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8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87화(87/325)
< 87. 셰프만 다룰 수 있는 재료 >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 총 213 명의 귀족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 퀘스트 보상으로 5,000 고르메 포인트, 정보 열람권 1장이 지급됩니다.
– 만족도로 인한 추가 보상으로 34,08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총 39,080 고르메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하아…..”
제법 많은 보상이 주어졌지만, 한길은 눈앞의 창을 보며 아쉬움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남작이 하루만 더 빨리 불러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결국 왕비를 만나지 못한 채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면접 같은 건가?’
노리스 남작은 주방을 옮기라고 하지 않았다. 왕비를 만나러 간다고 했지.
현대에서도 사람을 고용하기 전에 이력서를 받고 면접을 거치는데. 궁에서, 그것도 왕족의 주방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면, 이 정도 절차는 당연하다.
면접이라면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게 좋다.
바로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도록.
틈틈이 영국의 식문화를 공부해두고, 역사도 미리 알아둬서 나쁠 것 없다.
로마는 워낙 오래전이라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1536년은 르네상스 시대다.
분명 기록도 많이 남아있을 거다.
왕비의 이름도.
‘누구지?’
한길은 호기심에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영국의 역사는 어렴풋하게 큰 줄기만 알고 있고, 자세한 건 알지 못했으니까.
‘엄청 혼란한 시기네.’
그리고 검색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시대로 갔는지 알 수 있었다.
1536년.
이 해에는, 특이하게도 영국에 왕비가 세 명이나 있었다.
첫 번째 왕비는 아라곤의 캐서린.
현 스페인에 자리한 아라곤-카스티유 왕국의 왕녀로, 헨리 8세의 형인 아서와 혼인했던 여인이다. 아서는 신혼생활 5개월 만에 사망했고, 그녀는 헨리 8세와 재혼했다.
24년간의 결혼생활 후.
헨리 왕은 갑자기 ‘나에게 아들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형수와 결혼을 해서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며 교황에게 이혼을 신청했다.
이에, 캐서린은 첫 남편과는 합방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결혼 당시 자신은 순결했기에, 이혼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대사건이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캐서린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캐서린의 조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거다.
원하는 이혼 허가를 얻지 못한 헨리 8세는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고, 영국 교회를 설립한 후, 직접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영국 교회는 국왕의 이혼 사유를 인정했고, 캐서린을 사망한 형의 부인으로 강등했다.
캐서린은 별궁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가 1536년 1월 7일.
하지만.
남작이 말한 왕비는 아마 캐서린은 아닐 거다.
한길이 있던 궁은 햄프턴 코트 궁전이지, 별궁이 아니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캐서린이 정당한 왕비라고 주장했지만, 영국 내에서는 그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고.
두 번째 왕비는 앤 볼린.
국왕이 이혼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이유라고 여겨지는 여인이다.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은, 단숨에 헨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왕의 호의를 선뜻 받아들인 다른 시녀들과 달리, 앤은 ‘남편에게만 순결을 주기로 했다’며 헨리를 거절했고, 안달이 난 헨리는 그녀를 얻기 위해 이혼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이혼 절차는 무려 8년이나 걸렸다.
가톨릭교회로부터의 제명, 국제적 망신까지 각오해야 했지만, 결국 헨리는 앤과의 결혼에 성공했다.
일각에서 앤 볼린을 희대의 요녀로 부르는 까닭이다.
심지어 영국 교회의 독립도 그녀의 아이디어였다는 주장이 있다. 당시 유럽을 휩쓸던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과 관련된 서적을 국왕에게 읽어보라며 권했다고 하니까.
그리고 1536년 5월 19일.
결혼 3년 만에 앤은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죄명은 반역과 간통.
그녀의 친동생을 비롯하여 다섯 명의 남성과 불륜을 저지르고 국왕의 목숨을 노리는 등,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였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실제로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앤이 처형된 진짜 이유는, 아들을 낳지 못해서다.
첫 아이인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앤은 세 번의 유산을 겪었고, 마지막 유산으로부터 4개월 내로 처형되었다.
만약 왕비가 앤이라면…..
위험하다.
그녀와 친분이 있고 왕래가 잦았던 귀족들, 심지어 궁중 악사까지 불륜 상대로 의심되어 함께 처형되었으니까. 가까이 있어서 좋을 게 없다.
세 번째 왕비는 제인 시모어.
앤의 시녀였던 여인으로, 앤과 같은 혼전순결 전략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여인이다.
앤이 사형당한 바로 다음날, 제인은 헨리와 결혼하고 무사히 아들을 낳았지만, 2주 후에 사망했다.
‘누구지?’
한길은 궁 안에서 왕비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다.
국왕은 사람들이 툭하면 ‘위대한 헨리 국왕’이라며 찬양을 했으니 이름을 알 수 있었지만, 왕비를 찬양하는 이는 없었다. 왕비가 언급될 때도 이름 없이 왕비로만 불렀다.
‘계절은?’
궁 안에만 있어서 정확한 계절을 알 수는 없지만, 기온은 약간 서늘한 정도.
적어도 한겨울도, 한여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단서가 되지 않는다.
더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고.
최대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고 준비를 하는 수밖에.
‘그것보다 지금은…..’
퀘스트 세상이 아닌, 현실에 집중해야 할 때다.
한길은 상점을 열고, 목록 중에서 화이트 파크를 찾았다.
오늘 주문을 넣으면 내일 새벽에 배송된다.
그리고 화이트 파크 소고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조리를 해보고 싶은 재료였다.
영국식으로 삶는 게 아닌, 이 맛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현대식 조리법으로.
그 외에도 주문할 재료는 제법 많았다.
영국 요리는 전 세계의 조롱의 대상이지만, 한길이 주방에서 본 식재료는 모두 훌륭했으니까.
#
‘왔다!’
다음날, 한길은 배송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가게에 나왔다.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상자를 열어보니, 아름다운 마블링을 품은 화이트 파크 등심이 있었다.
한길은 시간을 낭비할 새도 없이, 바로 고기를 스테이크용 두께로 썰고 소금을 뿌렸다.
치이익!
강한 불에 팬을 올리고 굽자, 역시나, 진득할 정도로 구수한 향이 올라와 주방을 가득 매웠다.
영국에서도 작은 조각을 구워 먹어봤지만, 두툼한 스테이크로 구웠을 때의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강한 불에 시어링을 하고 휴지의 시간을 충분히 거친 후,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핑크빛 고기를 썰어 입안에 넣었다. 그런데,
‘어….?’
풍미는 완벽했다.
소고기의 육향도, 고소함도, 달곰함도 더 진했고.
자연 방목한 소는 곡물 사료를 먹는 소보다 향이 더 진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향수처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아로마는 완벽했지만…..
질기다.
구이용으로 작게 썰어서 구울 땐 몰랐는데, 스테이크용 두께로 구워보니 질감이 어딘가 퍽퍽했다. 표면은 너무 익힌 것처럼 건조했지만, 내부는 질겅거릴 정도로 덜 익혀졌고.
‘평소대로 했는데, 왜지?’
다시 고기를 유심히 살펴보니, 마블링은 잘 되어 있지만 선이 매우 가늘다. 육질도 한길이 조리하는 다른 등심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리버스 시어 (reverse sear).
겉을 먼저 익히는 일반 시어링 방법과 반대로, 내부를 먼저 익히는 조리법이다.
오븐에서 저온으로 스테이크의 내부를 충분히 구워준 후, 마지막에 강한 불로 표면에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킨다.
‘이것도 조금 모자라는데?’
이번에는 골고루 미디엄 레어로 구워졌고, 풍미도 다채롭고 묵직했지만. 어딘가 기름기가 부족했고, 촉촉함이 더 필요해 보였다.
버터를 조금 넣고 나서야 원하는 기름기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버터의 향이 거슬렸다. 그걸 상쇄하기 위한 허브도 필요해 보였고.
‘까다롭네.’
향은 뛰어나다.
대신, 원하는 질감과 식감을 얻기 위해서는 조리법으로 어떻게든 커버해야 한다.
아마 요리 초보가 조리한다면, 마트에서 파는 일반 등심만도 못한 맛이 될 거다.
전문 셰프가 세심하게 조리해야지만 그 맛이 살아나는, 오직 전문가만이 본연의 맛을 끄집어낼 수 있는, 난이도 높은 재료였다.
‘드라이 에이징(dry aging)을 한 번 해볼까?’
드라이 에이징은 자연 건조 과정을 통해 고기 내부의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육질 안의 수분을 걷어내면, 지방의 비율이 더 높아진다.
그러면 조금 더 기름지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낼 수 있다. 향도 더욱 응축될 테고.
‘내일 다시 주문해서 해봐야겠네.’
당장 오늘 주문한 고기는 모두 사용해버렸으니.
다음으로 한길이 꺼낸 건, 두 종류의 양고기였다.
하나는 라이랜드(Ryleland)라는 종으로, 햄프턴 코트에서 가장 사랑받는 양고기였다.
라이랜드 양고기는 육즙이 유난히 풍부했는데, 특이하게도 육즙이 크리미 할 정도로 가볍고 질감이 좋았다.
반면, 맹크스 러프탄(manx Loaghtan)라는 종은, 고대종으로, 강렬할 정도로 짙은 야생향이 났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맛. 아마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거다.
‘이렇게 맛이 다르다니.’
이런 희귀한 고기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어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소고기만 해도, 한길이 아는 소고기는 한우, 미국산, 호주산, 와규, 앵거스 정도였다.
하지만 영국에는 지금도 무려 235종의 희귀한 돼지, 양, 소가 남아있었다.
현대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셰프님, 벌써 오셨네요?”
“아, 수셰프, 이거요.”
한길은 수셰프가 주방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미리 적어둔 목록을 내밀었다.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주세요.”
“영국산 소고기랑 양고기라….. 이건 조금 까다롭네요. 특히 영국은 광우병 이후로 소고기는 금지되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목록을 읽어내리던 수셰프는, 중간에 잠시 종이를 내려두고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셰프님. 이런 건 어디서 알아낸 겁니까?”
“그냥 찾아보니 나오길래 궁금해서요.”
“흠… 그런데 이런 육류는 설령 구하더라도 부위별로 구매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네?”
“유럽에서는 이런 걸 디자이너 비프라고도 부르거든요. 농장과 계약해서 한 마리, 두 마리 단위로는 구매할 수 있는데 ‘등심만 주세요’ 같은 주문은 안 통할 겁니다. 워낙 숫자가 적어서요.”
그 후로도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높은 비용, 복잡한 절차, 그리고 재료 자체의 까다로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런 재료는 조리법이 다릅니다. 미리 다뤄보지 않으면 레시피를 만들기도 어렵죠. 레시피 개발하는 데까지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레스토랑에도 못 낼 겁니다. 상시 구비할 수도 없고,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요.”
“레스토랑용이 아닙니다.”
“아! 만찬에 쓰시려고요? 테스팅까지는 못 구할 텐데요.”
그러고 보니.
한대훈이 부탁한 이사진 만찬도 준비를 해둬야 한다. 아직 메뉴도 구성하지 않았으니까.
“테스팅은 언제라고 했죠?”
“다음 주입니다. 비서실장이라는 사람과 한대훈 대표가 직접 맛보고 싶다고 하네요.”
“대표가 직접요?”
“뭐, 섭외도 직접 하셨으니 맛도 직접 보고 싶으신가 보죠.”
#
“민아, 세 번에 나눠서 작업하지 말고 한 번에 해!”
“예스, 셰프!”
“경우, 그릴 자리 날 때까지 계속 기다리기만 할 건가?”
“죄송합니다, 셰프!”
“자리가 없으면 옆에 해물 그릴을 빌려! 한 테이블 주문은 동시에 나가야 하는 건 기본인데, 왜 이리 커뮤니케이션이 안 돼?”
“예스, 셰프!”
오랜만에 돌아온 식당은 여전히 바빴다.
미식 다이닝 위크의 효과다.
당시 한길이 만들었던 로마 스페셜 메뉴는 ‘셰프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원래 가격인 15만 원으로 올랐지만, 그럼에도 손님은 줄지 않았다.
앞으로 2주간, 예약은 풀로 가득 차 있었다.
“셰프님, 5번 테이블 손님 식사 거의 끝나가는데요.”
“아, 잠깐.”
주방을 지휘하던 한길은, 슬아의 말을 듣고 차림새를 가다듬고 홀로 향했다. 셰프 스페셜 코스를 주문하는 고객에게는, 직접 나가서 인사를 하니까.
이동하는 도중, 슬아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셰프님,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왜?”
“오늘 조금 더 날이 서 있는 것 같아서요.”
“날이 서?”
“아니, 날 선 건 아니고. 조금 적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평소에 주방에서 싫은 소리를 하는 건, 수셰프의 역할이었다.
영국에서 워낙 거친 요리사들과 기싸움을 하는 게 익숙해져서인지, 저도 모르게 소리가 먼저 나온 거다.
‘그것도 있지만….’
예전에는, 다른 요리사들 앞에서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한길은 경력도 짧았고, 퀘스트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아직 올라서는 안 되는 자리에 너무 빨리 올라갔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영국 퀘스트에서 한길은 다시 일반 요리사의 삶을 경험해야 했다. 헤드 셰프가 아닌, 라인 쿡의 삶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리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지휘하는 입장이 되고 싶다는 것을.
두 번 다시 내려갈 생각은 없었고, 주방의 주도권을 빼앗길 생각도 없었다. 물론, 수세프는 믿을만한 사람이고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사람은 아니지만. 싫은 일을 아랫사람에게만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이곳은, 한길의 주방이었다.
“뭐,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에요.”
슬아는 한길이 한동안 말이 없자, 멋쩍게 웃었다.
“욕설 내뱉고 팬 던지기 같은 것만 안 하면 되죠, 뭐.”
“그런 건 안 해.”
“그래도 나름 멋있어요. 자신 있어 보이고, 몸에 흐르는 기운이 달라요. 이걸 오라라고 하나? 뭐, 인기도 폭발이고.”
“인기?”
“오늘따라 여자 손님들이 유난히 셰프님만 보던데.”
“셰프니까 보는 거지.”
“아니, 진짜 왠지 모를 카리스마 같은 게 느껴지는 것 같다니까요?”
“무슨 카리스마가 하루 이틀 만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홀로 나갈 때마다, 손님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은 한길도 느꼈지만, 헤드 셰프가 셰프 복장을 입고 홀로 나가면 당연한 거다.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이번에 스페셜 메뉴를 시킨 테이블로 다가가자, 구성이 조금 특이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제각각 다른 연령대의 남녀가 아홉 명.
“서빙해주는 분이 설명도 잘 해줘서 너무 좋았어요. 정말 제대로 한 끼 먹은 느낌이에요.”
“만족스러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저, 성함이 이한길 셰프님 맞나요?”
“네.”
“혹시, 같이 사진 한 장만 부탁해도 될까요?”
“사진이요?”
손님 중 한 명의 여성이 사진 요청을 해왔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에이, 수진 씨, 무슨 사진이에요! 우리가 언제 셰프님이랑 사진을 찍고 다녔다고.”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방송도 나오신 분이고, 오늘 음식 먹어보고 팬이 되어서요. 안 되나요?”
옆에서 다른 손님들이 장난스레 야유를 보내자, 부탁을 한 여성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거절을 하면 더 무안해할 것 같았다.
“아뇨, 사진 정도는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 찍어요?”
“아, 그러면 저도!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야유를 보낸 것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요청해왔다. 대다수가 여성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저쪽에서 슬아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저희가 원래 방송 탄 집은 믿고 거르자는 주의인데, 정말 이 정도 맛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네?”
“아, 저희는 미식 모임 멤버들인데 일주일에 한 번, 레스토랑을 선정해서 같이 맛을 보러 다니거든요. 지금까지 한식이나 일식은 좋은 리뷰를 받은 곳들이 꽤 있는데, 저희 그룹에서 양식당으로 이렇게 호평받은 곳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조금 과할 정도의 칭찬이 이어졌지만, 한길의 시선은 한 명의 남성에게로 향했다.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손님에게로.
“식사는 괜찮으셨나요?”
“맛은 있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글쎄요. 15만 원 치고는 구성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이 정도 가격이면, 다른 곳에서는 두 배의 요리가 나올 것 같거든요.”
평론가처럼, 냉정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거침없이 말하는 손님이었다.
“그래도 양이 정말 푸짐하니까! 비싼 건 아니죠! 서비스도 좋았고요! 맛도 특색 있고요!”
“그래도 다른 곳과 냉정하게 비교해 봐야 하잖아요? 이 정도 가격대면 어떤 음식이 나오겠다는 기대감이 있는데.”
옆에 있는 다른 손님들이 눈을 홀기며 남성을 나무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길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물론, 다음 스페셜은 보다 풍성한 구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뭐…..”
이런 건설적인 의견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자신이 듣기 좋은 소리만 들어서는 발전을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부족하다는 건,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다양한 구성이라…..’
< 87. 셰프만 다룰 수 있는 재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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