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6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67화(67/325)
< 67. 온도의 차이 >
부딪힌 남자는 익숙한 얼굴이다.
일전에 필록제노스와 함께 별장을 찾아왔던 아피키우스의 사위, 세야누스다.
“이런 곳에서 뵙는군요.”
“누구지?”
“아피키우스의 총주방장, 마르쿠스입니다.”
세야누스는 한길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한길이 자기소개하자 세야누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매를 뒤틀더니, 아무 말도 없이 등을 휙 돌리며 떠났다.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낮게 으르렁거리듯이 뱉어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인간은 어째 볼수록 마음에 안 드냐.”
세야누스가 멀리 사라진 후에야 옆에 있는 루시우스가 조용히 투덜거렸다.
“무슨 사람을 벌레 보듯 하고.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장인 잘 만나서 출세한 주제에.”
그 후로는 한동안 세야누스의 험담이 이어졌다.
세야누스는 귀족은 귀족이되, 비교적 낮은 지위의 귀족인 듯했다. 중세시대로 치면, 작위가 없는 기사와도 같았다.
아피키우스의 사위가 되면서 근위대장의 자리에 올랐고, 비교적 천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최측근이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뭐, 장인어른이 너무 잘나면 그 나름대로 피곤하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놈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동정을 할 수가 없어.”
“저희와는 상관없는 일이죠. 그보다는 만찬 준비를 서둘러야죠.”
급하게 루시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 한길과 루시우스는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이번 만찬은 로마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다.
주피터 신에게 바치는 한상차림.
황제는 물론, 신관과 상의원들이 다 참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절대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로마인들이 환호할만한 아이디어도 떠올랐고.
“어? 손님? 저건 설마……”
아피키우스의 저택에 도착할 때 즈음, 입구에는 가마가 한 대 떠나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칠한 화려한 가마 위에 올라앉은 남자는, 보라색 옷과 특이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일반적인 차림새는 아닌데….
“마르쿠스 님, 그…. 방금 신관이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아피키우스 님이 찾으십니다.”
한길을 보자마자 달려온 노예는, 질문하기도 전에 답변해주었다.
아피키우스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말했잖은가! 반드시 우리가 주피터의 만찬을 맡게 될 거라고.”
아피키우스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숨길 수 없는 희열이 가득했다.
“저 양반. 내가 직접 제안을 할 때는 콧방귀를 끼더니. 이제 와서 로마 전체가 나를 찬양하고 있다나 뭐라나, 크크크.”
아피키우스는 신관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되풀이한 후에야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어떤 요리를 만들 생각이지? 공식적으로 우리가 만찬을 진행하기로 했으니 바로 준비를 했으면 하는데.”
“아직은 구상 중이라, 내일 중으로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케이토에게 말하고. 할 일이 많을 테니 가보도록.”
방을 나가려던 한길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아까 봤던 인물이 신경 쓰였던 탓이다.
망설임 끝에 한길은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시내에 갔다가 귀족 거리에서 세야누스를 만났습니다.”
“세야누스?”
“옥타비우스의 집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뭐, 놀랄 것도 아니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
아피키우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경멸에 가득 찬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 얼굴에 침 뱉는 짓을 대체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란 말이지. 멍청한 놈 같으니.”
한길은 굳이 아피키우스의 정치 생활이나 가정사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용히 넘어갈 수도 없었다.
아피키우스의 말로를 알고 있으니까.
이미 은퇴를 하고 조용히 시골살이를 하는 아피키우스가, 갑자기 패가망신할 리가 없다.
하지만 아피키우스에게는 사위가 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이가 좋지 않은, 근위대장인 사위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피키우스의 최후에는 세야누스가 관여되어 있을 것 같았다.
“따님은 아무 말 안 하시던가요?”
한길이 묻자, 아피키우스는 의외의 이름이 나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딸? 아피카타? 그 아이는 왜?”
“왜라니요.”
사위와의 문제라면 당연히 딸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일 아닌가?
“그 아이가 뭘 알겠나. 너무 곱게 자라서 이런 세상과는 거리가 멀지.”
잠시 동안, 아피키우스의 얼굴에 그리움이 스쳐 갔다.
“어릴 땐 참 귀여웠는데 말이지. 지금은 너무 점잖아져서 딴사람 같지만, 원래는 참 개구쟁이였거든. 툭하면 주방에 뛰어 들어와서 장난치는 바람에 혼난 적도 많았지. 신기한 요리가 나오면 손뼉을 치면서 깡총깡총 뛰어다녔었는데……”
“따님은 아직도 요리에 관심은 많으신 것 같던데요.”
“그걸 자네가 어찌 아나?”
“일전에 별장에 왔을 때, 저를 따로 불러내셨거든요.”
“자네를? 왜?”
“새로 온 주방장이라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일, 따님도 한 번 부르면 어떨까요?”
“아피카타를?”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신기한 요리거든요.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저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생각해 보도록 하지.”
#
주방으로 돌아온 한길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단, 저택에 있는 와인은 종류별로 다 가져다주세요.”
지시를 내리자, 얼마 후 노예들이 수십 개의 도자기를 들고 왔다.
도자기에 담긴 와인을 작은 컵에 종류별로 따르게 한 후, 한길은 막대기에 천을 두르고 작은 횃불을 만들었다.
그 횃불을 와인의 바로 위에 갖다 대 보았지만,
“뭔 짓 하는 거야?”
옆에서 어이없어하는 루시우스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불이 붙나 보려고요.”
“붙을 리가 없잖아?”
“혹시 모르잖아요.”
일반적인 와인은 불이 붙지 않지만, 로마의 와인은 현대 와인보다 맛이 훨씬 진했다.
물에 희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마실 정도로.
그래서 더 독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불이 붙을 정도의 알코올 도수는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다른 술은 없나요? 조금 더 독한 술….”
“와인 말고 술이 어딨어?”
한길이 만들려고 하는 요리는 플람베 (flambe).
완성된 음식에 술을 넣고 불을 붙이는 요리다.
플람베는, 현대에서도 퍼포먼스 요리 중 으뜸이라고 불린다. 맛보다도 연출을 좋아하는 로마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요리이기도 하고.
문제는 주재료가 없다는 것.
플람베는 브랜디나 코냑 등, 도수가 높은 주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로마에 주류는 와인 밖에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흠…. 할 일이 더 많아지겠네요.”
“뭘 하려고?”
“술을 만들려고요.”
“술?”
의아해하는 루시우스를 뒤로하고, 한길은 노예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구리로 만든 냄비와 조리도구를 전부 가져다주세요. 구리로 만든 튜브가 있으면 제일 좋고요.”
구리는 열전도율이 높다.
고루 열을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재질이다.
브랜디가 없다면, 만들면 된다.
대략적인 원리는 알고 있으니까.
브랜디는 와인을 살짝 끓여서 만드는 증류주다.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이 다른 점을 이용한다.
와인을 중불에서 끓이면, 와인 내의 알코올 성분이 먼저 증발한다. 작은 관을 설치해 증발하는 알코올을 잡아두고, 관을 다시 차갑게 식히면 알코올만 응결되어 떨어진다.
한길은 노예들이 가져온 구리 주전자의 주둥이에 관을 연결해주고, 어설프게나마 증류 장치를 만들어 보았다.
보기에는 조금 허접해 보였지만, 작동만 하면 된다. 주전자에 와인을 채워 넣고 중불에 끓이자,
뚝. 뚝.
잠시의 기다림 후에, 조금씩 투명한 물방울이 반대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기다리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와인을 채워 넣고 반복해 주세요.”
한길은 증류 장치가 작동되는 걸 확인한 후, 노예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밤새 한다면, 적당한 양은 모일 터.
“저걸로 뭘 만들게?”
“글쎄요.”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요리에도 마지막 과정에 술을 붓고 불맛만 입혀주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조금 더…..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요리….
임팩트가 강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루시우스, 어차피 할 일없죠?”
“왜?”
“루시우스의 재능이 필요해서요.”
씨익 웃는 한길을 보며 루시우스는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뭘 만들려고?”
“루시우스가 있으니까 디저트를 만들어야죠.”
“디저트?”
“조금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요.”
“아무리 손이 많이 가도 천 겹의 날개만 할까.”
“……”
그에 버금가게 손이 간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플람베 기술을 이용하는 디저트 중 가장 으뜸으로 불리는 요리가 있다.
베이크드 알래스카(baked alaska).
아이스크림 케이크 위에 머랭을 덮고, 오븐에 한 번 구운 후 불을 입히는 요리다.
계란 흰자로 만든 머랭은 마치 이글루처럼, 오븐의 열기를 차단하고 아이스크림을 꽁꽁 얼린 채로 가둬둔다.
덕분에 머랭이 불타고 나면, 그 안에서 차디찬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신기한 요리이기도 하다.
현대에서도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로마에서 만들려면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다.
그걸 굳이 미리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일단, 루시우스가 자주 만드는 아몬드 디저트빵을, 조금만 더 폭신하게 만들어 주세요.”
한길은 루시우스에게는 스펀지케이크를 만들게 하고, 또 다른 필수 재료인 아이스크림 제조를 시작했다.
‘크림도 없네.’
아이스크림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질감을 위해서는 헤비 크림이 필요하다.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우유와 버터를 넣고 끓인 후 식히면 되니까. 시간과 손이 많이 갈 뿐이지.
아이스크림은 무화과 맛 아이스크림을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로마에는 바닐라와 초콜릿도, 설탕도 없고, 단맛이 나는 과일 중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무화과다.
무화과를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인 후, 부드러워질 때 건져낸다. 딱딱한 줄기 부분을 제거하고 막자에서 걸쭉한 잼 같은 질감이 될 때까지 갈아준다.
마지막으로 우유, 헤비 크림, 무화과즙을 냄비에 넣고 다시 한 번 약불에 끓여준 후, 체에 걸러 내린다.
완성된 액체는 연한 노란색의 걸쭉한 액체다.
얼핏 보면 계란 물 같기도 하다.
일단 상온이 될 때까지 식혀준 후,
“이걸 얼음 창고에 30분만 놔둬 주세요.”
지시를 내리자, 30분 후에 노예가 크림을 들고 왔다.
30분간 얼린 아이스크림은, 그릇과 인접한 면만 살짝 얼어 있었다. 초겨울에 가장자리에만 얼어붙은 호숫가처럼.
차락. 차락. 차락.
거품기로 언 부분을 잘 저어준 후, 한길은 그릇을 다시 노예에게 건넸다.
“또 30분만 얼려 주세요.”
집에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은 한 번에 얼리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빙수처럼 얼음 조각이 씹힌다.
이렇게 30분 간격으로, 계속 저어주며 고르게 얼려야 한다.
‘이제야 아이스크림 같네.’
대여섯 번 반복하다 보니, 계란물 같던 아이스크림이 조금 진득하게 변했다. 눅진한 슈크림 같은 샛노란 질감.
“이제 얼음 창고에 두었다가 내일 아침에 꺼내주세요.”
한길이 완성된 크림을 노예에게 건네자, 루시우스가 다가와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로마에도 얼음을 활용하는 요리가 있지만, 아이스크림보다는 빙수에 가깝다. 얼음을 갈아서 그 위에 과일즙을 곁들여 먹는 디저트다.
빙수도 로마에서는 귀족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요리다. 차갑게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디저트니까.
차갑게 먹으면서 묵직함을 더하고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질감까지 갖춘 아이스크림은, 로마인들 입장에서는 충격일 거다.
“뭐 다른 건 할 게 없나?”
“물론 있죠.”
한길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루시우스에게 머랭 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계란 흰자만 분리해서 거품을 내는 머랭은, 전동 거품기를 쓰지 않으면 엄청난 노동이 필요하다.
차락. 차락. 차락.
약 20분에 가깝게 계란 흰자를 젓자, 루시우스의 얼굴에서 땀이 한 바가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조금 더 하시면 됩니다.”
이번에는 평소의 머랭과 다르게, 적당히 거품이 올라올 때 끓인 꿀을 넣어 주었다. 오븐에 들어가는 머랭은 모양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뜨거운 시럽을 넣어서 살짝 익혀준다.
“무슨 똥개 훈련 시키냐.”
얼굴이 창백해 질 때까지 손을 돌리던 루시우스는 불평을 계속 했지만, 완성된 머랭을 볼 때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흰자 안에 공기를 가둔 머랭은, 폭신한 구름처럼 부풀어 있었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오리털 이불처럼 폭삭하다.
“먹어봐도 되나?”
“물론이죠.”
숟가락으로 머랭을 한입 맛본 루시우스는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없었다.
한길 역시 맛을 보니, 나쁘지 않았다.
꿀이 들어가서 제법 달달하다.
입안을 가득 채운 머랭은 깃털 같이 가벼웠다. 가벼운 깃털을 계속 머금고 있으면, 폭신폭신한 구름이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혓바닥에 진득하게 감겨왔다.
생크림도 없는 로마에서, 이 식감은 충격 그 자체일 거다.
“아직 놀라기는 일러요. 아직 반밖에 완성되지 않았으니까요.”
이 머랭에 불 맛을 입히면, 캐러멜 향이 더해지고 달고나를 먹을 때처럼 살짝 굳은 유리알 같은 식감까지 추가된다.
그걸 굳이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 67. 온도의 차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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