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97)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97화(97/325)
< 97. 진짜 오디션 >
“엄마, 나도 목걸이!”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리켰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지난 몇 주.
온몸에 독이 서서히 퍼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피가 진흙으로 변하기라도 했는지, 온몸이 질척거리고 무거웠다.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는데. 아이를 보기만 해도 모든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 얌전히 앉아 있어야지.”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아이를 데려와 자신의 자리 옆에 있는 의자에 앉혔지만, 아이는 계속 꼼지락댔다.
“싫어, 엄마랑 같이 앉을래.”
“이제 다 컸으니까 네 자리에 앉으렴. 널 위해 일부러 이 쿠션까지 만들어줬는걸.”
반년 만에 보는 딸이다.
왕비 역시 마음 같아서는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놀아주고 싶지만,
“엘리자베스 저하께서도 많이 컸습니다. 하루하루 갈수록 국왕 전하를 많이 닮아가시네요.”
알현실에는 손님이 있으니까.
오늘 같은 날은 알현이고 뭐고,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침실로 대피하고 싶다.
그 어떤 손님도 들어올 수 없는 곳으로.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다 무슨 소문이 나돌지.’
왕비가 알현실에 나타나지 않으면, 손님 받기를 거부한다는 말이 된다. 아니면 우울해서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이 시기에 그런 행동은 치명적이다.
안 그래도 알현실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소문으로는, 그 허여멀건 밀가루 인형 같은 되바라진 시녀의 방에는 손님이 넘쳐나고 있다고 들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안다.
자신도 직접 겪어봤으니까.
그때는 자신이 시녀였었지만.
‘그래도 난 달라.’
아무 말 못 하고 멍청하게 당한 캐서린과는 다르다.
절대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엄마!”
어느새 의자에서 기어 내려와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는 아이를 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사이 머리카락이 참 많이도 자랐다.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보들보들한지, 손바닥을 가볍게 간지럽힌다.
이대로 머리를 땋아주면서 놀아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할 때 시녀가 다가왔다.
“왕비 전하, 식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식사? 이 시간에?”
“아까 그 요리사에게 식사를 차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요리사? ….. 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냥 그 순간 속이 끓어올라서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으니까. 애당초 이름도 모르는 요리사의 음식을 먹을 생각도 없고.
하지만….
식사는 알현실이 아닌, 왕비의 개인 공간, 내실에서 먹는다.
엘리자베스와 단둘이 있을 수 있다.
적당한 핑계도 있으니까.
“그러면 나와 엘리자베스는 잠시 한입 들고 오겠네. 자네들은 여기서 쉬고들 있게.”
알현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대충 인사를 건네고, 왕비는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이미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지만, 아직 요리는 도착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뭐 좀 잠시 먹으련?”
“싫어! 배 안 고파!”
왕비 역시 배는 고프지 않았다.
불과 두 시간 전에 식사했으니까.
그것도 있지만……
최근에는 입맛이 없어 무엇을 먹든, 속이 부대낀다. 궁의 음식은 너무 기름지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그러면 왕비가 식음을 전폐한다는 말이 돌 테니까.
누구 좋으라고 약한 모습을 보여주겠나?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그때, 주방과 직속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요리사가 올라왔다. 몇 시간 전에 봤던, 그 건방진 요리사다.
한 손에는 접시를 들고 있었지만, 이상한 뚜껑을 덮어두고 있어 그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다.
접시는 하나뿐.
“내가 분명 한 상을 차리라고 하지 않았나?”
“이미 식사는 하셨을 것 같아 조금 더 편하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별의별 천박한 놈이 내 말을 무시하는군.”
속으로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요즘은 이상하게, 몸속에 화산을 둔 것 같다.
예전에는 일부러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혹은 일부러 속을 살살 긁어대기 위해 말을 무기로 사용했었는데. 최근에는 제어할 수 없다.
그 차이는 크다.
저놈에게도 온몸을 관통하는 수천 개의 바늘을 날려 보내고 싶지만……
아이를 무릎에 앉힌 상태라 간신히 말을 삼켰다.
“엘리자베스, 이제 너도 네 자리로 가야지. 식사가 나오지 않았니.”
“싫어!”
반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보다 유모에게 더 붙어있었거늘. 이렇게 매달리는 아이를 보니, 기쁘면서도 괜히 가슴이 아려왔다.
이러면 다시 별궁으로 돌아갈 때 아이가 슬플 테니까.
“저….”
이 와중, 감히 요리사가 입을 열었다.
다시 화산이 끓어올랐다.
“네놈이 정말 목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그게 아니라, 이번 요리는 죄송하지만, 왕비 전하께서 직접 먹여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직접?”
“아마 저하께서 다루시기에는 어려운 요리일 것 같아서요.”
그 말과 함께 요리사는 그릇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세 개의 작은 계란이 있었다.
아마도 계란 같다.
모양은 계란인데…..
“와, 보석! 엄마, 보석!”
처음 보는 계란이었다.
계란은 뚜껑이 깨진 상태였고, 그 안에 반짝이는 갈색이 보였다.
엘리자베스의 말대로 반짝반짝 빛나는 갈색 보석이었다.
“이건 무슨 요리지?”
“크렘 브릴레입니다.”
“그런 요리가 있었나? 프랑스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요리사가 말한 요리명.
크렘 브릴레(creme brulee)는 불어로 ‘태운 크림’이라는 뜻이다.
영어만큼이나 불어에 능숙한 왕비이기에, 그 뜻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크림의 표면을 살짝 태워서 그런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이건 어디 요리지?”
“제가…. 만든 요리입니다.”
왕비는 이런 요리를 여태껏 보지 못했다.
그리고 왕비가 보지 못한 요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왕비는 열두 살에 신성로마제국의 대공비, 오스트리아의 마거릿을 모시는 시녀로 있으면서 네덜란드의 궁전에 살았고, 그 후로는 프랑스에서 무려 칠 년간 시녀 생활을 해왔다.
이런 변방 섬나라 영국이 아닌, 문화의 중심지인 유럽의 주요 궁전에서 살아왔다. 유럽 대륙의 궁전에서도, 자신이 모든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꽃이었다.
그런 불린 조차도, 이런 계란 요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보시다시피, 계란 껍데기가 연약해서 엘리자베스 저하가 직접 드시기에는 어려울 겁니다.”
요리사의 말대로.
세 살 아이가 계란을 깨트리지 않고 정교한 숟가락질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유모가 나섰지만, 왕비는 그런 유모를 막아섰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직접 먹일 기회. 절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 아이를 내가 먹이겠다는데 왜 이렇게 다들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어떻게 먹는 거지?”
“숟가락으로 표면을 살짝 깨트린 후 드시면 됩니다.”
요리사의 말대로 숟가락을 계란 위에 있는 갈색 보석에 갖다 대고, 망치를 떨어트리듯이 살짝 떨어트렸다.
탁. 타닥.
단단한 표면은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조각났다.
얼어붙은 호숫가의 얼음이 갑자기 깨지는 것처럼. 갈색 보석은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조각 아래에는…..
눈부시도록 환한 샛노란 커스터드가 있었다.
푹.
숟가락을 넣어 커스터드와 갈색 조각을 조금 담았다. 아이의 입에 들어갈 정도로만.
“젤리 같군.”
영국의 커스터드는 진득하게 흘러내리는데, 이 커스터드는 덩어리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숟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좌우로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자, 엘리자베스, 한번 먹어보련.”
엘리자베스는 숟가락을 입가에 대자마자 입을 크게 벌리고 숟가락 채로 삼킬 듯이 먹이를 물었다.
“맛있니?”
끄덕끄덕.
한 스푼 더 담아서 입에 넣어주니, 다시 아기 새처럼 너무나 맛있게 먹는다.
그 맛이 궁금해질 정도로……
“그 옆에 짙은 색으로 태운 커스터드는 전하의 것입니다.”
이 행복한 순간을 방해하는 목소리.
또 저놈이다.
“내가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들어도 된다고 했던가?”
“거위 간이 들어가 있어 혈액을 잃어서 약해진 몸을 강화하는 데 좋습니다.”
“네놈이 이제는 의사라도 되나 보지?”
조금 더 날카롭게 쏘아붙여 보았지만,
“엄마도! 엄마도!”
아이가 조르고 있다.
귀여웠다.
자신과 똑같은 목걸이를 하고 무릎에 앉아서 같은 요리를 먹자고 조르는 아이가.
마지못해 왕비도 짙은 갈색의 계란을 깨트려 보았다.
타닥.
계란 위에 있는 갈색 보석은, 단단해 보이면서도 유리알처럼 연약했다.
한 스푼 담아서 입안에 넣자……
절로 눈이 감겼다.
부드럽다.
비단처럼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동시에, 묵직하면서도 크리미하다.
혓바닥을 대면 저절로 밀리어나갈 정도로 반드러운 질감이 기분 좋다.
한겨울에 따뜻하고 두터운 벨벳을 온몸에 두를 때 느껴지는 그런 포근함.
호화로우면서 고급스러움 묵직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기름지지 않았다.
얼핏 푸아그라의 향이 났다. 와인에 절여둔 푸아그라와 닮은 데가 있었지만, 푸아그라 특유의 기름진 향이 없이 담백했다.
오랜만에 먹는, 기름이 쫙 빠져있으면서도 담백한 맛. 푸아그라를 크림으로 만든 묘한 음식이었다.
부드러움과 묵직함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싶을 그때,
빠작.
그 묵직함을 깨는 소리.
단단한 갈색 유리알이 이빨 사이에 쪼개지면서 강렬한 달달함을 쏟아냈다.
그 단맛이 크림과 푸아그라의 무게를 적절하게 깨주었다.
“엄마, 내 차례!”
“그래, 잠시만.”
다시 숟가락을 조심스레 계란 안에 넣어 엘리자베스의 노란 커스터드를 담아 입안에 넣어주었다.
“이제 엄마 차례!”
아이는 지금의 먹는 행위 자체를 놀이로 보는 듯했다. 신이 나서 계속 잘도 먹고 있다. 오히려 너무 빨리 먹으면 안 된다고 왕비가 말려야 할 정도로.
“유모, 정말 엘리자베스가 요즘 편식을 하고 있던 게 맞나? 너무 잘 먹는걸?”
“정말입니다. 요즘 들어서 무얼 드려도 계속 입에 넣지 않아서 걱정되었는걸요.”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잘 먹는다.
각자 하나의 계란을 깨끗하게 비우자, 마지막 계란 하나가 남아 있었다.
“같이!”
아이가 조르는 대로, 이번에는 아이에게 한 입, 그리고 다음 한 입은 왕비가 먹었다.
엘리자베스의 커스터드는 달랐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고소한 아몬드 향.
왕비가 먹은 거위 간 커스터드는 쓴맛을 즐길 줄 아는 어른들이 먹는 디저트였다면, 이것은 확실히 아이를 위한 디저트였다.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크림이 혓바닥 위에 노닐고 있었다.
“어? 마지막!”
어느새 마지막 스푼에 다다르고 아쉬움이 찾아왔다.
막상 이 순간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절감하게 되었다.
마음 깊은 곳까지 편안해지고 온화해지는 이 기분. 기분이 멋대로 풀어져 스멀스멀 번져가는 이 느낌. 잔뜩 꼬여있고 날카로워진 마음의 칼이 절로 무뎌지는 감각.
“하나 더!”
엘리자베스는 아직도 만족을 못 했는지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 오늘 같은 날에는 하나 더 주어도 되겠지 싶어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데,
“안 됩니다.”
또 저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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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네.’
주거니 받거니.
한입씩 번갈아 가며 먹는 왕비와 공주를 보며 한길은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정말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순수하게, 입안에 들어간 그 맛을.
함께 나눠 먹고 있는 이 순간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게 그대로 보였다.
‘다행이네.’
어느 정도 도박이긴 했다.
밥이 아닌 디저트를 내온 순간, 왕비가 바로 자신을 끌고 나가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으니까.
아니면 엘리자베스가 한 입만 먹고 뱉어낼 수도 있었고. 세 살 아이의 변덕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이의 목걸이를 봤을 때도, 아까 복도에서 투정을 들었을 때도 느낀 건 하나였다.
무언가를 따라 하고 싶어 하고, 같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세 살짜리 아이가 혼자 궁궐에 생활한다고 하면, 어른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외로울 수도 있다.
부모와 떨어져서 별궁 생활이라니.
물론, 아이는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계급사회에서, 감히 공주와 한 상에서 식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 밥을 먹는 건, 어른도 힘들다.
음식은 같이 먹어야 맛있으니까.
‘이걸로 만족하자.’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녀를 보면서 한길은 조용히 마음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잘 먹으면 자신을 주방으로 부르는 게 아닐까라는 희망도 조금 품긴 했지만, 그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한길의 입에서 말이 나올 때마다 왕비가 살벌하게 노려보았으니까.
엘리자베스가 없다면 본인이 직접 검을 들고 달려올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왕비는 자존심이 강한 여인이었다.
절대 자신이 한 말을 되돌리지 않을 것 같은.
오기로라도 한길을 쫓아낼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설령 이 퀘스트에 실패하더라도, 얻은 건 있었다.
자신이 만들었던, 완성형인 줄 알았던 계란 커스터드도 완성이 아니었다.
조금만 더 비틀면, 얼마든지, 무한대로, 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한길은 커스터드는 더 손을 댈 구석이 없다며 다시 다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성된 요리는 없다.
언제든, 어떻게든, 조금 더 발전할 여지가 있었다.
그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크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흐뭇하게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하나 더!”
엘리자베스가 한길을 똑바로 바라보며 추가 주문을 했다.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하는 모습이 굉장히 사랑스럽고 귀엽기는 했지만,
“안 됩니다.”
저 작은 몸으로 너무 많은 설탕을 먹어서 좋을 게 없다.
“이 디저트는 너무 달아서 많이 드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그래도 하나 더!”
“안 됩니다. 내일 또 오신다면 해 드리죠.”
“내일? 정말?”
그 순간, 갑자기 길이 보였다.
조금 위험 부담은 있어 보이지만……
한 번은 건너볼 만한……
조금 조심스럽게……
“저하께서는 내일 궁으로 돌아가시는군요. 안타깝네요. 하루만 더 계시면 내일도 해드릴 수 있을 텐데.”
“그럼 더 있을래.”
“죄송하지···.”
한길은 의식적으로 시선을 왕비에게로 돌렸다.
“저는 왕비 전하의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가 아니라 내일도 직접 해드릴 수 없습니다. 주방 요리사에게 만드는 방법을 전달해 드리죠.”
누그러졌던 왕비의 얼굴이 굳어가는 게 보였다. 나름 조심스럽게 돌려서 표현했는데.
“유모,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잠시 침실로 가 있겠나.”
한길의 유일한 방패였던 엘리자베스까지 안으로 보내자, 불안감은 더 심해졌다.
“자네들도 잠시 나가 있게.”
심지어 왕비는 시녀들까지 내보냈다.
모두가 이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알아서 눈치를 보며 총총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긴장이 극도에 달해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왕비는 조용히,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이쯤 되면, 잃을 게 없다. 믿을 구석은 있고.
“공주 저하께서 편식이 심하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요리는 잘 드시죠.”
“그래서?”
“편식이 심하면 밥을 제대로 못 먹어 몸이 상할 수 있습니다. 고귀한 분의 몸이 상해서는 안 되죠.”
“……”
“제가 공주 저하의 궁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만약 제가 이곳, 왕비 전하의 주방에 소속된 요리사라면……”
“자네의 요리밖에 먹지 않으니, 공주의 편식을 고치는 동안 궁에 데리고 있을 수 있다?”
왕비의 목소리 톤은 일정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조금 너무 나서는 감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옆에서 지켜본바, 왕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였다.
도박 같아 보이지만,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은 있다.
“어지간히 내 주방에 들어오고 싶나 보지?”
왕비의 싸늘한 얼굴에 다시 비틀린 웃음이 떠올라왔다.
“그렇게 오고 싶다면 네 가치를 증명해야지 않겠나.”
“오늘로는 부족합니까.”
“일국의 왕비 주방에 서는 남자를 고르는데, 설마 세 살배기의 손에 맡길 거라고 생각하나?”
왕비의 목소리는 결코 상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기회였다.
“내가 내일 조금 중요한 손님을 초청해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그때 제대로 만족할만한 요리를 만든다면, 생각은 해보지.”
“그 손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한길의 말에 모처럼 여왕이 피식하고 웃었다.
“역시 네놈은 머리가 조금 무거워 보이는구나. 적어도 나보다는 나이가 많네. 어때, 한번 해보겠나?”
이제부터가 진짜 오디션이다.
“네, 해보겠습니다.”
< 97. 진짜 오디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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