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hef with Hidden Quest RAW novel - Chapter (99)
히든 퀘스트로 탑셰프-99화(99/325)
< 99. 그냥 즐겨! >
“왜 이리 늦게 왔어?”
주방 견학을 마치니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고, 기숙사 방에서 길버트가 목이 빠지게 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주방에서 홀로 일하는 날이라 풀이 죽어있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들뜬 모습이었다.
오늘 궁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일손은 부족한데 차려야 하는 음식은 많으니, 주방 요리사들도 길버트를 괴롭힐 여유 따위 없었고.
“오늘 나 혼자 토끼 50마리를 구웠다는 거 아니냐. 아니지, 한 끼에 50마리니까 하루에 100마리지!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기록을 세울 줄이야!”
“대단하네, 축하해.”
“뭔 생각을 그리하는데?”
“응? 아니, 별로.”
길버트는 자신의 영웅담을 길게 늘여놓고 있었지만, 한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 왕비의 시험이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 오늘 밤중으로 메뉴를 정해야 한다.
한길은 다시 왕비의 주방에서 본 요리들을 머릿속에 하나씩 그려보았다.
영상을 재생하듯….
‘일단 위생은 빼고!’
현대인인 한길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요리지만, 그런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 시기 사람들은 파이 안에 개구리나 찌르레기를 넣는 게 왜 비위생적인지 알지 못하니까.
이곳에는 아직 세균이라는 개념이 없다.
진드기에 대해서도 모르고.
어떻게 보면 웃기기도 했다.
헨리 8세는 질병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이 있어, 청결에 매우 예민한 편이었다.
그래서 수시로 궁전 내를 환기하고 먼지 청소를 하는가 하면, 주방에서도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설거지를 했다.
거대한 솥에 식사 시간 동안 사용한 모든 접시와 냄비를 넣고 푹 삶아서 소독했다.
식기에 얼룩이 묻어 있으면 참숯을 물에 희석해서 그 물로 얼룩을 지워내기도 했다. 정말 끈질긴 얼룩은, 칼레(Calais) 지역에서 직접 가져온 입자가 작은 모래를 이용해서 수세미를 이용하듯이, 마찰을 충분히 준 후에 식기를 삶았다.
설거지 과정만을 보면, 예상외로 청결을 중요시해서 한길이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깨끗하게 씻어내고는, 막상 밥상 위에는 개구리랑 찌르레기를 풀어놓다니….
‘아니, 그 생각은 그만하고!’
한길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깃털에 붙은 벼룩과 진드기의 이미지를 털어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이들이 왜 이런 기괴한 요리를 밥상 위에 올리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길버트, 새내기! 카드 안 할래?”
“카드?”
“오늘은 달이 밝아서 늦게까지 해도 될 것 같지 않냐? 사람이 부족해! 어때?”
창가에 모여 있는 요리사 몇 명이 카드 게임에 초청했지만, 한길은 조용히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넌 심심하지도 않냐?”
“심심?”
“카드도 안 하고 주사위 놀이도 안 하고….”
“하고 싶으면 넌 가서 해.”
“아냐, 됐어. 나도…..”
여기 요리사들은 카드놀이를 정말 좋아했다. 매일같이 하는데도 질리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하긴, 여기는 티비도 없으니까.’
티비도 없고 핸드폰도 없다.
해가 떨어지면 하루가 끝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인 방에는 그렇게 많은 양초가 제공되지 않아서 해가 떨어지면 일찍 잠든다.
오늘처럼 달빛이 밝은 날은 예외지만.
현대인들과 비교하면 정말 심심한 생활이다.
“귀족들은 심심할 때 뭘 할까?”
“글쎄? 낮에는 볼링장이나 테니스장을 다니겠지? 이번에 전하께서 새로 하나 만들어주셨다고 하니까.”
“그리고?”
“모르지, 무도회(masque)나 가장행렬(pageant) 준비를 하지 않을까? 영국은 그쪽으로 워낙 유명하니까.”
“무도회?”
“아, 넌 무도회를 본 적이 없겠구나? 그거 진짜 볼만한데!”
길버트는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궁중의 무도회에 대해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들으니, 무도회보다는 연극이나 뮤지컬에 가까웠다.
연회장 한가운데에 연극 세트처럼 무대를 세워두고, 귀족들이 음악에 맞춰 그 주위에서 춤을 췄다. 가끔 배우가 하듯이, 대사를 읊을 때도 있었고.
그리고 무대가 막을 내리면 각자 자리에 앉아 연회 음식을 먹는다.
“헨리 전하께서는 이런 걸 워낙 좋아하시니까 작년만 해도 쉴 새 없이 했었거든. 최근 들어서는 정말 뜸해지긴 했지만. 전하가 또 춤을 기가 막히게 우아하게 추시는데!”
“국왕 전하가 직접 춤을 춰?”
“당연하지, 무도회잖아? 전대 왕비는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앉아서 구경만 했다고 하는데 이번 왕비 전하도 그런 무도회를 좋아하시지. 두 분이 처음 만난 게 무도회였으니까.”
왕이 객석에서 지켜보는 무대가 아니었다.
국왕과 귀족들이 배우로 출연하는 뮤지컬 같은 개념이었다.
뭔가 익숙하진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일상인 듯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가?’
이곳은 셰익스피어의 나라다.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활약했던 인물이니, 아직 몇십 년 더 있어야 본격적으로 활동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연극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드라마라…..’
아피키우스도 드라마를 중요시했지만, 영국과 로마는 조금 달랐다.
로마가 예술품을 감상하는 미술관이라면, 영국은 뮤지컬이다.
로마가 아름다움과 진귀함을 중요시했다면, 이곳에서는 역동적이고 장난스러운……
재미.
이들에게 식사는, 눈으로 감상하고 입으로 맛만 보는 자리가 아니었다.
식사 역시 중요한, 엔터테인먼트였다.
판타지 영화를 보는 대신, 밥상 위에서 코켄트리스도, 고슴 돼지를 맛본다. 마술쇼에서 비둘기를 모자에서 꺼내는 대신, 식탁 위의 파이 속에서 새가 튀어나오고.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만들 만한 요리 몇 개가 떠올랐다.
영국인들이 좋아할, 장난스러우면서 재미를 줄 수 있는 요리.
현대에서도 그런 요리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다행인 점은, 굳이 살아있는 새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곳 사람들은 아직 과학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요리는 과학이다.
화학적 반응을 이용해서 그들이 원하는, 재밌는 요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조금 더 위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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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왕비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이른 새벽부터 하인이 한길을 깨웠다.
하인을 따라간 곳은 왕비의 알현실.
전날에는 제법 북적였었는데,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지. 시녀 두 명을 제외하고는 알현실은 텅 비어 있었다.
“어제 견학은 잘했나?”
“네, 덕분에 잘 봤습니다.”
“그래서. 어떤 요리를 만들 생각이지?”
왕비는 대뜸 본론부터 꺼냈다.
아마도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나름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인데, 알지도 못하는 요리사의 손에 그 모든 것을 맡겨두는 거니까.
“마법 같은 밥상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그건 어떤 밥상이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마법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요.”
한길은 자세한 메뉴 설명을 피했다.
설명할 자신도 없었거니와, 설명을 너무 자세하게 하는 순간 ‘만들지 말라’는 명이 내려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왕비의 주방에서 일할 거라면, 메뉴의 주도권은 한길에게 있음을 확실히 못 박아두고 싶었다.
“실패할 경우에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겠지?”
“제 어깨 위가 가벼워진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 알면 되었다.”
왕비는 불안과 불만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의외로 순순히 넘어갔다.
어쩌면 처음부터 메뉴를 들을 생각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동기 부여 차원에서 부른 것일 수도.
“목숨이 걸려 있으니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뭐지?”
“일손이 더 필요합니다. 저와 같은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가 있는데,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길버트를 불러올 생각이었다.
혼자서 모든 요리를 만들기에는 요리 개수가 너무 많았으니까.
왕비의 밥상에는 한 끼에 두 코스. 코스 당 최소 열다섯 개의 요리가 올라간다.
“허락하지. 그게 다인가?”
“아니요. 이게 정말 중요한 부탁입니다만…..”
“뭐지?”
“테이블 앞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 수 있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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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공간 써! 너무 어지럽히지는 말고!”
마스터 쿡은 한길과 길버트를 주방의 한쪽, 구석진 자리로 보냈다.
최대한 자신들의 동선과 떨어진 곳으로.
저들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데 분주했으니까.
지금 시각은 이제 8시.
저녁은 4시.
앞으로 여덟 시간 내에 모든 요리를 준비해야 한다.
넉넉한 것 같지만, 만들어야 하는 요리 개수가 많아 서두르지 않으면 빠듯하다.
“그래서, 뭘 만들 거야?”
“일단 빵이랑 수프는 기본으로 만들어줘. 일전에 내가 만들었던 채소 장미, 장미 소고기 전골, 양고기 왕관도 부탁할게.”
“그거면 돼?”
“나머지는 새로 해 보는 거라 내가 직접 해야 해서. 일단, 재료부터 구해와야 하는데, 이게 조금 까다로운데….”
“재료는 무엇이든 말해. 내가 또 그런 건 특기잖아?”
“진흙이 있을까? 그리고 이만한 이파리도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진흙?”
길버트는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시선으로 한길을 바라봤지만, 마지못해 나가서 필요한 재료를 구해왔다.
제법 큰 이파리와 고운 질감의 진흙을.
“이걸로 뭐 할 건데?”
“닭고기.”
“뭐?”
한길이 생각한 메뉴는 닭고기 진흙구이였다.
두툼한 진흙 껍데기를 깨트리면 안에서 닭고기가 나오는 요리.
반전을 좋아하고 재미를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이라면 이런 요리를 즐길 것 같았다.
파이 안에 새가 나오는 것보다는 진흙 안에서 닭고기가 나오는 게 낫고.
단순히 재미만 주는 게 아니라, 진흙구이는 맛에도 영향을 준다. 수분이 탈출하지 못하게 진흙 속에 꽁꽁 가두어 오븐에 넣어 구우니, 육질이 더욱 촉촉하면서 부드럽다.
한길은 작은 계란 몇 개를 삶아서 닭고기의 배 안에 채워 넣고, 닭고기 표면에 양념을 넉넉하게 발랐다. 양념은 평범하게. 올리브유에 마늘을 조금 넣고, 로즈메리와 타임을 넣은 양념이다.
그리고 선물을 포장하듯, 깨끗한 이파리로 닭고기를 빈틈없이 감싸주었다. 그래야 진흙이 고기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으니까.
마지막으로는 진흙을 덕지덕지 붙여서 동그랗게 빚어냈다.
“이건 무슨 모양이야?”
“계란 모양.”
“계란 안에 닭을 가둔 거야?”
길버트는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인류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영국인이라면 이런 유머도 좋아할 것 같았다.
“여기에다가 무늬 좀 세공시켜줘. 모양은 달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오케이.”
닭고기가 완성되었다면, 다음은……
촤륵. 촤륵.
한길은 계란의 흰자만 이용하여 머랭을 치기 시작했다. 적당히 거품이 올라오고 생크림 같은 질감이 될 때까지.
별도의 볼에는 소금과 후추, 로즈메리를 섞어주고. 마지막으로는 소금과 머랭을 섞어주었다.
그리고 레몬과 올리브유, 마늘을 채워 넣은 생선 위에 소금 머랭을 발랐다.
“이건 뭔데?”
“솔트 베이크.”
“이것도 모양을 빚어낼 수 있나?”
“아니, 이건 그냥 산처럼 쌓아야 해.”
소금을 섞은 머랭은 열기를 닿으면, 그 모양 그대로 굳어 버린다. 진흙구이와 같은 개념이다. 이 역시, 열기와 수분을 내부에 꽁꽁 가둬두어서 촉촉하게 익힐 수 있다.
“다음에는 뭘 만들까?”
어느새 옆에 있는 길버트도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다음은…. 호밀로 작은 전병을 튀겨낼 거야. 호밀 뚜껑처럼.”
첫 번째 코스의 컨셉은 보물찾기다.
꽁꽁 숨겨둔 요리를 하나하나 깰 때마다 반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두 번째 코스는….
“이것도 다 숨기면 좀 그렇지 않나? 처음 볼 때는 신기하지만, 두 번째 코스가 되면 조금 질릴 것 같은데?”
“두 번째 요리도 비슷한 개념이긴 한데, 조금 다르게 갈 거야. 끝이 화려해야 기억에 남으니까.”
“그래서 뭘 만들 건데?”
한길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하얀 알갱이가 잔뜩 들어있는 바구니를 꺼냈다.
“그렇게 말해놓고 고작 설탕이냐?”
이 시대에 설탕은 비싸지만, 왕궁에서는 매일같이 어마어마한 양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특별한 재료는 아니었다.
적어도, 이들이 쓰는 방식으로 쓴다면.
“일단 한번 두고 봐. 설탕이 제일 마법 같은 재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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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프턴 경, 왔는가?”
“전하, 인사드립니다.”
왕비의 방 안으로 들어온 컴프턴 경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왕비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만 해도, 컴프턴 경 따위를 식사에 초청하는 일은 없었다.
국왕의 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자신이었으니.
“전하랑 함께하는 밥상도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게 몇 달 만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정말 오래되었군요.”
“그러게 말일세. 컴프턴 경은 잘 지냈나?”
“저야 항상 똑같죠. 그때든, 지금이든.”
적당히 소소한 인사를 나누는데, 컴프턴 경의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나?’ 하는 표정이다.
왕비가 자신에게 국왕의 근황을 물을 거라고 확신하는 표정.
같은 궁 안에 살면서, 남편이 어찌 지내는지, 저런 하인을 통해 들어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화병으로 누워버릴 것 같지만. 왕비는 간신히 마음을 다스렸다.
‘조심스럽게. 절박해 보이면 지는 거니까.’
여기서 정말로 질문을 하게 된다면, 컴프턴 경이 우위에 서게 된다. 분명, 왕에게 좋은 말을 넣어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할 거다.
국왕이 뭘 하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헨리는 변덕이 심해서 쫓아오면 도망가지만, 무관심해지면 스스로 기어올 테니까.
“그래서, 오늘 저를 보자고 한 건 무엇 때문인지요?”
“자네는 흥이 많은 사람이니까, 재밌는 요리를 보여주기 위해 불렀지.”
“요리요?”
“식사에 초대하는 이유가, 요리 말고 또 있겠나?”
컴프턴 경의 입술이 뒤틀렸다.
자신이 원하던 말을 듣지 못했으니까.
‘정말 밥만 먹기 위해 불렀냐‘는 표정이다.
잠시 후, 시녀들이 손을 씻는 물을 가져다주고 냅킨을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러자, 예의 건방진 요리사가 식사의 시작을 알렸다.
“첫 번째 코스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순식간에 열다섯 개의 접시가 차려졌다.
“오! 이게 최근 귀족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그 요리인가 보군요.”
“그런가 보군.”
시선을 사로잡는 요리였다.
양고기를 엮어서 만든 왕관.
튜더 장미 문양을 새겨 넣은 수프.
채소로 만든 장미.
최근 그레이트 홀에서 식사를 하는 귀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요리다.
왕비도, 컴프턴 경도. 건너건너 전해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 세 가지 요리는 훌륭했지만…..
‘저 다른 것들은 대체 왜 저렇게 만든 거지?’
그 외에 상에 올라온 요리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빈약해 보였다.
동그란 조각상이 하나.
넓적한 파이가 여럿.
하인들이 먹을 것 같은 길쭉한 갈색 빵이 하나.
왕비의 밥상에 올리기에는 너무 조촐해 보이는 요리들이라 절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왕비는 최대한 컴프턴 경의 시선을 화려한 요리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튜더 장미를 쏙 빼닮았군.”
“그러게요. 국왕 전하도 보시면 참 좋아하시겠습니다.”
“저 양고기 왕관도 정말 왕관 같구나.”
“그러게요. 위풍당당하네요.”
식사를 여는 수프를 먹은 후, 왕비는 바로 양고기부터 맛을 보았다.
개인 칼로 양갈비를 한 조각 썰어내고, 하얀 뼈를 손잡이 삼아 들고. 입을 크게 벌려 베어 물자, 살점이 후드득 떨어져 나왔다.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할 때, 옆에서 컴프턴 경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이건! 확실히 신기하긴 하군요! 이렇게 겉은 바삭한데, 안은 부드럽다니! 이런 고기는 처음 먹어봅니다.”
그 말대로였다.
양고기 표면에 있는 오돌토돌한 조각들이 입안에서 오도독하니 씹히면서 리듬을 냈다.
고기는 부드러우면서도 육즙이 가득했다.
영원히 마를 것 같지 않을 것처럼, 풍부한 육즙이 강처럼 흘렀다.
하지만 정말 진미는, 고기가 아니라 장미 스튜였다.
요리사가 눈앞에서 육수를 붓자, 붉은 장미 모양의 스튜가 단풍잎이 말라가듯이,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갔다.
스푼 위에 하늘거리는 소고기 한 점을 올려서 후르릅하고 빨아들이면, 육수와 함께 레이스같이 얇은 소고기가 그대로 입안으로 딸려 들어왔다. 씹을 필요도 없이 부드러운 고기였다.
왕비는 고기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항상 고기만 많은 밥상에 속이 거북했었는데.
이 요리는 속이 참 편해지는 요리였다.
감칠맛 넘치는 담백한 육수가 입안을 한번 가볍게 감싸주고, 그 온기가 그대로 뱃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육수는 향신료가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 수수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본분을 다하는 맛. 그러면서도 초라하지 않고 윤택한 맛이었다.
채소 장미는 또 어떻고!
아삭하게 입안에 씹힐 때마다 상쾌하게, 한여름에 소나기를 흩뿌리듯이 채소의 즙이 입안에 뿌려졌다.
이렇게 속이 편한 식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화려한 요리를 마치고 이제 나머지를 맛봐야 하는 순간.
왕비가 냅킨에 손을 닦자, 건방진 요리사는 다가와 무언가를 왕비 앞에 내려놓았다.
작은 손 망치였다.
나무로 만든 듯한, 제법 묵직한 망치.
“이것 뭐지?”
“망치입니다. 원하는 요리를 선택해서 하나씩 깨서 드시면 됩니다.”
“깨라고?”
“네. 망설임 없이, 있는 힘껏 치시면 됩니다.”
뭐 이런 식으로 먹는 요리가 다 있나 싶었지만, 왕비는 망치를 꽉 움켜쥐었다.
지금 가장 거슬리는 요리가 있었으니까.
컴프턴 경이 더 오래 관찰하기 전에, 저 요리 먼저 처분하고 싶었다.
왕비는 기다랗게 구워진 갈색 빵 위에 망치를 올렸다.
갈색 빵이라니!
왕족과 고위 귀족은, 보다 연한 색의 맨치트(manchet) 빵을 먹는다.
고급스러운 하얀색 빵을.
저렇게 진한 갈색 빵은 하인이나 먹는 요리다.
요리사에게 이런 기본도 모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컴프턴 경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래 이딴 빵, 빨리 치워버려야지.’
세차게 망치를 휘두르자,
빠작!
쾌감을 주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빵이 부서졌다. 그리고 부서진 빵의 틈새로 눈동자가 보였다.
“어? 생선?”
< 99. 그냥 즐겨! > 끝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