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8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89화(89/325)
< 89. 끝말잇기 >
“요리도 전문 분야인데, 셰프한테 요리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저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룰을 들이 내미는 놈들은,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도 수술은 이래저래 해야 한다고 지껄이는 놈이랑 다를 게 없잖아? 인터넷에서 긁어모은 정보로 의사인 척하는 병….”
쿨럭. 쿨럭.
과격한 표현에 수셰프의 아내가 다시 한번 놀라자, 노셰프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 차분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내 사수라고 해야 하나, 스승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분은 그런 말을 했었거든. 요리하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하나는 요리를 업으로 삼는 사람. 손님이 주문하는 대로 버거를 구워 파는 망도날도 직원들 같은 경우고. 다음은 요리장인. 잘 만들어진 요리를 여러 개 만들어 놓으면, 손님이 그중 골라서 주문해서 먹는 일반 레스토랑 같은 거고.”
한길이 있는 단계는 이쯤이었다.
기술을 갖고 여러 요리를 만들고 제공하면, 손님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입장.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졌던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이게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떨지, 고민하게 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이 셰프지. 진정한 세프는 최고의 맛과 흐름을 스스로 조합하고 건네주거든. 환자가 뭘 알겠어? 제일 잘 아는 의사가 이렇게 해야 너한테 제일 좋다고 알려주는 거지.”
노셰프는 의자에 비스듬하게 걸터앉아 걸걸한 말투로 설명을 이어갔다. 모처럼의 강의에 신이 난 듯, 얼굴에는 광채까지 나고 있었다.
“장인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가 되는 거고, 진정한 셰프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삶이 달라 보여’가 되어야 하는 거지. 시야가 확 열리고, 요리를 보는, 음식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그런 반응을 끌어내는데 정해진 답이나 공식은 없어. 그런 면에서는 예술이랑도 비슷한가? 예술에도 이런저런 룰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러면 피카소는 뭔데?”
“하지만 레스토랑에 가면 파인 다이닝스러운 느낌이 있잖아요? 메뉴도 정해진 순서가 있고, 음식도 적은 양만 예쁘게 담고,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플레이팅도 그렇고, 그런 기본적인 분위기는 맞춰야 하는 줄 알았는데….”
질문을 한 건, 수셰프의 아내였다.
교실의 가장 첫 줄에 앉아 질문하는 열성 학생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요리를 작은 포션으로 담는 건, 룰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맛을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서 그런 거에요. 적어도, 내가 만들 땐 그렇게 만들죠.”
“효과적이요?”
“어떤 음식이든, 처음 한 입을 먹을 때 맛이 가장 강렬하거든요. 두 입을 먹으면 그 강렬함이 식으면서 ‘굉장한데?’ 정도의 생각만 남게 되고, 세 입을 먹으면 슬슬 그 맛에 혀가 적응해서 둔감해져요. 냉탕에 처음 뛰어들 때는 충격적이지만, 시간이 가면 차가운 줄도 모르잖아요? 그런 것과 같은 원리죠. 게다가 포만감이 올 때까지 먹으면, 익숙해지다 못해 슬슬 질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양을 적게 하는 건, 처음 한입, 두입 먹을 때의 그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한 향과 맛만 남기려는 거죠.”
“아….”
“여기 오는 사람들은 배를 채우러 오는 건 아니니까요. 배를 채울 거면 7-8천 원만 내도 맛있게 배를 채울 식당은 넘쳐나는데 뭣 하러 비싼 돈 내고 여길 와요.”
이건 한길도 모르던 부분이었다.
재룟값이 비싸니까, 혹은 코스 요리가 많으니까 양을 조절하려고, 아니면 분위기를 내기 위한 플레이팅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한길은 직접 셰프 밑에서 셰프의 생각을 배워볼 기회가 없었다.
노셰프가 말하는 내용을 담은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네가 생각하는 이게 최고다 하는 요리를 만들고 그걸 이해 못 하는 놈들은 한심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제, 더 물을 것 없지? 나도 입이 다 아프네.”
“네, 뭔가 개운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셰프님.”
“셰프님은 무슨 셰프님이야, 이 정도로 내 비법 전수까지 했는데, 호칭이 너무 딱딱하지 않나?”
노문배 셰프와는 조금 애매한 관계였다.
방송을 통해 만난 지인.
직접적으로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운 적도 없고, 함께 일을 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조언을 해주는, 한길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마치…..
“네, 선배님.”
“아니, 그거 말고. 그냥 형이라고 불러.”
예상치 못한 단어에 한길은 흠칫하고 말았다.
한 해가 지나 한길의 나이는 서른셋.
노셰프의 나이는, 잘은 몰라도 40대 중후반이라고 들었다.
띠동갑에게 선뜻 형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노셰프는 ‘당장 말해’라고 노려보고 있었다.
“네, 감사해요, 형.”
원하는 말을 듣자 노셰프는 만족스레 웃었다.
“저, 노셰프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수셰프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도 그냥 형이라 불러.”
“네, 형님. 혹시 국내에서 화이트 파크 소고기를 국내에서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
“화이트 파크?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대?”
“저희 셰프님이…..”
한길이 수셰프에게 건네준 목록에는, 구하기 까다로운 재료들이 다수 있었다. 수셰프조차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는, 노셰프조차 기겁할 정도의 재료들이.
“뭐? 레일랜드 양? 그런 건 그냥 못 구한다고 말해!”
“정말 못 구하는 거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업자들은 다 안된다고 하던데….”
“너도 참 미련스럽네.”
노문배 셰프는 한숨을 푹푹 내쉰 후, 한길에게 잔소리를 쏟아부었지만, 수셰프는 일관된 태도였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다는 단호한 태도.
“에휴, 육류는 내가 몇 년 전에 컨택했던 업자가 있어. 영국은 아니고 미국산 디자이너 비프는 가끔 부탁하면 구해서 들여오는데, 요즘은 미국에서도 영국산 헤리티지 동물을 키우는 농장들이 있으니까 잘하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별도 비용을 지불해야하니까 값은 어마어마하겠지만.”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아니, 편하실 때…. 내일 주셔도 되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기다리겠다는 눈빛이 아니었다. 결국 노문배 셰프와 수셰프는 함께 번호를 찾으러 나갔다.
“……”
그리고 룸 안에는 한길과 수셰프의 아내만이 남게 되었다.
어색함에 한길은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수셰프의 아내는 굉장히 포근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활기찬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고마워요, 이한길 셰프님 덕분이에요.”
“아뇨,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 걸요.”
“도움은 제가 가장 많이 받았죠. 항상 남편한테는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최근 보면 예전에 봤던 그 얼굴이 나오는 것 같아서 계속 응원해주게 되는 것 같아요.”
“…..”
무슨 말을 하는지, 한길은 알 수 없었다.
수셰프와는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으니까.
한길이 수셰프에 대해 아는 건, 절차상 받은 이력서에 적힌 내용뿐이었다.
프랑스 유학 생활 후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왔고, 몇몇 호텔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몇몇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를 했다는 정도.
“저도 이제는 괜찮으니 해외로 나가려면 같이 나가자고 하고 있지만, 계속 그럴 필요 없다고 하니까….”
“아, 네….”
“참, 생각해 보면, 아이를 잃는다는 게 저 혼자만 괴로운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은 자신의 꿈도 포기하고, 그러면서 제 앞에서 괴로운 티도 못 내고…..”
적당히 말을 맞춰주는데 너무 개인적인 얘기가 나와 버렸다.
마치 숨겨둔 비밀을 몰래 캐낸 것 같은, 그런 죄책감까지 들 정도로.
“저, 죄송한데, 저는 수셰프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습니다.”
“네?”
“개인적인 얘기는 거의 나눈 적이 거의 없어서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제 함께 일한 지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 얘기를 안 했다고요?”
아내는 황당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아니, 매일 새벽 여섯 시에 출근해서 새벽 한두 시까지 같이 붙어있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붙어있으면서 무슨 얘기를 해요?”
“그냥 요리 얘기나 레스토랑 얘기만….”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직접 입으로 그 말을 하진 않았지만, 바람이 세는 소리만으로 ‘에휴, 남자들이란…’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면 그냥 못 들은 것으로 해주세요. 이건 비밀!”
생긋 웃으며 아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수셰프가 돌아왔다.
승리의 깃발처럼,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휘날리면서.
#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는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한길은 집으로 가는 대신 <고르메 키친>으로 돌아왔다.
당장 주방에 서고 싶었으니까.
원하는 대로 하라는 노셰프의 한마디에 갑자기 족쇄를 끊고 자유인이 된 것 같았다. 묶여 있다가 자유가 되면, 신나게 뛰어다니고 싶어지는 법.
지금 당장, 이 기분이 충만할 때, 머리를 비우고 본능에 몸을 맡기면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역시, 시작은 계란이 좋겠지?’
처음은 계란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로마의 식탁은 ‘계란에서 과일까지’니까.
꼭 로마의 요리를 만들겠다는 룰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마의 요리는 이미 한길이 경험한 요리 생활의 일부였다.
앞으로 다가올 한 끼를 위해, 계란으로 위장을 조금씩 열어주고 싶었다.
‘어떻게 먹는 게 가장 맛있을까?’
계란의 맛을 가장 높이 끌어올릴 방법. 그때 한길의 머리에 떠오르는 요리는 하나뿐이었다.
계란 커스터드.
계란 노른자에 크림을 넣어서 조금 더 크리미하게, 묵직하게, 벨벳 같은 호화로움을 더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계란은 평범하다 못해 흔한 재료니까, 최고의 계란 요리를 만들려면 그 호화로움을 최대로 빛내줄 재료가 필요하다.
바닐라?
캐비아?
카탈로그를 펼치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재료 목록을 후루룩 넘겼다. 그럴 때마다 각 재료의 맛을 떠올리며 계란과의 조합을 시뮬레이션하듯 그려보면서.
한길이 생각하는 계란의 느낌에 가장 어울리는 건 트러플 오일이었다.
계란 커스타드는 자칫하면 너무 가벼울 수도 있다. 디저트처럼 달달하게, 산뜻하게 즐길 수도 있지만, 한길이 지금 원하는 계란은 묵직한 맛이었다.
트러플 오일 특유의 농후한 맛이 무게를 더해줄 터.
탁탁!
계란을 깨서 풀어놓고, 그 사이 소스 팬에 우유와 크림을 넣고 중불에 끓이기 시작했다.
퐁! 퐁!
새하얀 우유에 비눗방울처럼 거품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하는 그 시점에, 불에서 내리고 믹서기 안에 하얀 액체를 넣어주었다.
계란 노른자와 트러플 오일도 적절한 양을 맞춰 넣어주고 믹서기에서 고루 섞어준 후, 체에 걸러서 따로 담아둔다.
걸쭉하면서 노란 액체를 가만히 놔두자, 잠시 후, 거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부에 가둬진 거품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한길은 차분히, 모든 거품이 다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다가 거품을 모두 걷어냈다.
거품에도 식감이 있다.
가벼움.
거품으로 생겨난 공기방울은, 한길이 생각하는 비단같이 매끄러우면서 묵직한 식감을 방해한다.
끈기를 갖고 모든 거품을 걷어낸 후에는, 오븐 조리용 그릇에 커스터드를 담아주었다.
또 거품이 생기지 않는지 기다린 후, 뚜껑을 덮어주고 오븐에 넣었다.
오븐에서 쪄내듯이 구워주고 싶었다.
저온에서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단순하게 계란을 찌는 요리라면 화구에 바로 올려도 되지만, 직접적인 열이 닿으면 계란의 온도가 너무 빠르게 오른다.
갑자기 온도가 오르면, 커스터드가 끓으면서 또다시 공기방울이 생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너무 무겁기만 한데….’
묵직함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무언가를 더해주고 싶었다.
커스터드의 부드러움과 농후한 맛에 정면으로 맞서는 바삭한 식감!
입안에서 깨지는 수많은 식감이 더해준다면, 커스터드의 무게가 더욱 강조될 거다.
베이컨은 몰입을 해친다.
주연은 계란이니까, 최대한 맛은 더하지 않으면서 식감만 부각해줄 조연이 필요하다.
튀김은 기름 향이 뭔가 거슬리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버터가 들어가는 게….
뭔가 가볍게 입안에서 깨지는 느낌이…..
‘감자 칩?’
나쁘지 않다.
시중에 나오는 짭조름한 감자 칩이 아니라, 약간의 버터 향이 입혀진, 식감만 더해주는 얇디 얇은 수제 감자 칩이 올려진다면?
사삭. 사삭.
한길은 채칼을 이용해서 감자를 얇게 썰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두께의 감자는, 양 끝이 돌돌 말릴 정도로 유연했다.
‘감자만 있으면 너무 허전하니까.’
감자 위에 파슬리 한 잎을 올려주고, 그 위에 또 다른 감자를 겹쳤다.
마치 책갈피를 만들기 위해 꽃을 넣고 코팅을 하듯이.
반투명한 얇은 감자 사이로 파슬리의 선명한 무늬와 색상이 그대로 보였다.
오븐에서 구워주니, 그 모양 그대로, 화려한 감자-파슬리 책갈피가 완성되었다.
바사삭!
입안에서 부서지는 감촉이 좋다.
버터 향이 조금 나기는 하지만, 과하지 않고.
함께 먹는다면…..?
계란 커스터드가 다 구워질 때까지 또 다른 기다림.
노란 커스터드는, 신이 직접 빚어낸 것처럼 매끄럽게, 기공 하나 없이 윤이 나고 있었다.
‘바로 이거지!’
시식을 해보니, 원하는 맛 그대로였다.
호화롭다 못해 사치스러운 맛. 트러플 특유의 진한 맛과 계란의 정제된 부드러움, 크림의 묵직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감자 칩의 바삭함이 중간중간, 너무 과하지 않게, 변주를 주면서도 커스터드의 맛과 질감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었다.
‘맛은 만족스럽지만……’
이번에는 플레이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요리는, ‘계란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었어?’ 하는 반전을 주고 싶었는데.
유리그릇에 곱게 담긴 요리가 오히려 스포일러가 되어버렸다.
‘계란 껍질을 그대로 활용할까?’
계란 안에 커스터드를 담는다면?
탁탁!
새로 계란을 깨보았지만, 부서지는 부분이 삐죽삐죽하고 날카로운 게 어딘가 허술해 보였다.
슥슥.
이번에는 타월 위에 계란을 올리고, 톱니 날이 있는 칼로 톱질하듯 조심스레 계란을 깼다.
네 번의 시도 끝에 원하는 모양이 나왔다.
계란 내용물을 덜어내고 미온수에 껍질을 깨끗하게 씻고, 손가락을 넣어 내부에 있는 얇은 막을 걷어냈다.
계란을 엎어서 건조해주고.
연약한 계란 용기가 완성이 되었을 때, 다시 계란 커스터드를 넣고 오븐에서 구워주었다.
또 한 시간의 기다림.
벌써 날이 밝아올 시간이어서 눈이 조금씩 감겨왔지만, 잠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계란 커스터드는, 한길이 생각하는, 계란을 최고 경지로 끌어올리는 그 맛이었다.
새하얀 계란 껍데기 안에 담긴 노란 호수.
누가 봐도 이건 계란 요리였다.
푸욱!
한 수저 떠내고 커스터드의 내부를 보니, 구멍 하나 없다. 작은 거품 하나, 작은 공기방울 하나 용납하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한입 먹어 보니…..
크림을 넣어서 묵직하게 크리미한 계란과 트러플의 살짝 꼬릿하면서 짙은 향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 있었다.
바삭!
감자칩은 가볍게 식감만을 더해주었다.
완벽했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었던 맛.
이상한 감동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맛의 뒤를 따르는 건….
트러플 향과 어울리면서 한번 입을 헹굴 수 있는 요리.
‘수프를 해볼까?’
소렐 수프가 좋을 것 같았다.
약간의 산미를 더하면서 선명한 녹색이 방금 본 노란색과 대조가 되어 보이니까.
끝말잇기를 하듯, 계란이 완성되자 바로 머릿속에 이어가고 싶은 맛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나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한 끼를 연결해야 한다.
이게 코스 요리인가?
가슴이 벅찰 정도로 설렜지만, 동시에…..
‘일주일도 안 남았네.’
시간의 압박이 느껴졌다.
계란 요리를 하나 만드는 데만 해도 밤을 꼴딱 새워버렸다.
코스 요리를 만드는 동안 레스토랑을 닫을 수도 없고.
앞으로 일주일, 잠은 포기해야 한다.
‘뭐, 어차피 잠은 안 올 테니까.’
미친 듯이 심장이 콩닥거려 한동안은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 89. 끝말잇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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