 처음 먹어봐서! 다시 먹고 싶긴 한데, 다른 음식들도 궁금하고 ……”
“여기 돈가스도 수준급이야. 분식집에서 먹는 게 아니라, 뭐랄까, 튀김옷이 살아있어! 진짜 요리 잘하는 집들은 튀김옷만 봐도 알 수 있거든!”
다행히 지혜는 곧잘 호응해 주었다.
지혜는 미식가를 자처하는 이였다.
이렇게 발판을 마련해주는데 사양할 사람은 아니었다.
“느끼하지 않아요?”
“아니, 여기는 기름 냄새가 하나도 안 나거든? 그리고 고기도 육즙이 정말 풍부해서……”
지혜는 돈가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법 큰 소리로.
보라 일행뿐 아니라, 뒤에 대기하는 사람들도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보라는 모르고 있었지만, 뒤에 있는 이들 역시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점심시간을 줄을 서면서 기다리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혜의 말을 듣고 줄에서 이탈하는 자는 없었다.
“그 정도로 말하면 먹고 가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 더 배고파졌어.”
보라 일행 역시 계속 기다리는 분위기.
그때, 타이밍 좋게 가게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저, 테이블 정리만 하고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계속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라는 말이 달가울 리 없다.
하지만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양해를 구하는 한길의 모습에 여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길은 180을 넘는 훤칠한 키에, 배우처럼 잘 생기진 않았지만 젠틀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였다.
안 그래도 훈훈한 젊은 사장이, 이마에 땀을 송골송골 맺혀가면서 열심인 모습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와! 이건 뭐예요?”
“단골이시니까요. 특별히.”
자리로 안내받은 보라 일행은 주문도 하기 전에 나오는 서비스에 감탄했다.
커다란 대접이 세 개나, 샐러드가 한가득 담겨 나왔으니까.
“어째 아까 먹어본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지 않아?”
“비싼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진짜 왜 그러지?”
“이거 포장되면 좋을 텐데. 아침으로 먹기 딱 좋지 않아?”
그 후에 나오는 음식은 입이 떡 벌어지는 맛이었다.
“보라 씨, 돈가스도 한번 먹어봐. 안 먹으면 후회한다?”
다시 볶음밥을 시킨 보라의 그릇에 지혜가 돈가스 한 점을 올려주었다.
튀김옷이 고슴도치처럼 마구 솟아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듣던 대로 기름의 느끼함이 하나 없이 바삭했다. 게다가 촉촉한 육향이 가슴속까지 푸짐하게 차오르는 맛이었다.
“주무관님, 볶음밥도 한 숟가락 드셔보세요. 어제보다 더 맛있어진 것 같아요!”
“진짜?”
볶음밥을 한 숟가락 퍼서 먹어본 지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이네? 평소보다도 맛있는데?”
“그렇죠? 저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죠?”
돈가스도 볶음밥도, 지혜가 기억하는 맛보다 뛰어났다.
원래도 맛있는 집이었지만, 기다리느라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확실히 맛이 달라졌다.
좋은 방향으로.
‘다행이네’
때마침 계산대에 있던 한길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소금 대신 가룸을 써서 간을 해봤는데, 효과가 있는 듯했다.
가룸의 발효된 깊은 맛과 감칠맛이 재료 깊숙이 숨겨진 향까지 끌어내고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오는 손님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과 계속 왔던 단골이 더 맛있어졌다고 말하는 건 기분이 또 달랐다.
#
“하아… 겨우 끝났네.”
전쟁 같은 점심시간을 무사히 마치고 한길은 녹초가 되어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팽팽하던 긴장의 끈을 놓으니, 온몸의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대체 몇 명이나 온 건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서둘러 계산대로 갔다.
매출을 확인해 보니…..
‘46명?’
점심 매출만으로 294,000원이다.
다른 식당에 비하면 큰돈이 아닐지라도, 매일 15만 원이라도 찍기를 노심초사하던 한길은 감회가 남달랐다.
이대로만 간다면…..
한 달에 880만 원이다.
최소한 가게가 망할 일은 없을 거다.
‘아니, 너무 앞서가면 안 되지…’
그건 모든 게 잘되었을 때의 가정인 거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만 해도……
한길은 서둘러 앱을 깔고 구인 글을 올렸다.
일단, 알바생을 뽑아야 했다.
인건비를 아낀다고 손님에게 불쾌한 기다림을 주는 건 좋지 않았으니까.
#
다음날도 한길은 아침부터 거리로 나가 샐러드를 나눠주었다.
가게에 돌아와 점심 준비를 마치자, 젊은 여자가 가게에 들어왔다.
“사장님?”
“혹시, 임슬아 씨?”
“네, 맞아요.”
알바생이었다.
시급을 높게 올려서 꽤 많은 사람이 지원했지만, 한길의 마음에 드는 유일한 지원자였다.
마음에 든 이유도 별다른 건 아니었다.
나머지 지원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기소개도 안 하고 대뜸 ‘정말 시급 15,000원 맞나요?’ ‘페이는 언제 지급인가요?’ 등의 문자를 보내는 이들을 고용해봤자, 문제만 늘어날 것 같았다.
그나마 자기소개를 하고, 구인 글 보고 연락했다는 서문을 달고 문자를 보낸 이는 임슬아가 유일했다.
“이력서에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적으셨는데, 혹시 그 외에도 식당 일이나 서빙을 해본 경험이 있나요?”
“식당은 아니지만, 카지노에서 일한 적은 있어요.”
“카지노요?”
“딜러는 아니고, 음료 주문이 들어오면 갖다주고…… 뭐, 그냥 서빙이죠. 잠시 학교를 휴학하고 1년 정도 일해봤어요.”
슬아는 가만히 있을 때도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웃는 인상의 여자였다.
얼굴도 예뻤지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급하게 구한 알바생치고는 훌륭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한길은 자신이 사람을 제대로 뽑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슬아는 친절하기도 했지만, 눈치도 빨랐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주는 동선만 봐도, 모든 손님에게 기다림이 없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 좀 더 드릴까요?”
“샐러드 더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게다가 손님이 물어보기도 전에 나서서 챙겨주는 세심함까지 있었다.
일단은 급한 마음에 시급을 높이고 3일 단기로 알바를 구했지만, 계속 일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알바생이 있으니, 한길도 조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주문 음식이 나간 후에는, 손님들을 살펴볼 여유도 생겼다.
멀리서 지켜보니, 전에 안 보이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오래 걸리네……’
손님들이 메뉴를 결정하기까지, 망설임이 너무 길었다. 단골들은 금방 주문을 했지만, 처음 오는 손님들은 한참을 머뭇거렸다.
한길은 가게 벽에 붙어 있는 칠판에 적힌 메뉴를 보았다.
– 볶음밥 정식
– 카레 정식
– 돈가스 정식
– 불고기 정식
고작 네 개뿐인 메뉴인데 선택할 수 없다면?
이유는 하나.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는 거다.
‘이것도 이제 유행이 지난 건가?’
한길이 처음 식당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기자기하게 나오는 가정식이 트렌드였다.
작은 나무 쟁반에 소담하게 담겨 나오는,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따뜻한 요리가 인기였다.
하지만 트렌드라는 건 항상 빠르게 변한다.
외식업도 마찬가지.
‘요즘 뜨는 건 냉동 삼겹살과 마라상궈였나? 냉동 삼겹살은 옛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메뉴고, 마라상궈는 향이 독특한……’
생각을 이어가던 한길이 잠시 멈췄다.
전에 봤던 시스템 창의 평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이태원에 남아 있으려면 보다 개성 있는 메뉴가 필요합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개성과는 달랐다.
‘요즘은 이런 게 잘나간다’는 말에 끌려다니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따라만 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
“하아…. 한가하네?”
8시가 지나자, 식당은 다시 텅 비어버렸다.
점심에는 제법 많은 손님이 왔지만, 저녁 시간은 여전히 손님이 뜸했다.
알바생인 슬아는 딱 11시에서 2시까지, 점심시간에만 일하는 조건이어서 식당에는 한길 혼자 남아 있었다.
‘그래도 어제는 46명, 오늘은 55명……’
이틀뿐이긴 했지만, 점심에 오는 손님들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평소 한스키친의 점심 장사는 회전율이라는 게 없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에만 사람들이 들어왔고, 테이블이 차면 추가로 오는 손님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기다리면서까지 찾아오는 이들이 생겼다.
이 차이는 크다.
“이 틈에 메뉴를 연구하자.”
한길은 홀을 비워두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지금은 무엇보다 샐러드를 완성 시키는 게 중요했다.
거리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손님들은 모두 샐러드가 언제 추가되는지 질문을 했다.
새로 온 손님들 대부분은 호기심에 들린 손님들이다.
호기심은 변덕스러운 감정.
빨리 메뉴를 선보이지 않으면 잊히는 건 순식간이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구운 가지 샐러드
완성도: 50%
매력: 4
재료: 5
식감: 6
비주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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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 80% 미만의 요리는 메뉴에 등록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닭가슴살 샐러드
완성도: 45%
매력: 2
재료: 5
식감: 6
비주얼: 9
+
[완성도 80% 미만의 요리는 메뉴에 등록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좋은 재료를 써서 본격적으로 만들어 봐도, 필요한 완성도가 나오지 않았다.
낮은 점수의 원인은 재료와 매력.
‘이것도 아닌데…..’
한길은 어지럽힌 주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리브유가 좋아서 기본적으로 채소의 맛을 모두 끌어올려 주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무난했다.
무난하게 맛있었다.
올리브유를 처음 먹어 보았을 때의 충격.
그 정도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끌리는 맛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한길의 왼쪽 시야에 보이는 카운트다운 시계가 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6. 음식에도 트렌드가 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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