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70)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70화(70/325)
< 70. 최후의 만찬 >
로마의 거리는 매우 붐볐다.
축제의 꽃,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때문이다.
들뜬 웅성거림.
숨결에 의해 뜨겁게 데워진 공기.
축제의 열기가 전염되듯이 거리 전체에 퍼져 나갔다.
아마 하늘에서 본다면 광화문 광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이러다 늦으면……”
하지만 식재료를 들고 서둘러 신전으로 이동해야 하는 한길의 입장에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뒤로 포위되어 나아갈 수가 없으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퍼레이드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떨까요?”
한길의 옆에 있는 타이투스는 마치 성탄절을 앞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요리사들도 눈을 빛내고 있었고.
이들 역시 퍼레이드 구경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면 다른 시민들도 따라갈 테니 거리가 텅 빌 겁니다. 어차피 퍼레이드는 로마 시내를 한 바퀴 돌다가 신전으로 향하니, 저희가 더 일찍 도착할 테고요.”
“그러면 그러도록 하죠.”
한길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사실, 허락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어차피 길이 막혀 움직일 수 없으니.
“우와!”
갑자기 땅이 울릴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오고,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대제전은 로마 최대의 축제.
이때 열리는 루디 로마니(Ludi Romani)는 로마의 올림픽이라고 들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퍼레이드는, 현대의 올림픽 개막식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말을 탄 귀족들이 길을 열었다.
그 뒤로 수백 명의 귀족이 걸어갔다.
그리고 전차가 등장했다.
영화에서만 본 로마식 전차에 올라탄 남자들은,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지나갔다.
수십 대의 전차가 일으킨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선수들이 등장했다.
운동 경기에 참여할 선수들은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며 힘차게 행진했다.
피리를 부는 악사들이 뒤를 따랐고, 보라색 옷을 차려입고 칼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지나갔다.
짐승 가죽을 온몸에 두른 ‘숲의 요정’ 사티로스가 나타났고, 황금 단지를 들고 있는 여성들이 그 뒤를 따랐다. 단지에서는 향수와 같은 진한 향이 났다.
그리고 신들이 등장했다.
대리석으로 만든 신의 조각상을 황금 가마에 싣고 이동하는 행렬이었다.
선두에 선 것은 주신인 주피터.
주피터의 가마 뒤에는 주피터의 상징물을 실은 전차가 있었다.
주노 여신과 그녀의 상징물인 공작새, 미네르바 여신과 그녀의 상징물인 투구, 넵튠의 동상과 상징물인 삼지창.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휘황찬란한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타이투스의 말대로, 퍼레이드가 지나가자 거리는 텅 비었다. 구경하던 시민들이 행렬의 뒤를 따라갔으니까.
“올해는 평소보다 화려한 것 같네요. 만찬은 더 하겠죠? 아피키우스가 맡았으니…..”
타이투스는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주피터의 신전은 눈이 부실 정도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벽.
각양각색의 꽃 부케가 칭칭 감겨 있는 대리석 기둥.
그리고 신전의 가장 안쪽에는 높은 무대가 세워져 있었다.
황금과 에메랄드로 꾸며진 무대가.
“왔는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자네가 요리할 곳을 보여주지.”
아피키우스는 한길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무대 위로 끌고 갔다.
무대 정중앙에는 세 개의 소파가 ‘ㄷ’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각 소파 위에는 대리석 동상이 모셔져 있었고.
주피터. 주피터의 아내, 주노. 주피터의 딸, 미네르바다.
“이 동상 바로 옆에 신의 대리인들이 앉을 거네. 올해는 주피터의 신관과 티베리우스 황제, 그리고 황제의 아들인 드루수스가 대리인이 된다더군.”
이 만찬은 신을 위한 만찬이다.
하지만 대리석으로 만든 신들은 음식을 맛볼 수 없음으로, 신의 대리인이 대신해서 음식을 시식한다.
“자네가 설 곳은 여기네.”
신이 앉은 테이블 옆에는 작은 조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플람베 요리는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한길이 조리대에서 요리를 완성하고 서빙을 하기로 했다.
로마식 테이블 사이드 서비스다.
“긴장은 하지 말고.”
수백 명의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 벌어지는 만찬. 지금껏 경험한 무대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긴장이 전혀 안 된다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안전은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말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설마 무슨 짓을 할까.”
로마에는 형광등이 없다.
신전 내부에 촛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촛불로 이 거대한 신전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상태로는 만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오늘은 횃불을 든 사람들이 조명을 밝히기로 했는데……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근위병이다.
“자네는 준비를 서두르게. 앞으로 두 시간 정도면 시작될 테니.”
아피키우스를 뒤로 하고 한길은 신전 한쪽에 마련된 임시 주방으로 향했다.
준비해온 식재료를 꺼내고 열심히 지시를 내리던 그 때,
“자네 이름이 뭐였더라?”
익숙한 얼굴이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피키우스의 사위, 세야누스다.
“마르쿠스입니다.”
“그래, 준비하는데 뭐 부족한 건 없나?”
“전혀, 문제없습니다.”
세야누스는 한길에게 말을 거는 척하면서 염탐하듯 주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활기찬 주방에 놀라는 것 같기도 했고.
요리사들이 하나둘 식재료를 꺼내자, 세야누스의 얼굴이 굳어오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근위병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고.”
그렇게 말하며 휙 돌아서는 세야누스를 보니, 왠지 기분이 더 찝찝해졌다.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
“타이투스.”
“네.”
“도자기는 얼마나 챙겨왔죠?”
“혹시 깨질 것을 대비해 세배로 챙겨오긴 했는데, 왜 그러십니까?”
“증류주를 옮겨서 따로 보관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피곤하군.’
행렬에 참여하는 티베리우스 황제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사람이 많은 장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퍼레이드도 질색. 이런 시끄러운 자리도 질색이다.
그래도 참석해야 한다. 황제니까.
반나절에 달하는 퍼레이드를 마치고, 신전 앞에서 신관의 기도가 끝날 때 즈음에는 눈까지 감겨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마련된 소파에 앉자, 아피키우스가 다가와 예를 올렸다.
“올해 주피터의 만찬을 맡은 아피키우스, 이쪽은 저를 도와줄 요리사 마르쿠스입니다.”
그리고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주피터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로마 전역의 가장 귀한 재료를 바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아피키우스가 설명을 마치자,
쿵! 쿵! 쿵!
신전 내부에서 갑자기 북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잠이 싹 달아날 정도의 웅장한 소리가.
그 북소리에 맞춰서 노예들이 접시를 들고나와 요리사의 조리대 위에 올려놓았다. 접시 위에는 뚜껑이 덮여 있어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요리사는 국자를 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노예가 국자에 횃불을 가져다 대자,
화르륵!
국자에 불이 붙었다.
“하늘의 신, 빛과 천둥을 다스리는 주피터에게 바치는 첫 번째 요리입니다.”
아피키우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쿵! 쿵! 쿠르르르르!
뚜껑이 열렸다.
국자가 기울여졌다.
화르륵!
접시에 불이 붙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주피터의 벼락이 지상에 강림한 듯한 광경.
눈앞에는 난생처음 보는 신비로운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잠시 후, 불길이 사라지자 요리사가 접시를 들고 왔다.
노란 푸딩이었다.
연한 갈색의 소스를 덮고 있는 샛노란 푸딩.
“이집트산 꿀과 호메르가 극찬한 타소스 와인의 증류액을 섞은 계란 푸딩입니다.”
분명 배는 고프지 않았는데.
신비로운 불꽃에서 튀어나온 요리의 맛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숟가락을 가져다 대자, 푸딩은 저항 없이 갈라졌다.
포동포동한 덩어리는 혓바닥 위에서도 포르르 떨렸다. 그리고 탄력 있게 뭉개지며 부드러운 계란 향을 뿜어냈다.
향신료는 거의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계란의 맛이다.
장시간의 행렬로 지쳐서 음식이 넘어갈까 걱정했는데. 푸딩은 굳이 씹을 필요도 없이 목구멍을 타고 스르르 넘어갔다.
자극 없는 부드러운 향이 쓰린 위를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계란 위를 덮은 소스는, 꿀의 끈적끈적한 단맛을 간직하면서도 뒷맛은 씁쓰름했다.
몸에 당분이 들어가니, 혈관에 피가 활기차게 돌면서 갑자기 허기가 찾아왔다.
쿵! 쿵! 쿵! 쿠르르르!
화르륵!
또다시 북이 울리고 두 번째 요리가 등장했다.
주피터의 빛이 사그라지자, 쟁반이 보였다. 황금 쟁반 한가운데에 묵직한 돌판이 있었고, 그 돌판 위에는 무언가 끓고 있었다.
“사과 와인의 증류액과 파슬리를 더한 그리스의 치즈구이입니다.”
치즈였다.
끓고 있는 치즈.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돌판 위에서 끓어오르는 치즈는, 구수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치즈는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콧속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치즈의 풍미.
치즈 표면에 올리브유를 발라두었는지, 씹을 때마다 은은하게 올리브유의 향이 피어 올라왔다.
새콤달콤한 사과의 맛도, 파슬리의 쌉싸래한 맛도 더해졌다.
다채로운 맛이었다.
순식간에 돌판은 깨끗이 비워졌다.
그리고 세 번째 요리가 나왔다.
이번에도 돌판 위에.
쿵! 쿵! 쿠르르르!
북소리가 끝나고 주피터의 번개가 강림했다.
그 자리에는……
“실피움의 뿌리와 사해 대추의 증류주로 만든 주피터의 화산입니다.”
작은 화산이 있었다.
실피움으로 만든 화산이.
양파링처럼 생긴 실피움링을 층층이 쌓아 올려 작은 원형 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탑의 입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불이 사라지자,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군침 도는 훈제 향을 퍼트렸다.
실피움 뿌리는 그야말로 신을 위해 만든 요리였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감칠맛.
그 주위를 새콤한 시트러스 향이 감싸고 있었다. 은은하게 대추의 달달함도 느껴졌다.
이상하게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가 몰려왔다. 이제 슬슬, 포만감 있게 배를 채워주는 요리가 먹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즈음,
“메인 요리로는 하늘과 육지, 바다의 진미를 엄선하여 들고 왔습니다.”
아피키우스가 마음에 쏙 드는 소리를 했다.
쿵! 쿵! 쿠르르!
이제는 북소리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여왔다. 이번에는 어떤 요리가 나올지!
“로마의 아침을 알리는 귀한 존재, 사자의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용맹한 존재, 수탉. 로마 제국에서 가장 기운찬 수탉의 왕관과 팔레르니안 와인 소스입니다.”
주피터의 번개가 다시 강림했다.
불길이 사그라들자, 삐죽삐죽 솟아있는 왕관이 보였다. 농밀한 자주색의 소스 위에 놓인 짙은 갈색의 왕관이.
왕관은 바삭하면서도 쫀득했다.
입에 넣자마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지만, 내부는 쫄깃했다. 씹을 때마다 이빨 사이로 주르륵하고 기름진 육즙이 흘러나왔다. 진하디진한, 닭고기의 향이 담긴 육즙이었다.
달짝지근한 와인 소스와 닭고기의 감칠맛 넘치는 육즙이 입안에서 섞였다.
왕관은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질기지는 않되, 탄력 있게 이빨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씹을 때마다 기름진 육즙이 터져 나와 쾌감을 더했다.
수탉의 생명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맛이었다. 어딘가 위풍당당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꿀꺽하고 삼키니, 입안이 온통 닭에서 나온 진득한 기름으로 미끈거렸다.
“와인도 함께 드시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아피키우스가 와인 잔을 채워주었다.
붉은 액체는 입안을 휩쓸며 기름을 남김없이 씻겨주었다. 와인의 향긋함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해주자, 다시 무엇이든 씹고 싶어졌다.
쿵! 쿵! 쿠르르!
“로마의 가장 동쪽에서 공수해온 낙타, 가장 남쪽에서 공수해온 코끼리, 그리고 로마 농민들의 구세주인 수소를 준비했습니다.”
불길이 사라지니, 보글보글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스튜였다.
세 가지 고기로 만든 고기 스튜.
같은 냄비에 들어있지만, 맛의 농도가 달랐다. 낙타가 가장 연하고 소는 중간쯤, 코끼리는 가장 진한 야생의 맛이 풍겼다.
세 종류의 고기 모두 흐물흐물할 정도로 푹 고아낸 맛이 났다. 육질이 얼마나 연한지, 입에서 그대로 녹아내렸다.
와인으로 만든 소스는, 걸쭉하면서도 고기의 자양분이 듬뿍 베어져 있어 포만감이 느껴졌다.
뜨끈한 국물을 퍼먹으니, 목구멍을 타고 온기가 퍼져나가며 손끝과 발끝까지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진한 만족감이 느껴져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만 방심하면 얼굴 근육이 몽땅 풀어지면서 실없이 웃게 될 것 같았다.
쿵! 쿵! 쿠르르!
마지막으로 등장한 메인요리는 숭어였다.
손가락 길이의, 처음 보는 모양의 숭어.
불타는 호수에 한가운데 놓인 숭어는, 한쪽 지느러미로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바로 돌진해올 것처럼.
숭어 수염으로 만들었다는 창은, 바사삭거리며 기분 좋게 입안에서 바스러졌다.
숭어는 먹기 아까울 정도로 정교한 모양이었지만, 막상 입안에 들어가니 생각이 바뀌었다.
숭어의 하얀 껍질은 쫀득했다. 씹자마자 얇은 껍질이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즙을 터트렸다.
제법 좋은 품질의 숭어를 사용했는지, 굴을 끓일 때 나는 그윽한 해물 향이 느껴졌다. 동시에, 톡톡 쏘는 듯한 생강 향이 퍼져 나왔다.
절묘한 맛의 조화였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그 풍미가 새어나갈까 봐 입을 꾹 다물며 그 맛을 음미하기 바빴다.
이것이야말로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티베리우스는 어느새 입을 열고 말을 꺼내고 있었다.
“자네가 로마를 떠나고 은퇴한다고 했을 때, 내가 허락을 했던가?”
아피키우스에게 한 질문이었다.
“불러주신다면 언제든 다시 오겠습니다. 안 그래도 시골 생활이 너무 한적해서 로마가 그리워지던 참이었습니다.”
매일 이 맛을 느낄 수 있다면?
아니, 개인적인 식탐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타국에서 온 손님들이 이 맛을 한번 입에 댄다면, 로마의 위엄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지금 오른팔 역할을 하는 세야누스와 아피키우스는 한 가족 아니던가.
“자네도 장인과 함께….”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주위에 서 있는 세야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세야누스가 얼굴에서 핏기가 모두 씻겨나간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 70. 최후의 만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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