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75)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75화(75/325)
< 75. 이미지 변신 >
다음날인 월요일.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다. 동시에, 강혜림 기자가 찾아오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강혜림 기자가 근무하는 ‘데일리 뉴스’는 한길의 요리에 관한 특집 기사를 4편 싣기로 했었다. 이미 두 개의 기사가 나갔으니, 아직 두 개가 남아 있다.
한길은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건 최수셰프 역시 마찬가지였고.
“아시겠어요? 파인 다이닝은 최고의 요리와 최고의 서비스를 최고의 분위기에서 제공하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그렇게 치면 저희는 갈 길이 멀죠. 요리만 맛있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모처럼의 쉬는 날인데, 수셰프는 아침부터 레스토랑에 나와 있었다.
한길의 파인 다이닝 선언을 듣고, 수셰프는 조금 달라졌다. 엄격할 땐 엄격하지만 평소에는 제법 침착한 성격이었는데, 갑자기 열성적으로 변했다.
어떻게 보면, 복싱 코치 같기도 했다.
링에 서기 전 선수의 어깨를 주무르며 수많은 전략과 격려를 외치는 코치처럼. 수셰프는 끊임없이 한길의 옆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역시 미리 말하길 잘했네.’
수셰프의 조언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취수셰프는 명문 요리학교 출신으로, 한길이 갖지 못한 학연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학연의 최대 장점은, 정보력이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오픈한 선배들의 경험, 성공담과 실패담,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업계의 정보를 꿰고 있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수셰프가 왜 한길의 결정을 반대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알겠습니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확실한 컨셉입니다. 저희는 그게 문제죠.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까요.”
수셰프의 말대로.
<고르메 키친>은 급하게 오픈한 레스토랑이었다.
당시에 한길은 골목을 벗어나 대로변에 진출한다는 기대감에만 차 있었다. 큰길가의 규모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만 의미를 두었다.
목표는 식당의 좌석 수를 채울 것.
처음부터 명확한 컨셉이 없었다.
그 상태에서 방송까지 타버렸다.
덕분에 지금 <고르메 키친>의 대표 메뉴는, 방송을 통해 알려진 메뉴다.
토마토 타르타르.
함박 스테이크.
비프 웰링턴.
각각 맛은 뛰어나고 잘 팔리지만, 국적 불명인 데다가 컨셉 불명의 요리다.
“요리만 알려지면 안 됩니다. 셰프의 특색과 컨셉을 알려야 합니다. 방향성이 보여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최수셰프가 건네는 조언은, 언젠가 아피키우스에게 들은 조언과 닮아 있었다.
– 요리를 생각하지 말고 자네가 요리사로서 만들 요리를 생각해야 하는데……
– 내 연회는 요리 하나하나로 평가받지 않지. 아피키우스의 명성에 걸맞은 자리였는지로 평가되니 말일세. 그래서 로마의 귀족들이 내 초청장을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거고.
<고르메 키친>은 이미지 변신이 필요했다.
방송에 나온, 신기하고 한 번쯤 먹어보고 싶은 요리를 먹기 위해 오는 곳이어선 안 된다.
한길이라는 셰프가 추구하는 요리와 이미지를 알려야 한다.
그러려면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하다.
#
“와, 이거 정말 신기하네요! 아스파라거스 커스터드라니, 생각도 못 해봤는데!”
로마의 귀족 코스 요리를 보고 혜림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굉장히 순하면서도 상쾌하네요. 봄기운이 물씬물씬 풍기는 것 같은 맛? 여자 손님들이 참 좋아할 것 같은데요?”
아스파라거스 파티나에 대한 반응은 대략, ‘신기한데 의외로 정말 맛있네?’ 였다.
처음 요리가 나올때,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었다. 한길은 혜림 기자의 리액션을 하나하나 살피고 기억해 두었다.
최수셰프와는 보는 시각이 달랐으니까.
요리인이 아닌, 손님의 반응이었다.
‘플레이팅을 조금 다르게 해야겠는데?’
첫 등장에 기대감이 일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한편, 아피키우스식 돼지 구이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우와, 대박!”
짙은 적갈색의 구이를 보자마자 혜림은 탄성을 터트렸다. 함께 온 사진기자 역시 무의식중에 입술을 핥고 있었고.
“와! 이거 진짜 비주얼이 좋네요. 강렬해요. 크기 좀 재봐도 되나요? 사진 찍을 때 스마트폰 옆에 세워두고 한번 찍어주세요.”
줄자까지 들고 와서 측정을 한 결과, 돼지구이의 규격은 가로 20센티. 세로로 13 센티.
로마에서 선보인 돼지 통구이만큼 거대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현대에서는 이 정도 크기로도 충분히 눈길이 갔다.
통나무 토막 같은 고기를 직접 눈앞에서 썰어주자, 혜림의 다시 한번 반응이 격해졌다.
“꼭 영화 속에서 보는 그런 요리 같아요! 왜, 외국 크리스마스 영화에 보면 이렇게 칼로 썰잖아요?”
쉴새 없이 떠드는 혜림은, 고기가 얹어진 접시를 준 후에야 조용해졌다.
한동안 오도독 씹는 소리와 ‘흠!’하는 신음소리만 들려왔다. 먹는 동안에는 질문도 없었다. 눈을 감으며 그 맛을 만끽하고 취해 있었다.
두 접시나 깔끔하게 비운 후에야 혜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삼겹살과 수육의 맛있는 부분만 모아서 하나로 만든 것 같아요! 엄청 부드러운데 촉촉하고, 허브 향이랑 정말 잘 어우러지네요. 무엇보다 이 소스가 정말 예술인데요? 이런 요리는 대체 어디서 생각해낸 거예요?”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다.
이제부터는 맛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여기서요.”
한길은 준비해둔 자료를 꺼냈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찾아낸 아피키우스의 고조리서 이미지를 프린트해왔다.
라틴어로 적힌 프린트물의 단어 밑에는 일일이 밑줄을 그어두고 하나하나 한국어로 해석을 첨삭해 해두었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먹던 실제 요리를 기록한 조리서입니다.”
“이 요리를 만들려고 라틴어 공부를 한 거예요?”
“그 시절의 요리를 한번 재현해 보고 싶어서 조금 공부해 봤습니다.”
열심히 설명을 듣던 혜림은, 기자의 본능이 발동했는지, 다시 열성적으로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로마 소스구나. 옛날 요리들은 다 향신료가 지나치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강하지 않아서 놀랐어요. 맛이 강하긴 한데 생각보다 이상한 맛은 아니네요?”
“인도 커리에 향신료가 몇 개 들어가는지 아나요?”
“네?”
“커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람 마살라(garam masala)에 들어가는 기본 향신료만 10개가 되요. 쿠민, 코리안더, 카르다몸, 시나몬, 너트맥, 정향, 월계수 잎, 알 후추, 펜넬, 너트맥 껍질, 건고추가 들어가요. 그런데 향이 강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향신료가 얽힌 맛은 아니잖아요? 로마 조리서에 나오는 향신료도 유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약간 인도 커리랑 비슷한 느낌이 나긴 했어요.”
실제로, 아피키우스의 조리서에 나오는 대부분 소스는 인도 커리 향신료와 재료가 유사하다.
“이 재료를 어떻게 어떤 비율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요. 커리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듯이, 로마에서도 이런 소스가 400종이 넘습니다.”
“로마식 커리군요! 와인 커리 같은 느낌이네요!”
혜림 가지는 눈을 빛내면서 열심히 메모장에 받아 적기 시작했다.
“이 프린트물,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여기 이 단어는 무슨 뜻이에요?”
“‘temperas’라는 단어인데, 균형을 잘 조절하라는 말입니다. 이 경우는 산미와 매운맛을 맞추라는 거죠.”
한참 동안 질문이 이어지고, 한길은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길이 질문할 차례였다.
“기자님, 저번에 전화로 말씀하신 금요일 예약 건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데요.”
“아….”
혜림 기자는 약간 머뭇머뭇하더니 입을 열었다.
언젠가 봤던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내키지 않는 표정.
부장과의 저녁 식사 약속을 잡아달라고 부탁할 때 보여줬던 표정이다.
“그게….. 그때 저랑 같이 갔던 부장님이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데 상대가 워낙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조금… 음…. 신경 좀 써 주실 수 있을까 해서 전화 드린 거였어요.”
혜림은 신경 써 달라는 말에 강조하고 있다.
그때 보여준 테이블 사이드 서비스처럼, 조금 더 신경을 써서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의미 같았다.
혜림의 얼굴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눈동자는 당황하며 떨리고 있었다. 본인도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어색하고 무안하다는 듯이.
“대신에… 그… 좋은 인상을 남겨서 나쁠 게 없는 상대거든요. 미팅 상대가 그 한대훈이니까요.”
“한대훈이요?”
“모르세요? TG 카드 대표님이요.”
그 이름을 듣고도 한길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혜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모르세요?”
“제가 요리밖에 안 해서, 세상 물정에 조금 어둡습니다.”
“TG카드 대표님이에요. 미국 IT업계에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면, 국내 서비스업에는 한대훈이 있다고 말하는데…… TG 그룹 막내아들인데 워낙 늦둥이로 태어나서 핵심사업은 못 물려받고 TG카드 하나만 물려받았었거든요. 그런데 점유율 1%인 TG 카드를 5년 만에 20%로 끌어올렸죠.”
“대단한 분이시군요.”
“미식 다이닝 위크도 이분이 직접 시작한 아이디어라고 들었어요. 문화사업이나 서비스 사업 쪽으로 확장하고 있는데,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기업인이죠.”
혜림은 신이 나서 한동안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하더니, 뒤늦게 서둘러 덧붙였다.
“사실, 올해 미식 다이닝 위크의 라인업은 이미 저번 달부터 나와 있어서 당장 참가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알아둬서 나쁘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냥.. 음…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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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며칠.
식당은 정말 바쁘게 돌아갔다.
일단, 가장 먼저 식당에 적용한 변화는 실피움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놓은 실피움 줄기는, 보기에는 평범한 셀러리 토막 같았다. 풍미는 전혀 달랐지만.
손가락만 한 실피움 토막을 하나 넣는 것만으로, 모든 요리의 맛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마늘이 더해지면 전체적으로 묵직한 풍부한 맛이 더해지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실피움은 마늘보다 효과가 좋았다. 보이지 않는 아로마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으니까.
그야말로 마법의 조미료였다.
실피움 줄기는 뿌리보다 양이 많았다.
덕분에 실피움 하나만 주문해도 식당에 필요한 하루치 양은 충당이 되었다. 포인트 부담이 심하지는 않아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셰프님, 이건 대체 어디서 난 거예요?”
주방 모두가 실피움에 과도한 관심을 보여서 난감해졌다.
“비법 재료입니다.”
“또요? 마늘 잣처럼요?”
“네, 같은 방식으로 셀러리에도 적용해 봤습니다.”
한길의 설명을 듣고 비법재료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마늘즙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물론 그 맛을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최수셰프 역시 실피움에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셰프님, 영수증 청구 안 하세요?”
“영수증이요?”
“비싼 재료가 아니라 해도, 쌓이면 이것도 다 돈입니다. 영수증 주시면 세금 공제 가능한데.”
“아뇨, 그냥 제가 따로 준비한 거로 하죠.”
“저한테도 비밀인가요?”
다행히 수셰프의 추궁은 거기서 멈췄다.
가끔 레스토랑이나 식당 주인들이 비법재료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주재료를 숨긴다고 하는데, 한길 역시 비밀유지를 위해 재료를 숨긴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한편, 주방에서 모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로마 코스 요리>가 그러했다.
맛을 볼 때만 해도 좋아하던 직원들은, 레시피를 알려주자마자 창백해졌다.
“셰프님, 너무한 것 아니에요?”
“아스파라거스를 갈아서 와인에 네 시간 재워두라고요?”
“아니, 돼지고기 하나 굽는데 육수를 따로 내고 세 번이나 맛을 입힌다고요?”
반응은 대략 수셰프와 비슷했다.
이렇게 손이 가는 요리를 어떻게 소화할지, 막막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지금의 레스토랑 메뉴를 만들면서 추가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긴 했다.
“일단 시범 운행이라고 생각해. 한동안은 코스 요리에 필요한 업무는 내가 할 테니까, 만약 정식 메뉴로 올라가면 주방 인원을 늘릴 거고.”
주방 직원들은 툴툴댔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로마 코스 요리의 주문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금요일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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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님, 기사 나왔어요!”
아침을 먹는 와중, 슬아가 들떠서 핸드폰을 들고 기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강혜림 기자가 쓴 한길의 로마 요리 기사였다.
“흠…. 이 기자님, 셰프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에요? 너무 기사를 잘 써주는데?”
슬아의 말대로.
혜림의 기사는 한길이 원하는 내용을 모두 담고 있었다.
라틴어 공부를 해가며 조리법을 해석하고 고대의 요리를 그대로 재현한 얘기. 로마식 허브가 국내에 없어 몇몇 허브 농장과 계약해서 직접 재배한다는 얘기.
그리고 한길의 소스에는 ‘로마식 인도 커리 소스’라는 기억하기 쉬운 명칭까지 붙여 주었다.
“왠지 이렇게 읽으니까 조금 먹어보고 싶기는 한데…… 가격만 조금 저렴하다면요.”
그게 문제였다.
가격.
로마 코스 요리는 인당 15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수셰프는 여기서 단 한 푼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특별할인이라면 모를까, 만드는데 들어가는 품, 구매한 재료를 생각하면 절대 이 밑으로는 안 됩니다.”
인당 15만 원이면, 두 명이 먹는 데 필요한 비용은 30만 원이다. 그 돈이면 호텔의 최고급 레스토랑을 갈 수 있는데, 굳이 한길의 식당에서 생소한 요리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격을 내릴 수도 없었다.
수셰프와 한 약속이었으니까
정말 파인 다이닝에 도전장을 내밀 거라면, 이 메뉴를 이 가격에 팔 수 있어야 한다.
이것도 못 할 거라면, 처음부터 도전하지 않는 게 맞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저녁 시간.
“테이블 4. 전채 토마토 타르타르, 메인 비프 웰링턴 하나, 함박 하나!”
“예스, 셰프!”
“테이블 7. 전채, 홍합 스튜 하나. 굴플래터 하나. 메인, 함박 둘!”
“예스, 셰프!”
기사를 보고 온 사람들이 혹여나 주문을 넣을지, 계속 기다려봤지만, 주방에 들어오는 주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새로운 오더가 들어올 때마다 조금씩 실망하는 한길에게, 슬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셰프님! 전에 말씀하신 특별손님 왔어요.”
혜림 기자가 말한 특별손님.
최연수 부장과 한대훈이 도착했다.
한길이 노려온 기회다.
“내가 부탁한 거, 기억하지?”
한길의 말에 슬아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스, 셰프!”
< 75. 이미지 변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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