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6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66화(66/325)
< 66. 드라마가 부족해 >
“그래서, 뭘 만들 텐가?”
아피키우스의 질문에 한길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기린 통구이보다 화려하고 강렬한 요리는 그리 많지 않다. 적어도 즉흥적으로 머릿속에서 목록이 생성될 정도는 아니다.
“강렬하고 화려한 요리라면 정확히 어떤 걸 찾으시죠?”
“어떤 거라니?”
“화려하고 강렬한 요리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크기가 더 클 수도 있고, 색감이 화려할 수도 있죠. 비싸거나 귀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너무…..”
모호하다.
저 단어가.
“흠…. 역시 자네는 재밌군.”
아피키우스는 한길의 말을 듣고 턱을 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마치 이런 발상 자체가 처음이라는 듯이.
“글쎄, 굳이 말하자면 머리로 느끼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요리지. 화려하고 강렬한 요리는 가슴을 뛰게 만드니까. 일생에 단 한 번, 그 순간에만 먹을 수 있는, 영원히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요리라고 해두지.”
더 애매하다.
한길이 말없이 조용히 있자, 아피키우스는 손자를 바라볼 때 지을 법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아직 젊어서 모르는가 보군. 요리를 생각하지 말고 자네가 요리사로서 만들 요리를 생각해야 하는데.”
“……?”
“내 연회는 요리 하나하나로 평가받지 않지. 아피키우스의 명성에 걸맞은 자리였는지로 평가되니 말일세. 그래서 로마의 귀족들이 내 초청장을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거고.”
아피키우스는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비우고는 고개를 살짝 털었다.
“너무 어려운 얘기를 했나 보군. 때가 되면 자세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일단은 메뉴를 생각해두게.”
그 후로 아피키우스는 대제전의 일정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대제전은 9월 4일부터 19일까지, 15일간 이어진다. 첫 주에는 각종 검투사 경기, 음악 연주회, 연극 무대 등의 행사가 열린다.
본격적인 대축제의 서막은 13일.
주피터의 신전에서 열리는 ‘주피터의 만찬’을 시작으로, 로마의 올림픽이라는 ‘루디 로마니‘가 개막한다.
“‘주피터의 만찬’은 일곱 신관(epulone)의 소관이지. 신관들은 당연히 요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니, 도와줄 귀족을 고르는 거고.”
어떻게 보면 아웃소싱 개념이었다.
신관이 주최하지만, 요리는 귀족이 한다.
“로마의 상의원들과 신관, 황제도 참석하는 자리인 만큼, 고기만 주면 손뼉 치며 기뻐하는 시민들과는 달라. 미각 경험이 다르니까.”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죠?”
“만찬 재료와 조리를 준비하는데 일주일은 필요할 테니, 아마 나흘 내로 신관이 찾아올 거네. 그때까지 메뉴를 생각해 두도록.”
아피키우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이 선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다.
한길의 표정을 읽었는지, 아피키우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신관은 무조건 올 걸세.”
#
아피키우스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아피키우스의 시민 만찬에 대한 소문은 로마 시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3만 명이나 되는 증인이 있었으니까.
직접 그 자리에 참석하고 요리를 맛본 이들이 3만 명. 통구이 행렬을 목격했지만, 자리 확보에 실패하여 구경만 한 시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를 다 셀 수도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장관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가까이서 그 향기를 맡았지만……
직접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시민들은, 만찬 참석자들을 찾아다녔다. 간접적으로나마 그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니까.
덕분에 가이우스는 가장 살맛 나는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가이우스가 귀족 밥상에 대해 얘기를 할 때마다 모두 떨떠름했는데. 이제는 제발 알려달라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질문하고 있었다.
“공작새라는 게 왜 새 중에서 으뜸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더군. 육질이 정말 연해. 향도 정말 날아가 버릴 듯이 가볍지. 그에 반해 플라밍고는 깊은 맛이 나. 소금에 절이지 않는 생선이랑 닭고기를 반반 섞은 것 같단 말이지.”
사람들은 가이우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에 매달렸다.
“그래서, 그중 가장 맛있는 건 뭐였나?”
“뭐니 뭐니 해도 기린이지! 그 독특한 향은 평생 잊을 수 없지. 그리고 고기에도 질감이라는 게 있더군. 곡물을 씹을 때처럼, 고기를 씹을 때 느껴지는 고기 알갱이가 있어. 기린은 양고기와 돼지고기의 사이쯤 된단 말이지.”
“양고기랑 돼지고기를 못 먹어본 사람이 그걸 어찌 아나?”
“그러면 지금 가서 먹어보면 되지 않나. 올해는 옥타비우스네서 돼지고기와 양고기를 낸다고 들리던데. 안 그래도 나도 지금 가보려던 참이었네.”
대제전 기간에는 로마의 모든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는다.
하지만 먹을거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리마다 부유한 상인들과 귀족들이 음식을 베풀어 주니까.
대게는 간편한 요리다.
달달한 디저트 빵이나, 치즈케이크, 대추나 꿀에 절인 과일이었는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집마다 고기 요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옥타비우스라는 귀족은 가장 화려한 요리를 아낌없이 퍼주고 있었다.
가이우스 일행이 옥타비우스의 저택에 다가가자, 저택 앞에는 임시 테이블이 차려져 있고 수많은 시민이 몰려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거대한 멧돼지 통구이가 나왔다.
“이런 진귀한 요리가 다 있나!”
“거참, 큰놈으로 하나 잡았구먼!”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요리였다.
통으로 구운 멧돼지 안에는 각종 새 구이가 들어 있었다.
개똥지빠귀부터 비둘기, 닭, 오리까지.
새고기는 바로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연하게 구워져 맛이 제법 좋았다. 멧돼지는 강한 향신료의 향이 더해져 야생의 노린내가 없었다.
신나게 쩝쩝대며 먹는 일행은, 열심히 먹다가 다시 가이우스에게 물었다.
“지금 이 돼지랑 아피키우스의 돼지는 맛이 어떻게 다른가?”
“아피키우스의 만찬에서는 이렇게 살점을 통으로 내지 않았지. 이 고기를 결대로 찢어서, 털실처럼 길게 만든 후, 부풀어 오르게 엉겨놨지. 그러면 고기가 얇으니까 소스가 고기에 착착 스며들어. 고기 맛이 따로 나고, 소스 맛이 따로 나고, 두 개를 따로, 또 같이 먹을 수 있지.”
가이우스의 말에 사람들은 고기를 결 따라 찢어서 먹어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는 아피키우스의 요리를 상상하면서.
주위에서는 온통 아피키우스의 이름이 들려왔다.
“근위병이 도착하는데 아피키우스가 황소만 한 황금 더미를 건네더란 말이지. 아낌없이 바닥에 던지면서 외치더라니까! ‘오늘은 이 아피키우스가, 로마 시민을 위해, 전 재산을 거덜 내겠다!’라면서 말이지!”
“크하~ 남자네!”
아피키우스의 일화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며 더욱 널리 퍼져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으니까.
통구이 행렬의 충격.
그 후 벌어진 미각의 향연.
모두의 눈 앞에 펼쳐진 금은보화,
근위병의 등장으로 펼쳐진 드라마까지.
로마인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시민들의 수다는, 물론 옥타비우스의 귀에도 들어왔다.
“젠장!”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옥타비우스는 들고 있던 잔을 벽을 향해 던졌다.
“저 무식한 시민들 같으니! 내 집 앞에서, 내 돼지고기를 뜯어 먹으면서, 감히 아피키우스를 칭송해?”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옥타비우스도 아피키우스와 같은 날, 만찬을 열었었다.
그날, 시리아에서 가져온 대추를 나눠주고 살찐 거위를 무려 300마리나 준비했다.
만찬장은 가득 찼었다.
아피키우스의 만찬에 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시민들로.
그날도 옥타비우스가 차려준 오리고기를 뜯어 먹으며, 시민들은 아피키우스의 얘기만 했다. 대체 기린고기가 어떤 맛일지에 대한 논의만 이어졌다.
‘괜히 신고했어.’
차라리 근위병이라도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셔도, 열기만 올라오고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올해야말로 황제의 미식 자문이 되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일단 신전의 만찬을 맡아야 하는데…..
그래서 며칠째 집 앞에 온갖 귀한 요리를 차리고 시민들을 부르고 있었다. 멧돼지, 오리, 사슴, 양, 심지어 값비싼 숭어까지!
이런 귀한 음식을 나눠주는데 저 멍청한 시민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아피키우스를 칭송하고 있었다.
“저… 주인님.”
갑자기 방에 들어온 노예는, 눈에 띄게 창백한 얼굴이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이 바쁜 시기에 누가?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
“저…. 그게…. 근위병입니다.”
“뭐?”
근위병이 왜?
옥타비우스는 손님을 안내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곧바로 사프란 기름으로 만든 향수를 목덜미에 발랐다. 이 시간부터 와인을 마신다고 알려지면 좋을 게 없으니까.
“자네가 웬일인가? 난 또 근위병이라고 해서 다른 근위병인 줄 알고.”
“저도 일단 근위병입니다. 근위대장도 근위병중 한 명이니까요.”
방에 들어온 손님이라는 근위병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세야누스.
근위대장이자 아피키우스의 사위다.
“댁에서 숭어 만찬을 벌인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세야누스는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히며, 어딘가 거만한 자세로 느릿하게 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있는 금팔찌에 잠시 머물렀다.
“그래서?”
“그래서라뇨. 로마에는 사치법이라는 게 있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누구보다 더.”
“그걸 언제부터 근위대장이 챙겼지?”
“그냥 넘어가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분위기라서 말이죠. 만찬이 벌어지는데 근위병이 등장 안 하면 시민들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아피키우스는 벌금을 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봐주냐면서요.”
목덜미에 있는 혈관이 꽉꽉 막혀오는 게 느껴졌다.
결국 옥타비우스도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돈은 돈대로 나가지만, 환호해 주는 관객은 없다.
“케이토스를 따라가면 줄 것일세. 자네가 나가는 길에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하지. 케이토스, 최대한…. 편리한 가마에 챙겨주도록.”
옥타비우스의 말에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금을 낼 거라면, 최대한 많은 시민이 볼 수 있게, 요란하게 들고 나가야 한다.
아피키우스가 했던 것처럼.
“감사합니다. 그러면 전 이만 가도록 하죠.”
세야누스는 집사가 움직이는 걸 보더니,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게…. 끝이라고?
“자네, 나한테 할 말은 없나?”
옥타비우스의 목에서 구걸하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무슨 말을요?”
“아피키우스와 같은 날 만찬을 열라는 건, 자네 아니었나?”
“허 참,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하시는 군요.”
세야누스는 웃고 있었지만, 그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저는 그저 제 가족의 소식을 전했을 뿐이죠. 제 장인어른이 오랜만에 로마에 와서 만찬을 연다는 얘기했을 뿐인데, 그걸 그렇게 해석하십니까.”
“누가 더 뛰어난 만찬을 여는지 궁금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야, 옥타비우스도 워낙 미식가로 알려져 있으니, 가볍게 농담 삼아 한 말이었죠. 뭣하면 그 자리에 있던 증인이라도 부를까요?”
분명히 세야누스는 말했었다.
축제 전에 이름을 알리는 자가 신전의 만찬을 맡을 거라고. 아피키우스에 대항할 만한 유일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그런 이상한 소문을 다른 곳에 퍼트리진 마십시오. 천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세야누스는 웃고 있었지만, 저 눈빛은 경고다.
세야누스는 출신은 천하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근위대장이다.
잘못 보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옥타비우스는 아차 싶어 테이블 위의 금팔찌를 들고 달려가 세야누스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내가 설마 자네를 이상하게 음해하겠나. 자네는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인걸 알잖는가.”
“감사합니다. 그럼, 언젠가 다시 뵙죠.”
세야누스는 주어진 팔찌를 손에 끼더니, 느긋하게 웃었다.
“참고로, 검을 얻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뭐?”
“검은, 군인의 손에 쥐여주면 살인 병기가 되지만, 어린아이에게 줘봤자 자기 손만 다치죠.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네요.”
세야누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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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그만 하지?”
“하지만…..”
주방의 조리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한길을 보며 루시우스가 한숨을 쉬었다.
“모처럼의 휴일을 이렇게 다 보낼 셈인가?”
“갈 데도 없는 걸요.”
“자네는 가족도 없나?”
“없습니다. 루시우스는요?”
“노예 출신이 가족이 어딨어? 어딘가 살아는 있겠지만.”
만찬 후로 이틀.
아피키우스는 주방의 모든 요리사에게 휴가를 주었다.
타이투스는 손녀를 보러 간다며, 휴가 소식을 듣자마자 짐도 챙기지 않고 달려 나갔다. 노예들은 축제 구경을 나갔고, 주방에 남은 건 한길과 루시우스뿐이었다.
한길이야 신전의 메뉴 때문에 그렇지만….
“루시우스는 축제 구경 안 나가세요?”
“그러니까 지금 가자고 하는 거 아냐?”
“저랑요? 왜, 다른 분들 갈 때 같이 가시지 않고….”
얘기하다가 한길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루시우스는 친구가 없었다.
욕심이 지나치고, 가끔 독기 서린 말을 하기도하고. 거만한 성정 때문에 주방 밖에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안 될 때는 뭔 짓을 해도 안 돼. 이럴 때는 바람 좀 쐬고 오자고.”
루시우스의 말대로.
지난 이틀간, 한길은 수많은 요리를 만들어 아피키우스에게 선보였지만, 통과된 요리는 단둘뿐이다.
실피움을 넣어 졸인 코끼리 다리와 낙타 굽 요리.
– 맛은 좋은데…. 뭔가가 부족해.
그게 아피키우스의 평이었다.
“귀족 거리에 나가면 다른 귀족 요리도 볼 수 있으니까, 보면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맨날 요리만 하면 질리니까 가끔은 남이 해주는 것도 먹어봐야지.”
루시우스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결국 한길은 잠깐, 반나절만 나들이를 하러 가기로 했다.
“귀족 거리는 그쪽이 아냐.”
“잠깐 들리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어디? 로마에 가족은 없다며?”
“가족 같은 사람은 있어서요.”
모처럼 나왔으니, 루시아네도 다시 들르고 싶었다. 혈연관계는 없지만, 여동생 같기도 했고. 전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 제대로 근황을 못 듣기도 했고.
루시아네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입구에서 보기만 해도,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 것 같았다. 일전에는 얇은 각목으로 만든 것 같은 테이블만 있었지만, 이제 식당의 입구에 묵직한 원목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루시아! 있어요?”
큰 소리로 부르자, 방문이 열리면서 머리가 부스스하게 산발이 된 루시아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마르쿠스?”
“잠깐 놀러 왔는데요.”
“와, 오늘 휴가야?”
“네.”
루시아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아!!!!”
한길의 옆에 있는 루시우스가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천 겹의 날개를 던진 여자!!!!”
루시아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돌렸다.
“난 아닌데?”
“아니긴 뭘 아냐. 내가 그 얼굴을 잊을 것 같아?”
루시우스는 화가 났는지, 말릴 틈도 없이 루시아에게 다가가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거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 아니라니까!”
“반죽을 접고 얼음에 올려 굳히고, 다시 꺼내서 접고… 그걸 50번이나 해야 하는 거라고! 한 층 한 층, 내 땀과 영혼이 담겨 있는데, 그걸 던져? 옆에 나무 쟁반도 있는데, 굳이 천 겹의 날개를!”
루시우스가 얼굴까지 붉히며 나무라자 루시아도 큰소리로 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쟁반은 맞으면 아프잖아?”
“아프라고 던지는 거잖아?”
“그러다가 다치면 어쩌라고?”
“그래, 다치진 않았겠지. 천 겹이나 되니까 폭신폭신 했을 거야. 그럴 거면 아예 깃털을 들고 가서 간지럽히지.”
“저…. 두 분, 그만하시죠.”
결국 한길이 중간에 끼어서 둘을 강제적으로 떼어놔야 갈라놔야 했다.
“귀족 거리에 구경 가려고 하는데 루시아도 같이 가면 어떨까 해서요. 항상 놀러가고 싶다고 했었으니까요.”
“아, 귀족 거리? 좋지! 안 그래도 혼자 가기 뭐해서 못 갔는데!”
루시아는 환한 얼굴로 밝게 웃더니, 금방 준비를 하고 나왔다.
거리를 걷는 내내 루시아와 루시우스는 티격태격하며 소란스럽게 굴었지만, 음식 거리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입을 다물었다.
로마의 거리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서민가에는 몇몇 상인들이 빵과 치즈, 올리브와 어묵을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조금 잘나가는 상인은 생선과 치즈를 넣고 동글동글 빚어낸 어묵을 나눠줬다. 치즈가 절묘하게 녹아든 어묵은, 독특하지만 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세상에!”
귀족 거리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진주 식초 나옵니다!”
그 말과 함께 저 멀리 있는 요리사가 작은 진주알을 식초 안에 빠트렸다. 진주가 녹은 후에는 식초를 잘 저어주고 삶은 콩 위에 뿌렸다.
“로마 시민들을 위해서 이 정도 쯤이야!”
그 옆에 있는 잘 차려입은 귀족은 큰 소리로 외치더니, 주변에 있는 근위병에게 황금을 건네주었다. 저렴한 코미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크크, 뭐야, 아피키우스를 따라 하는 거야?”
그 광경을 보고, 루시아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여기저기, 다른 사람들 입에서도 아피키우스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확실히, 아피키우스를 의식하는지, 귀족들은 힘을 주어 온갖 희귀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꿀을 먹인 양배추입니다!”
유난히 통통한 양배추에서는, 정말 꿀맛이 났다. 크림으로 채워진 도넛처럼, 양배추를 씹을 때마다 그 안에서 진득한 꿀물이 나왔다.
“바다의 색을 입은 생선 나옵니다!”
짙은 파란색 물감을 칠한 듯한 생선도 있었다.
파란 소스는, 오이 맛이 났다. 샐러드와 먹으면 제법 맛있겠지만, 생선 향과 오이 향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보기에는 화려했지만, 맛으로는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고기 천지네! 귀족들이 단체로 사냥 대회라도 했나?”
흥분하며 방방 뛰는 루시아의 말대로, 집집마다 고기 요리를 내놓고 있었다.
그것도 통구이로.
오리에 무화과를 채워서 통으로 굽거나.
양을 통으로 굽는 곳도 있었다.
하나의 집 앞에서는 멧돼지의 배를 가르고 그 안에 온갖 새를 집어넣어 구운 요리가 나왔다.
작은 참새 같은 새부터 비둘기와 오리까지.
크기별로 구워진 새 위에 계란 노른자를 풀어서 오븐에 구워낸 요리다.
그 노른자 위에는 살짝 익힌 굴과 고동이 올려져 있었다.
“엄청난 진미잖아!”
“굴이라니! 이거 구하기 어려운 건데?”
루시아와 루시우스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전투적으로 먹고 있었다.
입에서는 극찬만 나왔다.
솔직히…..
한길의 입맛에는 맛있는 요리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로마인들의 미각은 달랐다.
현대에서는 저렇게 보기에만 요란한 요리보다는, 혀에 느껴지는 미각을 더 중요시한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눈으로 보이는, 화려한 연출을 선호했다.
오이 맛이 나는 생선을 먹어도, 그게 신기하다며 정말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마치 눈으로 맛을 느끼는 것처럼. 한길의 입맛에는 음식으로 장난질 하는 것으로만 느껴졌는데 말이다.
분명, 그렇게 치면 한길의 요리는 부족했다.
드라마가.
그리고 이 광경을 보니, 떠오르는 연출이 있었다. 이렇게 맛을 조잡하게 덮어버리는 게 아닌, 맛을 한결 발전 시켜주면서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연출이.
“나오길 잘했네요.”
“그렇지?”
“이제 그만 가보죠. 당장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무엇을 할지는 알았다.
그걸 하려면 서둘러 준비해야 하는데……
한길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서둘러 달리듯이 걸었다.
“빨리 와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뒤를 돌아보며 루시아와 루시우스를 부르는 순간, 앞에 있는 대문에서 나오는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붉은 갑옷. 문양이 그려진 방패……
그다지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복장은 아니다.
근위병……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일단 사과를 하고 상대방을 살피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 당신은…?”
< 66. 드라마가 부족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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