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82)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82화(82/325)
< 82. 찾아라, 찾았다! >
“피곤해 죽겠네.”
경비병 랄프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꼿꼿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레이트 홀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요즘 왜 이렇게 일이 많지?”
“꼭 하지 말라는 짓을 골라서 하는 놈들이 있으니까.”
“요즘 시기가 시기다 보니 그렇지.”
랄프의 옆에 앉은 동료들의 입에서도 봇물 쏟아지듯 불평이 터져 나왔다.
랄프는 국왕의 알현실 앞 통로에서 보초를 선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되는 자리다.
허가를 받지 못한 인물은 절대 통과시키면 안 되니까.
문제는, 궁에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천 명도 족히 넘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다.
평소에는 눈대중으로 차림새를 보고 걸러내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부러 화려한 옷차림으로 꾸미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막아서면 길을 잃은 척 시치미를 떼거나, 자신이 누군지 아냐며 큰소리를 떵떵 치는 사람들도 있다.
복도를 산책하는 중이라며 딴청을 피우면서, 알현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엿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는 사람들도 있고.
그걸 일일이 막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서 더 피곤해진다.
꼬르륵.
배도 더 자주 고파오고.
“이제야 나오네.”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저리 화려해?”
동료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레이트 홀 입구에 수많은 하인이 거대한 접시를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양고기가 듬뿍 들어간 스튜.
걸쭉한 갈색 소스가 올라간 토끼고기.
뭔지 모르겠지만 동글동글하게 빚어낸 고기.
노릇노릇한 통닭.
뚜껑이 덮어진 거대한 파이.
뚜껑 없이 녹색 채소가 들어간 파이.
삶은 양배추.
잔뜩 부풀어 오른 하얀 빵.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요리들이 잔인할 정도로 매혹적인 향을 풍기며 눈앞을 지나간다.
꼬르륵.
안 그래도 허기졌는데, 저 행렬을 보니 뱃가죽이 더욱 엉겨 붙어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저건 누구 요리일까?”
“모르지. 대사라도 왔나?”
“우리는 언제 저런 걸 먹어보나……”
이 순간은 항상 고통스럽다.
온갖 진미가 보란 듯이 지나가니까.
하인들은 매정할 정도로 도도하게, 요리를 들고 그레이트 홀을 가로지르며 걷는다.
그레이트 홀 반대편 문이 열리고, 요리가 사라진다. 귀빈실(Great Watching Chamber)에서 먹는 요리다.
“아, 또 왔다.”
이번에는 또 다른 행렬이 지나간다.
방금전과 비교하면 소박한 편이지만, 제법 기름진 요리들이다.
바싹하게 익힌 돼지 구이.
아까보다는 조금 크기가 작은 파이.
통으로 삶은 거위.
목적지는 그레이트 홀의 상석에 앉은 귀족 테이블.
이제부터는 눈앞에서 귀족들이 두 손으로 저 요리를 뜯어 먹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부러운 심정으로 뚫어지라 그 모습을 관찰하는데, 귀족 테이블에 앉은 노리스 남작과 눈이 마주쳤다.
노리스 남작은 씨익 웃더니, 거위 다리를 하나 집어 들고 얄미울 정도로 맛있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쓰읍.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흐르는 침을 빨아들일 때,
“허브 스튜와 솔트 비프입니다.”
랄프로부터 제법 떨어진 곳에서 메뉴를 알려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마지막 순서.
그레이트 홀의 기다란 식탁에 앉은 하급 궁중 관리들과 하인들의 식사 시간이다.
“젠장, 솔트 비프인가.”
“오늘은 씹을 힘도 없는데.”
“그보다 허브 스튜 말고 고기 스튜는 안 되나.”
함께 앉은 동료들이 조용히 불평을 터트렸고, 랄프는 무의식적으로 턱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솔트 비프라니.
처음에 궁에 일할 때만 해도 공짜로 고기가 나온다며 감탄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상상하던 그 맛이 아니었다.
솔트 비프는 굉장히 질기다.
질겅질겅 씹어도 도무지 씹히지 않는다.
집요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살코기와 씨름하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포기하고 큼지막한 덩어리를 꿀꺽 삼켜야 하는데, 그러면 목구멍이 꽉꽉 막혀온다. 어쩔 수 없이 맥주를 한가득 입안에 퍼부어야 목 안의 매듭이 풀린다.
가끔 운이 나쁘면 고기에서 겨드랑이 냄새가 날 때도 있다.
하급 관리와 하인들에게 주는 음식이니, 요리사들은 건성으로 마지못해 요리를 만든다.
소문으로는, 재미 삼아 요리 안에 소변을 넣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설마설마 하지만, 가끔 강렬한 지린내가 올라오는 요리도 있다.
“허브 스튜입니다. 솔트 비프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나옵니다.”
드디어 랄프네 자리에도 요리가 나왔다.
온갖 재료를 넣고 푹 고아낸 누르스름한 죽.
궁전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이조차 감사하며 먹었지만, 매일 같이 눈앞에서 화려한 요리를 구경한 후에 먹으면 모래를 씹는 것 같다.
맹숭맹숭한 귀리 죽은, 씹어야 할지 삼켜야 할지 모르는 식감이다. 씹자니 씹히는 게 없이 힘없이 뭉개지고, 그대로 삼키자니 껄끄러운 덩어리가 목에 걸린다.
꿀꺽.
그래서 맥주가 필요하다.
랄프는 간절한 눈빛으로 상석에 앉은 노리스 남작 쪽을 바라봤다. 남작은 거위를 다 먹고 이번에는 파이를 시식하고 있었다.
쩝.
“솔트 비프입니다.”
그 사이 랄프의 자리에도 고기가 나왔다.
그런데…….
솔트 비프가 아니다.
“뭐야, 이제는 하다못해 다 태운 음식을 주는 건가?”
“이야, 너무 하네.”
“먹고 병들면 어쩌라고?”
새까맣다고 할 정도로 검은 고깃덩이.
심지어 그 위에는 이상한 알갱이가 올라가 있었다.
같은 자리에 앉은 동료들은 금방이라도 항의할 것처럼 들썩이고 있었다. 랄프 역시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킁킁.
참을 수 없는 향이 코에 닿았다
탄 고기에서 나는 향이다.
‘저놈들은 이 냄새를 못 맡는 건가?’
고기는 어느 정도 식어서 향이 많이 나지는 않았다. 남들보다 후각이 조금 뛰어난 랄프에게만 감지되는 향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희미한 흔적으로도 순식간에 입안이 질퍽질퍽해질 정도로 침이 고여왔다.
자세히 보니, 까만 고깃덩이의 칼집 난 부분 사이로 불그스름한 색이 보였다.
랄프는 홀리듯이 팔을 뻗고 고깃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막상 들어 올리니, 정말 아름다운 살코기였다. 선명한 분홍색. 매끄러운 표면은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다.
“……”
“……”
불평을 하는 동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랄프는 고깃 조각을 들고 그대로 입안에 쑤셔 넣었다.
크기가 제법 되어 두 번이나 접어야 했지만, 제법 큰 조각은 통으로 입안에 들어갔다.
“음…..”
미친 듯이 강렬한 향이 입안을 채우자, 절로 눈이 감겼다.
“무슨 맛이냐?”
어둠 속에서 동료의 질문이 들려왔지만,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이걸 말로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짜르르한 쾌감이 전율처럼 온몸에 흐르는 맛이었다.
랄프는 먹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맛이다.
겨자의 톡 쏘는 향!
씹을 때마다 줄줄 흐르는, 아낌없이 쏟아져 나오는 육즙!
마음속까지 든든하게 채워주는 소고기 향!
무엇보다…..
부드럽다!
살코기는 이빨이 닿을 때마다 입안에서 확실하게 씹힌다. 평소에는 한참을 씨름하다 억지로 삼켜야 하는데…..
오늘은 이놈이 바로 항복을 선언하고 기름진 육즙을 갖다 바친다.
정복하는 맛이 있다.
온몸에서 힘이 솟아오르고, 이상하게 행복감이 차오른다.
‘그래, 이 맛에 궁전에서 일하는 거지.’
갑자기 삶이 풍요로워졌다.
고기를 전부 굴복시키자, 입안에 얇은 기름막이 남았다.
꿀꺽.
맥주를 삼켰다.
오늘따라 술이 더 부드럽다.
달달한 맥주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쌉싸래하며서 구수한 향이 남았다.
입안이 텅 비고 나니, 그제야 주변의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옆에서 시끄럽게 후르릅 짭짭대는 소리가.
이미 동료들이 눈을 있는 대로 휘둥그레 뜨며 고기를 씹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랄프는 서둘러 이번에는 고기를 두 조각 집어 입안에 던져 넣었다.
음미할 여유가 없다.
서둘러서 턱을 움직여 씹고 바로 꿀꺽 삼켰다.
몇 번 오물거리기만 했는데, 고기가 얼마나 연한지, 목구멍을 타고 순하게 스르륵 넘어갔다.
혀끝에 강렬한 소고기 향과 기름진 향이 엉겨 붙었다.
맥주로 씻어낸다.
또 손을 뻗어 고기를 집어 든다.
다른 놈들도 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무언의 경쟁.
말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배를 채우던 그때,
“크흠.”
뒤에서 목청을 다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리스 남작이다.
#
‘오늘따라 뭔가 허전한데?’
고기 파이를 먹던 노리스 남작은,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을 느꼈다.
노리스 남작에게 있어 식사 시간은 궁중 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루에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4시만 되면, 삶이 즐거워진다.
작은 영지 하나만 갖고 있는 노리스 남작은, 평소에 다른 귀족들에게 무시를 당해왔다. 상인 집안 출신의 신흥 귀족이라며 업신여기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교양이 없다고 깔보는 이들도 있다.
기회주의자라며 코웃음 치는 인간들도 있고.
하지만 하루에 두 번.
식사 시간만큼은, 자신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헨리 국왕은 다른 건 몰라도 밥상만큼은 후하게 차려준다.
이곳에서 먹는 요리는 하나같이, 자신의 저택에서는 꿈도 못 꿔보는 요리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사를 마친 후가 가장 재밌다. 먹다 남긴 요리는 아랫사람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으니까.
하인 한 명에게 그릇을 들고 따라오라고 하고 연회장을 배회하다가, 평소에 인사성이 밝은 아랫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준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에게 간절한 신호를 보내온다.
적당히 덕담을 하면서 남은 요리를 주면, 고맙다며 굽신 거린다.
짜릿하다.
물론, 단순히 재미로만 하는 건 아니다.
이걸 잘만 하면, 하인들 중에 심복을 얻을 수도 있다. 중요한 소문을 물어다 주는 하인들이 있는가 하면, 열리지 않는 문을 열어주는 하인들도 있다.
궁전에서 정보는 권력이다.
무엇을 알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남작도 백작이 될 수 있다.
잘만 하면 금화가 떨어지고, 영지가 떨어지고, 작위가 떨어진다.
요즘 노리스 남작이 특히나 신경 쓰는 건, 알현실의 보초병들.
저쪽의 정보를 얻고 싶어 한동안 식탐이 강한 랄프에게 공을 들여왔다.
저번 주부터는, 랄프가 알현실에 누가 들렸는지 무심코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저놈들, 오늘 첫 끼를 굶었나?’
오늘따라 경비병들이 고개도 안 들고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양손 가득 고깃 조각을 쥐면서.
항상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랄프조차 이쪽을 보지 않는다.
걸신들린 듯이 무작스럽게 먹고 있다. 맥주를 마시고 소매를 입을 닦아낼 때를 빼고는, 다들 씹기에 바쁘다.
‘대체 뭘 먹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자네, 잠깐 이리 오지.”
노리스 남작은 평소처럼 하인을 불러서 그릇을 들게 하고, 경비병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크흠.”
인기척을 냈는데도 이놈들이 고개를 들지도 않는다.
“크흠. 크흠.”
목청을 세 번이나 다듬고 나서야 눈을 치켜뜬다. 다람쥐 마냥, 양 볼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상태로.
“오늘 나온 거위 고기가 참으로 맛있더군.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지. 랄프, 자네의 그 듬직함과 비슷해서 들고 와 봤네.”
평소라면 눈을 반짝이고 꼬리를 살랑이는 랄프가, 오늘따라 무심하다.
남작은 곁눈질로 눈동자만 스르륵 굴러가며 이들이 먹던 고깃덩이를 훔쳐봤다.
검은 옷을 두르고 있는 눈부신 선홍색이 눈에 박혔다. 아플 정도로 선명하게.
촉촉하게 반들반들하게 매끈하게 빛나는 살코기를 보니, 방금 식사를 마쳤는데도 다시 식욕이 돌아왔다.
“그건 뭔가? 처음 보는 요리군.”
자신의 말에 경비병들의 눈에 경계심이 일었다.
“요즘 자네들 사이에서는 이런 요리를 먹는가?”
“……”
“다행이군. 소고기는 뱃속을 따뜻하게 채워주니까. 이런 좋은 음식을 내다니, 전하의 마음이 참 따뜻하시군.”
“……”
“그런데 우리가 먹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이게 요즘 평민들이 먹는 방식인가?”
“…..”
“궁금해서 그러네. 땀 흘리며 고생하는 평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헤아리고 이해하는 게 우리의 역할 아니겠나. 아니 그런가?”
“……”
이 정도로 말을 꺼내면 적당히 눈치를 챌법한데, 이 둔한 녀석들이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크흠. 무슨 맛인지 궁금하군.”
“……”
“한번…..”
체면이 상할 것을 각오하고 이 정도까지 말을 꺼내자, 랄프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크흠, 그러면 어디 한 번. 이것도 다 자국민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니까.”
눈빛을 보아하니 거절했다가는 두 번 다시 권하지 않을 것 같다.
적당히 명분을 대고 고기를 집어서 먹자,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풍부한 맛은 분명히 소고기다.
소고기가 맞긴 한데…..
남작조차 이런 소고기는 먹어본 적이 없다.
혓바닥에 좌르륵 감기는 기름.
겹겹이 쌓인 풍미.
충족감을 안겨주는 육즙.
연하디연한 식감.
얼굴의 모든 근육이 한꺼번에 풀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맛이다.
“그래, 식사들 맛있게들 하고. 아, 자네는 잠깐 나 좀 보지.”
노리스 남작은 간신히 얼굴 근육을 당기며 표정 관리를 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릇을 든 하인에게 고갯짓을 하며.
복도로 나오고 적당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남작은 하인에게 물었다.
“방금 저 경비병 테이블에 나온 요리가 어느 주방에서 온 건지 알고 있나?”
“어느 주방이요?”
“자네가 오늘 요리를 서빙하지 않았나?”
“그게…..”
남작도 나름 궁전에 들어온 지 7개월이나 된다. 이곳에 주방이 수십 개가 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요리를 나눠주는데, 어디서 왔는지 저희도 모르죠.”
사람이 너무 많다.
주방도 너무 많다.
저 요리가 어디서 왔는지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한번 알아봐 줄 수 있겠나?”
“아마 누구도 기억 못 할 겁니다.”
하인은 최대한 공손한 척을 했지만, 딱 보면 척이다. 귀찮아하고 있다.
끄응.
노리스 남작은 어쩔 수 없이 품을 뒤지며 동전 하나를 꺼냈다.
“내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네. 저 새까만 솔트 비프를 만든 요리사 좀 찾아주게나.”
손에 동전을 쥐여주니, 하인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이름만 알아오면 이것의 두 배를 주지.”
끄덕.
사라지는 하인을 보며 노리스 남작은 홀로 미소를 지었다. 나간 돈은 아깝지만, 이건 투자다.
헨리 국왕은 요리를 좋아한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요리가 있으면 후하게 그 값을 치른다.
얼마 전에 콘왈리스 부인의 푸딩을 먹고 알드게이트에 대저택을 하나 선물로 주지 않았던가!
방금 경험한 저 정도 맛이라면, 분명 국왕도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일 거다.
국왕에게 직접 알려줄 수도 있다.
국왕이 기분 좋을 때를 잘 골라서 전달하면…… 잘하면 저택, 영지, 그도 아니면 작위가 내려질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정보를 더 비싼 값에 사갈 사람도 있고.
‘그러려면 다른 사람이 알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지.’
궁전에서 정보는 권력이다.
그리고 정보는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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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은 주방에서 솔트 비프를 플레이팅 하고 있었다. 맛깔난 붉은빛이 제대로 보이도록 부채처럼 펼치면서.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됩니다.”
서빙하는 하인은 고기를 모아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검은 통나무처럼 보이게.
“이게 더 맛있어 보이잖아요.”
“그래도 안 됩니다. 이대로 나가면 제가 요리를 망쳤다는 소리를 들어요. 아니면 옮기다 넘어졌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요.”
서빙하는 하인은 한길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대로면 임팩트가 약한데……’
등장이 화려해야 하는데.
분홍빛이 드러나지 않는 고기는 비주얼이 너무 약하다.
한길은 새로운 하인이 나타날 때마다 고기를 흐트러트렸고, 하인들은 그걸 또 하나로 뭉쳤다.
결국 첫 번째 서빙은 모두 저 통나무 모양으로 나갔다.
“빨리 두 번째 서빙 준비해.”
길버트가 옆에서 외쳤다.
그레이트 홀은 제법 넓지만, 모든 하인들과 귀족들이 앉을 만큼 넓지는 않다. 그래서 총 두 번의 서빙이 나간다. 레스토랑의 회전율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하인인 척하고 내가 들고 갈까?’
어차피 한길이 입은 의상과 서빙하는 하인이 입은 의상에는 큰 차이는 없었다.
이 김에 그레이트 홀 강당을 한번 보고……
들킬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획을 짤 때,
[월트 노리스 남작이 당신의 요리를 인정했습니다. 1/200] [15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한길에 눈앞에 반투명 창이 등장했다.
‘귀족의 인정을 받았어?’
게다가 추가 포인트도 지급되었다.
손님이 먹을 때마다 포인트가 지급되는 건, 로마의 초창기 이후로 처음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추가 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빨리, 다음 서빙 준비해!”
길버트가 다시 재촉해 왔다.
두 번째 서빙 나갈 요리를 담고 마무리를 하는데, 하인 한 명이 들어오더니 한길의 요리를 보고 놀란 토끼 눈을 했다.
“혹시, 당신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이상한 질문에 한길이 눈살을 찌푸리자, 하인은 아차차 하더니 말을 바꿨다.
“이거, 당신이 만든 요리인가요?”
“그런데요.”
“찾았다!”
하인은 크게 입을 찢으며 웃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한길만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노리스 남작이 찾으시는데요.”
< 82. 찾아라, 찾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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