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93)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93화(93/325)
< 93. 251만 명 중 하나 >
‘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지?’
촛불 행렬을 보며 송이사는 의구심부터 들었다.
화려한 연출.
그것도 이 시기에.
한대훈이 아무 의미 없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이사회 결의.
그 전에 자신의 편을 늘리려는 속셈이다.
‘카드 회사면 얌전히 카드 업무나 할 것이지…..’
처음에 각종 공연, 전시회와 연계한 사업을 진행할 때까지만 해도 환영했었다.
미식 다이닝 위크는 특이한 시도였지만, 투자 대비 수익이 높았으니 그러려니 했고.
최근에 렌터카와 여행사업까지 진출할 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투자의 규모가 다르니까.
경기도 안 좋은데, 변덕스러운 소비자 심리에 의존하는 산업에 섣불리 뛰어들 수는 없다.
한대훈이 항상 앵무새처럼 외치는 ‘스토리의 힘,’ 문화의 영향력, 인식의 차이.
모두 송이사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론일 뿐이다.
‘너무 똑똑해.’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책으로 배운 이론을 진심으로 믿게 된다. 하지만 회사는 뜬구름 같은 이론을 확인하는 곳이 아니다.
돈을 버는 곳이지.
안정적으로.
대부분의 이사진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저놈은 자신이 원하는 건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놈이니까.
뚝뚝.
그사이 새까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노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촛농은 예상보다 빨리 녹아서, 벌써 접시 바닥에 연두색 연못이 고여 있었고.
“이걸 찍어 먹는다고?”
“스테이크 컷 주위에 있는 지방에 로즈메리와 타임, 마늘을 넣고 다섯 시간 동안 서서히 기름을 우려내고 세 번 체에 걸러낸 후 굳힌 겁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고아낸 기름이라 약간의 사골 향도 느껴질 겁니다.”
웨이트리스는 꽤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골 향이 나는 양초라니.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코를 살짝 벌름거리며 향을 들이마셨다.
정말 어렴풋이 느껴졌다.
곰탕집 앞을 지나갈 때 맡을 수 있는, 그 살짝 단 향이 섞인 진득함이.
푹 고아낸 사골국 위에 떠다니는 투명한 비눗방울 같은 기름에서 나는 향이다.
다른 허브 향도 섞여 있지만.
“신기하네. 하여간, 아이디어는 좋다니까!”
은은한 촛불 조명 앞에서 눈을 빛내며 감탄하는 김이사가 보였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겉만 좋으면 뭐 하나. 중요한 건 맛이지.”
“그래도 신기하지 않나? 살면서 한 번 쯤은 이런 것도 먹어봐야지.”
“그게 한번에서 그치는 게 문제지.”
그 말과 함께 송이사는 접시에 곁들여 나온 빵을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었다.
길쭉하게 썰어놓은 빵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빵을 연두색 연못에 갖다 대자, 휴지에 물을 적셨을 때처럼, 빵 결에 스며드는 연두색이 보였다.
빵이 제법 튼실한지, 기름을 머금고도 숨이 전혀 죽지 않았다. 표면만 반들반들 빛날 뿐.
“맛있는데? 전혀 안 느끼하고.”
옆에서 김이사의 감탄사가 다시 들려왔다.
그 말대로.
생각보다 맛있었다.
잘 구워진 빵의 고소함.
그 위에 든든하면서 구수하고 달곰한 소고기 맛이 입혀졌다.
마지막에는 사우어도우 특유의 시큼한 향이 깔끔하게 입안을 정돈해 주었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조금 더 넉넉하게 빵을 적시고 바로 입안에 넣었다.
별미다.
겉만 살짝 적시면 빵 맛이 더 강했지만, 이번에는 씹을 때마다 스펀지를 누르듯이 그 달곰한 수프가 이빨 사이로 주르륵 흘러나왔다.
한 번만 더 그 맛을 음미하고 싶었지만, 앗 하는 사이 빵은 전부 사라졌다.
어느새 조명도 다시 원래의 밝기로 돌아와 있었고, 옆에서 똑같이 아쉬움이 가득한 김이사의 얼굴이 보였다.
“빵 양이 너무 적네. 아직 이렇게 소스가 남아있는데. 이건 버리는 건가?”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게 귀한지도 모르니까. 너무 보이는 거에만 집착하니 어쩔 수 없지.”
“그러게, 아까운 줄 몰라.”
투덜거리는 두 사람의 말소리 사이로 짝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짝 마른 입천장과 혓바닥이 달라붙으면서 나는 소리.
무언가 바로 입안에 넣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아무쥬 부슈, 비프 타르타르입니다.”
고깃덩어리가 도착했다.
작은 구슬 크기의 고기는, 어여쁜 사과 모양으로 빚어져 있었다.
“왼쪽부터, 횡성 한우, 고베 와규, 그리고 미국산 화이트 파크 비프입니다. 한우는 감칠맛이 유난히…..”
이어지는 설명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가장 먼저 보이는 고기 사과를 입안에 넣었다.
이번에는 아는 맛이다.
열기가 닿지 않은, 응고되지 않은 단백질.
신선한 고기에서만 나는 맛.
“육회군. 이런 건 계란 노른자랑 파를 송송 썰어 넣고 양념을 조금 진하게 해서 먹으면 좋은데 말이야.”
“그러게, 이것도 맛은 나쁘지 않지만, 제대로 된 육회에 소주가 그립구먼.”
“구관이 명관이지.”
갓 썰어낸 육회에 소주 한잔 탁 걸치면!
처음에는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알코올 향이 확 올라오고 마지막은 달착지근하게 잔향이 남는, 그 맛이 그리워질 때,
“로제 까바 와인입니다. 혀 위에 올려놓고 살살 돌리면서 입을 살짝 헹구시면 좋습니다.”
어딘가 연극배우 느낌이 나는 젊은 남자가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연한 핑크색의, 탄산 방울이 보이는 스파클링 와인을.
“소고기는 레드 와인 아닌가?”
“먹는데 룰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가끔 룰을 깨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맛을 발견하거든요. 한번 시도해 보세요, 후회는 없을 테니까.”
생긴 것만큼 뺀질뺀질한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와인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신기했다.
옅은 과일 향이 도는 탄산이 입안에 미세한 충격을 주면서 다시 미각을 깨워 주었다.
다음으로 먹은 와규는, 녹아내리는 맛이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고급 재료를 이렇게 쓰다니, 쯧쯧. 와규는 구워 먹는 게 제일인데.”
“뭐, 요즘은 특이하면 다 좋은 줄 아니까. 내실이 없어, 내실이. 새로운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닌데.”
다시 와인으로 입을 헹구자, 탄산 방울이 입안 가득한 와규의 기름기를 걷어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기 사과를 먹자,
‘뭐지?’
절로 멈칫하게 되었다.
소고기에 주사기를 넣고 엑기스만 뽑아낸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양념을 일방적으로 짓밟아 버리는, 너무나 강렬한 소고기 맛.
방금 먹은 두 개의 고기와는 너무 달랐다.
두툼하고 탄력 있게 씹히는 식감.
이빨이 맞닿을 때마다 촉촉하게 육즙이 배어 나왔다.
분명 소고기인데, 육회인데……
방금 잡아 올린 활어를 바로 회 떠서 먹을 때의 그 활력이 느껴졌다.
“이 고기가 뭐라고 했나?”
“화이트 파크 비프라고 불리는 고대 종입니다. 아일랜드의 신화에도 등장하는, 2천 년 전부터 영국에서 먹어온 소고기입니다. 오늘 비프 테이스팅의 주인공이죠.”
“아니, 요즘 세상에 품종 개량을 안 한 고기가 어딨다고.”
“그래서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지금 드시는 소는, 윈스턴 처치힐이 멸종을 막기 위해 세계 2차대전 당시에 미국으로 보냈던 소의 후손입니다.”
아니, 무슨 소고기에 족보가 있단 말인가.
“생각보다 옛날 사람들이 좋은 고기를 먹었나 보네?”
“이걸 처치힐이 먹었다고?”
“아니, 처치힐이 먹었다면 그 후손이 살아있겠나?”
곁눈질로 보니, 테이블마다 반응이 좋다.
떠드는 사람들 사이로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한대훈의 얼굴이 보였다.
‘에잇, 저 약아빠진 놈 같으니.’
한대훈의 속셈이 빤히 보였다.
다 먹고, 엄청나다는 반응을 보고, ‘이것 보쇼, 새로운 건 좋은 겁니다’ 연설을 할 의도겠지. 얕은 수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쩝.”
방금 먹은 그 향이 궁금해서 온몸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한대훈의 시선이 느껴지니까.
송이사는 한대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최대한 태연하게 ‘이게 대체 뭐 하는 건지’를 담아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입이 쩍쩍 마르고 있었다.
그렇게 진한 맛의 소고기는 처음이다.
한 입만 더 맛보고 싶은데……
그때,
“수비드 우설과 셀러리 슬로입니다. 타임, 월계수, 후추에 재워둔 우설을 이틀 동안 저온에서 익힌 겁니다.”
다음 요리가 나왔다.
“우설을 이렇게 두툼하게 낸다고?”
송이사가 먹는 우설은 얇게 편 썰다시피 썰어서 참숯에 구운 후, 특제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다.
우설은 소의 혓바닥.
운동이 많은 부위다 보니 근육도 많고, 얇게 썰지 않으면 자칫 질겨질 수 있으니까.
“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수비드는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방식이라, 질긴 결합조직이 다 녹아서 부드럽고 연합니다.”
조금 의심이 갔지만, 웨이트리스의 말대로.
부드러웠다.
그리고 얇게 썰어 먹을 때는 느끼지 못한 진한 육향이 났다.
아까부터 갖고 있던 궁금증에 대한 답변이었다. 향이 궁금하다고 생각하니, 육향이 가득한 우설을 내왔다.
소고기 향이 너무 진한 감도 있었지만, 함께 나온 채소가 그걸 잘 중화시켜주었다.
셀러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사과와 함께 나와서 셀러리의 씁쓸한 끝 맛 대신 달달한 사과 향이 더해졌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과 입안에서 터지는 채즙과 과즙이 상쾌했고.
‘하지만 그래도 양념장이 부족해.’
육회도 우설도. 찰박하게 양념장에 찍어 먹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팔각과 와인, 소고기 육수와 함께 4시간 동안 졸인 볼살과 훈제 감자입니다.”
이번에는 볼살 갈비찜이 나왔다.
진득한 와인 소스를 품고 있는.
‘독심술이라도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뭐든 상관없었다.
갈비찜은 송이사의 욕구를 그대로 충족시켜 주었다.
고기는 씹을 때마다 결을 따라 찢어졌다.
아마 뼈에 붙어 있었다면 후드득 떨어져 나갔겠지.
입에서 녹아내리는 육질은 와인 소스와 찰박하게 어우러졌고, 소스는 맛깔나면서도 감칠맛이 넘쳤다.
함께 나온 으깬 감자는 훈제 향이 듬뿍 베어져 있어 와인 소스의 짭조름함을 잘 잡아주었다. 묘하게 서양식으로 갈비찜에 밥을 비벼 먹는 것 같았다.
“시라즈 와인입니다. 조금 바디감이 있고 약간은 후추 같은 매캐한 향이 나는 와인이죠.”
갈비찜 끝에는 톡 쏘는 와인.
양념이 강해서 다음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카레를 먹고 락교로 입안을 다시 정돈해주는 것처럼, 혓바닥이 초기화되었다.
‘배고프네.’
이상하게 먹을수록 배가 불러오는 게 아니라, 고파왔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웅성임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뭐지?”
“저건 숯 아냐?”
곧이어 홀로 들어오는 웨이터들이 보였다.
또 다른 행렬.
이번에는 촛불이 아니라 참숯이었다.
그릴과 참숯.
전기를 꼽는 그릴도 아니고, 어딘가 원시적인 느낌이 드는 금속으로 만든 그릴이었다.
웨이터들은 그릴과 숯을 홀 앞에 있는 기다란 네모 테이블에 세팅하고 있었다. 아까 뷔페라도 차리려나 생각했던 그 테이블이다.
“왜 미리 세팅은 안 해놓고.”
“그러게, 손님들 있는 데서 굳이 저렇게 소란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있나?”
그렇게 투덜대긴 했지만, 사실 불만은 없었다.
지금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고기는 불에 구워 먹어야지!
그것도 오븐도, 전기 그릴도, 프라이팬도 아닌 참숯 그릴에서!
타닥타닥.
송이사의 자리는 테이블에서 가까워, 잘만 집중하면 숯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릴 앞에는 두 명의 요리사가 꼬챙이로 숯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테이스팅할 화이트 파크 비프입니다. 왼쪽부터, 부챗살이라고도 불리는 플랫 아이언, 꽃등심이라고도 불리는 립아이, 그리고 옆구리 살인 플랭크입니다. 3주간 드라이에이징으로 건식숙성하여 맛을 더욱 응축시켰습니다.”
웨이터들은 생고기가 올라간 도마를 들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난히 진한 붉은 색의 고기는 아름답게 숙성되어 있었다. 마블링 선은 얇았지만, 무수히 많이 뻗어 있었고.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갈 길이 바쁜데, 묶어두면 쓰나.
저도 모르게 들뜬 마음으로 감상을 마치자, 다시 한대훈과 눈이 마주쳤다.
‘아차!’
생고기를 보고 얼굴이 완전히 풀어져 버렸는데. 송이사는 히죽이는 얼굴을 최대한 한쪽만 비틀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취했다.
그 사이, 도마는 홀을 모두 순회한 후, 그릴 앞에 도착했다.
치이이익!
그리고 바로 불 위에 올라갔다.
연기가 안개처럼 뿌옇게 차오기 시작했고, 희미하게 고기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지만, 냄새가 배는 건 나중의 문제다.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고기를 뜯고 싶다.
숯 향을 품고 있는, 겉이 살짝 탄 듯이 잘 구워진 그 살결을 입안에 넣고 무참하게 씹고 뜯고 싶어지는 마음.
당장 달려가서 저 집게를 빼앗아 들고 직접 굽고 싶지만, 체면이란 게 뭔지. 이 자리에 묶여 있다.
그런데….
하나, 둘, 셋, 넷….
도마가 여덟 개뿐이다.
인원은 57명인데.
스테이크 한 덩어리를 자르면 일곱 조각 정도 나오려나?
그러면 인당 한 조각?
‘에이, 설마. 더 갖고 나오겠지. 스테이크는 한 덩어리로 먹는 건데.’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적중했다.
요리사 두 명은, 고기를 다 굽자마자 그릴에서 내리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걸 누구 코에 갖다 붙이라고?”
그리고 송이사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렸다.
한대훈의 시선도.
방금 말투는 절박해 보였다.
이런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니, 사람을 갖고 장난하는 것도 정도껏 이지!”
송이사는 최대한 권위적인 목소리로, 성질을 내는 듯한 우렁찬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요리사 중 젊은 쪽이 다가오더니, 정중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여기 책임자가 누군가.”
“제가 이 만찬을 총괄하는 헤드 셰프, 이한길입니다.”
“자네가?”
한눈에 봐도 젊다.
그래 봐야 갓 30대가 넘는 것 같은데.
“자네 말이야, 이 사람들이 안 보이나? 이 인원이 먹을 고기를 구우면서 단둘이 움직이는 건 뭔가?”
“아, 죄송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네요.”
말로는 죄송하다고 하고 친절하게 웃고 있지만, 전혀 미안한 마음은 없어 보인다. 웃는 모습이 너무 당당하니까.
“아까 생고기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고기는 저희가 일반적으로 먹는 고기보다 마블링이 가느다랗습니다. 세세하게 열 조절을 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고기 맛이 상해서, 실수 없이 완벽하게 조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저의 수셰프, 단 둘뿐입니다.”
“고기 하나 제대로 못 굽는다고?”
“워낙 까다로운 고기니까요.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선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사실 그런 건 뭐라도 상관없다.
그냥 자신이 초조하게 저 스테이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 안 들키면 된다.
나중에 한대훈, 그 얄미운 놈이 ‘그렇게 좋아하시던데요?’라고 말할 게 빤히 눈에 보였다.
그래, 식탐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이사에게, 이런 대우가 말이 되는가!
“자네, 내가 누군지 아나? 나도 바쁜 사람이야. 그런데 이렇게 앉혀놓고 무작정 기다리라니.”
최대한 다시 몰아붙이려 했지만, 셰프는 여유롭게 웃기만 했다.
“귀한 분이라 귀한 음식을 대접하려는 겁니다. 지금 전 세계에 화이트 파크 소는 약 3천 마리가 있습니다. 세계 인구가 75.3 억이라고 쳤을 때, 저 소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251만 명 중 한 명인 셈이죠.”
“251만?”
“심지어 국내에서는 영국 소를 구할 수 없으니, 값을 지불해도 9개월 후에나 다음 소를 들여올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먹을 수 있는 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시야 한쪽에서 다른 요리사가 고기를 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이상 잡아두면……
고기가 늦게 나온다.
이 정도면 적당히 성질도 냈고.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더 기다리게 만들 셈인가? 뭐 하나? 빨리 가서 준비하지 않고.”
서둘러 셰프를 재촉해서 돌려보내자, 무슨 구호에 맞춰 움직이듯, 셰프가 고기를 썰고 접시 위에 올리면, 웨이터 군단이 접시를 날랐다.
접시 위에 고기는 정말 단 세 조각뿐이었다.
양은 적었지만……
그 자태는 아름다웠다.
검은 갈색 테두리를 두른 핑크색.
육즙이 넘치다 못해 온통 반질반질 빛난다.
한 조각이지만 두툼하다.
반으로 썰면 두 입, 조금 작게 썰면 세입에 걸쳐서 먹을 수 있다.
‘드디어!’
코끝을 간질이는 이 향!
이제 드디어 구운 고기를 먹나 싶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달려들었다.
‘역시 이거지!’
부챗살을 먼저 입안에 담은 송이사는 눈을 감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이 모든 고난을 헤치고 먹을만한 맛이다.
진한 육향과 마블링에서만 나는 달곰한 기름 향, 숯 향과 캐러멜라이징.
역시. 고기는 진리다.
씹을 때마다 푸슉 소리가 나올 정도로 힘차게 튀어나오는 육즙.
어째 육즙까지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는지!
역시 251만 명 중 단 한 명만 먹을 수 있는 고기다웠다.
눈을 뜨며 부챗살의 남은 반을 포크로 저격하는 순간,
“테이스팅 가이드입니다.”
웨이트리스가 종이 몇 장과 몽당연필을 건네주었다.
“이건 뭐지?”
“아까 한대훈 대표님이 말씀하셨듯이, 오늘의 콘셉은 비프 테이스팅이거든요.”
웨이트리스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꼭 하실 필요는 없지만 해 보는 걸 추천해 드려요.”
< 93. 251만 명 중 하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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