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8)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8화(8/325)
< 8. 튀기면 신발도 맛있는데 >
“진짜로! 이런 건 처음 먹어봐!”
한길은 루시아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눈에 객관적인 수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루시아가 새로운 맛에 감탄합니다.] [2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이건 어디서 배운 거야?”
“그냥, 제 고향 요리에요.”
“마르쿠스 고향이 어디였지?”
한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이번에는 튀겨진 아스파라거스를 건넸다.
“이것도 맛있네? 나, 아스파라거스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하물며 지금 사용하는 건 갓 수확한 신선한 농작물이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마르쿠스도 한번 먹어봐!”
루시아는 입가에 노란 부스러기가 묻어있는 것도 모른 채 한길에게도 튀김 하나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한길이 맛을 본 후에도 무덤덤한 얼굴을 유지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별로야?”
“아뇨, 맛있어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뭔가 부족한 것 같아서요.”
“이게 부족하다고?”
튀김을 처음 먹어본 루시아와 달리, 한길은 보다 냉정한 맛 평가가 가능했다.
분명 맛있는 튀김이었다.
재료가 좋으니 풍미가 뛰어났다.
튀김옷은 바삭했고, 거슬리는 기름 냄새도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아스파라거스 튀김
완성도: 93%
매력: 9
재료: 8
식감: 9
비주얼: 9
+
‘역시……’
눈앞의 창이 한길의 감상을 압축하고 있었다.
7% 부족한 느낌이다.
93%면 완성도는 매우 높다.
판매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다.
일전에 파전은 저녁에만 팔았는데도 50인분이 넘게 팔렸다.
튀김까지 추가해서 온종일 팔면, 퀘스트에 필요한 100인분은 충분히 팔릴 터.
하지만 한길은 퀘스트에 필요한 분량만 판매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포인트를 많이 벌어가야 하는데……’
포인트가 필요하다.
전보다 훨씬 많이.
일전에 얻어간 올리브유와 가룸은 적은 양을 구매해도 오래 쓸 수 있는 재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소가 필요하다. 그것도 가게에서 판매할 샐러드에 쓸 채소가.
필요한 물량이 훨씬 많다.
포인트를 최대한 많이 벌려면?
손님이 많이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명의 손님에게 1인분 이상을 판매해야 한다.
추가 판매량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니 말이다.
그렇게 치면 이 튀김은 문제가 있었다.
만족스러운 맛이었으니까.
먹고 나서 ‘잘 먹었다‘하고 내려놓을 정도.
당장 ‘하나 더!’를 외칠 맛은 아니었다.
‘뭐가 부족한 거지?’
한길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채소는 지금의 품질도 훌륭하다.
반죽은 얼음이나 탄산수가 있다면 보다 바삭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냉동고가 없는 이곳에서 얼음을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은 건 기름.
올리브유는 특유의 향이 맛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무향인 홍화유(safflower oil)을 썼다.
발연점도 높으니 기름에 문제는 없지만……
‘아!’
순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한길은 바로 주방으로 달려가서 조리대 위의 병을 하나하나 살폈다.
여기라면 분명 있을 터.
“이건가?”
고소한 향이 나는 병의 내용물을 맛보자, 창이 떴다.
[생참기름(등급 2)이 고르메 상점에 등록되었습니다.]+
품명: 생참기름
등급: 2
원산지: 카이로, 이집트.
가격: 150 고르메 포인트.
정보: 참깨를 볶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냉압착하여 만든 기름입니다.
+
‘찾았다!’
예전에 일식집에서 일할 당시, 일본의 튀김 장인들은 참기름을 섞어 사용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튀김유에 참기름을 조금 넣어본 적이 있었는데, 끔찍한 맛이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씁쓰름함과 재를 씹는 것 같은 탄 맛이 나서 안 넣으니만 못했다.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쓰려면 제대로 알고 쓰던가.’
하며 사장한테 혼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하듯이 재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튀김 장인들이 쓰는 것은 생참기름.
일반적으로 시중에 나온 진한 갈색의 참기름과 달리, 색도 노랗고 향도 연하다.
일반 참기름은 깨를 고온에 볶아서 고소함을 끌어올린다. 반면, 생참기름은 열기 없이 깨를 꾹 눌러서 짜내는 기름이다.
맛도 다르고, 발연점도 다르고, 가격도 다르다.
고온 압착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생산량이 많지 않아 비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대부분의 기름을 냉압착으로 만들었다.
한길은 새로운 솥에 생참기름을 붓고 들고나왔다.
“그건 또 뭔데?”
“이러면 더 맛있을 것 같아서요. 다시 한번 비교해 볼래요?”
재료를 낭비한다고 뭐라고 할 법도 한데, 루시아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양파와 아스파라거스가 튀겨지길 기다릴 뿐.
“어때요?”
“둘 다 맛있어!”
“그래요?”
“그래도 손님한테 팔 건데 자세히 비교하는 게 좋잖아? 하나만 더 줘봐.”
객관성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눈빛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한길이 원하던 반응이었다.
이번에는 양파 두 개를 튀겨서 루시아에게 하나를 주고, 한길 역시 맛보았다.
바사삭!
확실히, 더 풍성한 맛이었다.
튀김옷에서 어렴풋한 고소함이 풍겼는데, 재료의 맛을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본연의 향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까 먹은 튀김이 무대 위에서 독백하는 주인공이라면, 이번에는 조연과 함께 무대에 서 있는 그런 느낌.
희미한 참기름 향이 빈틈없이 무대를 꽉 채워주는 동시에, 주인공의 특별함을 부각해주고 있었다.
“다른 것들도 한번 튀겨보자!”
속이 빤히 보이는 루시아의 말에 웃음이 나오는 순간,
“그건 뭐죠?”
돌아보니, 입술을 적셔가며 뚫어지게 튀김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이건…… 데자뷔?
#
가이우스는 외부 업무를 마치고 공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제의 탁월한 저녁 메뉴 선택으로 아내가 매우 기뻐했기에, 종일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도 있으려나?’
어느새 가이우스는 루시아의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파전을 살 생각은 없었다. 이틀이나 연속으로 먹기에는 부담이 가는 가격이었으니.
어차피 시간도 조금 남겠다, 묘기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뭐 하는 거지?’
오늘은 요리사가 또 다른 희한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두 개의 기다란 나뭇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었는데, 가재의 집게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솥 안에 한가득, 호수처럼 기름을 담아놓고 그 안에 음식물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기름에 빠진 음식은 잠시 후 샛노란 갑옷을 두르고 나왔고, 루시아가 아기 새처럼 그걸 받아서 먹고 있었다.
와사삭!
요란하게 씹히는 소리가 가이우스에게까지 들려왔다. 듣자마자 호기심이 일었다.
“그건 뭐죠?”
“튀김이에요.”
루시아는 단답형으로 할 말만 하고 남은 튀김을 마저 입안에 털어 넣었다.
와사삭! 바사삭!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다.
궁금했다.
하지만 어제 파전을 무려 세 개나 먹는 바람에 12애스나 소비한 상태.
“세 개에 1애스에요.”
“주세요.”
루시아의 말에 가이우스는 바로 미끼를 물었다.
어차피 빵을 사 먹어도 1 애스.
같은 가격이라면 이쪽이 낫다.
“바로 튀겨드릴게요.”
요리사는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채소를 집어서 기름에 풍덩 빠트렸다.
챠그르르르!
채소가 표면에 떠오르자, 맛깔나게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그 주위에 투명한 거품이 일었다.
파전과는 달리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다행히도.
“바로 먹어도 되나?”
한길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이우스는 바로 아스파라거스 튀김을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사삭!
가볍게 바스러지는 소리가 거리의 소음을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잘 구워진 빵의 크러스트를 씹었을 때의 쾌감. 아니, 그 열 배는 됨직한 쾌감이 온몸을 덮쳤다.
튀김옷은 입안에서 잘게 쪼개졌고, 그 사이로 싱그러운 봄 내음을 풍기는 아스파라거스즙이 흘러나왔다.
담백한 즙 위로 단단한 튀김 조각들이 굴러다니며 입안 구석구석을 자극했다.
“이거, 별민데?”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이번에는 순무를 집어 들었다.
바사삭!
순무의 맛은 또 달랐다.
처음 먹어보는 맛.
잘 익힌 순무는 알싸한 향이 날아가면 감자와 비슷한 맛이 난다. 그리고 감자는 쪄 먹는 것보다 튀겨 먹는 게 가장 맛있다.
마치 이렇게 먹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듯이, 적당한 기름기를 머금은 순무는 고소하면서 담백하고 알찬 맛이었다.
마무리는 양파.
달달하면서 약간은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스파라거스, 양파, 순무.
분명 매일 먹는 재료인데 새로웠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괜히 마음이 들떴다.
“세 개만 더!”
가이우스는 추가 주문을 넣었다.
점심 예산을 조금 넘긴 했지만……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사치도 아니고 이 정도 호사는 부려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으로 가져갈게요.”
“네. 잠시만요.”
루시아는 곧바로 짙은 녹색 이파리를 찾아와서 그 위에 튀김을 올려 건네주었다.
가이우스는 아이를 다루듯, 손바닥 안에 튀김을 소중히 안아 들고 공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참지 못하고 튀김 두 개를 먹어 버리는 바람에, 공방에 도착할 때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건 또 뭐야?”
동료가 처음 보는 음식에 질문을 했다.
“이번에 루시아네서 새로 판매하기 시작한 요린데 튀김이라고 부르더군.”
“루시아? 아, 데시마 딸? 데시마가 있을 땐 참 맛있었는데, 요리사가 여러 번 바뀌고 나서는 영….”
“이번에 새로 요리사가 왔는지, 맛이 기가 막혀.”
가이우스는 보란 듯이 남은 튀김을 우적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갈레리아 가문에 초청을 받았을 때 먹은 닭고기가 있었는데, 그 맛이랑 유사한 데가 있어. 이 씹히는 질감이 말이지….”
가이우스가 장황한 설명을 이어가자, 동료인 파비우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또 시작이군.’
가이우스의 레파토리였다.
언젠가 한 번 귀족 집에 초대되었는데 천상의 음식을 맛보았다느니.
같은 얘기를 벌써 수십번은 들은 것 같았다.
본인은 신나서 떠들어대지만, 먹어보지도 못한 맛을 아무리 설명해봐야 상상이 가지 않는다. 냉담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파비우스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가이우스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 루시아네에서 이걸 해낸단 말이지! 그런데 가격이 착해. 세 개에 1 애스더라.”
“얼마라고?”
#
“튀김은 마감입니다! 파전은 한 장만 남았어요!”
“계속 기다렸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재료가 다 떨어졌는데.”
루시아가 매진 선언을 하자,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불평을 터트렸다.
“내일은 조금 일찍 와야지.”
“내가 처음부터 2인분 사자고 했잖아?”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제야 한길은 테이블로 가서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지난 몇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한쪽에서는 파전을 굽고, 한쪽에서는 튀김을 튀기고.
‘그래도 반응이 좋네?’
몸은 피로했지만, 마음은 흡족했다.
지난 2년간, 빈 가게를 지키며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려 온 한길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요리를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재촉까지 하다니.
심지어 외국인들이.
물론,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니 신기해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요리가 통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언젠가는 현실에서도……
‘아니, 너무 앞서 나가지 말자.’
아직은 한스키친도 제대로 운영하기 벅찬 상황. 일단은 자신의 식당부터 살려야 했고, 그러려면 샐러드 메뉴를 추가해야 했다.
이번에는 귀중한 허브와 채소류를 잔뜩 구매할 수 있다. 치즈도 있다.
든든함을 줄 단백질 하나만 추가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샐러드 판매를 시작할 수 있다.
‘닭가슴살이 가장 무난하긴 한데 너무 무난하고. 그렇다고 소고기를 쓰기에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고.’
메뉴를 고민하는 한길의 눈앞에 갑자기 작은 그릇이 놓였다.
“고생했어! 바빠서 밥도 못 챙겨 먹었잖아?”
“루시아, 요리는 못한다면서요?”
“설마 이 정도도 못 할까 봐.”
자세히 보니, 정말 요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메뉴였다.
“병아리콩이네요?”
“설마, 반찬 투정은 아니지?”
“그럴 리가요.”
“병아리콩을 무시하지 말라고. 군인들도 검투사들도 먹는 건데. 힘을 내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거든?”
“투정 아니에요.”
병아리콩은 가끔 인도 식당의 커리에도 사용된다. 흔한 재료는 아니지만,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맛있네요.”
“놀리지 마.”
“진짜로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병아리콩은 땅콩과 콩을 반반 섞은 정도의 고소함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삶은 밤과 비슷하다.
그 위로 올리브유를 뿌리고 파슬리를 다져서 넣으니, 절묘하게 떨어지는 맛이었다.
무엇보다, 새로웠다.
든든하기도 했고.
‘완성이네.’
일단 필요한 단백질은 구한 것 같다.
재료는 모두 얻었으니, 이제 필요한 건 포인트.
아직 정산되지 않아서인지 상점에는 금액이 뜨지 않았다.
“루시아, 혹시 오늘 몇인 분 팔렸는지 알고 계세요?”
“글쎄, 나도 세어볼 생각은 못 해서.”
루시아도 나름 바빴다.
재료가 떨어질 때마다 주방에 들어가 재료를 손질해서 나오느라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으니.
“하지만 못해도 300인분은 넘을걸?”
“에이, 무슨 300인분이에요. 그만큼 장도 못 봐왔는데요.”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루시아가 덧붙여 말했다.
“어, 몰랐어? 재료가 다 떨어져서 나 두 번이나 장을 다시 봐왔는데? 어? 왜 그리 웃는데?”
< 8. 튀기면 신발도 맛있는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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