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Coder RAW novel - Chapter (10)
탑 코더-10화(10/303)
# 10
갑질을 이기는 기술
────────────────안재현이 잔뜩 인상을 쓰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 과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번 납품 건은 우리한테 밀어 준다고 했잖아.”
“판은 다 만들어 두었습니다. 장 부장님한테도 언질을 해 두었고요.”
“그런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지가 선진에서 천년만년 갈 줄 아나······.”
안재현의 냉소에 이도준이 입맛을 다셨다.
“아마 그렇게 생각 할 지도 모릅니다. 최근 임원 승진 인사에 포함되었다는 말이 돌고 있어요.”
“임원이 뭔지 자네도 알잖아.”
“임시직원. 말씀이십니까?”
“그래, 누구는 왕년에 선진에서 한 가닥 안 했는 줄 아나.”
“장민재는 S급 인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S급이라는 말에 안재현의 동공이 확장이 되었다.
“S급?”
S급.
선진이 관리하는 인재 들 중 핵심 인력을 가리키는 말로, 그들은 연봉이나, 인센티브에서 타 임직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우를 받는다. 임원이 되어도 임시 직원 취급을 받지 않는다. 회사는 그들이 혹여 회사를 떠날까 걱정한다.
S급이 되면 갑과 을이 바뀌는 것이다.
“빅 데이터 분석 팀장으로 선진 전자에서 출시하는 인공지능 플랫폼 빅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까요.”
“그런 놈이 왜 검색 솔루션 납품에 평가위원을 하겠다고 한 거야. 다른 할 일도 많을 텐데.”
“아무래도 검색 쪽이 자신들과 관련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검색이 잘 안되면 분석 쪽에서 솔루션 선택을 어떻게 한 거냐. 이런 사소한 뒷말도 듣기 싫은 것일 테지요.”
안재현의 구겨진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래서 솔루션 선정은 어떻게 될 것 같아? 장민재 반응 보니까. 시내 쪽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볼 때 ISQI 평가 항목의 평균점을 내보면 시내 소프트와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 보안, 단가에 대한 점수를 합치면 아직은 미라클이 우위에 있습니다.”
“자네도 이제 슬슬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알 고 있네. 나와서 누구 밑에 들어가는 것 보다 이거 함께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도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력이 있는 솔루션이라면 제가 크게 힘쓰지 않아도 채택 될 겁니다.”
안재현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물론 기술력은 충분하지. 그래도 확실히 하자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 중요해. 선진에 납품 된다고 하면 다른 회사에 들어 갈 때도 좋고, 공공 기관은 말 할 것 도 없고 말이야.”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최소한 부사장 자리 마련해 놓을 테니까. 서로 ‘윈윈’ 하자고.”
대화를 마친 둘은 다시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
회의실로 돌아온 이도준이 장민재의 눈치를 살폈다. 장민재는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실력을 보면 예사 수준이 아냐. 그런 인재가 왜 저런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수는 몇 마디 대화로도 고수를 알아보는 법.
아주 잠깐의 대화였지만 장민재는 승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친구가 왜 시내 소프트 같은 작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 평가를 하고 있는 건가··· 한 시간 만에 그걸 구현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
장민재가 눈을 뜨고 옆에 앉아 있는 부하 직원에게 물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시내 소프트 검색 품질이 갑자기 좋아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갑작스런 질문에 직원은 멈칫 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생각에는 퍼지 문자열 검색 알고리즘을 적용 한 것 같아. 그 중에서 레벤슈타인 알고리즘으로 보이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레벤슈타인 알고리즘이라면 그 오타 문자열의 수정 거리를 수치화하는 것 말씀이십니까?”
장민재의 부하직원도 나름 명문대 석사 급 인력.
들어 본적이 있는 알고리즘이었다.
“그래, 자네라면 그걸 한 시간 안에 구현해서 적용 할 수 있겠나?”
장민재의 연이은 질문에 직원이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한 시간은 좀 무리지 않을까요.”
역시나 예상 했던 대답이었다. 자신도 한 시간 안에 구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뜻이었다.
“흠, 흠흠. 장 부장님. 총 평 부탁드립니다.”
이도준이 장민재의 생각을 끊고 들어왔다. 장민재가 시선을 돌려 회의장을 훑었다. 그 시선이 승호에게서 멈췄다.
‘한 시간 만에 레벤슈타인 알고리즘을 구현했다. 그것도 다른 알고리즘들과 비교를 해가면서 가장 최적의 방법을 찾아냈어······.’
생각을 마친 장민재가 입을 열었다.
“오늘 각 사의 검색 솔루션 시연회 잘 보았습니다. 두 회사의 기술력은 확실히 남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한 회사의 솔루션을 택하는 것이 더 나은 기술력을 가진 회사라는 반증이라기보다는 선진 그룹에 더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솔루션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장민재가 말을 이어 나갔다.
“평가는 ISQI 방식을 따랐으며 검색 속도, 품질, 양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결정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시연회에 참석하여 귀한 시간을 내주신 점 감사드리며 앞으로 기술 협력을 통해 양 사가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총 평을 마치겠습니다.”
장민재가 말을 마치자, 다시 이도준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시연회를 마치겠습니다. 최종 결과는 일주일 후 개별 통보 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웅성웅성.
2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씩 회의실을 빠져 나갔다. 승호도 가져 왔던 수첩을 집어넣고, 노트북을 들쳐 멨다. 그런 승호에게 장민재가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서로 명함도 교환하지 않았네요.”
한 손으로 명함을 받아 든 승호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평소 사무실에서만 근무하기에 명함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지갑 속에 오래전에 넣어놓았던 명함 한 장을 찾을 수 있었다.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구겨진 명함.
“여기 이건 제 명함입니다.”
장민재가 천천히 명함에 새겨진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시내 소프트 강승호 사원. 오늘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라도 상관없으니 개의치 말고, 연락 주세요. 꼭 한 번 식사 대접 하고 싶으니까.”
장민재의 말에 황호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최기훈도 마찬 가지 반응. 저 말에 담긴 의미를 알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카우트 제의.
승호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기술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실 거라면 저도 좋습니다.”
승호의 말에 황호근의 표정이 밝아졌다. 최기훈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장민재가 소탈 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물론입니다. 기술자들이 만나서 기술 이야기 하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장민재는 악수를 청하고 등을 돌렸다.
‘당장 데려오는 건 무리겠어. 어차피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으니 상관없겠지.’
장민재가 빠져 나가고 시내 소프트 사람들이 승호에게 몰려들었다.
황호근이 승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진짜 수고 많았다.”
최기훈도 승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정말 수고 많았어. 덕분에 시연회가 잘 끝났다.”
박태수도 마찬가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그리고 황호근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오늘 같은 날 회식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회식 좋지. 회사 근처 맛 집 한 번 찾아봐봐. 오늘 코가 비뚤어지게 먹어보자.”
“역시 내가 이래서 사장님을 좋아한다니까.”
서로 격의 없는 모습에 승호의 입 꼬리도 위로 올라갔다. 일행이 막 회의실을 나서려고 할 때, 선진 데이터시스템 직원이 다가왔다.
“저기··· 정보 보안 팀의 송보나라고 하는데요.”
황호근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아, 네. 송 대리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사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다름이 아니고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보안 지적 사항 중에 검색 화면 코드 난독 화 부분 있잖아요.”
황호근이 힐끔 최기훈을 보았다.
“아, 그건 여기 최 팀장이.”
그러자 최기훈이 승호를 보며 말했다.
“그건 여기 승호씨가 말씀 드릴 겁니다.”
송보나의 시선이 차례로 움직이다 승호 앞에서 멈추었다.
“아무리 해도, 뷰티파이(코드를 다시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행위)가 안 되던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잠시 고민을 하던 승호가 황호근을 보았다. 눈빛의 의미를 눈치 챈 황호근이 말했다.
“편하게 말씀 드려도 돼.”
그제야 승호가 입을 열었다.
“자세한 걸 말씀 드리면 난독화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베이스128로 인코딩 했습니다.”
“자, 잠시만요. 베이스128이요? 그건 실제 사용 되지도, 표현 할 수도 없는 방식이잖아요.”
“찾아보시면 포트에서는 이미 적용한 사례 있습니다. 자세한건 기업 비밀이라 더 이상은 곤란 합니다.”
포트.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
‘포트 해봐’가 곧 검색해보라는 의미였다.
승호가 몸을 돌리려 하자 송보나가 한 번 더 붙잡았다.
“이, 이봐요. 잠시 만요. 아스키II로 출력가능한 문자가 공백 포함해서 95개. 33개는 출력이 불가능한 제어 문자라 128은 없는 걸로 아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보안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말이 되겠군요. 누구도 저희 검색 화면 코드를 뷰티파이해서 살펴 볼 수 없을 테니까요.”
“······.”
송보나는 반박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눈치를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 그림자 하나가 더 드리워졌다.
“정보보안팀 김신우 과장입니다. 잠시 시간 되시면 더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이야기가 잘 끝나면 검색 솔루션만이 아니라, 보안 솔루션 납품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황호근이 두 눈을 부릅떴다.
오후 3시.
아직 시간은 많았다.