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91)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91화(91/325)
< 91. 육즙도 육즙 나름 >
“다녀왔어요!”
비프 캔들을 서빙 한 슬아가 주방으로 돌아오자, 수셰프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바로 달려갔다.
“반응은 어때?”
“굿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아? 예의상 칭찬한 걸 수도 있잖아.”
“칭찬은 안 했는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짓는 그, 이상한 표정이 있어요. 코끝을 찡긋거리는….”
“그건 안 좋은 거 아냐?”
“저번에 왔을 때도 계속 찡긋거려서 신경 쓰였는데 결국 미식 다이닝 위크에 넣어줬잖아요? 분명 좋아할 때 나오는 표정이에요.”
항상 차분한 수셰프의 어투가 조금 빠르다. 어딘가 닦달하는 듯한 태도도 평소와 다르고. 그 모습에 다음 요리를 세팅하던 한길이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제 요리가 많이 별로인가요?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하아…. 그게 아니라.”
수셰프는 참았던 한숨을 몰아쉬더니, 원망 섞인 눈초리로 한길을 쳐다보았다.
“이게 다 셰프님이 한대훈한테 한 말 때문 아닙니까?”
“무슨 말이요?”
“원하면 만찬 메뉴를 바꿔도 된다고.”
“제가 언제…. 아!”
요리가 너무 강렬하니, 방해가 되면 소박한 메뉴로 바꿔주겠다는 말을 하긴 했다.
자신 있어서 한 말이었지만, 수셰프 입장에서는 초조해진 모양이었다.
“그런 여지를 주면 안 되죠. 그러다 진짜 바꿔버리면 어쩝니까. 식당 안에 소 한 마리가 앉아있는데 저걸 어찌 처분하려고요.”
울상을 짓는 수셰프를 보며 한길이 미안함을 느끼던 그때,
“그냥 레스토랑에서 팔면 되잖아요?”
슬아가 가볍게 농담처럼 제안했고, 수셰프의 원망 섞인 시선이 바로 슬아에게 꽂혔다.
절로 뒷걸음을 치게 될 정도로 강한 시선이.
“양이 조금 많아야지. 스테이크용 등심이 20 개, 티본이 14 개, 립 아이가 12 개, 안심이 10개, 포터하우스가 27개…..”
“그… 그래도 다들 스테이크는 좋아하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원가를 감안하면 스테이크 하나에 못 해도 10만 원은 받아야 하는데, 그 가격에도 주문을 할까?”
“윽… 무슨 스테이크 한 접시에 10만 원이 넘어요!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비싸기도 비싼데 많기도 많지. 그런데 이게 좋은 고기라고 백날 말해야 들어보지도 못한 고기를 그 값을 내고 먹겠냐고.”
화이트 파크 비프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가격도 비싸다.
원가도 일반 소고기의 두 배, 거기에 도축 비용, 포장비용, 항공 운송 비용, 수입을 도와준 중개업자 준 수수료까지.
한길이 사용하는 다른 희귀한 재료들은 가격이 백만 원 단위였지만, 이번에는 천만 원 단위다.
수셰프도 큰마음 먹고 구매한 재료였다.
만찬이 있으니까. 판매처가 확실하니까.
“괜찮습니다. 한번 맛보면 분명 다시 먹어보고 싶어질 테니까요.”
“그래도 만에 하나가 있잖습니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가 사비로 감당하겠습니다. 제 결정이었으니까요.”
“네? 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인데 아무리 그래도…. 아… 셰프님….. 이라면 가능하겠네요.”
“윽, 뭐야. 셰프님 연봉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슬아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쳐다보자, 한길은 괜히 멋쩍어져서 시선을 회피했다.
한길이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로서 받는 월급은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분을 갖고 있으니 고르메 키친의 수익 25%는 한길의 몫이었다.
예상보다 레스토랑이 잘나가는 바람에, 통장에는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어차피 쓸 시간이 없어서 묵혀둘 뿐이지만.
“후우… 그래도 레스토랑에 사비를 넣지 마세요. 그러다 망하는 건 한순간입니다. 선은 확실히 그어야죠.”
“정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된다면 제가 책임질 테니 너무 부담은 느끼지 마시라고요. 일단 이 재료가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렇게 수셰프를 안심시키면서도 한길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천만 원 단위의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확인 용도로 쓰겠다고 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아직 낯설었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퇴짜 놓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거든요. 자신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한 거고요.”
“그건 그렇지만요…..”
한길은 다음 플레이팅을 마무리하며 슬아에게 건네주었다.
“뭐라고 해야 하는지는 알지?”
“그럼요. 제가 또 암기는 특기니까요.”
“그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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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빵은 두 조각밖에 안 주는 걸까요? 더 갖다 달라고 하면 너무 없어 보입니까?”
“맛만 보는 거지. 식사 전에 배를 채우면 안 되니까.”
“역시 저는 이런 레스토랑은 체질이 아닌가 봅니다.”
한대훈과 함께 자리를 한 비서실장은, 접시 바닥에 넉넉히 고여 있는 웅덩이를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비프 캔들.
소의 지방으로 만들었다는 초는, 허브가 들어가서 밝은 연두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허브향과 마늘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기름은 촉촉하게 빵에 스며들었다. 버터만큼 느끼하진 않으면서, 올리브유보다는 든든하고. 따뜻한 허브맛 크림수프에 빵을 찍어 먹을 때 느껴지는 그런 맛.
이제 조금 제대로 즐겨볼까 하는데…..
빵이 다 떨어졌다.
애당초 두 조각밖에 없었으니까.
입맛을 쩝쩝 다시는 비서실장은, 잠시 귀를 기울여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은 저 사람으로 결정한 겁니까?”
“뭐를?”
“시치미 그만 떼십시오. 신사업 후보로 말입니다.”
“글쎄.”
“솔직히 의외입니다. 그야, 이한길 셰프도 이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네임 밸류는 없으니 저희 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없잖습니까? 이런 계산은 확실하신 분이 왜…..”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재밌어서 오는 거지.”
“그렇게 한가한 분도 아니잖습니까.”
비서실장의 말대로. 단순히 ‘재밌다’는 이유로 이렇게 시간을 할애할 만큼, 자신은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이한길은 재능 있는 셰프다.
하지만 아직 날것 그대로의 재능이다.
다듬어지지 않는.
그리고 사업을 함께하는 상대로는, 재능보다 안정성이 우선시 된다.
언젠가 이한길이 조금 더 숙성되고 노련해졌을 때.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알아두고 싶은 정도였다.
먼 훗날에 써먹을 지도 모를 카드니까.
그 정도인데…..
이상하게 끌리듯이 계속 이 레스토랑을 찾아오게 된다.
“뭔지 모르겠지만 달라.”
“뭐가요?”
“그냥 집에 가서 누우면 그날 먹은 음식이 계속 생각나서.”
“그렇게 맛있나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는 분이.”
그 말도 맞다.
맛만으로 보면, 분명 더 뛰어난 요리도 먹어보았다.
하지만 이한길의 요리에는 맛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하지만….”
“크흠.”
다가오는 인기척에 한대훈이 목청을 가다듬자, 비서실장이 말을 멈추고 허공에 입을 뻐끔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웨이트리스가 들어왔다.
“아무쥬 부슈입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기다란 접시 위에는 세 개의 동그란 구슬이 있었다.
선홍빛의 구슬.
육회다.
사과 같은 모양으로 동글동글하게 빚어낸 육회 위에 소스가 얹어 있었고, 그 위에 새하얀 배를 길게 썰어 올려놓았다.
눈으로 봤을 때는, 하얀 가지에 매달려있는 육회 사과가 세 개.
“왼쪽부터 드시면 됩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건 횡성 한우의 우둔살로 만든 비프 타르타르입니다. 당일 도축한 한우를 사용해서 신선하고, 한우 특유의 고소함과 감칠맛이 살아있죠.”
웨이트리스의 짧은 설명이 끝나고, 한 대훈은 바로 육회 사과를 맛보았다.
삼삼할 정도로 약한 양념에서 매실청, 간장, 참기름 맛이 느껴졌다. 고기 풍미를 가리지 않도록, 연하게 향만을 더하고 있었다.
웨이트리스의 말대로, 육질은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다. 깊은 감칠맛도 느껴졌고.
‘맛은 있는데……’
익숙한 맛.
자신이 아는 이한길이라는 셰프는 익숙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두 번째는 일본 고베산 와규로 만든 비프 타르타르입니다. 똑같이 우둔살을 사용하고 양념은 동일하지만, 와규 자체의 마블링 때문에 식감과 맛이 조금 다를 겁니다.”
다음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같은 양념, 같은 조리법, 같은 부위.
고기만 달리했다.
“부드럽네요.”
와규는 눈꽃 무늬라고 불릴 정도로 마블링이 뛰어난 고기다. 혓바닥의 온도에도 녹아버리는 마블링 덕분에, 육회에서도 부드럽고 기름진 맛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이 화이트 파크 비프입니다.”
“이게 그, 특별히 구해왔다는 디자이너 비프인가요?”
“네, 2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영국의 고대종으로, 구하는데 상당히 애먹었다고 들었어요. 지금 드시는 이 소는,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소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역시 재밌다.
일반적으로 먹는 고기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정도만 안다.
가끔 어느 농장에서 키워졌는지 알려줄 때도 있지만.
족보가 있는 소고기라니.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그런데 고대 종이라면, 품종개량을 안 거쳐서 맛이 더 없지 않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희가 먹는 일반 고기보다 지방이 적긴 하지만, 맛이 다르다고 맛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한번 직접 드셔 보시죠.”
외관상으로는 앞서 먹은 두 종류의 고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은 사과 모양의 육회를 들고 입안에 넣자,
‘….!’
탄력이 먼저 느껴졌다.
이빨에 저항하는 듯한, 엄청난 탄성.
그렇다고 질긴 느낌은 아니었고, 쫀득함과 쫄깃함 사이에 있는 식감이었다.
‘어떻게 소고기에서 이런 맛이 나지?’
식감에 놀라기가 무섭게, 엄청난 풍미가 뛰쳐나왔다. 초원에서 사납게 달리는 야생마 같은 활기찬 풍미가.
와규가 양복을 차려입은 도시인 같은 매끈함이 있었다면, 화이트 파크는 자유를 외치는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고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건 아니었다.
세 가지 맛 모두 장점이 달라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으니까.
감칠맛으로는 한우가 가장 좋았으며, 마블링의 기름진 황홀함은 와규가 으뜸이었다. 화이트 파크는 생동감 넘치는 매력적인 육향을 갖고 있었고.
다시 한번 그 맛을 확인하고 싶지만……
없었다.
아무쥬 부슈는 말 그대로, 입을 즐겁게 해줄 정도로 한입크기로 나오니까.
‘제법인데?’
한대훈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일부러 익숙한 육회 양념을 통해, 이 맛을 더 부각하고 있었다. 익숙한 맛을 여럿 내놓고 마지막에 반전을 주고 호기심을 자극한 후, 궁금증이 극에 달할 때 끊어버렸다.
“수비드 우설과 비트 소스, 셀러리 슬로입니다. 우설을 48시간 동안 저온 조리하여 지방을 제대로 녹여주고 향을 그대로 가둬두었습니다.”
다음으로 등장한 건 우설.
우설을 구이로 먹은 적은 있지만, 수비드로 먹은 적은 없는데……
어딘가 푹신푹신한 느낌이 드는 요리였다.
조금 단단한 두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향이 강하게 응축되어 있어, 순대와 함께 먹는 간이 생각났다. 간은 씹을 때 메마르고 퍽퍽하지만, 화이트 파크 우설은 씹을수록 진한 육향이 흘러나와 촉촉했다.
아까 그렇게 궁금해 했던 그 육향이, 그대로 입안을 덮쳤다.
함께 나온 셀러리의 아삭함과 시원한 향으로 입안이 정돈되고 나니, 다음 요리가 나왔다.
다음은 소 볼살 조림.
와인을 넣은 갈비찜 같았다.
갈비와는 달리, 쫀득하게 찰진 볼살이 부드럽게 익어있었지만.
“구워 먹으면 어떤 맛이 날까요?”
비서실장은 무의식중에 입술을 적시고 있었다.
그 말대로.
먹을수록 궁금증이 더해졌다.
식감도 알고, 향도 알았으니….
이제는 순수하게 열기만을 더한, 구운 고기에서만 나는 그 맛을 느끼고 싶었다.
“레몬 셔벗입니다.”
레몬 셔벗은 시원하게, 혀끝에 남아있는 와인 소스의 양념을 씻겨 주었다.
팔렛 클렌저.
앞으로 다가올 요리의 맛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각을 정돈해 주는 거다.
“모둠 스테이크입니다.”
그리고 기대하던 구이가 나왔다.
접시는 두 개였다.
길쭉한 사각형의 하얀 접시에는 각종 채소 사이드가 소담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접시에는 단 세 조각의 고기가 나란히 올려 있었다.
“앞에서부터 어깨 부위에 있는 플랫 아이언(flat iron)이라고도 불리는 부채살, 갈비 부위인 립아이 (rib eye) 꽃등심, 그리고 옆구리인 플랭크(flank) 스테이크입니다.”
정말로 소를 머리에서 꼬리까지, 순서대로 먹는 구성이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부채살을 먼저 포크로 찍자, 접시 바닥에 약간의 육즙이 세어 나왔다.
고기를 집은 포크가 코 끝에 다가올 때 느껴지는 그 육향.
스테이크의 진한 갈색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향에 설렘까지 느껴졌다.
“음!”
씹을 때 입안에서 터지는 육즙.
캐러멜라이징.
육향.
가려운 곳이 있는데 손이 묶여있어 몸을 꿈틀대다가 드디어 긁었을 때 느끼는 쾌감.
그런 쾌감과 만족감이 몸 안에 퍼져나갔다.
부채살은 쫄깃쫄깃하면서 탱글탱글했다.
옆에서 웨이트리스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활동을 많이 하는 어깨부위라 근육이 많아서 소고기 특유의 향이 많이 느껴지는 부위라고.
꽃등심은 녹아내렸다.
기름진 맛.
육향은 연했지만, 더욱 부드럽고 혀에 감기는 맛이었다. 황홀감을 주는, 어딘가 버터와도 같은 그런 끈적거림이 있었다.
플랭크는 다시 진하면서 씹는 맛이 있는 식감이었다.
세 가지 부위의 맛이 제각각 달랐다.
‘육즙에도 맛이 있구나.’
립아이의 육즙은 기름의, 마블링의 맛이었다. 먹고 나면 입안이 매끄럽게 기름칠 되는 반면, 부채살과 플랭크의 육즙은 살코기 안에 있는 주스와도 같았다.
똑같은 고기에서 나는 액체지만, 맛이 달랐다.
한 조각씩 나란히 두고 먹으니, 그 세세한 차이가 서로 비교되어서 더욱 와닿았다.
‘비프 테이스팅이네.’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것과 유사했다.
초밥 장인이 알아서 각종 회를 내주는 것과도 유사했고.
한 점 한 점, 맛을 음미하고.
중간에 생강 절임으로 입을 헹구듯, 사이드로 나온 샐러드와 구운 토마토로 입을 씻어주었다.
잘 기획되어 있었다.
맛의 흐름도 좋고.
그런데…..
맛도 있고, 의미도 있는데…..
‘뜯고 싶네.’
고기가 한점씩만 나오니, 고기에 질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기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제대로 배가 터질 정도로, 질릴 정도로 먹고 싶다고 생각할 때,
“오븐 로스트 포테이토입니다.”
감자가 그릇의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접시가 나왔다.
그리고…..
이한길 셰프가 직접 들어왔다.
도마를 들고서.
도마 위에는 묵직한, 자신의 얼굴만 한 크기의 고기가 있었다.
삼각형 모양의, T자 모양의 뼈가 그대로 붙어 있는….
“티본 (T-bone) 스테이크인가요?”
“정확히는 포터하우스(porterhouse)죠. 혹시 레어로 먹는데 거부감이 있으신가요?”
“비스테카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군요.”
한대훈의 말에 한길이 희미하게 웃었다.
“잘 아시네요.”
“워낙 유명하니까요.”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는 T자 모양의 뼈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채끝 등심, 다른 쪽에는 안심이 붙어 있어 두 가지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에서 먹는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는 두껍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스테이크처럼.
언뜻 봐도 높이가 5 센티미터.
손가락 세 개를 겹치는 두께.
고온에서 겉을 익히고, 내부는 거의 날것 그대로 먹는다.
고기를 먹고 싶어 달려들고 싶은 기분일 때, 그 기분과 가장 어울리는 스테이크가 나왔다.
셰프가 카빙을 시작하고, 각 부위를 반으로 나누어 접시 위에 올려주자, 기다릴 틈도 없이 고깃 조각을 주워 먹었다.
두툼하게 입안에서 씹히는 이 식감.
그리고,
촤아악!
입안에 터지는 육즙이 달랐다.
이건, 주스의 육즙이다.
지금까지 먹은 코스 요리로 단련된 혀가 순식간에 그 맛을 구분 지었다.
살코기에서 나오는, 어딘가 견과류 같은 고소하면서 깊은 풍미. 그 풍미를 그대로 담은 고기 주스였다.
겉은 바싹 익혀서 캐러멜라이징의 맛이 그대로 났고, 속은 육회를 먹는 듯한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있었다.
지금까지 먹은 코스 요리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것 같은 그런 맛.
“아직은 향이 조금 약할 겁니다. 원래는 드라이 에이징을 해야 하는데 아직 못 해서요.”
한 대훈은 입안 가득 고기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정말 웨이트리스가 말한 대로, ‘소고기 어디까지 먹어봤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는 생각 없이 부위만 먹은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세세한 맛이 감별 가능해졌으니까.
‘역시 재능이 있어.’
경험은 부족하고 이제 부상하는 셰프지만, 재능이 있었다.
그냥 썩혀두기에는 아까운 재능.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재능이 아니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너무나 능숙하게 밀당하며 애태우는, 마력을 가진 재능이었다.
한대훈은 재능만으로 사람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일 때의 얘기다.
압도적인 재능은 예외다.
< 91. 육즙도 육즙 나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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