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9화(9/325)
< 9. 샐러드 개시 >
“내가 말했잖아? 300개는 넘게 팔릴 거라고.”
루시아는 오히려 한길이 놀라는 게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적당히 먹을만한 식당도 이 정도 매출은 나오는데 하물며…
“마르쿠스가 만든 음식은 특별하니까.”
“처음 보는 거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냥 신기한 게 아니라 뭔가 막 설렌다고 할까,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해야 할까?”
“원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지죠.”
“맞아, 그거야! 행복! 솔직히, 매일 힘들게 일하는데, 귀족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웃을 일이 별로 없잖아? 어디 나가서 비단옷을 살 수도 없고. 그런데 1 애스로 이만한 행복을 살 수 있다니! 전에 있던 요리사들도 요리는 맛있었지만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거든.”
행복을 주는 요리라니.
요리사에게는 최고의 칭찬이다.
절로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크흠, 그러니까. 마르쿠스는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꺼낸 말이 민망한지, 루시아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과장된 몸짓으로 일어섰다.
“그럼 들어가 쉬어! 내일은 500인분이니까! 못 만들면 임금 반으로 깎아버릴 거야!”
루시아는 악덕 주인 흉내를 내더니, 도망치듯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길도 자신의 뒷방으로 향했다.
주방을 스쳐 지나가던 도중, 당장이라도 무언가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간신히 참았다.
자신의 식당 아니니까.
개인적인 일에 함부로 재료를 사용하는 건 실례다.
결국 한길은 방 안에 누워 멀뚱한 눈으로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곳은 밤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한길은 눈을 감으며 오늘 시장에서 맛보았던 재료들을 일일이 떠올렸다.
‘루콜라는 들어가야 하고. 워터크레스도 겨자잎 같은 매콤함이 있어서 좋은데 너무 과해. 양상추로 조금 중화를 시킬까? 양상추는 여기에 없었으니 도착하자마자 마트에 들리자. 병아리콩도 미리 사서 불려야 하고……’
계획만 세우는 건 아쉬워서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에 채소를 씻어서 탈탈 털어내고. 도마 위에 양파를 올려 탕탕 썰어낼 때의 리듬감, 코끝이 찡해지는 감각. 비트를 썰면 주르륵 흐르는 붉은 즙과 흙냄새…..
영상처럼 머릿속에 모든 과정을 그려보니, 각 재료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맛은 물론, 그 질감, 향, 온도까지.
한길은 그 모든 재료를 조심스레 조합했다.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너무 튀지 않도록.
‘이렇게 레시피를 만드는 건 처음이네.’
지금껏 한길은 기존에 있는 레시피를 자기 방식대로 수정해 왔었다.
이렇게 백지 위에 스스로 밑그림을 그리고 맛을 만들어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물론, 샐러드는 요리라고 부르기에는 간편한 요리이긴 하지만……
재밌었다.
어째서 이걸 미리 하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른 채, 한길은 머릿속에서 재료 조합을 하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한스키친에 돌아와 있었다.
[퀘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습니다.] [정산을 시작합니다.]+
– 총 312인분의 요리를 판매했습니다.
– 퀘스트 보상으로 3,50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초과 판매량으로 인해 건당 50 포인트, 총 10,60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고객 만족도로 인해 5,920 고르메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 총 20,020 고르메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 획득한 포인트는 상점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다음 퀘스트까지 남은 시간은 168시간입니다.]무려 2만점이 넘는 포인트.
전에 남은 포인트까지 합산하면 총 21,710 포인트다.
심장이 그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니, 진정하자. 다음 퀘스트까지 7일이니까.’
하루에 약 3,100 포인트까지 사용할 수 있다.
[총 27개의 아이템이 있습니다.]식재료 탭을 열어보니, 꽤 많은 재료가 항목별로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
채소: 아스파라거스, 양파, 아티초크, 비트, 순무, 샬럿, 당근, 루콜라, 워터크레스,
과일: 오디, 무화과, 올리브 (4종)
허브: 타임, 바질, 로즈마리, 파슬리
잡곡, 콩류: 병아리콩
기름, 조미료: 가룸, 올리브유, 홍화유, 생참기름
견과: 아몬드
유제품: 바투시칸 치즈
+
‘얼마나 주문해야 하지?’
상점에서 구매하는 채소의 가장 큰 장점은 신선도다. 너무 많은 물량을 주문하다 남으면, 다음날에는 신선도가 떨어진다.
굳이 재료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이틀간 찾아온 손님은 하루에 약 50명.
한길은 우선 50명에 맞춰서 채소를 주문했다.
[내일 오전 7시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남은 금액은 19,020 포인트입니다.]당장 오면 좋을 텐데.
역시나 이 부분은 아쉬웠다.
당장 무언가 만들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으니 말이다.
#
다음날.
재료는 칼같이 7시에 배송되었다.
한길은 가게 입구에 놓인 상자들을 안으로 옮긴 후, 즐거운 손길로 상자를 뜯었다.
방금 밭에서 뽑아온 듯, 싱싱한 채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하고 향긋하고. 이파리 하나 뭉크러지지 않은.
최상품이다.
‘드디어!’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어제부터 수십번 머릿속에 그려온 요리를 만들 차례니까.
서둘러 채소를 씻어서 물기를 제거했다.
기본 베이스로 사용하는 채소는 세 가지.
루콜라로 향을 채워주고, 워터크레스로 알싸함을 주고, 양상추로 달달하고 아삭한 식감을 더하기로 했다.
양파 대신에는 샬럿을 썼다.
샬럿은 양파와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조금 더 길쭉하고 작다. 맛도 양파와 거의 유사하지만 양파 특유의 쏘는 매운맛이 없다. 그래서 샐러드에 어울린다.
그다음은 올리브.
한길은 단지 안에서 짙은 자주색의 올리브를 꺼내 입안에 넣었다.
+
품명: 올리브
등급: 1
원산지: 데카폴리스.
가격: 200 고르메 포인트.
정보: 현 팔레스타인, 시리아 지역에서 생산한 올리브입니다.
+
처음 보는 종의 올리브였는데, 새끼손톱만 한 크기였다. 일반 올리브보다 훨씬 작았지만, 과육이 월등히 뛰어났다.
씹으면 탄력 있게 으깨지는 과육. 올리브 자체의 기름이 곁들여지니, 마블링이 잘 된 고기를 씹을 때 느껴지는 쾌감을 주었다.
그리고 치즈.
치즈는 상점에서도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 거대한 원형 덩어리째 배송이 되었다.
강판을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른 편이라 얇게 채칼로 썰듯이 썰어서 올리고.
아몬드는 얇게 슬라이스해서 오븐에서 살짝 구워주었다. 바삭바삭한 질감을 더하기 위해.
이 모든 재료를 드레싱과 함께 버무린 후, 마지막은 병아리콩과 무화과를 올렸다.
완성된 샐러드는 한길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한입 맛보는 순간,
‘…!’
만든 당사자도 놀랄 만큼.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어제 내내 그려온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맛이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병아리콩 샐러드
완성도: 99%
매력: 9
재료: 9
식감: 9
비주얼: 9
+
‘이 정도인데 100%가 아니라고?’
조금 놀랍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완벽한 요리’란 있을 수 없다.
항상 1%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게 싫지는 않았다.
한길은 메뉴가 적힌 칠판에 다가가 병아리콩 샐러드를 추가했다.
‘이 정도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한길이 만든 샐러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2만 원 넘게 가격표가 붙는 샐러드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는 맛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식당의 메뉴는 모두 6,500원이다.
밥값이 6,500원인데, 가볍게 먹는 샐러드가 더 비싼 건 말이 안 된다.
‘그래, 너무 서두르지는 말자.’
한길의 목표는 더 많은 손님을 끌어 모으고 식당을 살리는 것이다.
물론, 돈도 중요하다. 식당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돈은 수단일 뿐, 목표는 아니다.
마무리하고 시계를 올려다보니, 이미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거리 홍보는 못 하겠네.’
한길은 그 대신 하얀 종이에 손글씨로 적었다.
「샐러드 개시」.
눈에 잘 띄게 유리문에 종이를 붙이는 중, 유리창 너머로 한길을 지켜보는 두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연보라였다.
#
보라는 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보라는 아침은 커피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의였지만, 지난 이틀간 샐러드로 아침을 여는 게 더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안 나오는 건가?’
그런데 한스키친 사장이 있던 구청 옆 공터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마음속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함이 느껴졌다.
뭐 때문에 일찍 나왔는데…..
시간을 보니, 아직은 8시도 채 되지 않았다.
‘어차피 가까운데 한번 열려있나 보고 올까?’
발길을 돌려 반대방향으로 걸어서 골목길로 들어가 보니, 매장의 불은 켜져 있었다.
‘벌써 가게에 나와 계시는구나.’
살짝만 들여다볼 생각으로 창문을 기웃거리는데, 사각지대에서 한길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눈이 마주쳐 버렸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끼고 바로 코앞에서.
‘이상한 오해하는 거 아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한길이 유리창에 갓 붙인 종이에 시선이 갔다.
「샐러드 개시」.
“보라 씨, 일찍 출근하시네요?”
한길이 가게 문을 열고 인사를 하자, 보라는 저도 모르게 대뜸 질문했다.
“오늘부터 샐러드 하시는 건가요?”
“네, 메뉴를 완성해서요.”
“지금도 판매하세요?”
“아직 오픈 시간은 아닌데……”
보라의 표정을 보니 차마 그 뒤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포장으로 가져가실 건가요? 이왕이면 가게에서 드시고 가는 걸 추천하고 싶은데.”
“가게에서요?”
“그래야 드레싱을 제대로 입혀서 드릴 수 있거든요. 맛이 달라요.”
“먹고 갈게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한길은 주방으로 사라졌고 보라는 가까운 테이블을 골라 앉았다.
아직 오픈 전이라 가게에는 음악도 틀지 않았고, 그래서 한길이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왠지 무대 백스테이지에 들어간 것 같은,
아늑하면서도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샐러드 나왔습니다.”
“우와!”
한길은 순식간에 샐러드 한 접시를 들고 나왔고, 그 비주얼을 본 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사를 내뱉어냈다.
색색이 빛나고 있는 재료들이 마치 축제처럼, 활기찬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팔딱팔딱 뛰는 활어를 보는 듯한 그런 생동감이 느껴졌다.
‘뭔가…… 있어 보여!’
자세히 보니, 샐러드에 들어간 재료가 대충 아무 채소나 섞어놓은 비주얼이 아니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조금 특이한 채소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호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접받는 느낌.
“한번 드셔보세요.”
“잠깐만요.”
보라는 스마트폰을 꺼내고 사진부터 찍었다.
이런 비주얼은 일단 보관해 두는 게 예의다.
기억해 놔야지.
그리고 자랑해야지.
#출근길 #소소한행복 #한스키친 #샐러드 #퀄리티대박
자신의 별스타그램에 잽싸게 사진을 올린 후, 보라는 시식을 시작했다.
포크로 내리찍자, 그 아래에 아삭한 양상추가 쪼개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한입 가득 샐러드를 넣고 오물거렸다.
루콜라 특유의 향이 확 퍼졌다.
고소한 병아리콩이 씹혔다.
속이 꽉 찬 올리브의 과육이 터졌다.
까실까실한 파슬리가 입천장을 간질였다.
모든 재료가 서로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손을 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치즈가 너그럽게 그 맛들을 다 다스려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맛의 향연.
난생처음으로 샐러드도 요리라고 생각했다.
“맛은 어떤가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샐러드 그릇은 반쯤 비어 있었고, 한스키친의 사장이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을 텐데.
괜히 민망해졌지만, 이럴수록 태연해야 한다.
“진짜 맛있어요!”
“정말요?”
“네, 저 이렇게 맛있는 샐러드 처음이에요! 전에도 지혜 주무관님이랑 얘기했는데, 여기 드레싱에 뭐가 들어간 거예요?”
보라는 일부러 대화의 주제를 돌리려고 했다.
“올리브유를 조금 특별한 걸 써요.”
“올리브유요?”
“조기수확 올리브유라는 게 있는데, 수확 철 전에 가장 싱싱한 올리브를 따서 기름을 내거든요. 그래서 향긋하고 살짝 칼칼한 맛도 있어요.”
“그렇구나.”
보라는 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다시 샐러드 한입을 입에 넣었다.
확실히, 드레싱에 약간의 매콤함이 감돌고 있어 더욱 입에 착 감겼다.
알고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격은 얼마에요?”
“6,500원입니다.”
“네?”
“그게 저희 가게 메뉴 가격이라서요.”
“대~~~박!”
자신도 모르게 평소의 말투가 나왔다.
그, 정말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만 나오는 약간 걸걸한 목소리가.
그도 그럴 것이, 6,500원이라니.
요즘은 커피값도 5,000원이다.
거기에 1,500원만 더하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보라는 바로 방금 전 올린 글에 들어가 수정을 눌렀다.
#혜자맛집 #6500원의품격
그리고 열심히 방금 들은 재료의 설명을 적어가고 있는데,
“저기요.”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사장님, 샐러드 지금도 판매되나요?”
“5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다른 손님의 등장에 보라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사실…… 샐러드 하나를 더 먹고 싶었는데, 지금 당장은 배가 불렀다.
점심은 회사 사람들이랑 먹어야 하고.
그러면 남은 한 끼는 저녁.
그때까지 과연 남아있을까?
보라는 계산을 하면서 한길에게 부탁을 했다.
“사장님, 나중에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하나 사 가고 싶은데. 예약 걸어놔도 되나요?”
“예약이요?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보라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따로 남겨주지 않으면 이거 다 팔려요.”
< 9. 샐러드 개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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