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86)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86화(8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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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만들 건데?”
재료 상자를 뒤적이며 채소를 하나하나 살피는 한길의 옆에서, 길버트가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샐러드가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샐러드는 이미 있잖아. 고기 요리에도 들어갔고, 채소는 이 이상 정말 안 된다니까?”
“흠…. 그럼 장미라고 부를까?”
“장미?”
길버트의 말대로.
귀한 재료와 귀한 요리를 중요시하는 이곳에서, 한길은 이미 너무 많은 채소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에게 채소는 천한 재료다.
하지만 한길이 만들려는 요리를 보고 천하다는 말은 꺼낼 수 없을 거다.
한길은 채소 중에서도 가장 모양이 좋고 신선한 오이, 비트, 래디시 무를 고르고 도마로 향했다.
“내가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 해. 그리 어렵진 않으니까.”
탕탕탕탕!
비트와 래디시는 얇게 편 썰었다. 적당히 아삭하게 씹히지만, 유연하게 구부러질 정도의 굵기로.
오이는 손가락 마디 정도의 굵기로 썰고, 가운데 씨가 있는 부분을 비워냈다.
소금을 조금 뿌리고 식초, 올리브유, 오레가노를 섞어 드레싱을 만들어 살짝 버무려놓으면 밑 재료 준비는 완료.
다음은 쌈무처럼 얇게 썬 동그란 비트를 도마 위에 올리고 줄 세워야 한다. 사슬처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가 조금씩 포개지도록.
길버트는 갸우뚱거리면서도 한길을 따라 똑같이 기다란 사슬을 만들었다.
“비트와 래디시는 꽃잎, 그리고 오이는 화분이 될 거야. 김…. 카펫 말듯이 말아서 꽂아주면 돼.”
비트 사슬의 한쪽 끝에서 꽃잎을 붙잡고, 김밥을 말듯이 데굴데굴 굴려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고 오이 링에 끼워서 고정했다.
서걱.
화분의 뿌리에 해당하는 자투리 비트를 칼로 썰어내자, 빨간 작대기를 오이에 세워둔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여기서 펼치면.”
꼿꼿하게 뭉쳐있는 채소 꽃잎을 손으로 조금 흐트러트리며 펼치자,
“어?”
화려한 붉은 장미가 피어올랐다.
래디시로 반복해 보자, 나풀거리는 하얀 꽃잎의 가장자리만 빨갛게 물들어 있어 더욱 정교해 보였다.
“이래도 뭐라고 할까?”
“아니, 그러면 큰일 나지.”
장미는 왕실의 상징.
아무리 채소여도, 장미를 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대로, 어디 보자, 한 접시에 30개씩만 만들어 보자.”
한 접시에 30개면 일곱 접시에 210개.
길버트의 얼굴이 일순 굳어왔지만, 요령을 깨닫고 나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적어도, 마스터 쿡이 와서 최종 점검을 할 때는 모든 요리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마스터 쿡은 채소 장미를 보고 멈칫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밀푀유 샤부샤부는 달랐다.
“이건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육수는 체에 걸러 따로 마련해놨지만, 아직 냄비에 붓지는 않았다. 즉, 생고기와 양배추만 장미 문양으로 겹쳐놓은 상태다.
“이왕이면 테이블에서 끓이고 싶은데, 마스터 쿡의 허가가 필요할 것 같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한길의 답변에 마스터 쿡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궁전에서 나오는 모든 요리는 조리되어 나간다.
하지만 저 장미 문양……
육수를 미리 부으면 살코기가 익어 모처럼의 붉은 장미가 시들어 버린다. 반면, 눈앞에서 부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된다.
귀족들은 화려하고 재밌는 볼거리를 좋아한다.
일부러 파이에 살아있는 종달새를 넣어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이 정도는 양호하지. 날아간 종달새를 잡으러 하인들이 뛰어다닐 필요 없고.
“접시 창고에서 불을 올릴만한 장비가 있는지 찾아와. 육수는 따로 병에 담아서 테이블에서 서빙하도록.”
#
‘피곤하군.’
식탁에 앉은 더비 백작은 눈이 감겨오는 것을 느꼈다.
아침부터 몸에 한기가 올라오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식사 한 끼 정도는 거르고 방에 들어가서 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궁에 생활하는 사람이 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왕과의 불화로 해석될 수 있으니.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
중요한 시기니까.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내일은 푹 쉬게나. 무리해서 움직이면 몸이 상하니.”
옆에 앉은 윈스턴 백작이 걱정스레 말을 건넸지만, 그 말을 듣고 더비 백작은 코웃음만 나왔다.
저 인간의 생각은 뻔하다.
경쟁자 한 명이라도 제거하려는 것.
안 그래도 궁 안은 웃으며 뒤로 칼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최근 들어서는 더욱 심해졌다.
얼마 전에 헨리 국왕이 제정한, 소규모 수도원 폐지령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수도원은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영국이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도원의 낭비, 폐단 등의 이유를 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결과.
이 법령이 시행된 결과, 폐쇄된 수도원의 땅이 모두 왕실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국왕은 지금 땅보다 현금이 필요하다.
잘만 움직이면, 이 기회에 알짜배기 땅을 구매할 수 있다. 좋은 땅 하나면 향후 10년, 20년, 아니 다음 세대까지 삶이 편해진다.
‘내일은 조금 더 쓸만한 선물을 들고 알현실을 찾아가야지….’
간신히 온몸에 힘을 불어넣으며 자세를 바로 하는데,
“첫 번째 코스 나왔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화려하군!”
상이 차려졌다.
감탄사를 내뱉는 윈스턴의 말대로…..
오늘은 뭔가가 다르다.
하안 깃털째 나오는 백조.
잘 삶아진 토끼.
정교한 문양이 세공된 파이.
이 정도까지는 익숙하지만…..
‘장미?’
빨간 장미가 피어오른 냄비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빨간 이파리는 고기다.
얇게 저며서 썰어놓은 고기.
붓으로 꽃잎을 하나하나 그려 넣듯이, 고운 소고기 선이 겹쳐져 장미를 이루고 있었다.
‘무슨 맛일까?’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신기한 음식.
당장 먹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식탁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고 서두르면 너무 궁핍해 보이니까. 그리고 지금은 궁핍해 보이면 안 되는 시기다.
“오늘은 밥상이 평소보다도 더 품격 있군.”
“전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네.”
적당한 대화를 주고받고 하인이 들고 온 은 대야에 손을 씻었다. 그리고 챙겨온 작은 칼, 숟가락과 냅킨을 꺼냈다.
칼과 숟가락은 테이블에 올리고, 냅킨은 어깨에 걸치고, 첫 번째 요리인 스튜를 먹었다.
입안에 흘러들어오는 스튜를 삼키면서도, 관심은 온통 장미 냄비로 쏠려 있었다.
‘저건 어떻게 먹는 거지? 날고기를 먹으라고 하진 않을 테고.’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최대한 태연한 척, 스튜를 적당히 비워내고 작은 파이를 몇 조각 먹고, 파이를 내려놓자, 하인이 다가와 백조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슥슥.
들고 온 칼로 백조를 조금만 썰어서 빵 위에 올리고 적당히 씹어 삼켰다. 다음은 토끼를 한 조각 썰어서 먹고.
‘이 정도면 되겠지?’
너무 서두르는 거로 보이지 않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평소보다 속도를 높이고.
먹다 남은 토끼를 내려놓고 어깨에 걸쳐둔 냅킨에 손을 닦았다.
다 먹었다는 신호.
그제야 하인이 다가오더니, 냄비가 놓인 거치대 아래에 숯을 넣었다. 그리고 별도의 병에서 물을 따랐다.
“허허, 전하가 오늘은 재밌는 요리를 준비하셨어.”
“그러게 말일세. 이 화려하면서도 세심한 문양에서 전하의 기품이 그대로 느껴지는군.”
얄미운 윈스턴의 말을 맞춰주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도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보글보글.
냄비에서 조금씩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장미는 열기를 받아 갈색으로 시들어버렸다. 그건 아쉬웠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위장이 자극을 받았는지, 갑자기 공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수많은 요리를 먹었는데도.
투명하게 비치는 맑은 국물.
코끝에 닿는 구수한 향.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저 정교함.
“이제 드셔도 됩니다.”
하인의 말을 듣고, 더비 백작은 최대한 조급함을 삼키며 숟가락을 뻗었다.
푹.
첫술을 뜨자, 고기와 양배추가 함께 올라왔다. 살짝 숟가락을 털어 양배추는 흘려보내고 고기와 국물만 조금 담아서 들고 왔다.
‘정말 꽃잎 같군.’
길쭉한 꽃잎은 숟가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하늘하늘하게 흔들릴 정도로 얇은 고기 꽃잎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얇은 고기는 본 적이 없다.
고기는 얇게 먹는 게 아니니까.
어떤 맛일지.
입술을 가져다 대자, 뜨거웠다.
혀가 델 정도로.
후우. 후우.
입김을 불어가며 조금 열기를 식히고,
후루룹.
바로 흡입을 했다.
뜨끈한 국물이 입안에 흘러들어오고, 야들야들한 소고기가 함께 따라왔다.
레이스 같은 가벼움.
국물 속에 떠다니며 입안 구석구석을 간질이는 소고기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녹아내리듯이 씹혔다.
그 여리여리한 연약함이 국물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국물은 담백하면서도 놀랄 만큼 깊은 맛을 내고 있었다. 기름지면서도 순하다. 어머니의 손길로 지친 위장을 쓸어주는 것 같은, 푸근한 맛이었다.
한 술 더.
이번에는 고기와 함께 양배추도 한 조각 숟가락에 담았다. 후우 후우 불어주고,
‘….!’
양배추는 처음 맛보는 식감이다.
딱딱함과 물렁물렁함 사이에 있는.
씹을 때마다 양배추 안에서 또 다른 즙이 뿜어나와 국물과 섞였다. 맛이 한층 더 깊어졌다.
후룹, 후루룹.
구수하면서도 따뜻하고, 포근하면서 안락하다.
온몸에 숨어있던, 자신을 괴롭히던 몸살 기운을 물리치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맛.
냄비 바닥이 보일 때 즈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등까지 뜨뜻하게 데워진 듯, 온몸에 열기가 넘쳤다. 아니, 기운이 넘쳤다.
아직 냄비 바닥에는 국물이 고여 있었지만…..
저것까지 싹싹 긁어먹을 수는 없는 일.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둘러 상에 올라있는 나머지 샐러드와 삶은 양배추를 먹고 와인으로 입을 헹궜다.
“두 번째 코스입니다.”
모든 요리를 걷어간 후, 새로운 상이 차려졌다.
두 번째 코스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요리가 있었다.
고기로 만든 짙은 갈색의 왕관.
그리고 생생하게 빛나는 장미.
이번에도 적당히 윈스턴과 대화를 맞추며 저 요리의 순서가 될 때까지 달렸다.
스튜를 먹고, 파이를 씹었다.
최대한 배를 채우지 않게 조금씩만.
고기도 한 점씩만 맛보고, 드디어!
대망의 양고기 왕관에 손을 뻗었다.
스윽. 스윽.
하얀 뼈를 잡고 칼로 고기를 썰자, 손끝에 탄력이 느껴졌다. 칼날에 저항하는 양고기의 탄력이다.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딱, 생동감이 느껴질 정도로만.
도끼처럼 생긴 양고기를 집어 들자, 미친 듯이 진한 육향이 코를 찔렀다.
양고기의 표면에는 무언가 오돌토돌하게 박혀 있었지만, 자세히 관찰할 여유는 없었다.
호기심.
궁금증.
본능을 자극하는 이 기름진 육향.
바삭.
본능에 몸을 맡기고 양고기를 한입 베어 물자,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와 놀랐다.
그 뒤로 이어진 건 맛의 향연.
양고기는 탱글탱글하게 튕기듯이 입안을 돌아다녔지만, 막상 이빨에 닿으면 부드럽게 무너져내렸다.
물릴 때마다 주룩주룩하고 아낌없이 자신의 양분을 육즙에 담아 양보했다. 육즙이 입안을 매끄럽게 기름칠했고, 톡 쏘는 겨자 향이 느끼함을 날려버렸다.
그 외에도.
바삭!
양고기의 껍질에 묻어 있던 알갱이.
고소한 빵가루와 매콤한 후추 알갱이가 씹을 때마다 소리를 내며 향을 터트렸다.
입안에 육즙을 찰박찰박하게 담고 알갱이를 굴리는 재미도 있었다.
처음이었다.
눈으로 보는 재미는 알고 있었지만, 입안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니.
연달아 두 개의 양고기 도끼를 해치우고 다음으로는 장미로 손을 뻗었다.
새하얀 장미와 새파란 이파리.
어떻게 먹는지, 그 방법을 몰라 일단 입을 크게 벌리고 통으로 장미를 던져 넣자,
아삭!
나뭇가지를 밟을 때 나는 소리처럼, 경쾌한 소리가 났다.
래디시 특유의 톡 쏘는 상쾌한 향이 입안의 기름기를 잡아서 정돈해 주고, 오이의 시원한 즙이 그 기름기를 말끔하게 씻겨 주었다.
꿀꺽.
왠지 양고기를 하나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양을 공격하고.
이번에는 비트 장미를 먹어 보니, 대지의 맛과 같은 씁쓸함이 다시 입안을 정돈해 주었다.
덕분에 양고기를 세 조각이나 먹을 수 있었다.
마무리로 달달한 파이를 한입 먹고. 오렌지 조금, 와인을….
“배가 터질 것 같군.”
“그러게 말이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옆에 앉은 윈스턴 백작이 입가에 기름을 잔뜩 묻은 상태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저런 모습일까?’
뒤늦게 더비 백작도 냅킨으로 입을 닦자, 엄청난 기름기가 묻어 나왔다.
‘분명 배는 안 고팠는데….’
더비 백작은 원래부터 입이 짧은 편이다.
많이 먹지 않는다.
오늘은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하지만 상 위에 차려졌던 호화롭고 푸짐한 요리는, 처참할 정도로 잔해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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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입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는 두 명의 백작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가 있었다.
노리스 남작이었다.
‘그래도 헛돈을 쓴 건 아닌가 보군.’
마크라는 요리사를 귀족 주방으로 보내라고 마스터 쿡을 설득하는 데 들어간 비용. 백작들에게 마크의 요리를 주라고 설득하는 데 들어간 비용.
이것저것 크고 적은 돈이 들어갔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저 둘이 저 정도로 체면을 내려놓다니….’
윈스턴과 더비 백작은 둘 다 입맛도 까다롭고 성격도 까탈스럽다.
그 둘이 저렇게 맛있게 먹다니.
그것도 지켜보는 노리스 남작의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이 정도면……
‘아니, 그래도 조금 더 확인해 보자.’
노리스 남작은 신중한 성격이었다.
여러 번, 확인에 확인을 거친 후에야 움직인다.
이런 신중함 덕분에 상인으로 성공하고 부를 거머쥘 수 있었으며, 지금의 자리에도 올라올 수 있었다.
아무리 맛있어도, 하인 주방에서 나온 솔트 비프 하나만 맛보고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단 한 번의 상차림으로 결론을 내릴 생각도 없고.
‘특히 저 윗분들한테 추천을 하려면 말이지.’
추천이라는 게 그렇다.
나는 자신 있어도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일이고, 잘못 추천하면 중간에 낀 중개인이 가장 낭패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화려한 음식.
게다가 튜더 장미를 형상화하고, 저 깐깐한 백작 둘이 체면을 잊게 만들다니.
‘이건 진짜네.’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저 정도면 헨리 국왕도 분명 좋아할 거다.
왕은 식탐이 많다.
직접 프랑스에서 요리사까지 섭외해 올 정도로 음식에 대한 관심도 많다.
그리고 국왕은 단순하다.
끈질기게 선물 공세를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선물이라며 요리사를 들이밀면 된다.
방법은 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결과.
무엇이 돌아올까?
국왕은 고마움을 오래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단기투자보다는 장기투자가 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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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여가 지났다.
어느덧 퀘스트의 마지막 날.
[그레고리 알베른 백작이 당신의 요리를 인정했습니다. 213/200] [20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퀘스트 미션은 달성한 지 오래다.
식사 시간마다 귀족의 인정을 받으니, 포인트도 나쁘지 않게 쌓였고.
“내일은 생선 날인데, 뭘 할까?”
“흠…. 비트로 생선 비늘을 만들어 보지.”
“생선 비늘?”
“생선 위에 비늘처럼 비트를 겹쳐도 될 것 같지 않나? 붉은 비늘이면 보기에도 괜찮고.”
“그건 나쁘지 않겠군.”
주방은 그럭저럭 잘 돌아갔다.
브렌트와 한길 사이의 이상한 기류는 여전했다.
툭하면 눈을 부라리며 흠을 잡으려는 브렌트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존하기로 했다.
친구를 만들러 온 건 아니니까.
손발만 잘 맞는다면, 성격이 맞지 않고 서로가 마음에 안 들어도 함께 일할 수 있다.
매번 메뉴를 정할 때 전체적인 흐름이나 특별한 요리는 한길이 담당했다. 그 외의, 귀족 주방에서 지켜야 하는 룰은 브렌트가 담당했다.
로마에서 느꼈던 끈끈한 동료애 대신, 묘한 라이벌 의식과 경쟁심이 가득했다.
방심은 금물.
매일 신경전이 오갔지만, 아직은 한길이 우위에 있었다.
그 이유.
튜더 장미 요리가 엄청난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장미 요리가 나간 다음 날, 마스터 쿡은 한길에게 그 요리를 다른 주방에도 가르쳐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미 외에도 한길은 매번 다양한 채소 요리를 냈고, 그때마다 반응도 좋았다.
귀족 주방은 재료도 풍부해서, 이것저것 영국의 최상 재료도 얻을 수 있었다.
분명 다 잘 흘러가고 있는데…..
‘내가 너무 조급한 건가?’
날이 갈수록 속이 답답하게 꽉꽉 막혀왔다.
갈증이 났다.
아무리 움직여도, 맥주를 아무리 마셔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
로마의 시민을 위한 만찬을 만들고, 신에게 걸맞는 밥상을 차리라는 아피키우스의 말도 안 되는 미션처럼.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주방이 그리웠다. 현실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남작이 연락이 없네.’
일주일이 지나도록 남작은 조용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남작이 찾으십니다.”
하인을 따라 일전에 찾았던 방으로 가자, 남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제 되었네. 일전에 내가 말한 제안, 받아들일 생각이 있나?”
“일단 들어보겠습니다.”
당장이라도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최대한 숨겼다.
일주일 사이 느낀 궁의 분위기.
이곳 사람들 앞에서는 방심하면 안 된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공격하거나, 혹은 이용하려고 한다. 주방의 요리사도, 서빙을 하는 하인도, 귀족도.
연기하듯이, 강한 모습만 보여야 한다.
최대한 표정을 굳히며 태연하게 답을 하자, 남작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설마, 자네 정도 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만족할 리는 없을 텐데.”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뭐, 비슷한 사람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남작은 한참을 쓸모없는 얘기로 뜸을 들인 후에야 본론을 꺼냈다.
“내일은 내가 사람을 보낼 테니 주방일은 하루 쉬고 대기하도록. 나와 함께 갈 곳이 있거든.”
“어디인가요?”
“그건 그때 설명하도록 하고. 아, 의상은 그게 다인가? 조금 더 깨끗한 옷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게 다입니다.”
“그럼 내가 보내도록 하지. 아무리 그래도 전하를 만나는데 그 차림새로는 곤란하니까.”
…. 전하?
한길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
궁전의 정점에서, 하루하루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그 자리.
국왕의 주방인가?
두근대는 심장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숨을 고르는데, 남작의 입에서 조금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내일은 왕비 전하를 보러 가도록 하지.”
< 86. 만나러 갑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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